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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경(楞伽經, Laṅkāvatārasūtra) 한국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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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품 라바나가 청법하는 품 (Rāvaṇādhyeṣaṇā-pariv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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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능가성(楞伽城) 바다 곁 말라야산 봉우리에 계셨으니, 온갖 보배와 꽃으로 장엄된 그곳에서 많은 비구 대중과 더불어, 그리고 여러 부처님 세계로부터 모여든 보살마하살들과 더불어 계셨다. 보살들은 온갖 삼매와 자재력과 힘과 신통으로 노닐며, 마하마띠 보살을 우두머리로 하고, 모든 부처님의 손으로 정수리에 관정을 받았으며,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경계를 두루 아는 데 능숙하고, 온갖 중생의 마음과 행동과 모습과 방편과 다스림을 잘 지니는 이들이니, 오법(五法)과 자성(自性)과 식(識)과 무아(無我)의 둘 아닌 경지에 이른 이들이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용왕 사가라(娑竭羅)의 궁전에서 이레 만에 나오셨다. 헤아릴 수 없는 제석천·범천·용왕의 딸들이 마중 나와 맞이하는 가운데, 세존은 능가의 말라야산을 바라보시고 미소를 지으시며 생각하셨다 — "예전의 여래·응공·정등각들께서도 이 능가성 말라야산 봉우리에서,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경계이며 외도·성문·연각은 사유나 견해로 헤아릴 수 없는 그 경지를 몸소 나타내어 법을 설하셨다. 나 또한 이곳에서 야차의 왕 라바나를 상대로 삼아 바로 이 법을 드러내어 설하리라."
나찰의 왕 라바나는 여래의 위신력에 의해 이를 들었다 — "세존께서 용왕 사가라의 궁전에서 나오시어, 헤아릴 수 없는 제석·범천·용녀들에게 둘러싸이고 앞세워져, 바다의 물결을 바라보시며 아뢰야식의 큰 바다에서 전식(轉識)의 바람으로 인해 일어나는 경계에 마음이 이끌려 모여든 대중들의 마음을 살피시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르시며 감흥의 말씀을 읊으셨다 — 나도 가서 세존께 청하여 능가에 들도록 청해야겠다. 그것이 나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안락이 되고, 하늘과 사람들에게도 이익과 안락이 되리라."
그리하여 나찰의 왕 라바나는 권속과 함께 뿌쉬빠까(蓮花) 궁전 수레에 올라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수레에서 내려와 권속과 함께 세존을 세 번 오른쪽으로 돌아 예배하고, 온갖 악기를 연주하며 — 인드라닐 보석으로 된 지팡이에 폐유리와 진주로 장식한 비파를 아름다운 담황색 천으로 옆구리에 매달고,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 등의 음계와 선율에 맞추어 능숙하게 비파를 어루만지며 노래로 이렇게 읊었다 —
마음의 자성인 이치와 법의 궤칙, 견해를 벗어난 청정한 무아(無我)의 법을, 스스로 증득하여 아는 경지를 보여주는 이 법의 이치를, 이끄시는 분이시여, 이곳에서 설하여 주소서. (1품 1송)
선한 법을 쌓아 이룬 몸이신 선서(善逝)시여, 화현으로 나투신 모습을 보이시는 분이시여, 스스로 증득하여 아는 경지의 법을 좋아하시는 분이시여, 오늘이야말로 성자시여 능가에 드실 때입니다. (1품 2송)
이 능가는 예전의 승리자들과 그 아드님들 — 온갖 모습을 나투신 분들 — 께서 머무셨던 곳입니다. 구호자시여, 여기서 훌륭한 법을 설하소서. 온갖 모습을 한 야차들이 들을 것입니다. (1품 3송)
그리고 능가의 왕 라바나는 또한 토따까 운율로 노래한 뒤, 다시 게송의 노래로 이렇게 읊었다 —
이레 밤 만에 세존께서는 마카라(용)들이 사는 바다, 바다 왕의 궁전에서 나오시어 물가에 서 계셨습니다. (1품 4송)
부처님께서 서시자마자 라바나는 천녀들과 더불어, 앵무새처럼 말 전하는 데 능한 온갖 야차들과 함께 나아갔습니다. (1품 5송)
신통력으로 그 길을 가서 구호자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뿌쉬빠까 수레에서 내려와 예배하고 공양하며 여래께 자신의 이름을 아뢰니, 승리자의 왕[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았습니다. (1품 6송)
"저는 열 개의 목을 가진 나찰의 왕 라바나로서 이곳에 왔습니다. 저와 이 성에 사는 이들의 능가를 가엾이 여겨 주소서." (1품 7송)
"예전의 정등각들께서도 보배로 장식된 봉우리, 성 가운데에서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를 밝히셨습니다." (1품 8송)
"세존이시여, 그 보배로 장엄된 봉우리에서 부처님의 아드님들에게 둘러싸여 티끌 없는 법을 설하여 주소서. 오늘 저희와 능가에 사는 이들도 듣고자 합니다." (1품 9송)
"설법의 이치를 벗어난,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인 이 능가입경(楞伽入經)은 예전의 부처님들께서 찬탄하신 것입니다." (1품 10송)
"저는 예전의 부처님들께서 부처님의 아드님들을 앞세우고 이 경을 설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세존께서도 설하여 주소서." (1품 11송)
"미래세에 나타나실 부처님들과 부처님의 아드님들도, 보배로 꾸며진 봉우리에서 바로 이 하늘의 이치를, 야차들을 가엾이 여겨 설하실 것입니다." (1품 12송)
"하늘의 능가성은 아름답고 온갖 보배로 장엄되었으며, 시원하고 아름다운 산비탈과 보배 그물 휘장으로 덮여 있습니다." (1품 13송)
"세존이시여, 이곳에는 탐욕과 성냄을 벗어나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를 사유하는 야차들이 있으니, 예전의 부처님들께 이미 뜻을 두었고 대승의 이치에 신심이 깊어 서로를 이끌어주는 이들입니다." (1품 14송)
"야차 여인들과 야차의 아들들도 대승을 알고자 하니, 스승이신 세존께서는 능가의 말라야산으로 오소서." (1품 15송)
"꿈바까르나를 우두머리로 하는 성에 사는 나찰들도 대승에 귀의하여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를 들을 것입니다." (1품 16송)
"그들은 이미 부처님들께 힘써 왔고 지금도 힘쓸 것이니,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아드님들과 함께 능가로 오소서." (1품 17송)
"궁전과 천녀의 무리와 온갖 목걸이, 그리고 아름다운 아쇼까 동산을 받아 주소서, 큰 성자시여." (1품 18송)
"저는 부처님들과 그 부처님의 아드님들의 명을 받드는 자이니, 큰 성자시여, 가엾이 여겨 주시면 제가 드리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1품 19송)
그의 이 말을 들으시고 삼계의 주인께서 말씀하셨다 — "야차의 왕이여, 예전의 구호자들께서도 이 보배산에서" (1품 20송)
"스스로 증득하는 법을 설하셨고 그대 또한 가엾이 여기셨노라. 미래의 부처님들 또한 보배로 장엄된 이 산에서 설하시리라." (1품 21송)
"이곳은 진실로 현재의 법에 머무는 수행자들의 거처이니, 야차의 왕이여, 그대는 선서들과 나의 가엾이 여김을 받을 만하다." (1품 22송)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청을 받아들이시고 고요한 마음으로 머무시며, 라바나가 바친 뿌쉬빠까 수레에 올라타셨다. (1품 23송)
거기서 라바나와 다른 뛰어난 부처님의 아드님들도, 웃음과 춤 등으로 즐기는 천녀들의 공양을 받으며 성으로 들어갔다. (1품 24송)
그 아름다운 성에 이르러 다시 공양을 받으셨으니, 라바나를 비롯한 야차의 무리와 야차 여인들의 공양을 받으셨고, 야차의 아들들과 야차의 딸들, 그리고 보배 그물로도 공양을 받으셨다. (1품 25송)
라바나 또한 보배로 장식된 목걸이들을 부처님과 부처님의 아드님들의 정수리에 얹어드렸다. (1품 26송)
세존께서는 공양을 받으신 뒤 지혜로운 부처님의 아드님들과 더불어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인 법을 밝히셨다. (1품 27송)
라바나와 야차의 무리는 최고의 설법자[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뒤, 마하마띠를 공경하며 거듭거듭 청하였다 — "그대가 모든 부처님들께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를 여쭈어 주소서." (1품 28송)
"저와 야차들과 여기 모인 부처님의 아드님들도 듣는 자입니다. 야차들과 지혜로운 부처님의 아드님들이 그대에게 청합니다." (1품 29송)
"논사들 가운데 그대는 큰 논사이며 수행자들 가운데 요가를 이끄는 이입니다. 공경히 그대에게 청하오니, 통달하신 분이여, 이치를 여쭈어 주소서." (1품 30송)
"외도의 허물을 벗어나고 연각과 성문들도 헤아릴 수 없는, 스스로 증득한 법성이 청정하며 부처님 경지의 위신력을 드러내는 그 법을." (1품 31송)
세존께서는 그곳에 보배로 장식된 봉우리들을,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보배로 꾸며진 다른 하늘의 봉우리들도 화현으로 나타내셨다. (1품 32송)
낱낱의 뛰어난 산봉우리마다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시니, 야차 라바나 또한 그 낱낱의 봉우리마다 머물러 있었다. (1품 33송)
여기서 모든 대중이 낱낱의 봉우리마다 나타나 보였으며, 온갖 세계와 그 세계들의 구호자들도 그러하였다. (1품 34송)
나찰의 왕과 능가에 사는 이들도 그와 같이 있었으니, 승리자께서 그것과 견줄만한 능가를 화현으로 나투셨고, 다른 아쇼까 동산들과 숲의 아름다움들도 그곳에 있었다. (1품 35송)
낱낱의 산에서 구호자께서는 마하마띠의 청에 이끌리시어,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를 나타내는 법을 야차를 위해 설하셨으며, 그 산에서 십만 게송에 이르는 온전한 경을 설하셨다. (1품 36송)
스승과 부처님의 아드님들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시자, 야차 라바나는 자기 자신이 궁전에 있는 것을 보았다. (1품 37송)
그는 생각하였다 — "이는 무엇인가, 이는 누구인가, 무엇이 설해졌으며 누가 들었는가? 무엇을 보았고 누가 보았는가? 성은 어디 있으며 선서는 어디 계신가?" (1품 38송)
"그 세계들과 그 부처님들, 보배로 빛나던 것들과 선서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꿈인가, 아니면 환술인가, 건달바성이라 불리는 것인가?" (1품 39송)
"내가 여기서 본 것은 눈병 때문에 보이는 헛것인가, 신기루인가, 꿈인가, 아이 못 낳는 여인이 아이를 낳은 것인가, 아니면 불타는 바퀴의 연기인가?" (1품 40송)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마음의 경계에 있는 모든 법들의 법성인가? 어리석은 이들은 온갖 분별로 미혹되어 이를 깨닫지 못하는구나." (1품 41송)
"보는 자도 없고 보여지는 것도 없으며, 말하는 것도 없고 말하는 자도 없다. 다만 이 분별이 있을 뿐이니, 부처님의 법의 모습은 그렇게 머문다. 본 대로 보는 자들은 구호자[진리]를 보지 못하는 자들이다." (1품 42송)
"분별이 일어나지 않을 때 비로소 부처님을 보지 못함이 없으니, 일어남이 없는 경지에서 부처가 있다면 그가 정등각을 본 것이다." (1품 43송)
찰나 사이에 깨달음이 뒤바뀐 의지처[전의, 轉依]를 얻어,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증득하고, 분별의 작용을 벗어난 경지에 머무는 능가의 왕—오랜 선근에 이끌리고, 온갖 논서에 능통한 지혜로 있는 그대로를 보는 이, 다른 이에게 이끌리지 않는 이, 자신의 지혜를 잘 살피는 이, 사변적 견해를 벗어나 봄에 이른 이, 다른 이에게 이끌리지 않는 큰 요가행자로서 온갖 형상을 두루 나투는 이, 방편의 능숙함으로 경지에 이른 이, 모든 지위에서 차례로 자상(自相)을 증득함에 능숙한 이, 마음·의(意)·의식(意識)의 자성을 분별함을 여의고 즐기는 이, 삼세의 이어짐이 끊어짐을 보는 이, 온갖 원인이라는 외도의 견해를 여읜 지혜를 지닌 이, 여래장인 부처의 경지에 몸소 들어가 머무는 이, 이미 깨달음에 머무른 깨달은 이—에게 허공으로부터 몸소 증득하여 아는 말씀이 들려왔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능가의 왕이여. 실로 훌륭하다, 능가의 왕이여. 수행자는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하나니, 그대가 배우는 것처럼 그렇게. 그리고 여래들과 법들은 이렇게 보아야 하나니, 그대가 본 것처럼 그렇게. 다르게 보이는 것에는 단멸의 의지처가 있다. 마음·의·의식을 여읜 그대에 의해 모든 법이 밝혀져야 하며, 안으로 행하는 자로서 밖의 대상에 대한 견해에 집착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문과 연각과 외도가 도달하는 대상적 경계에 떨어진 견해와 삼매를 지닌 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옛이야기나 역사를 좋아하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자성에 대한 견해를 지닌 자가 되어서도 안 되며, 왕권에 대한 교만에 빠진 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여섯 가지 선정 따위만을 닦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능가의 왕이여, 이것이 바로 다른 이의 주장을 논파하는 큰 요가행자들의, 삿된 견해를 잘 부수는 이들의, 아상(我相)의 견해를 잘 돌이키는 이들의, 미세한 인식의 전환에 능숙한 부처님의 아드님들의, 대승을 행하는 이들의 현관(現觀)이다. 여래 스스로 증득한 경지에 들어가는 증득을 위해 그대는 요가를 닦아야 한다. 이렇게 행할 때 다시금 더욱더 청정해지는 이 길을, 능가의 왕이여, 그대가 삼매의 능숙한 성취로써 붙잡은 이 길은 나아가게 될 것이다. 성문과 연각과 외도에 들어가는 즐거운 경계란, 어리석은 외도의 수행자들이 자아를 취하고 보여지는 모습에 집착하며 존재하는 성질과 실체를 따르고 무명의 인연이 되는 견해에 집착하는 자들이 헤아리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능가의 왕이여, 이것이야말로 온갖 형상에 이르는 길이며,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를 깨닫게 하는 이 대승의 증득이다. 특별한 존재로 태어남을 얻기 위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능가의 왕이여, 식의 상자와 창고 속 온갖 인식의 물결을 돌이키는 이것이 대승의 요가에 드는 것이니, 외도의 요가에 의지하여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능가의 왕이여, 외도의 요가는 실로 외도들의 아(我)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일어난다. 식의 자성이 둘이라는 대상에 대한 집착의 견해로부터 외도들의 온화하지 못한 요가가 있다. 그러므로 능가의 왕이여, 훌륭하게 바로 이 뜻을 잘 사유하라. 사유한 대로 여래를 보게 되리니, 이것이 바로 여래를 보는 것이다."
그때 그 사이에 라바나에게 이러한 생각이 일어났다 — "내가 다시 한 번, 온갖 요가를 자재로이 다스리시고 외도의 요가를 돌이키게 하시며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를 나타내 보이시고, 화현과 화신을 여읜 증득의 지혜를 지니신 그분을 뵙고 싶다. 수행자들이 요가의 현관을 이루는 삼매의 문에서 다 마쳤을 때 증득이 있으니, 그 증득으로 인해 수행자들에게 요가라는 말이 붙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자비로우신 분, 번뇌라는 땔감과 분별을 다하게 하시는 분, 부처님의 아드님들에게 둘러싸이시고, 모든 중생의 마음과 뜻에 두루 들어가시며,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시며, 작위의 특징을 여의신 그분을, 바로 그 신통력으로써 뵙고자 한다. 그것을 봄으로써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고자 한다. 이미 증득한 것은—분별없는 행, 즐거운 삼매의 성취에 머무는 것, 여래의 경지에 이르는 것—더욱더 늘어나기를."
그때 세존께서는 그 순간 능가의 왕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했음을 아시고, 다시 그 위엄으로써 열 개의 목을 가진 라바나를 가엾이 여기시어, 온갖 보배로 가득 장식되고 보배 그물이 펼쳐진 봉우리에서 다시 스스로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다. 열 개의 목을 가진 능가의 왕은 다시 이전에 보고 경험했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봉우리에서 보았으니, 서른두 가지 뛰어난 상호로 장엄된 여래·응공·정등각의 몸이었다. 그리고 낱낱의 산에서 부처님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마하마띠와 함께 여래의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야차들에게 둘러싸여 설법하는 이야기를 설하는 것을 보았으니, 그 세계들에는 구호자들이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다시 그 순간 대중을 지혜의 눈으로—육신의 눈이 아니라—바라보시고, 사자왕처럼 몸을 펴시며 크게 웃으셨다. 미간의 백호(白毫)로부터 광명을 내시고, 옆구리와 허리와 가슴의 상서로운 표지로부터, 온갖 털구멍으로부터 겁의 끝에 이는 불처럼 빛나는, 인드라의 활과 아침 해에 견줄만한 광명의 무리로 빛나며, 제석과 범천과 세상을 지키는 신들이 허공에서 우러러보는 가운데, 수미산 봉우리와 견줄만한 봉우리에 앉으시어 크게 웃으셨다. 그러자 그 보살 대중과 제석·범천 등에게 이러한 생각이 일어났다 — "무슨 까닭이며 무슨 인연으로 모든 법에 자재하신 세존께서 미소를 먼저 지으신 뒤 크게 웃으시며, 광명을 자신의 몸에서 내시는가?" 세존께서는 광명을 내신 뒤 침묵하시며,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경계인 삼매의 문에 들어간 마음으로 놀라지 않으시고, 사자처럼 사방을 둘러보시며 라바나의 요가의 경계와 작용을 두루 사유하고 계셨다.
그때 대보살 마하마띠는 이전에 이미 청함을 받았고, 라바나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그 보살 대중의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미래의 사람들을 살펴보아 설법의 말에만 즐거워하는 중생들의 마음이 어지러워질 것을 염려하여—말 그대로의 뜻에만 집착하고 성문·연각·외도의 요가의 힘에만 집착하는 이들에게 여래들께서도 때로 인식의 대상을 벗어나 크게 웃으시는 것이니—그들의 의혹을 풀어주고자 세존께 여쭈었다 — "무슨 까닭이며 무슨 인연으로 미소가 일어났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훌륭하고 훌륭하다, 마하마띠여. 실로 훌륭하다, 마하마띠여. 세상의 자성을 살펴보고 삿된 견해에 떨어진 세상 사람들의 삼세에 걸친 마음을 깨닫게 하고자 나에게 묻기 시작하였구나. 지혜로운 이들은 이렇게 자신과 남 모두를 위하여 묻는 것이 마땅하다. 마하마띠여, 이 능가의 왕 라바나는 예전의 여래·응공·정등각들께도 두 가지 물음을 여쭈었고, 지금 나에게도 여쭙고자 하니, 이는 모든 성문·연각·외도·요가행자들이 아직 밟아본 적 없는 두 물음의 구별되는 경계와 특징을 밝히기 위함이다. 이렇게 여쭙고자 하는 열 개의 목을 가진 이는 미래의 부처님들께도 여쭐 것이다."
세존께서는 모두 아시면서도 능가의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능가의 왕이여, 그대는 물으라. 여래가 그대에게 기회를 주었노라. 관을 흔들며 서두르지 말라. 그대가 무엇을 바라든지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그대의 마음을 만족시키리라. 그대가 뒤바뀐 분별의 의지처에서 지위의 반대되는 것들을 잘 다스리는 능력으로, 살피는 지혜로써 사유하며, 스스로 증득하는 이치의 특징인 삼매의 즐거운 머묾을 삼매의 깨달음들에 의해 붙들려—적정의 즐거움에 머물며 성문·연각의 삼매의 측면을 넘어서서, 부동지(不動地)·선혜지(善慧地)·법운지(法雲地)에 자리하여 법무아(法無我)에 있는 그대로 능숙한 이로서—큰 보배 연꽃의 궁전에서 삼매에 의한 부처님의 관정을 받게 되리라. 그에 걸맞는 연꽃들로, 자신의 몸에 갖가지로 위신력을 갖춘 그 연꽃들로 자신의 몸이 앉혀진 것을 보게 되리라. 그리고 서로 마주보는 얼굴을 보게 되리라. 이처럼 불가사의한 경계이니, 한 가지 성취의 능숙함으로 성취된 것이 수행지에 머무는 것이다. 방편의 능숙함을 갖춘 성취로 성취된 것에서 그 불가사의한 경계에 이르게 되며, 온갖 모습으로 변화하는 여래의 경지에 이르게 되리라. 성문·연각·외도·범천·제석·비사문천왕 등도 일찍이 본 적 없는 것을 그대는 얻게 되리라."
그리하여 세존께서 기회를 주신 능가의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광명이 청정한 보배 연꽃과 같은 그 보배 봉우리로부터, 천녀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갖가지 여러 모양의 꽃다발과 향과 향가루와 바르는 향과 일산과 깃발과 번(幡)과 목걸이와 반쪽 목걸이와 보관과 머리 장식과, 그 밖에 일찍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특별한 장신구들로, 온갖 하늘·용·야차·나찰·건달바·긴나라·마후라가·인간을 뛰어넘는 특별한 악기들로—모든 욕계에 속한 악기들을 화현으로 나투고, 다른 부처님 세계에서 본 특별한 악기들도 화현으로 나투어—세존과 보살들을 보배 그물로 둘러싸고, 갖가지 천으로 높이 세운 깃발을 만들어, 허공으로 일곱 다라수 높이만큼 솟아올라, 큰 공양의 구름을 비처럼 내리며, 악기들을 울리면서, 그 허공으로부터 내려와 해와 번개처럼 빛나는, 두 번째 큰 보배 연꽃으로 장엄된 보배 봉우리에 앉았다. 앉은 뒤 예를 갖추고 미소를 지으며, 세존께서 허락하신 기회로 세존께 두 가지 물음을 여쭈었다 — "저는 예전의 여래·응공·정등각들께도 여쭈었고 그분들께서도 답해 주셨습니다. 세존께도 지금 여쭙니다. 이 설법에서 부처님들께서도, 그리고 세존께서도 반드시 이를 자세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두 가지 법은 화현이 화현을 설한 것이지, 여래들께서 침묵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들께서는 침묵하실 때 오직 삼매의 즐거움의 경계만을 나타내실 뿐, 그 경계를 분별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것을 나투어 보이십니다. 그러니 세존이시여, 법에 자재하신 여래·응공·정등각께서 몸소 이 두 가지 법을 설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 부처님의 아드님들과 저도 듣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능가의 왕이여, 그 두 가지 법을 말하라." 나찰의 왕이 아뢰었다 — "보관과 팔찌와 목걸이와 금강 끈으로 묶은 장신구로 아름답게 꾸미신 분이시여, 법이란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며, 하물며 비법(非法)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어떻게 이 두 가지 법의 버림이 있습니까? 무엇이 비법이고 무엇이 법입니까? 분별의 특징에 떨어진, 분별의 자성이 없는, 물질 아닌 것과 물질인 것 둘 다에 통하는, 아뢰야식을 두루 알지 못함에서 오는 차별 없는 특징을 지닌, 헛것[毛輪]의 자성에 머무는, 청정하지 못한 다함의 지혜를 대상으로 하는 것들에 어찌 그러한 성질의 것들의 버림이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능가의 왕이여, 그렇지 않은가? 항아리 따위와 같이 깨어지는 성질을 지니고 무너지는 법을 지닌 것들에도 어리석은 이의 분별의 경계로 구별이 있음이 보이지 않는가? 여기서도 어찌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법과 비법의 구별이 있으니, 이는 어리석은 이의 분별을 취한 것일 뿐, 성스러운 지혜의 증득을 향한 봄[見]에 의한 것은 아니다. 능가의 왕이여, 항아리 따위의 존재들은 갖가지 특징에 떨어진 것으로서 어리석은 이들에게만 있고 성인들에게는 있지 않다. 하나의 자성을 지니고 하나의 불꽃에서 일어나 타오르는 것들이 집과 저택과 동산과 궁전에 놓였을 때 땔감에 따라 길고 짧으며 밝고 어둡고 작고 크게 구별됨이 보이니, 여기서도 어찌 이를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법과 비법의 구별이 있다. 다만 불꽃이 하나의 흐름에 속한 것만이 아니라 그 불빛에도 구별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씨앗에서 나온 하나의 흐름에서도, 능가의 왕이여, 싹과 마디와 옹이와 잎과 꽃과 열매와 가지의 차별이 보인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자라나는 것들의, 밖과 안의, 무명으로부터 나온, 온蘊·계界·처處에 속한 온갖 법들의, 삼계에 속하며 즐겁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는 모습을 지닌 것들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갖가지 갈래의 차별들이 있다. 하나의 특징을 지닌 식識들이 대상을 취하는 데 작용할 때에도 낮고 높고 중간인 차별이 보이며, 청정함과 청정하지 못함, 선함과 선하지 못함의 차별도 보인다. 능가의 왕이여, 이러한 법들의 구별되는 특징만이 아니라, 요가를 닦는 수행자들에게도 요가의 길에서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의 특징에 차별이 있음이 보인다. 그런데 어찌 법과 비법의 서로 다른 분별의 작용에 차별이 없겠는가? 있는 것이다."
"능가의 왕이여, 법과 비법 사이에는 구별이 있으니, 분별의 특징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능가의 왕이여, 법이란 무엇인가? 이것들은 외도·성문·연각·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여 헤아린 것들이니, 원인으로서 성질과 실체를 앞세워 법이라고 가르쳐지는 것들이며, 이는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을 특징으로 여겨 분별해서는 안 된다. 자기 마음이 나타낸 법성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항아리 따위의 법들은 없으니, 그것들은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여 세운 것으로서 실체를 얻지 못한 것들이다. 이와 같이 통찰하여 바르게 보는 자에게는 그것들이 끊어진다."
"그렇다면 비법이란 무엇인가? 실체를 얻지 못하고 특징의 분별이 작용하지 않는, 원인 없는 법들이니, 그것들의 작용하지 않음이 있는 것도 없는 것으로서든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법의 버림이 있다. 다시 실체를 얻지 못한 법들이란 무엇인가? 토끼의 뿔, 낙타, 말의 뿔, 아이 못 낳는 여인의 아들 따위의 법들이니, 실체를 얻지 못하기에 특징으로서 헤아려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다만 관습적 언어의 필요에 의해 말해지는 것일 뿐, 항아리 따위처럼 집착으로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식識에 의해 취해지지 않으므로 버려져야 하듯이, 분별의 존재들도 버려져야 한다. 그러므로 법과 비법의 버림이 있다. 능가의 왕이여, 그대가 법과 비법이 어떻게 버려지는가 물었던 것에 대해 이렇게 답하였다."
"또 능가의 왕이여, 그대가 「예전의 여래·응공·정등각들께도 제가 여쭈었고 그분들께서도 답해주셨습니다」라고 말한 것—능가의 왕이여, 이것은 분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과거도 이처럼 과거로 분별되며, 미래도 지금 법성으로서 그러하다. 여래들은 분별이 없으니, 온갖 분별의 희론을 벗어나셨다. 물질의 자성이 분별되듯이 그렇게 여래를 분별해서는 안 되며, 다만 지혜의 증득으로부터 즐거움을 위해 밝혀지는 것으로, 반야로써 모습 없이[無相]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들은 지혜를 본질로 하며 지혜를 몸으로 하니, 헤아리지도 않고 헤아려지지도 않는다. 무엇으로 헤아리지 않는가? 의意로써, 즉 아我로서, 명命으로서, 사람[人]으로서 헤아리지 않는다. 어떻게 분별하지 않는가? 의식이 대상과 뜻을 원인으로 하여, 물질의 특징과 모양과 형태로써 분별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분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분별함과 분별하지 않음에 이른 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능가의 왕이여, 중생의 작용은 벽에 그려진 형상과 같다. 능가의 왕이여, 세간의 벌여짐[世間安立]에는 몸짓이 없으니, 모든 법에 실체가 없으므로 업의 행위가 없다. 여기에는 듣는 자도 들리는 것도 없다. 능가의 왕이여, 세간의 벌여짐은 화현으로 나타난 모습과 같으니, 외도의 어리석은 수행자들은 이를 밝히지 못한다. 능가의 왕이여, 이렇게 보는 자, 그가 바르게 보는 것이다. 다르게 보는 자들은 분별 속에서 행한다고 말해진다. 자신의 분별을 두 가지로 취하니, 마치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의 그림자와 같고, 물속에 비친 자기 몸의 그림자와 같으며, 달빛이나 등불이 밝혀진 집 안에서의 몸의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다. 그리하여 자신의 분별로 취한 것을 취하여 법과 비법을 서로 분별하니, 법과 비법의 버림으로써 행하지 않는다. 분별하여 그것을 키우며, 고요함을 얻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로 집중하는 것[一心]의 다른 이름이니—여래장인,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경계로 들어가는 이 문이, 최상의 삼매가 생겨나는 곳이다."
라바나가 청법하는 품, 이름하여 제1품이 [끝났다].
제2품 삼만육천 가지 온갖 법의 모임 품 (Ṣaṭtriṃśatsāhasrasarvadharmasamuccaya-pariv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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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마하마띠 보살과 함께 있으면서 모든 부처님 세계에 노니는 이로서,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세존을 향하여 합장 예배한 뒤, 게송으로 세존을 찬탄하였다 —
세간은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어 허공의 꽃과 같으니, 있음과 없음이 그대에게는 지혜와 자비로써 얻어지지 않습니다. (2품 1송)
온갖 법은 환술과 같아 마음과 식을 벗어나 있으니, 있음과 없음이 그대에게는 지혜와 자비로써 얻어지지 않습니다. (2품 2송)
세간은 항상됨과 단멸됨을 벗어나 언제나 꿈과 같으니, 있음과 없음이 그대에게는 지혜와 자비로써 얻어지지 않습니다. (2품 3송)
환술과 꿈을 자성으로 하는 법신을 어떻게 찬탄하겠습니까? 자성 없는 존재들의 생겨나지 않음이야말로 생겨남입니다. (2품 4송)
감관과 대상을 벗어나 보이지 않는 것이 그 봄이거늘, 성자시여, 그런 분을 어찌 찬탄이니 비방이니 말할 수 있겠습니까? (2품 5송)
법무아와 인무아, 그리고 번뇌장과 소지장을, 그대는 항상 모습 없는 청정함으로, 지혜와 자비로써 [벗어나셨습니다]. (2품 6송)
그대는 열반으로써 열반에 든 것이 아니니, 열반은 그대 안에 있는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 깨닫는 자와 깨달아지는 것을 벗어나고 있음과 없음의 두 견해를 벗어나 있습니다. (2품 7송)
이와 같이 생겨남을 벗어난 고요한 성자를 보는 이들은, 취함이 없는 이가 되어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물듦이 없게 됩니다. (2품 8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걸맞은 게송으로 세존을 찬탄한 뒤, 자신의 이름과 성을 세존께 아뢰었다 —
세존이시여, 저는 대승의 길에 든 마하마띠이니, 설하시는 이들 가운데 으뜸이신 분께 백여덟 가지 물음을 여쭙고자 합니다. (2품 9송)
그의 이 말을 들으시고 세간을 아시는 이들 가운데 으뜸이신 부처님께서는, 온 대중과 선서의 아드님을 두루 살피시고 말씀하셨다 — (2품 10송)
"부처님의 아드님들이여, 나에게 물으라. 마하마띠여, 그대도 물으라. 내가 그대에게 스스로 증득한 경지의 경계를 설해 주리라." (2품 11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께서 허락하신 기회를 얻어, 세존의 발에 예배한 뒤 세존께 물음을 여쭈었다 —
어떻게 사변(思辨)은 청정해지며, 무엇으로부터 사변은 일어납니까? 어떻게 미혹은 나타나 보이며, 무엇으로부터 미혹은 일어납니까? (2품 12송)
무엇으로부터 화현의 세계들이 있으며, 외도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무엇으로써 형상 없음의 차례가 있으며, 부처님의 아드님들은 어디로부터 있습니까? (2품 13송)
해탈한 이는 어디로 가며, 묶인 자는 누구이고 무엇으로 풀려납니까? 선정을 닦는 이들의 대상은 무엇이며, 어떻게 세 가지 수레가 있게 됩니까? (2품 14송)
무엇이 조건 지어져 생겨나며, 그것의 결과는 무엇이고 원인은 무엇입니까? 두 극단에 대한 말은 무엇으로써, 어떻게 일어나는 것입니까? (2품 15송)
무색계의 선정과 멸진은 어떻게 있으며, 상수멸(想受滅)은 어떠하며, 어떻게 무엇으로부터 벗어남이 있습니까? (2품 16송)
몸을 지닌 이들의 행위와 감[去]은 무엇으로써 일어나며, 어떻게 보이는 것들의 사라짐이 있고, 어떻게 지위들에서 나아갑니까? (2품 17송)
삼계를 벗어나는 이는 누구이며, 그 머무는 곳은 무엇이고 그 몸은 무엇입니까? 어디에 머물러 나아가며, 어떻게 부처님의 아드님이 됩니까? (2품 18송)
신통은 무엇으로써 얻어지며, 자재력과 삼매들은 어떠합니까? 마음은 어떻게 삼매에 드는지 말씀해 주소서, 승리자들 가운데 으뜸이신 분이시여. (2품 19송)
아뢰야식은 어떻게 무엇으로부터 있으며, 의식(意識)도 그와 같습니까? 어떻게 보이는 것이 일어나며, 어떻게 보이는 것으로부터 벗어납니까? (2품 20송)
종성 있음과 종성 없음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으며, 어떻게 유심(唯心)이 있게 됩니까? 특징의 안립(安立)과 무아는 어떻게 있습니까? (2품 21송)
어떻게 중생이 있지 않으면서도 세속으로써의 가르침이 있으며, 어떻게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까? (2품 22송)
그대는 어떻게 외도들과 특징에서 서로 어긋나지 않으며, 미래에 논리를 따지는 이들은 어떠할 것인지 말씀해 주소서. (2품 23송)
공(空)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으며, 찰나 생멸은 어떠합니까? 어떻게 태(胎)가 일어나며, 어떻게 세간은 작위 없이 있습니까? (2품 24송)
무엇으로써 세간은 환술과 꿈에 견주어지며, 어떻게 건달바성에 견주어집니까? 무엇으로써 세간은 아지랑이와 물속의 달에 견주어지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25송)
깨달음의 갈래[覺支]들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으며, 깨달음을 돕는 법은 어디서 있게 됩니까? 마군들과 국토의 요동, 그리고 존재에 대한 견해는 어떻게 있습니까? (2품 26송)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음이 어떻게 허공의 꽃에 견주어지며, 그대는 어떻게 세간을 깨달으시고 어떻게 문자 없음을 말씀하십니까? (2품 27송)
무엇으로써 분별없음이 있으며, 어떻게 허공에 견주어집니까? 진여는 몇 가지이며, 마음은 어떠하고 바라밀은 몇 가지입니까? (2품 28송)
지위의 차례는 무엇으로써 있으며, 형상 없음의 경지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 무아는 무엇으로써 있으며, 어떻게 소지(所知)가 청정해집니까? (2품 29송)
구호자시여, 지혜는 몇 가지이며, 계율과 중생이 나는 곳들은 어떠합니까? 무엇으로써 금과 보배와 진주가 나는 광맥이 생겨납니까? (2품 30송)
언어를 아는 것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중생의 갖가지 상태는 어떠합니까? 학문과 기예는 어떻게 무엇으로써 밝혀졌습니까? (2품 31송)
게송은 몇 가지이며, 산문과 운문은 어떠합니까? 논리는 어떻게 몇 가지이며, 해설은 어떠합니까? (2품 32송)
음식의 갖가지 모습과 성행위는 어떻게 생겨나며, 왕과 전륜성왕과 지방의 군주는 어떻게 있게 됩니까? (2품 33송)
나라는 어떻게 지켜지며, 하늘 무리들은 어떠합니까? 땅과 별자리들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해와 달은 어떠합니까? (2품 34송)
학문[明處]은 무엇이며, 해탈과 요가행자는 몇 가지입니까? 제자는 몇 가지이며, 스승은 어떠합니까? (2품 35송)
부처님은 몇 가지이며, 본생담(本生譚)들은 어떠합니까? 마군은 몇 가지이며, 이단들은 몇 가지입니까? (2품 36송)
그대의 자성은 몇 가지이며, 마음은 몇 가지입니까? 오직 가설(假說)뿐임을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설하시는 이들 가운데 으뜸이신 분이시여,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37송)
허공 중의 구름과 바람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기억과 구름은 어떠합니까? 나무와 덩굴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는지, 삼계의 주인이시여,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38송)
말과 코끼리와 사슴은 무엇으로써 어리석은 이들에게 붙잡히게 되며, 낮은 신분의 사람들은 무엇으로써 있는지, 마음의 인도자시여,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39송)
여섯 계절의 파악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어떻게 일천제(一闡提)가 있게 됩니까? 여인과 남자와 중성의 태어남은 어떠한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40송)
어떻게 요가로부터 물러나며, 어떻게 요가는 나아갑니까? 어떻게 이러한 요가 안에 사람들이 세워지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41송)
오고 가는 중생들의 표상은 무엇이며 특징은 무엇입니까? 부유한 이는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는지, 허공과 같으신 분이시여,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42송)
석가족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으며, 이크슈바꾸 가문은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오랜 수명을 지닌 선인들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그로써 어떻게 위신력이 나타났습니까? (2품 43송)
그대는 어찌하여 모든 세계 어디서나 갖가지 이름과 모습으로, 부처님의 아드님들에게 둘러싸여 나타나 보이십니까? (2품 44송)
어찌하여 고기는 먹어서는 안 되며, 어찌하여 고기는 금지됩니까? 육식하는 종족에게서 태어난 이들은 무엇으로써 고기를 먹게 됩니까? (2품 45송)
해와 달 모양을 한 것, 수미산과 연꽃에 견주어지는 것, 길상의 표지와 사자 모양을 한 세계들은 무엇으로써 있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46송)
거꾸로 되고 아래위가 뒤바뀐 것, 인드라의 그물에 견주어지는 것들은 어떠하며, 온갖 보배로 이루어진 세계들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47송)
비파와 작은 북 모양을 한 것, 갖가지 꽃과 열매에 견주어지는 것, 해와 달처럼 티끌 없는 것들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48송)
무엇으로써 화신불(化身佛)들이 있으며, 무엇으로써 과보로 나신 부처님들이 있습니까? 진여이신 지혜의 부처님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49송)
어찌하여 욕계에서는 깨달음을 이루지 않으시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무슨 까닭으로 탐욕을 여읜 색구경천(色究竟天)에서 깨달음을 이루십니까? (2품 50송)
선서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는 누가 그 가르침을 지니겠습니까? 스승께서는 얼마나 오래 머무시며, 그 이치는 얼마나 오래 머물겠습니까? (2품 51송)
그대의 종의(宗義)는 몇 가지이며, 견해는 또한 어떠합니까? 계율과 비구의 신분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52송)
전의(轉依)의 경지는 무엇으로써 있으며, 형상 없음의 경지는 어떠합니까? 연각과 부처님의 아드님들과 성문들에 대해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53송)
세간의 신통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출세간의 신통은 어떠합니까? 마음의 일곱 지위는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54송)
그대의 승가는 몇 가지이며, 승가의 분열은 어떻게 있게 됩니까? 중생을 위한 의술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55송)
가섭불과 구류손불과 구나함모니불, 그리고 저에 대해서도, 위대한 성자시여, 어찌하여 부처님의 아드님들에게 말씀하시는지요. (2품 56송)
자아가 있지 않다는 말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항상함과 소멸의 말은 어떠합니까? 어찌하여 진실로 어디서나 오직 마음뿐임을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2품 57송)
남녀의 숲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하리따끼와 아말라 나무숲은 어떠합니까? 카일라사산과 철위산과 금강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어떠합니까? (2품 58송)
그 사이에 있는 산들, 온갖 보배로 아름답게 꾸며지고 선인과 건달바로 가득한 것들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59송)
이 말을 들으시고 위대한 영웅이시며 세간을 아시는 이들 가운데 으뜸이신 부처님께서는, 대승으로 이루어진 마음이며 부처님들의 심장이자 힘이신 그것을 [나타내 보이셨다]. (2품 60송)
"훌륭하고 훌륭하다, 큰 지혜를 지닌 마하마띠여, 그대는 잘 깨닫는구나. 그대가 여쭈은 것을 내가 차례대로 설하리라." (2품 61송)
생겨남과 생겨나지 않음, 열반과 공(空)의 특징, 옮아감과 자성 없음, 부처님들과 바라밀과 아드님들에 대해 [설하리라]. (2품 62송)
성문들과 부처님의 아드님들, 외도들과 무색계에 노니는 이들, 수미산과 바다와 산들, 섬과 세계들과 대지에 대해 [설하리라]. (2품 63송)
별자리들과 해와 달, 외도들과 하늘과 아수라, 해탈과 자재력과 신통, 힘과 선정과 삼매들에 대해 [설하리라]. (2품 64송)
멸진과 신족통, 각지(覺支)와 도(道), 선정들과 사무량심, 온(蘊)들과 오고 감에 대해 [설하리라]. (2품 65송)
선정에 듦과 멸진, 선정에서 나옴과 마음에 대한 가르침, 심(心)·의(意)·식(識), 무아와 다섯 가지 법에 대해 [설하리라]. (2품 66송)
자성과 분별과 분별되는 것, 보이는 것과 두 가지 견해가 어떠한지, 수레의 광맥들과 종성(種姓)들, 금과 보배와 진주가 나는 곳에 대해 [설하리라]. (2품 67송)
일천제와 사대(四大), 미혹과 하나의 불성(佛性), 지혜와 알아지는 것과 감과 얻음, 그리고 중생의 있음과 있지 않음에 대해 [설하리라]. (2품 68송)
말과 코끼리와 사슴이 무엇으로써 붙잡히는지, 비유와 논거로 갖추어진 종의와 가르침이 어떠한지에 대해 [설하리라]. (2품 69송)
결과와 원인이 무엇으로써 있는지, 갖가지 미혹과 이치, 유심(唯心)이며 보이는 것이 있지 않음, 지위들에 차례가 있지 않음에 대해 [설하리라]. (2품 70송)
형상 없음과 전의(轉依)의 백 가지 뜻을 무엇으로써 말씀하시는지, 의술과 기예와 학문과 전승에 대해 [설하리라]. (2품 71송)
산들과 수미산의 크기, 그리고 대지의 크기가 어떠한지, 바다와 달과 해의 크기가 어떠한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2품 72송)
중생의 몸에는 낮고 높고 중간의 티끌이 몇이나 있으며, 세계마다 티끌은 몇으로 이루어지고 활 길이마다 활 길이는 몇입니까? (2품 73송)
한 뼘과 활 길이의 차례, 한 구로사와 한 요자나와 반 요자나에서, 토끼의 털구멍과 이[蟣]와 겨자씨에는 보리 낟알이 몇이나 됩니까? (2품 74송)
한 되에는 보리 낟알이 얼마나 되며, 반 되에는 얼마나 됩니까? 한 말과 한 곡(斛)에는, 그리고 십만과 천만과 억에는 몇이나 됩니까? (2품 75송)
겨자씨 하나에는 티끌이 얼마나 되며, 한 락시카에는 겨자씨가 몇입니까? 한 마샤에는 락시카가 몇이며, 한 다라나에는 마샤카가 몇입니까? (2품 76송)
한 카르샤에는 다라나가 얼마나 되며, 한 팔라에는 카르샤가 몇입니까? 이 헤아림의 특징으로써 수미산은 몇 팔라가 되는지, 아드님이여, 이와 같이 나에게 물으라. 그렇지 않다면 어찌 그대는 [다른 것을] 묻는 것인가? (2품 77송)
연각과 성문들과 부처님들과 부처님의 아드님들의 몸은 티끌이 몇이나 되는지, 어찌하여 이렇게 묻지 않는가? (2품 78송)
불꽃의 끝은 티끌이 몇이며, 바람에는 티끌이 몇인가? 낱낱의 감관과 털구멍과 눈썹에는 [티끌이] 얼마나 되는가? (2품 79송)
부유한 이들과 왕들과 전륜성왕들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그들에 의해 나라는 어떻게 지켜지고 이들의 해탈은 어떻게 있는가? (2품 80송)
산문과 운문은 어떻게 말해지며, 세간에 알려진 성행위는 어떠한가? 음식의 갖가지 모습과 남녀의 숲은 어떠한가? (2품 81송)
금강으로 이루어진 산들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어떠한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환술과 꿈에 견주어짐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아지랑이에 견주어짐은 어떠한가? (2품 82송)
구름의 생겨남은 어디서 있으며, 계절은 어디서 있게 되는가? 맛의 맛다움은 무엇으로부터이며, 무엇으로부터 여인과 남자와 중성이 있는가? (2품 83송)
아름다움들과 부처님의 아드님들은 어디에 있는지 나에게 물으라, 아드님이여. 어떻게 하늘의 산들이 선인과 건달바로 장엄되어 있는가? (2품 84송)
해탈한 이는 어디로 가며, 묶인 자는 누구이고 무엇으로 풀려나는가? 선정을 닦는 이들의 대상은 무엇이며, 화현과 외도들의 처소는 어떠한가? (2품 85송)
있음과 없음의 작용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어떻게 보이는 것이 그치는가? 어떻게 사변은 청정해지며, 무엇으로써 사변은 일어나는가? (2품 86송)
행위는 무엇으로써 일어나며, 감[去]은 어떠한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상(想)의 끊어짐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삼매는 무엇으로써 말해지는가? (2품 87송)
삼계를 벗어나는 이는 누구이며, 그 머무는 곳은 무엇이고 그 몸은 무엇인가? 자아 없음의 말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세속으로써의 가르침은 어떠한가? (2품 88송)
그대는 무엇으로써 특징을 묻고, 어떻게 무아를 묻는가? 태(胎)와 논리를 따지는 이들에 대해 그대는 무엇으로써 나에게 묻는가, 부처님의 아드님이여. (2품 89송)
상견과 단견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마음은 무엇으로써 [설해지는]가? 언어와 지혜, 계율과 종성, 부처님의 아드님들에 대해 [묻는가]. (2품 90송)
갖추어진 해설과 스승과 제자, 중생들의 갖가지 모습은 어떠한가? 음식과 허공과 구름, 마군들과 오직 가설뿐임에 대해 [묻는가]. (2품 91송)
나무와 덩굴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있는지 그대는 나에게 묻는가, 부처님의 아드님이여. 세계들의 갖가지 모습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오랜 수행을 한 선인은 어떠한가? (2품 92송)
가문과 그대의 스승은 무엇으로써 있는지 그대는 나에게 묻는가, 부처님의 아드님이여.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요가에 들 때, 욕계에서 깨달음을 이루지 않음은 어떠한가? (2품 93송)
색구경천에서의 종의와 그 이치를 그대는 나에게 어떻게 묻는가? 세간의 신통은 무엇으로써 있으며, 비구의 신분은 어떠한가? (2품 94송)
화신불들과 과보로 머무는 부처님들에 대해 그대는 나에게 어떻게 묻는가? 진여이며 지혜인 부처님들과 승가들은 어떻게 있는가? (2품 95송)
비파와 작은 북과 꽃에 견주어지는, 세간을 벗어난 세계들, 마음의 일곱 지위에 대해 그대는 나에게 묻는가, 부처님의 아드님이여. 이러한 것들과 그 밖의 매우 많은 물음들을 그대는 나에게 묻는구나, 아드님이여. (2품 96송)
낱낱을 특징에 걸맞게, 견해의 허물을 벗어나, 종의와 가르침을 내가 설하리니, 그대는 곧바로 나의 말을 들으라. (2품 97송)
말들의 조목을 내가 열거하리니, 아드님이여, 나의 말을 들으라. 부처님들께서 찬탄하신 대로 백여덟 가지 말을. (2품 98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무엇이 백여덟 가지 구절[句]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생(生)의 구절과 무생(無生)의 구절, 상(常)의 구절과 무상(無常)의 구절, 상(相)의 구절과 무상(無相)의 구절, 머묾의 달라짐[住異]의 구절과 머묾의 달라짐 없음의 구절, 찰나(刹那)의 구절과 찰나 아님의 구절, 자성(自性)의 구절과 무자성의 구절, 공(空)의 구절과 불공(不空)의 구절, 단멸(斷滅)의 구절과 단멸 아님의 구절, 마음[心]의 구절과 마음 아님의 구절, 중도(中道)의 구절과 중도 아님의 구절, 상주(常住)의 구절과 상주 아님의 구절, 연(緣)의 구절과 무연(無緣)의 구절, 인(因)의 구절과 무인(無因)의 구절, 번뇌의 구절과 번뇌 없음의 구절, 갈애(渴愛)의 구절과 갈애 없음의 구절, 방편의 구절과 방편 없음의 구절, 능숙함[善巧]의 구절과 능숙하지 못함의 구절, 청정의 구절과 부정(不淨)의 구절, 이치에 맞음[理]의 구절과 이치에 맞지 않음의 구절, 비유의 구절과 비유 아님의 구절, 제자의 구절과 제자 아님의 구절, 스승의 구절과 스승 아님의 구절, 종성(種姓)의 구절과 종성 없음의 구절, 삼승(三乘)의 구절과 삼승 아님의 구절, 형상 나타남 없음[無影像]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서원(誓願)의 구절과 서원 없음의 구절, 삼륜(三輪)의 구절과 삼륜 아님의 구절, 표상[相標]의 구절과 표상 없음의 구절, 있음과 없음의 견해[有無見]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둘 다[俱]의 구절과 둘 다 아님의 구절,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自證聖智]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현재의 법의 즐거움[現法樂]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세계[刹土]의 구절과 세계 아님의 구절, 미진(微塵)의 구절과 미진 아님의 구절, 물[水]의 구절과 물 아님의 구절, 활 길이[弓]의 구절과 활 길이 아님의 구절, 존재[有]의 구절과 존재 아님의 구절, 수량 계산의 구절과 수량 계산 아님의 구절, 신통의 구절과 신통 아님의 구절, 피로함의 구절과 피로함 없음의 구절, 구름[雲]의 구절과 구름 아님의 구절, 기예와 학문[工巧明處]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바람의 구절과 바람 아님의 구절, 지위[地]의 구절과 지위 아님의 구절, 사유 가능함[可思議]의 구절과 사유할 수 없음의 구절, 가설(假說)의 구절과 가설 아님의 구절, 자성의 구절과 무자성의 구절, 온(蘊)의 구절과 온 아님의 구절, 중생의 구절과 중생 아님의 구절, 지혜[覺]의 구절과 지혜 없음의 구절, 열반의 구절과 열반 아님의 구절, 알아지는 것[所知]의 구절과 알아지는 것 아님의 구절, 외도의 구절과 외도 아님의 구절, 요동[騷擾]의 구절과 요동 없음의 구절, 환술의 구절과 환술 아님의 구절, 꿈의 구절과 꿈 아님의 구절, 아지랑이의 구절과 아지랑이 아님의 구절, 그림자와 형상[影像]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바퀴의 구절과 바퀴 아님의 구절, 건달바의 구절과 건달바 아님의 구절, 하늘[天]의 구절과 하늘 아님의 구절, 음식의 구절과 음식 아님의 구절, 성행위의 구절과 성행위 아님의 구절, 보임[見]의 구절과 보이지 않음의 구절, 바라밀의 구절과 바라밀 아님의 구절, 계율의 구절과 계율 아님의 구절, 달과 해와 별[月日星]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진실[諦]의 구절과 진실 아님의 구절, 결과의 구절과 결과 없음의 구절, 멸(滅)의 구절과 멸 아님의 구절, 멸에서 일어남[從滅起]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의술의 구절과 의술 아님의 구절, 모습의 구절과 모습 없음의 구절, 갈래[支分]의 구절과 갈래 아님의 구절, 기예의 학문[伎術明處]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선정의 구절과 선정 아님의 구절, 미혹의 구절과 미혹 아님의 구절, 보이는 것[所見]의 구절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구절, 지켜야 할 것[所護]의 구절과 지키지 않아도 될 것의 구절, 가문[種族]의 구절과 가문 아님의 구절, 선인(仙人)의 구절과 선인 아님의 구절, 나라[王位]의 구절과 나라 아님의 구절, 붙잡음[執取]의 구절과 붙잡지 않음의 구절, 보배의 구절과 보배 아님의 구절, 수기(授記)의 구절과 수기 아님의 구절, 일천제의 구절과 일천제 아님의 구절, 여인과 남자와 중성[女男黃門]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맛의 구절과 맛 없음의 구절, 행위[作]의 구절과 행위 없음의 구절, 몸의 구절과 몸 아님의 구절, 사변(思辨)의 구절과 사변 아님의 구절, 움직임[動]의 구절과 움직이지 않음의 구절, 감관[根]의 구절과 감관 아님의 구절, 유위(有爲)의 구절과 무위(無爲)의 구절, 인과의 구절과 인과 없음의 구절, 색구경천(色究竟天)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계절의 구절과 계절 아님의 구절, 나무와 덤불과 덩굴의 차양[樹叢蔓帳]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갖가지 모습[種種]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가르침에 듦[說法趣入]의 구절과 그 아님의 구절, 율(律)의 구절과 율 아님의 구절, 비구의 구절과 비구 아님의 구절, 가피(加持)의 구절과 가피 없음의 구절, 문자의 구절과 문자 없음[無字]의 구절 — 마하마띠여, 이것이 예전의 부처님들께서 찬탄하신 백여덟 가지 구절이다.
(역자 주: 원문에는 "백여덟 가지 구절"이라 하였으나, 실제로 열거된 짝은 104가지이다. 이는 산스크리트 원문 자체의 특징이며, 전통적으로 "백여덟"이라는 수는 완전함을 상징하는 상투적 표현으로도 쓰인다.)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식(識)들의 생겨남과 머묾과 사라짐은 몇 가지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식들의 생겨남과 머묾과 사라짐은 두 가지이니, 논리를 따지는 이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으로서 이어짐의 사라짐[相續滅]과 모습의 사라짐[相滅]이다. 식들의 생겨남도 두 가지이니 이어짐의 생겨남과 모습의 생겨남이며, 머묾도 두 가지이니 이어짐의 머묾과 모습의 머묾이다. 식은 세 가지이니 나타나 작용하는 모습[轉相]과 업의 모습[業相]과 참모습[眞相]이다. 마하마띠여, 식은 간략히 말하면 두 가지이니 여덟 가지 모습으로 설해지는 것으로서 나타남을 아는 식[現識]과 대상을 분별하는 식[分別事識]이다. 마하마띠여, 마치 거울이 형상을 붙잡듯이, 그와 같이 나타남을 아는 식도 대상을 나타내 보인다. 마하마띠여, 나타남을 아는 식과 대상을 분별하는 식, 이 둘은 서로 다르지 않은 모습을 지니면서도 서로 원인이 된다. 그 가운데 나타남을 아는 식은 마하마띠여, 헤아릴 수 없는 훈습(薰習)의 변화를 원인으로 하며, 대상을 분별하는 식은 마하마띠여, 대상에 대한 분별을 원인으로 하고 무시이래의 희론(戱論)의 훈습을 원인으로 한다."
"마하마띠여, 온갖 감관의 식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아뢰야식의 헛된 분별의 훈습이 지닌 갖가지 모습이 사라짐이니, 이것이 바로 모습의 사라짐이다. 이어짐의 사라짐은 다시 마하마띠여, 그것이 무엇을 좇아 일어나는가로부터 말미암는다. '무엇을 좇아'란 마하마띠여, 어떤 의지처[所依]와 어떤 반연[所緣]에 의함이다. 그 가운데 의지처란 무시이래의 희론의 추중(麤重)한 훈습이며, 반연이란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을 식의 대상으로 삼는 분별들이다. 마하마띠여, 비유하자면 진흙 알갱이들로부터 진흙 덩이가 있으니, 그것은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며, 금과 장신구도 그러하다. 마하마띠여, 만일 진흙 덩이가 진흙 알갱이들과 다르다면 그것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나, 그것은 실로 그 진흙 알갱이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니 다르지 않다. 만일 다르지 않은 것이라면 진흙 덩이와 알갱이 사이에 구별이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만일 나타나 작용하는 식들이 아뢰야식의 참모습과 다른 것들이라면 아뢰야식을 원인으로 하지 않는 것들이 될 것이다. 만일 다르지 않은 것이라면 나타나 작용하는 식들이 사라질 때 아뢰야식도 사라지는 셈이 될 것이나, 그것은 자기 참모습의 사라짐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식들의 사라짐은 자기 참모습의 사라짐이 아니라 업의 모습[業相]의 사라짐일 뿐이다. 만일 자기 참모습이 사라진다면 아뢰야식도 사라지는 것이 될 것이요, 아뢰야식이 사라진다면 외도들의 단멸론(斷滅論)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 될 것이다. 마하마띠여, 외도들의 주장이란 곧 대상의 붙잡음이 그침으로써 식의 이어짐이 그친다는 것이니, 식의 이어짐이 그침으로써 무시이래의 이어짐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외도들은 원인으로써 이어짐의 나아감을 설명하면서도, 안식(眼識)이 형색과 빛의 화합으로부터 생겨난다고는 설명하지 않고 다른 원인을 내세우니, 그 원인이란 마하마띠여, 근본원질[勝性]이니 인간[神我]이니 자재천(自在天)이니 시간이니 미진(微塵)이니 하는 주장들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존재의 자성은 일곱 가지이니, 곧 발생의 자성, 존재의 자성, 모습의 자성, 사대(四大)의 자성, 원인의 자성, 조건의 자성, 그리고 일곱째로 성취의 자성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궁극의 뜻[勝義]은 일곱 가지이니, 곧 마음의 경계, 지혜의 경계, 반야의 경계, 두 가지 견해의 경계, 두 가지 견해를 벗어난 경계, 여러 지위를 차례로 나아가는 경계, 그리고 여래의 스스로 증득한 경지의 경계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과거·미래·현재의 여래·응공·정등각들의 존재의 자성인 궁극의 뜻의 핵심이니, 이를 갖추신 여래들은 세간과 출세간을 뛰어넘는 법들을, 자기와 공통된 모습[自相]과 공통되지 않는 모습[共相]에 떨어진 것들로서, 성스러운 지혜의 눈으로 안립(安立)하신다. 그리고 외도들의 삿된 견해와 공통되지 않도록 안립하신다. 그렇다면 마하마띠여, 어떻게 외도들의 주장과 삿된 견해가 공통되게 되는가? 곧 자기 마음의 대상에 대한 분별과 견해를 깨닫지 못함으로써 식들이 그러하게 된다. 마하마띠여,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에 들어가지 못함으로써 어리석은 범부들은 있음과 없음의 자성이라는 궁극의 뜻에 대해 두 가지 견해를 주장하게 된다."
"또한 마하마띠여, 분별로 이루어진 삼계의 괴로움을 돌이키고 무명과 갈애와 업이라는 조건을 벗어나게 하는,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을 환술의 대상으로 거듭 살피는 가르침을 내가 설하리라. 마하마띠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없다가 생겨난다는 믿음과, 원인과 결과가 뚜렷이 드러난 실체이며 조건들 속에서 시간에 따라 머문다는 것으로써, 온(蘊)·계(界)·처(處)들의 생겨남과 머묾을 바라며 있다가 다시 사라진다고 하니, 이들 마하마띠여, 이어짐과 행위와 생겨남과 무너짐과 존재와 열반과 도(道)와 업과 결과와 진리가 소멸하고 끊어진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된다. 무슨 까닭인가? 곧 직접 지각으로 얻어지지 않으며 애초에 봄이 없기 때문이다. 마하마띠여, 비유하자면 항아리 조각이 없어졌다고 해서 항아리의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며, 불에 탄 씨앗이 싹의 작용을 하는 것도 아니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온·계·처의 존재들이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거나 장차 사라질 것들은, 자기 마음이 나타낸 분별을 봄을 원인으로 하지 않으므로 끊임없는 이어짐이 없다."
"또한 마하마띠여, 만일 없다가 생겨난다는 믿음으로 식들이 세 가지 화합의 조건과 작용의 결합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한다면, 있지 않은 것들에게서도, 이를테면 거북의 털이나 모래로부터 기름이 생겨나는 일도 있게 될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렇게 되면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 되고 결정된 소멸에 떨어지게 되며, 있음과 없음을 말하는 이들의 행위와 업의 지음이 무의미해지는 허물에 떨어지게 된다. 마하마띠여, 그들에게도 세 가지 화합의 조건과 작용의 결합으로써의 가르침이 있으니, 원인과 결과의 자기 모습으로써 과거·미래·현재의 있지 않으면서도 있는 듯한 모습이 있다고, 논리와 성언(聖言)으로써 사변의 자리에 머물러 자신의 견해라는 허물의 훈습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가르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삿된 견해에 물려 마음이 어지러운 어리석은 범부들은, 어리석은 이들이 지어낸 것을 두고 '모든 성인이 지어낸 것'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어떤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자성 없음과 빽빽한 구름과 불타는 바퀴와 건달바성과 생겨나지 않음과 환술과 아지랑이와 물속의 달과 꿈의 자성으로써, 밖으로 자기 마음이 나타낸 분별인 무시이래의 희론을 살펴봄으로써, 자기 마음의 분별인 조건을 벗어나고, 분별하여 세운 명칭과 표지와 모습과 일컬어지는 것을 벗어나며, 몸과 그 향유와 머무는 곳이 모두 아뢰야식의 대상이어서 붙잡는 자와 붙잡히는 것을 여의었음을, 형상 없는 경계이며 생겨남과 머묾과 무너짐을 벗어나고 자기 마음의 생겨남을 좇는 것으로 밝게 살피니, 마하마띠여, 머지않아 그 보살마하살들은 생사와 열반이 평등함을 얻은 이들이 될 것이다. 마하마띠여, 큰 자비와 방편의 능숙함과 애씀 없는 경지에 이른 수행으로써, 온갖 중생이 환술의 그림자와 같이 평등함과, 조건에 의해 일어나지 않음과, 안팎의 대상에서 벗어남과, 마음 밖에는 볼 것이 없음으로써, 표상 없는 가피(加持)를 따르며, 차례로 지위의 차례와 삼매의 대상을 따라 들어가는 것과, 삼계가 오직 자기 마음뿐임을 믿고 밝게 살핌으로써, 환술과 같은 삼매를 증득하게 된다. 자기 마음에 형상 없음뿐임에 들어감으로써 반야바라밀의 머묾에 이르러 생겨남의 행위와 결합을 벗어나, 금강과 같은 삼매의 그림자에 견주어지는, 여래의 몸을 따르고 진여의 화현을 따르는, 힘과 신통과 자재력과 연민과 자비와 방편으로 장엄되고, 모든 부처님 세계와 외도의 처소에 두루 이르며, 마음[心]·의(意)·의식(意識)을 여의고, 전의(轉依)의 의지처를 차례로 따르는 여래의 몸을, 마하마띠여, 그 보살들은 증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들은 여래의 몸을 따라 증득함으로써, 온·계·처와 마음과 원인과 조건과 작용의 결합과 생겨남과 머묾과 무너짐이라는 분별의 희론을 여의고 오직 마음뿐임을 따르는 이가 되어야 한다."
"무시이래의 희론의 추중한 분별의 훈습을 원인으로 하는 삼계를 보는 이는, 형상 없는 부처님의 지위인 생겨남 없음을 기억함으로써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법의 경지에 이르러, 자기 마음을 자재로이 다스리며 애씀 없는 수행의 경지에 이르러, 마치 온갖 형상을 나투는 마니보주와 같이, 미세하게 중생의 마음에 두루 들어가는 화현의 몸들로써, 오직 마음뿐임을 굳게 지님으로써 지위의 차례를 잇달아 세운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자기 종의(宗義)에 능숙한 이가 되어야 한다."
마하마띠가 다시 아뢰었다 —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마음[心]·의(意)·의식(意識)과 다섯 가지 법[五法]의 자성과 특징이라는, 꽃과 같은 법문(法門)을, 부처님과 보살들이 따르는,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경계로부터의 벗어남이며, 온갖 언설과 논리와 진실의 특징을 남김없이 밝히는, 모든 부처님 말씀의 핵심이며, 능가성 말라야산에 머무는 보살들을 위하여 바다의 물결과 아뢰야식의 경계에 빗대어, 여래들께서 노래하신 법신을 설하여 주소서."
그때 세존께서는 다시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네 가지 원인으로써 안식(眼識)이 일어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곧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을 붙잡음을 깨닫지 못함과, 무시이래의 희론이라는 추중한 색(色)의 훈습에 대한 집착과, 식의 본래 성품인 자성과, 갖가지 색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이다. 마하마띠여, 이 네 가지 원인으로써 큰 흐름 속의 물과 같은 아뢰야식으로부터 나타나 작용하는 식의 물결이 일어난다. 마하마띠여, 안식에서와 같이, 온갖 감관의 미진(微塵)과 털구멍에서도 동시에 나아가는 차례로 대상을 거울처럼 비추어 보듯이, 바다가 바람에 부딪치는 것처럼, 마하마띠여, 대상이라는 바람이 마음이라는 바다에 일으키는 물결은 끊이지 않는 원인과 행위의 모습을 지니면서도 서로 벗어나 있으니, 업으로 태어난 모습에 잘 묶인 색의 자성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 다섯 가지 식의 무리[五識身]가, 마하마띠여, 일어난다. 바로 이 다섯 가지 식의 무리와 더불어, 원인과 대상을 가려내는 특징을 분명히 아는 것인 의식(意識)이라 불리는 것이,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몸으로서 일어난다. 그러나 그것들과 그것에게는 '우리는 여기서 서로 원인이 되어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에 대한 분별과 집착으로 나아간다'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은 서로 다르지 않은 모습을 지니고서 인식 대상을 가려내는 데 나아간다. 그렇게 나아가면서도 나아가되, 마치 선정에 든 요가행자에게도 미세한 나아감의 훈습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요가행자들에게는 '우리는 식들을 그치게 하고서 선정에 들리라'라는 생각이 있으나, 그들은 실은 사라지지 않은 식들로써 선정에 드는 것이니, 훈습의 씨앗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은 것이며, 다만 대상에 대한 나아가는 붙잡음이 없기 때문에 겉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아뢰야식이 나아가고 흘러가는 것은 미세하여서, 여래와 지위에 머무는 보살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성문·연각·외도·요가행자들이 삼매와 반야의 힘을 기울여서도 쉽사리 증득하거나 가려내기 어렵다. 지위의 특징과 반야와 지혜의 능숙함과 말의 구별을 확정함과 부처님의 다함없는 선근을 쌓음과 자기 마음이 나타낸 분별의 희론을 여읨을 갖추지 못한 이들, 곧 숲의 깊은 곳과 동굴 속 거처에 있는 낮고 뛰어나고 중간인 요가행자들로서는, 자기 마음의 분별이 나타낸 흐름을 보는 자며 헤아릴 수 없는 세계에서 부처님의 관정과 자재력과 힘과 신통과 삼매를 얻을 수 없다. 마하마띠여, 선지식이며 부처님이 앞세우신 이들에 의해서만, 마음[心]과 의식(意識)이 자기 마음이 나타낸 자성의 경계인 분별로 이루어진 생사의 바다를, 업과 갈애와 무명을 원인으로 하는 그 바다를 건널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요가행자는 선지식이며 부처님이신 이와의 요가에서 요가를 시작해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 자리에서 이 게송을 설하셨다 —
마치 바다의 물결이 바람이라는 조건에 의해 흔들려 춤추듯 일어나며 끊어짐이 없듯이, (2품 99송)
아뢰야식의 흐름도 그와 같이 항상 대상이라는 바람에 의해 흔들려, 갖가지 물결과 같은 식(識)들로써 춤추듯 일어난다. (2품 100송)
파란빛과 붉은빛, 소금과 소라, 우유와 사탕수수즙, 떫은 맛과 과일과 꽃 등, 그리고 해에서 나오는 빛살들처럼, (2품 101송)
바다의 물결이 [바다와]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라 여겨지듯이, 일곱 가지 식(識)들도 그와 같이 마음[心]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2품 102송)
바다의 변화라는 것이 곧 물결의 갖가지 모습이듯이, 아뢰야식도 그와 같이 갖가지로 식(識)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난다. (2품 103송)
마음[心]과 의(意)와 식(識)은 특징을 나타내기 위하여 방편으로 세워진 것이니, 여덟 가지 식은 나뉘지 않는 모습을 지녀서 나타내어지는 것도 없고 나타내는 특징도 없다. (2품 104송)
바다와 물결 사이에 구별이 없듯이, 식(識)들도 마음[心]과 더불어 다름이 있는 변화를 얻을 수 없다. (2품 105송)
마음[心]으로써 업이 쌓이고, 의(意)로써 그것이 헤아려지며, 식(識)으로써 알아차리고, 다섯 가지 식으로써 보이는 대상을 분별한다. (2품 106송)
사람들에게 식(識)은 파랑과 빨강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나니, 마하마띠여, 물결과 마음의 같은 이치[同法性]를 무엇을 근거로 말하는가? (2품 107송)
파랑과 빨강 등의 모습은 물결 그 자체에는 있지 않으나, 어리석은 이들을 위하여 그 특징을 나타내고자 마음의 작용을 이렇게 비유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2품 108송)
붙잡히는 것[所取]을 여읜 자기 마음이라는 것에는 그 작용이 있지 않으니, 붙잡히는 것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붙잡는 자[能取]가 물결과 더불어 성립되기 때문이다. (2품 109송)
식(識)은 사람들에게 몸과 그 향유(享有)와 머무는 곳의 바탕으로 나타나 보이니, 그러므로 그 작용은 물결과 서로 비슷하게 나타난다. (2품 110송)
바다는 물결이라는 모습으로 춤추듯 나타나 알려지거니와, 아뢰야식의 작용도 그와 같은데 어찌하여 지혜로 알아차리지 못하는가? (2품 111송)
어리석은 이들의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에, 아뢰야식을 바다에 견주고 물결의 작용과 같은 이치임을 비유로써 보여주는 것이다. (2품 112송)
해가 낮은 이에게나 뛰어난 이에게나 똑같이 떠오르듯이, 세간을 밝히시는 분이시여, 그대도 그와 같이 어리석은 이들에게 진실[眞如]을 설하십니다. (2품 113송)
온갖 법에 자리를 잡고서도 어찌하여 진실을 곧바로 설하지 않으십니까? 혹 진실을 설하신다 해도, 마음[心] 가운데에는 진실이 있지 않습니다. (2품 114송)
바다의 물결처럼, 거울 속의 모습처럼, 꿈속의 광경처럼 동시에 나타나 보이듯이, 마음[心]도 그와 같이 자기 경계 안에서 나타난다. (2품 115송)
그러나 대상이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차례로 나아가는 것이니, 식(識)으로써 알아차리고 다시 의(意)로써 헤아린다. (2품 116송)
다섯 가지 식(識)의 대상은 나타나 보이되, 삼매에 든 이에게는 차례가 없다. 마치 어떤 그림 스승이나 그 제자가 그림을 위하여 물감을 칠하듯이, 나도 그와 같이 법을 설한다. (2품 117송)
그림은 물감에도 있지 않고 바탕에도 있지 않으며 그릇에도 있지 않으나, 중생을 이끌기 위하여 물감으로써 그림을 그려내듯이 분별하는 것이니, 가르침도 그처럼 어긋남이 있을 수 있으나 진실은 문자를 떠나 있다. (2품 118송)
온갖 법에 자리를 잡고서 나는 요가행자들을 위해 진실을 설하니, 스스로 증득하는 경지에 속하는 진실은 분별하는 것과 분별되는 것을 떠나 있다. 나는 이를 부처님의 아드님들을 위해 설하니, 이 가르침은 어리석은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2품 119송)
마치 갖가지 환술이 나타나 보이나 실은 있지 않듯이, 가르침도 그와 같이 갖가지이나 어긋남 없이 설해진다. 어떤 이에게는 가르침이 되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가르침이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2품 120송)
마치 의사가 병든 이마다 그 병에 맞는 약을 주듯이, 부처님들도 그와 같이 중생들에게 오직 마음뿐임[唯心]을 설하신다. (2품 121송)
논리를 따지는 이들의 경계도 아니요 성문들의 경계도 아닌, 스스로 증득하는 경지의 대상을, 구호자들께서는 설하신다. (2품 122송)
또한 마하마띠여,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을 붙잡음[所取]과 붙잡는 자[能取]로 분별하는 경계를 두루 알고자 하는 보살은, 무리 지어 어울림[群居]과 어지러운 사귐과 잠에 빠지는 장애를 떠나야 한다. 초저녁과 한밤중과 새벽에 깨어 있는 수행에 힘써야 한다. 삿된 외도의 논서와 옛이야기, 성문과 연각의 수레의 특징을 여의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 마음이 나타낸 분별의 특징이 향하는 곳에 이르러야 하니,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아야 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마음[心]·식(識)·반야(般若)의 특징이 세워지는 자리에 머무르고서, 그 위로 성스러운 지혜의 세 가지 특징에 대한 수행을 닦아야 한다. 마하마띠여, 그 위의 성스러운 지혜의 세 가지 특징이란 무엇인가? 곧 형상 없음[無影像]의 특징과, 모든 부처님의 스스로의 서원의 가피를 받는 특징과,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경지에 이르는 특징이다. 이를 증득하고 나면 요가행자는 마치 절름발이 나귀와 같던 마음·반야·지혜의 특징을 버리고서 부처님 아드님의 여덟째 지위[第八地]를 얻어, 그 위의 세 가지 특징에 대한 수행에 들어가게 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형상 없음의 특징은 모든 성문·연각·외도의 특징을 익히 앎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가피의 특징은 마하마띠여, 예전 부처님들의 스스로의 서원의 가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경지에 이르는 특징은 마하마띠여, 모든 법의 특징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환술과 같은 삼매의 몸을 얻어 부처님의 지위로 나아가는 경지에 다다름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성인들의 세 가지 특징이니, 이 성스러운 세 가지 특징을 갖춘 성인들은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경지라는 대상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성스러운 지혜의 세 가지 특징에 대한 수행을 닦아야 한다.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그 보살 대중의 마음의 뜻을 살펴 알고서, 모든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성스러운 지혜의 대상을 살피는 것이라는 이름의 법문(法門)에 대해 세존께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백여덟 가지 구절을 근거로 하는, 성스러운 지혜의 대상을 살피는 것이라는 이름의 법문을 저를 위해 설하여 주소서. 이를 근거로 하여 여래·응공·정등각들께서는, 자기와 공통된 모습에 떨어진 보살마하살들을 위하여 두루 계탁된 자성[遍計所執性]의 갖가지 갈래를 설하시니, 이 두루 계탁된 자성의 갈래를 잘 분별함으로써, 인(人)과 법(法)의 무아(無我)를 두루 나아가 청정하게 하고 지위들에서 밝은 지혜를 갖추어, 모든 성문·연각·외도의 선정과 삼매와 삼매의 성취라는 즐거움을 뛰어넘어, 여래의 헤아릴 수 없는 경계로 나아가는 자취를 얻으며, 오법(五法)의 자성으로 나아감을 벗어난 여래의 법신(法身)이며 반야와 지혜로 잘 매어진 법이며 환술의 대상처럼 나타난, 모든 부처님 세계와 도솔천의 궁전과 색구경천의 처소에 이르는 여래의 몸을 증득하게 될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여기 어떤 외도들의 견해는 없음[無]에 집착하여, 분별하는 지혜의 원인이 다하여 자성이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토끼의 뿔이 없다고 분별한다. 토끼의 뿔이 없듯이 모든 법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마하마띠여, 사대(四大)와 그 성질과 미진(微塵)과 사물의 형태와 배열의 차이를 보고서, 토끼 뿔이 없다는 집착에 사로잡혀 소의 뿔은 있다고 분별한다. 마하마띠여, 이들은 있음과 없음이라는 두 극단의 견해에 떨어진 이들로서, 오직 마음뿐임을 확정하지 못하는 견해를 지닌 이들이다. 그들은 자기 마음의 경계에 대한 분별로써 그러한 견해를 길러낸다. 마하마띠여, 몸과 그 향유와 머무는 곳이라는 분별일 뿐인 것에서, 토끼 뿔이 없음과 있음을 벗어난 것으로 분별해서는 안 되듯이, 마하마띠여, 그와 같이 모든 존재에 대해서도 있음과 없음을 벗어난 것으로 분별해서는 안 된다."
또한 마하마띠여, 있음과 없음을 벗어나 토끼 뿔이 없다고 분별하지 않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서로 의존하는 원인이 있다는 이유로 토끼 뿔이 없다고 분별해서는 안 된다. 미진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아도 그 실체를 얻을 수 없으므로, 마하마띠여, 성스러운 지혜의 경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소의 뿔이 있다고 분별해서는 안 된다.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세존께 아뢰었다 — "세존이시여, 분별이 일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고서 분별이 일어나지 않음에 의거하여 그것이 없다고 추론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그것이 없음은 분별이 일어나지 않음에 의거한 것이 아니다. 어째서인가? 분별이야말로 그것이 일어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마하마띠여, 뿔을 의지처로 삼아 일어나는 것이 바로 분별이다. 마하마띠여, 분별이 뿔을 의지처로 삼아 일어나는 것이기에, 그 의지처가 원인이 됨으로써 뿔과 분별은 다르지도 다르지 않지도 않으니, 그러므로 그것에 의거하여 토끼 뿔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마하마띠여, 만일 분별이 뿔과 다른 것이라면 토끼 뿔이 아닌 다른 것을 원인으로 삼을 것이다. 만일 다르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을 원인으로 삼는 까닭에 미진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아도 얻을 수 없으므로 뿔과 다르지 않기에 그것도 없는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 둘 다 있음도 없음도 아니라면, 무엇에 의거하여 무엇이 없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토끼 뿔이 없음은 다른 것에 의거한 것이 아니니, 있음에 의거하여 토끼 뿔이 없다고 분별해서는 안 된다. 서로 어긋난 것을 원인으로 삼기 때문에, 마하마띠여, 없다는 것과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그 성립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마하마띠여, 다른 외도들의 견해는 색(色)의 원인이 되는 형태에 집착하여, 허공의 존재를 나누어 분별하는 데 능숙하다 하며, 색을 허공의 존재를 벗어난 것으로 나누어 보고서 분별한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허공이야말로 곧 색이다. 색이 사대(四大)에 두루 들어가 있기에, 마하마띠여, 색이 곧 허공이다. 마하마띠여, 담기는 것[所依]과 담는 것[能依]이 자리하고 사라지는 자리라는 뜻에서, 색과 허공이라는 원인의 구별을 알아야 한다. 마하마띠여, 사대는 나타나 작용할 때 서로 다른 자기 모습으로 나뉘어 있으면서도 허공 가운데 머무르지 않으니, 그렇다고 그 가운데 허공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토끼의 뿔은 소의 뿔에 의거하여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하마띠여, 소의 뿔도 미진 단위로 나누어 보면, 그 미진들도 다시 나누어져 미진이라는 특징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에 의거하여 그것이 없다고 하겠는가? 만일 다른 사물에 의거한다 하여도, 그 또한 마찬가지 이치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다시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토끼 뿔과 소 뿔과 허공과 색이라는 견해의 분별을 여의어야 하니, 다른 보살들도 그러해야 한다. 마하마띠여,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을 분별로 따라가는 마음을 지녀야 하며, 그대는 모든 부처님 아드님들의 세계와 모임에서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에 대한 수행을 가르쳐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다시 그 자리에서 이 게송을 설하셨다 —
보이는 것[所見]은 마음[心]을 떠나 있지 않고, 마음도 보이는 것으로부터 일어나니, 하늘의 향유(享有)가 머무는 곳인 아뢰야식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알려진다. (2품 123송)
마음[心]과 의(意)와 식(識), 자성(自性)과 오법(五法), 그리고 청정한 두 가지 무아(無我) — 이를 이끄시는 분들께서는 설하신다. (2품 124송)
길고 짧음 등의 관계는 서로 의지하여 일어나니, 있음을 성립시키는 것은 없음이며 없음을 성립시키는 것은 있음이다. (2품 125송)
미진으로 나누어 보면 색(色)은 실로 분별할 것이 없어지니, 오직 마음뿐이라는 안립(安立)은 삿된 견해를 지닌 이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2품 126송)
논리를 따지는 이들의 경계도 아니요 성문들의 경계도 아닌, 스스로 증득하는 경지의 대상을, 구호자들께서는 설하신다. (2품 127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의 흐름이 청정해지는 이치에 관하여 세존께 청하여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의 흐름은 어떻게 청정해집니까, 단박에[頓]입니까 아니면 차례로[漸]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의 흐름은 차례로 청정해지는 것이지 단박에 되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망고 열매가 차례로 익어가되 단박에 익지 않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중생들의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의 흐름도 차례로 청정해지되 단박에 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옹기장이가 차례로 그릇을 만들되 단박에 만들지 않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여래도 중생들의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의 흐름을 차례로 청정하게 하되 단박에 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대지에서 풀과 떨기나무와 약초와 큰 나무들이 차례로 자라나되 단박에 자라나지 않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여래도 중생들의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의 흐름을 차례로 청정하게 하되 단박에 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웃음과 춤과 노래와 악기 연주와 거문고와 그림 그리는 재주가 차례로 익혀지되 단박에 되지 않는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여래도 모든 중생들의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의 흐름을 차례로 청정하게 하되 단박에 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거울 속에 있는 모든 색의 그림자가 분별없이 동시에 나타나 보이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여래도 모든 중생의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의 흐름을, 분별없고 형상 없는 경계로서 단박에 청정하게 한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해와 달의 둥근 빛이 그 빛살로써 모든 색의 그림자를 동시에 비추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여래도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에 대한 거칠고 두터운 훈습을 여읜 중생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지혜인 승리자의 경계라는 대상을 단박에 나타내 보인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아뢰야식이 자기 마음이 나타낸 몸과 머무는 곳과 향유의 대상을 단박에 나타내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등류불(等流佛)도 단박에 중생의 경계를 두루 성숙시켜 색구경천의 궁전과 누각에 머무는 수행에 요가행자들을 들어가게 한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법성불(法性佛)이 등류(等流)와 화현(化現)의 빛살로써 단박에 빛나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로 나아가는 법의 특징도 있음과 없음이라는 삿된 견해를 벗어남으로써 단박에 빛난다."
또한 마하마띠여, 법성(法性)의 등류불(等流佛)은, 자기와 공통된 모습에 떨어진 모든 법이 자기 마음이 나타낸 훈습이라는 원인의 특징에 매인 것이며, 두루 계탁된 자성에 대한 집착을 원인으로 하는, 실체가 없는 갖가지 환술로 그려진 사람의 다양함에 대한 집착일 뿐임을 얻을 수 없음을 근거로 하여 설법하신다. 또한 마하마띠여, 두루 계탁된 자성의 작용의 특징은 의타기(依他起)의 자성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일어난다. 비유하자면 풀과 나무와 떨기와 덩굴을 의지처로 삼고 환술의 주문과 사람이 결합함으로써, 모든 중생의 형상을 지닌 하나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의 몸이 이루어져 갖가지로 헤아려 분별되어 나타나 보이나, 그렇게 나타나 보인다 해도 마하마띠여, 그것이 실체를 지닌 것이 아니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의타기의 자성에서 두루 계탁된 자성이라는 갖가지 분별하는 마음의 다채로운 특징이 나타나 보인다. 사물을 두루 계탁하는 특징에 대한 집착의 훈습으로써 두루 헤아려 분별함으로 말미암아, 마하마띠여, 두루 계탁된 자성의 특징이 있게 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등류불의 설법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법성불(法性佛)은 마음의 자성이라는 특징을 여읜,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경지라는 대상의 자리를 이루신다. 또한 마하마띠여, 화현으로 지어진 화신불(化身佛)은 보시·지계·선정·삼매와 갖가지 반야와 지혜, 온(蘊)·계(界)·처(處)와 해탈과 식(識)의 경지의 특징이 나뉘어 나아감을 세우신다. 그리고 외도의 견해로써 색계(色界)를 뛰어넘는 특징을 설하신다. 또한 마하마띠여, 법성불은 반연할 대상이 없으니, 반연을 여의어 모든 행위와 감관과 헤아림의 특징을 벗어나서, 어리석은 성문·연각·외도의 자기 존재라는 특징에 집착하는 이들에게는 경계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의 특별한 특징에 대한 수행을 닦아야 하며, 자기 마음의 특징으로 나타난 것을 벗어나는 견해를 지녀야 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성문승의 갈래[乘]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으니, 곧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의 특별한 특징과, 존재를 분별하는 자성에 대한 집착의 특징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성문들의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의 특별한 특징이란 무엇인가? 곧 공(空)·무아(無我)·괴로움·무상(無常)이라는 대상의 진리에서 벗어나 고요해짐으로써, 온(蘊)·계(界)·처(處)의 자기와 공통된 모습과 바깥 대상이 무너지는 특징을 있는 그대로 두루 앎으로써 마음이 삼매에 들게 된다. 자기 마음을 삼매에 들게 하여,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도(道)와 결과의 성취와 해탈의 훈습과 헤아릴 수 없는 변화와 사라짐을 여읜,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의 즐거운 머묾을 마하마띠여, 성문들은 증득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성문들의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의 특징이다. 마하마띠여, 이 성문들의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에 머무는 즐거움을 증득한 뒤에도,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위한 행위를 고려하고 예전의 서원을 이루고자 하는 까닭에 멸진(滅盡)의 즐거움과 삼매 성취의 즐거움을 몸소 증득해서는 안 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성문들의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의 즐거움이니, 보살마하살은 이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의 즐거움을 배워서는 안 된다. 또한 마하마띠여, 성문들의 존재를 분별하는 자성에 대한 집착이란 무엇인가? 곧 파랑·노랑과 뜨거움·축축함·움직임·굳음이라는 사대(四大)가 작용하여 나아가되, 자기와 공통된 모습이 이치와 성언(聖言)과 헤아림으로 잘 매어져 있음을 보고서, 그 자성에 대한 집착의 분별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는 보살이 증득한 뒤에 물리쳐야 할 것이다. 법의 무아(無我)라는 특징에 들어감으로써 인(人)의 무아라는 특징의 견해를 다스리고, 지위의 차례를 따르는 무리에 안립해야 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성문들의 존재를 분별하는 자성에 대한 집착의 특징이라 말한 것에 대한 답이다.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세존께 아뢰었다 — "세존께서는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의 대상과 궁극의 뜻[勝義]의 대상을 항상함[常]이며 사유할 수 없음[不思議]이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외도들도 원인에 대해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을 주장하지 않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외도들의 원인에는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이 성립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마하마띠여, 외도들의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은 원인이라는 자기 특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마하마띠여, 원인이라는 자기 특징에 맞지 않는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이 어떻게, 무엇으로써 항상하고 사유할 수 없다고 드러낼 수 있겠는가? 또한 마하마띠여,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의 주장이 만일 원인이라는 자기 특징에 맞는 것이라면, 그것은 원인에 의지하는 원인의 특징을 지녔기에 항상하고 사유할 수 없는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나의 궁극의 뜻에서의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은, 궁극의 뜻이라는 특징인 원인에 맞으면서도 있음과 없음을 벗어난 것이니,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에 이르는 특징이기 때문이며, 특징을 지니면서도 궁극의 뜻의 지혜를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며, 원인을 지니면서도 있음과 없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며, 지어지지 않은 허공·열반·멸(滅)의 비유와 같은 이치이기에 항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이것은 외도들의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의 주장과 같지 않다. 마하마띠여, 바로 이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이야말로 여래들이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로 증득한 진여(眞如)이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항상하고 사유할 수 없는,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증득을 위하여 수행을 닦아야 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외도들의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은 무상(無常)한 존재와는 다른 특징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스로 지은 원인의 특징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므로 항상한 것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만일 외도들의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이, 지어진 존재의 있음과 없음이 무상함을 보고서 추론하는 지혜로써 항상함을 성립시키는 것이라면, 바로 그 같은 이유로 나 또한 마하마띠여, 지어진 존재의 있음과 없음이 무상함을 보고서 항상함을 [주장할 것이나, 이는] 원인이 없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들과 다르다].
또한 마하마띠여, 만일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이 원인의 특징과 결합된 것이라면, 외도들에게는 원인이 됨의 자기 특징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까닭에, 마하마띠여, 그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은 토끼 뿔과 같은 것이 되며, 또한 마하마띠여, 외도들의 주장은 다만 말로 하는 분별일 뿐인 데 떨어지고 만다. 어째서인가? 곧 마하마띠여, 토끼 뿔이란 다만 말로 하는 분별일 뿐이니, 그 자체의 원인이라는 특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나의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은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의 특징을 원인으로 하고, 지어진 존재의 있음과 없음을 벗어났기 때문에 항상한 것이지,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이 무상함을 헤아리는 것에 따라 항상한 것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바깥의 없음이라는 무상함을 미루어 헤아림으로써 항상하고 사유할 수 없다고 하는 이라면, 그러한 항상함과 사유할 수 없음의 자기 원인이라는 특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경계라는 특징을 마하마띠여, 바깥의 것에서 찾는 그들과는 이 이치를 함께 말할 수 없다.
또한 마하마띠여, 윤회(輪廻)라는 분별의 괴로움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열반을 구한다. 윤회와 열반이 다르지 않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모든 존재를 분별함이 없어짐과 감관이 미래의 대상을 그침으로 말미암아, 마하마띠여, 열반을 분별하는 것이지, 스스로 증득하는 경지로 나아가는 식(識)의 소굴[阿賴耶]이 전의(轉依)함을 앞세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로서 삼승(三乘)을 주장하는 이들이 되지, 오직 마음뿐이며 형상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그들은 과거·미래·현재 여래들의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경계를 잘 알지 못하고 바깥의 마음이 나타낸 경계에 집착하는 이들이다. 마하마띠여, 그들은 윤회하는 갈래의 수레바퀴를 다시 맴돌게 된다.
또한 마하마띠여, 여래들은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법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설하신다. 어째서인가? 곧 마하마띠여,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의 있음과 없음으로 말미암아, 있음과 없음 어느 쪽으로도 생겨남을 여의었기에, 마하마띠여, 모든 존재는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모든 법은 토끼·말·나귀·낙타의 뿔과 같은 것이다. 어리석은 범부들이 진실 아니게 두루 헤아려 분별한 자성으로 분별된 것이기에, 마하마띠여, 모든 존재는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자성이라는 특징의 생겨남이지, 어리석은 범부들의 두 가지 분별의 경계라는 자성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몸과 향유와 머무는 곳으로 나아가는 자성의 특징인 아뢰야식이 붙잡음[所取]과 붙잡는 자[能取]의 특징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어리석은 이들은 생겨남·머묾·무너짐이라는 두 가지 견해에 떨어진 뜻으로써 모든 존재의 생겨남을 있음과 없음으로 분별한다. 마하마띠여, 그대는 여기에서 수행을 닦아야 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깨달음[現觀]에 이르는 다섯 가지 종성(種姓)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곧 성문승의 현관종성(現觀種姓)과 연각승의 현관종성과 여래승의 현관종성과 어느 한쪽으로도 정해지지 않은 종성과 다섯째로 종성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하마띠여, 성문승의 현관종성은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온(蘊)·계(界)·처(處)의 자기와 공통된 모습을 두루 아는 증득을 설할 때 그 몸에 털이 곤두서는 이가 있다. 그의 지혜는 특징을 익히 아는 지혜에서 뛰어오르되, 연기(緣起)가 나뉘지 않는 특징을 익히 아는 데에는 이르지 못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성문승의 현관종성이다. 성문승의 현관을 보고서 여섯째나 다섯째 지위에서 일어나는 번뇌[纏]는 끊었으나 훈습의 번뇌는 끊지 못한 채, 사유할 수 없는 죽음[변화하는 벗어남]에 이르러 바르게 사자후를 토하니 — "나의 태어남은 다하였고, 청정한 행[梵行]은 이미 이루었다" 등등을 말하고서, 인(人)의 무아를 익히 아는 데서부터 마침내 열반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또한 마하마띠여, 다른 이들은 아(我)·중생(衆生)·목숨[命]·양육자[養]·사람[人]·보특가라(補特伽羅)·유정(有情)을 아는 것에서부터 열반을 구한다. 또 다른 이들은 마하마띠여, 모든 법이 원인에 의지함을 보고서 열반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갖게 된다. 법의 무아(無我)를 보는 것이 없으므로, 마하마띠여, 그것은 해탈이 아니다. 이것이 마하마띠여, 성문승 현관종성인 이의 벗어남 아닌 것을 벗어남이라 여기는 생각이다. 마하마띠여, 그대는 여기에서 삿된 견해를 물리치기 위해 수행을 닦아야 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연각승의 현관종성인 이는, 연각의 현관을 설할 때 눈물 흘리며 기뻐하고 몸에 털이 곤두서는 이다. 어울림을 여읨이라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존재에 대한 집착과 온갖 종류의 자기 몸의 다채로움과 신통과 따로 떨어짐과 짝을 지음이라는 신통변화를 보이며 가르칠 때 그 뜻을 따르니, 그가 연각승의 현관종성임을 알고서 연각승의 현관에 걸맞은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연각승의 현관종성의 특징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여래승의 현관종성은 세 가지이니, 곧 자성이 자성 없는 법이라는 현관종성과, 증득이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경지라는 현관종성과, 바깥의 부처님 세계의 광대함이라는 현관종성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설할 때, 자기 마음이 나타낸 몸과 머무는 곳과 향유라는 사유할 수 없는 대상을 설함에 있어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 않는다면, 이 이가 여래승의 현관종성임을 알아야 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여래승의 현관종성의 특징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어느 한쪽으로도 정해지지 않은 종성이란,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을 설하든 그 뜻을 따르는 그곳으로 이끌려 들어가게 되는 이이다. 마하마띠여, 이 종성의 안립은 예비 수행[加行]의 단계이니, 형상 없는 지위에 들어감으로써 그 안립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자기 아뢰야[알라야]에서 자기 번뇌의 훈습이 청정해진 이는, 법의 무아를 보는 데서부터 삼매의 즐거운 머묾을 얻어, 성문일지라도 승리자의 몸[佛身]을 얻게 될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 자리에서 이 게송을 설하셨다 —
수다원(須陀洹)의 결과와 사다함(斯陀含)과, 아나함(阿那含)의 결과와 아라한(阿羅漢)됨은 마음의 어지러운 분별이다. (2품 128송)
삼승(三乘)과 일승(一乘)과 승 아님[無乘]을, 나는 어리석고 둔한 이들을 위해 설하니, 성인들에게는 그러한 구분에서 벗어나 있다. (2품 129송)
궁극의 뜻으로 들어가는 문은 둘을 여읜 앎[識]이니, 형상 없음에 머무를 때 어찌 삼승의 안립이 있겠는가? (2품 130송)
선정(禪定)들과 무량심(無量心)들과 무색계(無色界)의 삼매들과, 상(想)이 온전히 사라짐[滅盡定]도 오직 마음뿐임에는 있지 않다. (2품 131송)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일천제(一闡提)들에게 일천제 아님의 해탈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곧 모든 선근(善根)을 버림과, 중생을 위한 무시이래의 서원으로 말미암는다. 그 가운데 모든 선근을 버림이란 무엇인가? 곧 보살장(菩薩藏)을 내던지고 헐뜯어 — "이 경전들은 율(律)과 해탈에 수순하지 않는다"라고 말함으로써 모든 선근을 버리는 까닭에 열반에 들지 못한다. 둘째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방편의 서원을 앞세워 —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한 모든 중생을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하리라"라고 하므로, 그로 말미암아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는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하는 법을 지닌 이들의 특징이니, 이로써 일천제의 경지를 증득하게 된다.
마하마띠가 다시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이 가운데 어느 쪽이 끝내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여기서 보살일천제(菩薩一闡提)는 본래로 완전한 열반에 든 모든 법을 알고서 끝내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으니, 모든 선근을 버린 일천제는 그렇지 않다. 모든 선근을 버린 일천제도 마하마띠여, 다시 여래의 가피에 힘입어 어느 때에는 선근을 일으키게 된다. 어째서인가? 곧 마하마띠여, 여래들은 어떤 중생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이러한 까닭으로 보살일천제는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는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세 가지 자성의 특징에 능숙해야 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두루 계탁된 자성[遍計所執性]은 표상[相]으로부터 나아간다. 그렇다면 마하마띠여, 두루 계탁된 자성은 어떻게 표상으로부터 나아가는가?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의타기의 자성[依他起性]은 사물의 표상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 보인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사물의 표상에 대한 집착은 다시 두 가지이다. 두루 계탁된 자성을 여래·응공·정등각들께서 안립하시니, 명칭에 대한 집착의 특징으로써와 명칭과 사물의 표상에 대한 집착의 특징으로써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사물의 표상에 대한 집착의 특징이란 안팎의 법에 대한 집착이다. 표상에 대한 집착이란 다시, 바로 그 안팎의 법에서 자기와 공통된 모습을 두루 아는 깨달음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두루 계탁된 자성의 특징의 두 가지 종류이다. 무엇을 의지처와 반연으로 삼아 나아가는가, 그것이 의타기[성]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원성실성[圓成實性]이란 무엇인가? 곧 표상과 명칭과 사물의 특징에 대한 분별을 여읜, 진여(眞如)의 성스러운 지혜로 나아가는,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경지의 대상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원성실성이니, 여래장(如來藏)의 핵심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 자리에서 이 게송을 설하셨다 —
표상[相]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 자성의 특징을 분별하여 헤아린 것이요, 바른 지혜와 진여야말로 원성실성의 특징이다. (2품 132송)
마하마띠여, 이것이 오법(五法)과 자성(自性)의 특징을 살피는 것이라는 이름의 법문이니,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경지를 대상으로 하는 이것을 그대와 다른 보살들도 배워야 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두 가지 무아(無我)의 특징을 살피는 데 능숙해야 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두 가지 무아의 특징이란 무엇인가? 곧 아(我)와 나의 것[我所]을 여읜 온(蘊)·계(界)·처(處)의 무더기가, 무명(無明)과 업(業)과 갈애(渴愛)로부터 생겨나, 눈으로 색 등을 붙잡아 집착함으로써 나아가는 식(識)이, 온갖 감관으로써 자기 마음이 나타낸 그릇[器]과 몸과 머무는 곳을 자기 마음의 분별로 분별하여 알게 하는 것이다. 강물과 씨앗과 등불과 바람과 구름처럼 찰나마다 잇달아 다르게 나뉘면서도, 변덕스럽기가 원숭이 같고 더러움을 좋아하는 파리 같으며, 만족할 줄 모르는 불과 같이 깨끗하지 못한 대상을 향해 나아가는 자재롭지 못한 것이며, 무시이래의 희론이라는 대상의 훈습을 여의지 못한 채, 마치 물레방아의 바퀴 장치처럼 윤회하는 존재의 갈래라는 수레바퀴 속에서 갖가지 몸의 모습을 지니고, 환술로 만든 죽은 시체를 다루는 기계장치와 같이 나아가고 나아가는 것 — 마하마띠여, 이에 대한 특징을 잘 아는 지혜, 이것을 인(人)의 무아(無我)에 대한 앎이라 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법의 무아(無我)에 대한 앎이란 무엇인가? 곧 온(蘊)·계(界)·처(處)가 두루 계탁된 특징의 자성임을 깨닫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마치 온·계·처가 아(我)를 여읜 채 온의 무더기일 뿐으로서, 원인과 업과 갈애의 실[線]로 매여, 서로 조건이 되어 나아가되 애씀[能作者]이 없는 것과 같이, 온들도 마하마띠여, 자기와 공통된 모습을 여읜 채 진실 아니게 두루 헤아려진 특징으로 다채롭게 드러난 것을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것이지 성인들이 분별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心]과 의(意)와 의식(意識)과 오법(五法)의 자성을 여읜 모든 법을 밝게 살피는 보살마하살은 법의 무아에 능숙한 이가 된다. 마하마띠여, 법의 무아에 능숙한 보살마하살은 오래지 않아 형상 없음을 살피는 첫째 보살지(菩薩地)를 증득한다. 지위의 특징을 살피어 앎으로써 환희지(歡喜地) 이후로 차례로 아홉 지위에서 밝은 지혜를 갖추고서 대법운지(大法雲地)를 증득한다.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온갖 보배와 진주로 아름답게 꾸며진 커다란 연꽃 왕좌 모양의 큰 보배 누각에, 환술과 같은 자성의 경계를 익힘으로써 이루어진 그곳에 앉아, 그에 걸맞은 부처님 아드님들에게 둘러싸여, 모든 부처님 세계에서 온 부처님들의 손으로 관정을 받되 전륜성왕의 아들처럼 관정을 받는다. 부처님 아드님의 지위를 뛰어넘어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법으로 나아가는 자취로 말미암아, 법의 무아를 봄으로써 법신(法身)을 자재로이 다스리는 여래가 될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모든 법의 무아의 특징이니, 그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도 여기에서 배워야 한다.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아뢰었다 — "세존께서는 저와 다른 보살들이 덧보탬[增益]과 덜어냄[損減]이라는 삿된 견해를 여읜 지혜를 지니고서 빨리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닫도록, 덧보탬과 덜어냄의 특징을 저를 위해 설하여 주소서. 이를 깨달음으로써 항상함과 끊어짐, 덧보탬과 덜어냄이라는 견해를 여읜 저희들이 세존의 부처님의 이끄심[佛眼]을 헐뜯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다시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의 청함을 아시고서 이 게송을 설하셨다 —
덧보탬과 덜어냄은 오직 마음뿐임에는 있지 않으니, 몸과 향유와 머무는 곳과 같은 것을 마음인 줄 알지 못하는 이들, 그들이 덧보탬과 덜어냄 가운데 헤매어 다니는 지혜롭지 못한 이들이다. (2품 133송)
그때 세존께서는 바로 이 게송의 뜻을 밝히시고자 다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실답지 않은 덧보탬은 네 가지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곧 실답지 않은 특징의 덧보탬과, 실답지 않은 견해의 덧보탬과, 원인 아닌 것의 덧보탬과, 실답지 않은 존재의 덧보탬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네 가지 덧보탬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덜어냄이란 무엇인가? 곧 바로 이 삿된 견해의 덧보탬이 살펴 얻을 수 없음으로 말미암아 덜어냄이 되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덧보탬과 덜어냄의 특징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실답지 않은 특징의 덧보탬의 특징이란 무엇인가? 곧 온(蘊)·계(界)·처(處)에 실답지 않은 자기와 공통된 모습에 대한 집착이니 — "이것은 바로 이러하며 다르지 않다"라고 하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실답지 않은 특징의 덧보탬의 특징이다. 마하마띠여, 이 실답지 않은 특징의 덧보탬이라는 분별은, 무시이래의 희론이라는 거칠고 두터운 갖가지 훈습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일어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실답지 않은 특징의 덧보탬의 특징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실답지 않은 견해의 덧보탬이란, 바로 그 온·계·처에 아(我)·중생·목숨[命]·생명 있는 것[有情]·양육자·사람[人]·보특가라(補特伽羅)라는 견해를 덧보태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를 실답지 않은 견해의 덧보탬이라 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원인 아닌 것의 덧보탬이란 무엇인가? 곧 원인 없이 생겨난 식(識)이, 앞서 있지 않다가 뒤에 있게 되되 환술처럼 생겨남이 없이, 먼저 눈[眼]과 색(色)과 빛과 기억[憶念]을 앞세워 나아가고, 나아가 있게 된 뒤에 다시 사라지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원인 아닌 것의 덧보탬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실답지 않은 존재의 덧보탬이란, 곧 허공·멸(滅)·열반이 지어지지 않은 존재라는 집착을 덧보태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것들은 있음과 없음을 벗어난 것이다. 마하마띠여, 모든 법은 토끼·말·나귀·낙타의 뿔이나 털끝의 티끌[毛輪]과 같아서, 있음과 없음이라는 양 극단을 벗어나 있고 덧보탬과 덜어냄도 그러하다.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을 확정하지 못하는 지혜를 지닌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것이지 성인들이 분별하는 것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실답지 않은 존재에 대한 분별인 덧보탬과 덜어냄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덧보탬과 덜어냄이라는 견해를 여의어야 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보살들은 마음[心]·의(意)·의식(意識)과 오법(五法)의 자성과 무아(無我)의 두 가지 특징으로 나아감으로써, 남을 이롭게 하려는 까닭에 갖가지 모습의 몸을 지니는 이가 된다. 두루 계탁된 자성과도 같고 의타기(依他起)의 뜻과도 같으며, 갖가지 형상을 나투는 여의주와도 같아서, 모든 부처님 세계의 대중 모임에 이르러, 환술·꿈·그림자·거울에 비친 모습·물속의 달과 같이 생겨남과 무너짐, 항상함과 끊어짐을 여읜 모든 법을, 모든 여래들 앞에서, 모든 성문·연각의 수레를 벗어난 법의 가르침을 들으며, 백천 가지 삼매의 문을 증득한다. 나아가 헤아릴 수 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가지 삼매를 증득하여, 그 삼매들로써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옮겨 다니며, 부처님께 공양함에 힘쓰고, 모든 태어나는 곳과 하늘의 궁전과 처소에서 삼보(三寶)를 가르쳐 보이며, 부처님의 모습을 나타내어 성문 무리와 보살 무리에 둘러싸인 채,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에 들게 하고자, 있음과 없음이라는 두 견해를 물리치기 위해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에 대한 가르침을 베푼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 자리에서 이 게송을 설하셨다 —
부처님 아드님들이 세간을 오직 마음뿐이라고 밝게 볼 때, 그때 지어짐과 행함을 여읜 화현의 몸을, 힘과 신통과 자재력을 갖추어 얻는다. (2품 134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청하여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공(空)·무생(無生)·불이(不二)·무자성(無自性)의 특징을 설하여 주소서. 이 공·무생·불이·무자성의 특징을 깨달음으로써,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있음과 없음이라는 분별을 여의고 빨리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닫게 되겠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그러면 들어라, 잘 새겨듣고 마음에 잘 간직하라. 내가 그대를 위해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공(空)이라 공이라 하는 것, 마하마띠여, 이는 두루 계탁된 자성[遍計所執性]을 가리키는 말이다. 두루 계탁된 자성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다시 마하마띠여, 공(空)·무생(無生)·무이(無二)·무자성(無自性)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게 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간략히 말하면 일곱 가지 공(空)이 있다. 곧 특징의 공[相空], 존재 자성의 공[性自性空], 행해지지 않음의 공[不行空], 행해짐의 공[行空], 모든 법이 말할 수 없다는 공[一切法離言說空], 궁극의 뜻인 성스러운 지혜의 큰 공[第一義聖智大空], 그리고 일곱째로 서로 간의 공[彼彼空]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특징의 공이란 무엇인가? 곧 모든 존재가 자기와 공통된 모습을 여읜 것이다. 마하마띠여, 서로 무리 지어 서로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나누어 살핌이 없기에, 자기와 공통된 모습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하마띠여, 자기와 남과 그 둘 다에도 있지 않으므로 특징은 자리 잡지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자기 특징이 공하다고 말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존재 자성의 공이란 무엇인가? 곧 마하마띠여, 모든 법이 스스로 자성이 없이 생겨나기에 존재 자성의 공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존재 자성의 공이라 말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행해지지 않음의 공이란 무엇인가? 곧 온(蘊)들 가운데 본래로 행해지지 않은 열반이다. 그러므로 행해지지 않음의 공이라 말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행해짐의 공이란 무엇인가? 곧 온들이 아(我)와 나의 것[我所]을 여읜 채 원인과 도리와 행위와 업의 화합으로 나아가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해짐의 공이라 말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모든 법이 말할 수 없다는 공이란 무엇인가? 곧 두루 계탁된 자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에 말할 수 없는 공이 모든 법에 있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는 공이라 말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궁극의 뜻인 성스러운 지혜의 큰 공이란 무엇인가? 곧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증득은 모든 견해의 허물이 되는 훈습으로부터 공한 것이다. 그러므로 궁극의 뜻인 성스러운 지혜의 큰 공이라 말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서로 간의 공이란 무엇인가? 곧 어떤 곳에 어떤 것이 없으면 그것을 그것이 공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자칼 어미의 누각에 코끼리·소·양 등이 있지 않은 것과 같으니, 그런데 "이곳은 비구들로 비어있지 않다"고 내가 말한 바 있으니, 그것도 그것들로 공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누각이 누각이라는 존재로서 없는 것도 아니요, 비구들도 비구라는 존재로서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코끼리·소·양 등의 존재들이 다른 곳에 있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모든 법의 자기와 공통된 모습이다. 그러나 서로 간의 것은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서로 간의 공이라 말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일곱 가지 공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이 서로 간의 공이야말로 모든 것 가운데 가장 하열한 것이니, 그대는 이를 멀리해야 한다.
모든 법은 스스로 생겨나지 않으며, 또한 마하마띠여, 삼매의 경계가 아닌 곳에서는 그것들이 생겨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생겨나지 않고 자성이 없다고 말한다. 마하마띠여, 생겨나지 않음을 아울러 말하면 모든 존재는 자성이 없는 것이다. 찰나마다 이어짐이 끊임없이 이어지되 다르게 변하는 것으로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마하마띠여, 모든 존재는 자성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자성이 없다고 말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둘 아님[不二]의 특징이란 무엇인가? 곧 마하마띠여, 그늘과 볕, 길고 짧음, 검고 흼처럼 둘로 나타나되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것과 같이, 마하마띠여, 이와 마찬가지로 윤회와 열반처럼 모든 법은 둘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열반이 있는 곳에 윤회가 있지 않고, 윤회가 있는 곳에 열반이 있지 않으니, 둘은 서로 다른 원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윤회와 완전한 열반처럼 모든 법은 둘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공(空)·무생(無生)·무이(無二)·무자성(無自性)의 특징에 대한 수행을 닦아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 자리에서 이 두 게송을 설하셨다 —
나는 공(空)을 항상함과 끊어짐을 여읜 것으로 설하니, 윤회는 꿈과 환술이라 불리되 업(業)은 없어지지 않는다. (2품 135송)
허공과 열반과 멸(滅)이라는 두 가지를, 어리석은 이들은 지어지지 않은 것으로 헤아리나, 성인들은 있음과 없음을 벗어난 것으로 안다. (2품 136송)
그때 세존께서는 다시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이 공(空)·무생(無生)·무이(無二)·무자성(無自性)의 특징이야말로 모든 부처님의 모든 경전에 담겨 있는 것이다. 어느 경전에서든 바로 이 뜻이 밝혀져야 한다. 마하마띠여, 이 경전들은 모든 중생의 뜻에 맞추어 설한 것으로서 뜻이 듣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지, 진실 그 자체에 관한 확정된 말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아지랑이가 사슴을 홀려 물이 있다는 집착을 일으키게 하나 그곳에는 물이 있지 않은 것처럼,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모든 경전의 가르침이라는 법은 어리석은 이들 자신의 분별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지, 진실인 성스러운 지혜의 확정된 말은 아니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뜻을 따르는 이가 되어야 하고 가르침의 말에 집착하는 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세존께 아뢰었다 — "세존께서는 경전의 가르침에서 여래장(如來藏)을 찬탄하여 설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본래로 밝게 빛나고 청정한 것이라 하시며, 서른두 가지 특징을 갖추어 모든 중생의 몸 안에 있다고 설하셨습니다. 마치 값진 보배가 더러운 천에 싸여 있듯이, 온(蘊)·계(界)·처(處)라는 사물에 싸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진실 아닌 두루 헤아림의 때로 물들어 있으나, 그것은 항상하고[常] 견고하고[恒] 상서로우며[吉祥] 영원하다[不變]고 세존께서는 설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이는 외도들의 아(我)에 대한 주장과 같이 여래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외도들도 항상하고 짓는 자이며 성질이 없고 두루하며 무너지지 않는다고 아(我)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나의 여래장에 대한 가르침은 외도들의 아(我)에 대한 주장과 같지 않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여래·응공·정등각들께서는 공(空)·실제(實際)·열반·무생(無生)·무상(無相)·무원(無願) 등의 뜻을 위하여 여래장에 대한 가르침을 베푸시니, 어리석은 이들이 무아(無我)를 두려워하는 자리를 벗어나게 하고자, 분별없고 형상 없는 경계를 여래장이라는 문을 통해 설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미래와 현재의 보살마하살들은 여기서 아(我)에 대한 집착을 지어서는 안 된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옹기장이가 하나의 진흙 알갱이 더미로부터 손재주와 막대와 물과 실과 애씀이라는 조건에 의해 갖가지 그릇을 만들어내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여래들도 모든 분별의 특징을 벗어난 바로 그 법의 무아(無我)를, 갖가지 반야와 방편의 능숙함이라는 수행으로써 혹은 여래장이라는 가르침으로 혹은 무아라는 가르침으로, 옹기장이처럼 갖가지 말과 표현의 방편으로써 설하신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여래장에 대한 가르침은 외도들의 아(我)에 대한 주장과 같지 않다. 마하마띠여, 이와 같이 여래장에 대한 가르침을 베푸는 것은, 아(我)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외도들을 이끌어 오기 위함이니 — 어찌하면 실답지 않은 아(我)에 대한 분별의 견해에 떨어진 뜻을 지니고 세 가지 해탈문[三解脫門]의 경계에 떨어진 뜻을 지닌 이들이 빨리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닫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러한 뜻을 위하여 여래·응공·정등각들께서는 여래장에 대한 가르침을 베푸시는 것이니, 이 때문에 그것은 외도들의 아(我)에 대한 주장과 같지 않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외도들의 견해를 물리치기 위하여 여래의 무아(無我)의 여래장을 따르는 이가 되어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 자리에서 이 게송을 설하셨다 —
보특가라(補特伽羅)와 이어짐[相續]과 온(蘊)들과 조건들과 미진(微塵)들과, 근본원질[勝性]과 자재천(自在天)과 짓는 자[作者] — 이러한 것들도 오직 마음뿐인 것을 분별한 것이다. (2품 137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미래의 사람들을 살펴보고서 다시 세존께 청하여 여쭈었다 — "보살마하살들이 어떻게 큰 요가행자[大瑜伽行者]가 되는지, 그 요가의 현관(現觀)을 저를 위해 설하여 주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네 가지 법을 갖춤으로써 보살들은 큰 요가행자가 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곧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을 밝게 살핌과, 생겨남·머묾·무너짐이라는 견해를 여읨과,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을 잘 살핌과,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증득을 스스로 특징 지음이다. 마하마띠여, 이 네 가지 법을 갖춤으로써 보살마하살들은 큰 요가행자가 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을 밝게 살핌에 능숙한 이가 되는가? 곧 이와 같이 살피는 것이다 — "이 삼계는 오직 자기 마음일 뿐으로서, 아(我)와 나의 것[我所]을 여의고, 애씀[能作]도 없고 지어냄[能成]도 없으며, 무시이래의 희론이라는 거칠고 두터운 훈습에 대한 집착으로 물들어, 삼계의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난 것에 매여, 몸과 향유와 머무는 곳으로 나아가는 분별을 따라 분별되고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을 밝게 살핌에 능숙한 이가 된다.
또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생겨남·머묾·무너짐이라는 견해를 여읜 이가 되는가? 곧 환술·꿈·형상과 같이 태어남과 비슷한 모든 존재는, 자기와 남과 그 둘 다에도 있지 않으므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자기 마음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을 봄으로써, 식(識)들이 나아가지 않음을 보고, 조건들이 헛된 무더기임과 분별이라는 조건에서 생겨난 삼계임을 보아, 안팎의 모든 법을 얻을 수 없음으로써 자성 없음을 보고, 생겨남이라는 견해를 벗어나며, 환술 등의 법의 자성을 따라감으로써 생겨나지 않는 법의 인(忍)[無生法忍]을 증득한다. 여덟째 지위[第八地]에 머물러, 마음[心]·의(意)·의식(意識)과 오법(五法)의 자성과 두 가지 무아(無我)로 나아감이 전의(轉依)됨을 증득함으로써, 뜻으로 이루어진 몸[意生身]을 증득한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뜻으로 이루어진 몸이라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뜻으로 이루어진 몸이라 함은, 뜻[意]처럼 막힘없이 빠르게 가기 때문에 뜻으로 이루어진 몸이라 말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뜻은 막힘없이 산과 담과 강과 나무 등을 지나 수백 수천 유순(由旬)이나 되는 먼 거리에서도, 예전에 보고 겪은 대상을 기억하면서 자기 마음의 이어짐이 끊이지 않은 채 막힘없이 나아가는 것과 같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뜻으로 이루어진 몸을 함께 증득함으로써, 환술과 같은 삼매로써, 힘과 자재력과 신통이라는 특징으로 꽃피운 성스러운 경지의 무리와 함께하는 뜻과 같이, 예전의 서원의 대상을 기억하면서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 막힘없는 걸음으로 나아간다. 마하마띠여,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은 생겨남·머묾·무너짐이라는 견해를 여읜 이가 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을 잘 살핌에 능숙한 이가 되는가? 곧 마하마띠여, 모든 존재는 아지랑이·꿈·털끝의 티끌과 같은 것이니, 무시이래의 희론이라는 거칠고 두터운 갖가지 과보로 나타나는 분별의 훈습에 대한 집착을 원인으로 하는 것이 모든 존재의 자성임을 밝게 살핌으로써,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로 나아가는 경계라는 대상을 바란다. 마하마띠여, 이 네 가지 법을 갖춤으로써 보살마하살들은 큰 요가행자가 된다. 마하마띠여, 그대는 여기에서 수행을 닦아야 한다.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청하여 여쭈었다 — "모든 법의 원인[因]과 조건[緣]의 특징을 저를 위해 설하여 주소서. 이 원인과 조건의 특징을 깨달음으로써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있음과 없음이라는 견해의 분별을 여의고, 모든 존재가 차례로[漸] 생겨나고 동시에[頓] 생겨난다고 분별하지 않게 되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모든 법의 연기(緣起)의 원인이라는 특징은 두 가지이니, 곧 바깥의 것과 안의 것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바깥의 연기란, 진흙 덩이와 막대와 물레와 실과 물과 사람의 애씀 등의 조건들로써 마하마띠여, 항아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항아리가 바로 진흙 덩이로부터 생겨나듯이, 실로부터 옷감이, 갈대로부터 자리가, 씨앗으로부터 싹이, 휘저음 등 사람의 애씀의 결합으로부터 우유에서 버터가 생겨나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바깥의 연기는 앞뒤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가운데 안의 연기란, 곧 무명(無明)과 갈애(渴愛)와 업(業) 등의 법이, 마하마띠여, 연기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다. 이로부터 생겨난 온(蘊)·계(界)·처(處)라 불리는 법이, 마하마띠여, 연기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다. 그것들은 바깥의 연기와 다르지 않으나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원인[因]은 여섯 가지이니, 곧 될 원인[當有因], 서로 이어지는 원인[相續因], 특징의 원인[相因], 짓는 원인[作因], 드러내는 원인[顯了因], 그리고 여섯째로 무관심의 원인[相待因]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될 원인이란, 안팎의 법이 생겨남에 있어 원인으로서의 일을 하는 것이다. 서로 이어지는 원인은 또한 마하마띠여, 안팎의 온(蘊)과 씨앗 등이 생겨남에 있어 반연[所緣]으로서의 일을 하는 것이다. 특징의 원인은 다시 마하마띠여, 끊임없는 행위의 특징으로 매인 것을 낳는 것이다. 짓는 원인은 또한 마하마띠여, 전륜성왕처럼 주재하고 다스리는 일을 하는 것이다. 드러내는 원인은 또한 마하마띠여, 등불이 색 등을 비추듯이, 생겨난 분별인 존재의 특징을 드러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무관심의 원인은 또한 마하마띠여, 소멸의 때에 이어지는 행위가 끊어짐으로써 분별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것들은 스스로의 분별로 두루 헤아려진 것으로서, 어리석은 범부들에 의해 차례로도 동시에도 나아가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만일 마하마띠여, 동시에 나아간다면 결과와 원인의 구별이 없게 될 것이니, 원인이라는 특징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차례로 나아간다 해도, 원인의 특징을 얻지 못한 것이 뒤에 특징을 지니게 되는 것이므로 차례로 나아가는 것도 성립하지 않는다. 마하마띠여,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에게 아버지라는 말을 붙일 수 없듯이, 차례로 나아간다는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 마하마띠여, 논리를 따지는 이들은 원인·반연·틈 없음·주된 조건 등에 의해 낳는 것과 낳아지는 것의 관계로써 설명하려 하나, 마하마띠여, 모든 법은 차례로도 생겨나지 않는다. 마하마띠여, 두루 계탁된 자성에 대한 집착이라는 특징으로부터는 동시에도 생겨나지 않는다. 마하마띠여, 자기 마음이 나타낸 몸과 향유와 머무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자기와 공통된 모습과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은 마하마띠여, 차례로도 동시에도 생겨나지 않는다. 다만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에 대한 분별로 분별됨으로써 식(識)이 나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원인과 조건의 행위라는 특징이 차례로냐 동시냐 하는 견해를 벗어난 이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여기에는 실로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고 조건들에 의해 사라지지도 않으니,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것은 조건들이 그렇게 분별된 것일 뿐이다. (2품 138송)
무너짐과 생겨남과 오염은 조건들에 의해 막아지는 것이 아니니,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곳에서 그것이 조건들에 의해 막아진다고 잘못 여긴다. (2품 139송)
있지 않은 법들에게는 조건들 가운데서도 생겨남이 없으니, 훈습에 의해 어지러워진 마음이 삼계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없다가 생겨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조건들에 의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2품 140송)
석녀(石女)의 아들이나 허공의 꽃을 지어진 것으로 볼 때, 그때 붙잡는 자[能取]와 붙잡히는 것[所取]도 미혹임을 보고서 물러나게 된다. (2품 141송)
생겨날 것도 없고 생겨난 것도 없으며 조건이라는 것도 어디에도 있지 않으나, 다만 세간의 언어 관습으로서 말해질 뿐이다. (2품 142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아뢰었다 — "말과 분별의 특징의 핵심이라는 이름의 법문을 저를 위해 설하여 주소서. 세존이시여, 이 말과 분별의 특징의 핵심을 잘 분별하여 알게 되면,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말과 말해지는 대상이라는 두 가지로 나아감을 밝게 알아, 빨리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닫고서, 말과 말해지는 대상이라는 두 가지로 나아감에 대해 모든 중생을 청정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그러면 들어라, 잘 새겨듣고 마음에 잘 간직하라. 내가 그대를 위해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말과 분별의 특징은 네 가지이니, 곧 특징의 말[相言], 꿈의 말[夢言], 거칠고 두터운 분별에 대한 집착의 말[計著過惡言], 무시이래의 분별의 말[無始妄想言]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특징의 말이란 자기 분별의 색(色)이라는 표상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일어난다. 또한 마하마띠여, 꿈의 말이란 예전에 겪은 대상을 기억함과 깨어난 뒤에는 그 대상이 있지 않음으로부터 일어난다. 또한 마하마띠여, 거칠고 두터운 분별에 대한 집착의 말이란 원수가 예전에 지은 업을 기억함으로부터 일어난다. 또한 마하마띠여, 무시이래의 분별의 말이란 무시이래의 희론에 대한 집착이라는 거칠고 두터운 자기 씨앗의 훈습으로부터 일어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말과 분별의 특징이 네 가지라고 내가 말한 것에 대한 답이다.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바로 이 뜻에 대해 청하여 여쭈었다 — "말과 분별이 드러나는 경계를 다시 저를 위해 설하여 주소서. 세존이시여, 사람들의 말이라는 앎의 분별은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무엇에 의해 나아갑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머리와 가슴과 코와 목구멍과 입천장과 입술과 혀와 이가 어우러짐으로써 말이 나아가고 나아간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그런데 세존이시여, 말은 분별과 다른 것입니까, 다르지 않은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말은 분별과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어째서인가? 곧 마하마띠여, 그것을 원인으로 생겨나는 특징을 지녔기에 말과 분별이 나아가는 것이다. 만일 마하마띠여, 말이 분별과 다른 것이라면 분별을 원인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르지 않은 것이라면, 뜻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말이 그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 일을 한다. 그러므로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마하마띠가 다시 여쭈었다 — "그런데 세존이시여, 말 자체가 궁극의 뜻[勝義]입니까, 아니면 말로써 말해지는 그것이 궁극의 뜻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말이 궁극의 뜻이 아니며, 말로써 말해지는 그것도 궁극의 뜻이 아니다. 어째서인가? 곧 마하마띠여, 궁극의 뜻은 성스러운 즐거움의 말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궁극의 뜻의 말은 궁극의 뜻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궁극의 뜻은 성스러운 지혜로 스스로 증득하여 나아가는 경계이지, 말과 분별의 지혜가 대상으로 삼는 경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분별은 궁극의 뜻을 드러내지 못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말이란 생겨났다가 무너지고 변덕스러우며 서로 조건이 되고 원인이 되어 생겨나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서로 조건이 되고 원인이 되어 생겨난 것은 궁극의 뜻을 드러내지 못한다. 마하마띠여, 자기와 남의 특징이 있지 않으므로 말은 바깥의 특징을 드러내지 못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을 따르는 것이기에, 갖가지 다채로운 특징을 지닌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으로 말미암아, 말과 분별은 궁극의 뜻을 분별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그대는 말이라는 갖가지 분별을 여읜 이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모든 존재는 자성이 없으나 말은 있는 듯하니, 있는 듯하면서도 실은 없는 것이다. 공(空)과 공 아님의 뜻을 보지 못한 어리석은 이는 이리저리 치달린다. (2품 143송)
모든 존재의 자성과 사람들의 말도, 그 헤아림[分別] 또한 있지 않으니, 열반도 꿈과 같다. 존재를 이렇게 살펴 관찰하는 이는 윤회에도 있지 않고 또한 완전한 열반에도 들지 않는다. (2품 144송)
마치 왕이나 장자가 아들들에게, 갖가지 진흙으로 빚은 사슴 모형으로 마음을 이끌어 놀게 하고서, 그 뒤에 진짜 사슴을 주듯이, (2품 145송)
나도 그와 같이, 법들의 그림자와 같은 갖가지 특징으로써, 아드님들을 위해 스스로 증득하여 알아야 할 진실의 궁극[實際]을 설한다. (2품 146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아뢰었다 — "있음과 없음, 하나와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님, 항상함과 무상함을 벗어난, 모든 외도들의 나아가는 자취와, 성스러운 스스로 증득한 지혜로 나아가 알 수 있으며, 두루 계탁된 자기와 공통된 모습을 벗어난, 궁극의 뜻인 진실로 들어가는 것과, 지위들이 차례로 서로 이어져 더욱 청정해지는 특징과, 여래의 지위로 들어가는 특징과, 애씀 없는 예전의 서원으로 갖가지 형상을 나투는 여의주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대상으로 나아가는 특징과,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경계로 나아가 갈래를 나누는 특징 등 모든 법에 대해 설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이러한 것들에서 두루 계탁된 자성인 자기와 공통된 모습을 벗어난 견해를 지니고서 빨리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아, 모든 중생의 온갖 공덕의 성취를 원만히 이루게 하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훌륭하고 훌륭하다, 마하마띠여. 참으로 훌륭하다, 마하마띠여, 그대가 이러한 뜻을 청하고자 생각한 것은. 마하마띠여, 그대는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안락을 위하며 세간을 가엾이 여겨, 하늘과 사람 등 많은 무리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이렇게 나아가고 있다. 그러니 마하마띠여, 그러면 들어라, 잘 새겨듣고 마음에 잘 간직하라. 내가 그대를 위해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범부들은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의 갖가지 존재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있음과 없음, 하나와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님, 항상함과 무상함이라는 자성에 대한 훈습을 원인으로 한 분별에 대한 집착으로써 분별한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아지랑이의 물을 사슴들이 물이라고 분별하여 더위에 시달려 마시고자 치달려 가지만, 자기 마음의 견해가 지어낸 미혹임을 깨닫지 못하여 그곳에 물이 있지 않음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범부들은 무시이래의 갖가지 희론의 분별로 훈습된 마음을 지니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에 마음이 타올라, 갖가지 색의 대상을 갈망하며, 생겨남·무너짐·머묾이라는 견해에 뜻이 이끌려, 안팎의 존재의 있음과 없음에 능숙하지 못하다. 그들은 하나임과 다름, 있음과 없음이라는 붙잡음에 떨어진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건달바(乾闥婆)의 성[신기루]에 대해 무지한 이들에게 성이라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과 같으니, 그 성의 모습은 무시이래의 성이라는 씨앗의 훈습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은 성도 아니고 성 아님도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무시이래의 외도의 희론이라는 주장의 훈습에 사로잡힌 이들은 하나임과 다름, 있음과 없음의 주장에 집착하니,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을 확정하지 못하는 지혜를 지닌 이들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어떤 사람이 잠들어 꿈속에서 여인과 남자와 코끼리와 말과 수레와 보병(步兵)과 마을과 성과 도시와 소와 물소와 숲과 동산과 갖가지 산과 강과 못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지방과 궁궐에 들어갔다가 문득 깨어난다고 하자. 깨어난 뒤 바로 그 지방과 궁궐을 기억한다고 하자. 마하마띠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그 사람이 그 실답지 않은 꿈속의 다채로운 광경을 기억하는 것이 지혜로운 부류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마하마띠가 아뢰었다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범부들은 삿된 견해에 물려 외도의 뜻을 지니고서, 꿈과 같은 자기 마음이 나타낸 존재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하나임과 다름, 있음과 없음이라는 견해에 의지한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화가가 그려낸 자리는 높낮이가 있지 않은데도 어리석은 이들은 높낮이가 있다고 헤아리는 것과 같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미래세에 외도의 견해라는 훈습의 뜻으로 잘못된 분별을 키운 이들이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임과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이라는 주장에 집착하여, 스스로도 무너지고 다른 이들에게도 — 있음과 없음이라는 견해를 벗어나 생겨나지 않음을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 — 허무론자[無因論者]라고 말할 것이다. 이들은 원인과 결과를 헐뜯는 이들로서, 나쁜 견해로 인해 원인의 선함과 흰 편[善品]을 뿌리째 뽑아버린 이들이다. 이들은 훌륭함을 구하는 이들에게서 멀리 여의어져야 한다고 일컬어질 것이다. 그들은 자기와 남과 그 둘 다에 대한 견해에 떨어진 뜻을 지니고, 있음과 없음의 분별인 덧보탬과 덜어냄이라는 삿된 견해에 떨어진 뜻을 지녀, 지옥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눈병 든 이들이 털끝의 티끌[毛輪]을 보고서 서로에게 말하기를 — '이것 보시오, 벗들이여, 이 신기한 것을'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그 털끝의 티끌은 있음과 없음 둘 다 생겨나지 않은 것이기에 존재도 아니고 존재 아님도 아니다, 봄과 보지 못함으로부터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외도의 삿된 견해라는 분별의 뜻에 사로잡힌 이들은 있음과 없음, 하나와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이라는 주장에 집착하여, 바른 법을 헐뜯는 이들로서 자기와 남을 함께 파멸시킬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바퀴 아닌 불붙은 나무 막대[불티]를 어리석은 이들은 바퀴라고 두루 헤아리나 지혜로운 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과 같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삿된 견해와 외도의 뜻에 떨어진 이들은 모든 존재의 생겨남에 대해 하나와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을 두루 헤아릴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 물거품이 수정 구슬처럼 나타나 보이는 것과 같으니, 그때 어리석은 이들은 수정 구슬이라는 생각에 집착하여 달려간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그 물거품들은 구슬도 아니고 구슬 아님도 아니니, 붙잡음과 붙잡지 않음으로부터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외도의 삿된 견해라는 분별의 뜻으로 훈습된 이들은 있지 않은 것의 생겨남을 조건들에 의한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의 무너짐을 또한 그렇게 말할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세 가지 헤아림[三量]과 그 부분들에 의거하여, 성스러운 지혜로 스스로 증득하여 아는, 두 가지 자성을 벗어난 사물이 자성으로서 있다고 외도들은 두루 헤아릴 것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마음[心]·의(意)·의식(意識)이라는 마음의 전의(轉依)의 의지처를 갖추고, 자기 마음이 나타낸 붙잡음[所取]과 붙잡는 자[能取]의 분별을 끊어버린, 여래의 지위에서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로 나아간 요가행자들에게는 있음과 없음이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만일 마하마띠여, 이렇게 나아가는 경계를 지닌 요가행자들에게 있음과 없음이라는 붙잡음이 일어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아(我)에 대한 붙잡음이며 양육자에 대한 붙잡음이며 사람에 대한 붙잡음이며 보특가라(補特伽羅)에 대한 붙잡음이 될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와 같은 존재의 자성과 자기와 공통된 모습에 대한 가르침은 화신불(化身佛)의 가르침이지 법성불(法性佛)의 가르침이 아니다. 또한 마하마띠여, 그러한 가르침은 어리석은 이들의 뜻이 지닌 견해로 나아가는 것으로서, 자재로이 다스리는 자성의 법이라는, 성스러운 지혜로 스스로 증득한 삼매의 즐거운 머묾을 드러내지 못한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물속에 나타난 나무 그림자와 같으니, 그것은 그림자도 아니고 그림자 아님도 아니다, 나무의 형태가 있고 없음으로부터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외도의 견해라는 훈습으로 물든 분별을 지닌 이들은,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을 확정하지 못하는 지혜로써 하나와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 있음과 없음을 분별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거울 속에 있는 모든 색의 그림자가 조건에 따라 그리고 자기 분별에 따라 나타나 보이는 것과 같으니, 그 그림자들은 그림자도 아니고 그림자 아님도 아니다, 그림자로 보임과 그림자 아니게 보임으로부터 그러할 뿐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그것들은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자기 마음이 나타낸 분별로서 그림자의 형태로 나타나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자기 마음의 그림자들이 하나와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이라는 견해의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사람과 강과 숲이 만남으로써 메아리가 일어나 들리는 것과 같으니, 그것은 존재도 아니고 존재 아님도 아니다, 소리로 들림과 소리 아니게 들림으로부터 그러할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있음과 없음, 하나와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이라는 견해와 자기 마음의 훈습이라는 분별이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풀과 떨기와 덩굴이 없는 벌판에서 해와의 만남으로 아지랑이가 물결처럼 흘러나오는 것과 같으니, 그것은 존재도 아니고 존재 아님도 아니다, 탐하고자 함과 탐하지 않음으로부터 그러할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이들의 무시이래의 희론이라는 거칠고 두터운 훈습으로 물든 분별하는 식(識)이, 생겨남·머묾·무너짐과 하나와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 있음과 없음이라는 성스러운 스스로 증득한 지혜의 대상을 통해 아지랑이처럼 물결친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죽은 시체를 다루는 두 기계장치가 실체 없이 귀신들린 이치로 몸을 움직이는 동작을 하는 것과 같으니, 그때 어리석은 이들은 있지 않은 분별에 대해 오고 감으로부터 집착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범부들은 삿된 견해와 외도의 뜻에 떨어져 하나임과 다름이라는 주장에 집착하니, 그것은 실답지 않은 것의 덧보탬이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그대는 생겨남·머묾·무너짐과 하나와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 있음과 없음이라는 성스러운 스스로 증득한 사물의 증득에 대한 분별을 여읜 이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물속의 나무 그림자와 같은 온(蘊)들과 다섯째의 식(識)[意識]이여, 환술과 꿈에 견주어지는 이 나타나 보이는 것[所見]을, 앎[識]으로써 분별하지 말라. (2품 147송)
이것은 털끝의 티끌과 같고 아지랑이의 물처럼 미혹된 것이니, 삼계(三界)가 꿈과 환술로 불림을 밝게 살피는 이는 해탈을 얻는다. (2품 148송)
마치 여름철 아지랑이가 마음을 미혹하며 흔들리니, 사슴들이 마실 물이라 붙잡으나 그곳에는 실로 사물이 있지 않듯이, (2품 149송)
그와 같이 식(識)의 씨앗도 보이는 경계에서 흔들리니, 어리석은 이들은 눈병 든 이가 생겨나는 눈병의 헛것을 붙잡듯이 그것을 붙잡는다. (2품 150송)
무시이래로 흘러온 윤회 가운데 존재에 대한 붙잡음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이는, 마치 못이 못을 빼내듯 이끌려 미혹에서 돌이켜져야 한다. (2품 151송)
환술과 죽은 시체를 다루는 기계장치 같고 꿈과 번개와 구름과도 같은, 세 갈래로 이어짐이 끊어진 세간을 이렇게 보는 이는 해탈을 얻는다. (2품 152송)
여기에는 실로 어떤 앎[識]도 있지 않으니, 마치 허공 속의 아지랑이와 같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을 아는 이는 그 무엇도 실체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2품 153송)
이 앎[識]이라는 것도 다만 이름일 뿐이니 그 실제 특징으로는 있지 않다. 온(蘊)들은 털끝의 티끌과 같은 모습이니, 그 가운데서 그것이 분별되는 것이다. (2품 154송)
마음[心]은 털끝의 티끌과 같고 환술과 같으며 꿈과 건달바성과도 같고, 불붙은 나무 막대나 아지랑이처럼 있지 않은 것이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2품 155송)
항상함과 무상함, 하나임, 둘 다와 둘 다 아님을, 시작 없는 허물의 이어짐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이들은 미혹되어 두루 헤아린다. (2품 156송)
거울과 물과 눈과 그릇들과 보배 구슬들 속에도, 그림자가 나타나 보이나 그 그림자는 어디에도 실로 있지 않다. (2품 157송)
그와 같이 마음도 존재로 나타나 보이니, 마치 허공의 아지랑이가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과 같고, 꿈속의 석녀(石女)의 아들과도 같다. (2품 158송)
또한 마하마띠여, 여래들의 법의 가르침은 네 가지를 벗어나 있으니, 곧 하나임과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이라는 극단을 벗어나 있고, 있음과 없음이라는 덧보탬과 덜어냄을 벗어나 있다. 마하마띠여, 여래들의 법의 가르침은 있지 않은 것을 있다 함이 아니라 연기(緣起)와 멸(滅)과 도(道)와 해탈로 나아감을 앞세운 것이다. 마하마띠여, 여래들의 법의 가르침은 근본원질[勝性]이나 자재천(自在天)이나 우연이나 미진(微塵)이나 시간의 자성에 매인 것이 아니다.
또한 마하마띠여,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라는 두 가지 장애를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마치 상단(商團)의 우두머리가 차례로 이끌듯이, 백여덟 가지 형상 없는 구절[句]에 보살들을 안립시키니, 수레[乘]와 지위의 부분을 잘 나누는 특징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또한 마하마띠여, 선정[禪]에는 네 가지가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곧 어리석은 이들이 행하는 선정[愚夫所行禪], 뜻을 살피는 선정[觀察義禪], 진여를 반연하는 선정[攀緣眞如禪], 그리고 넷째로 여래의 선정[如來禪]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이들이 행하는 선정이란 무엇인가? 곧 성문·연각·요가행자들이 인(人)의 무아(無我)라는 존재의 자기와 공통된 모습이 뼈다귀와 해골처럼 무상(無常)하고 괴로우며 부정(不淨)하다는 특징에 대한 집착을 앞세워, 이러한 특징이 바로 이러하며 다르지 않다고 보아, 앞뒤로 상(想)이 사라짐[滅盡]에 이르기까지 나아가는 것 — 이것이 어리석은 이들이 행하는 선정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뜻을 살피는 선정이란 무엇인가? 곧 인(人)의 무아라는 자기와 공통된 모습과, 바깥 외도들의 자기와 남과 그 둘 다에 대한 집착이 없음을 이룬 뒤, 법의 무아(無我)라는 지위의 특징이라는 뜻을 차례로 살펴나가는 것 — 이것이 뜻을 살피는 선정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진여를 반연하는 선정이란 무엇인가? 곧 두루 계탁된 것과 무아라는 두 가지 분별이 있는 그대로 자리 잡음으로써, 분별이 일어나지 않음, 이것을 나는 진여를 반연하는 선정이라 말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여래의 선정이란 무엇인가? 곧 여래의 지위라는 모습에 들어가,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지혜의 세 가지 특징이라는 즐거운 머묾으로써, 사유할 수 없는 중생을 위한 일을 행함, 이것을 나는 여래의 선정이라 말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뜻을 살피는 선정과 어리석은 이들이 행하는 선정, 진여를 반연하는 선정과 상서로운 여래의 선정이 있다. (2품 159송)
달과 해의 형상과 같고 연꽃과 지하 세계에 견주어지며, 허공과 불의 다채로움에 견주어지는 것을, 수행에 힘쓰는 요가행자는 밝게 본다. (2품 160송)
이 갖가지 표상[相]들은 외도의 길로 이끌거나, 성문의 자리에 떨어뜨리거나 연각의 경계에 떨어뜨린다. (2품 161송)
이 모든 것을 떨쳐버려 형상 없음에 이르렀을 때, 그때 모든 세계에서 모여든, 태양과 같은 부처님들께서, 진여를 따르는 표상으로써 그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신다. (2품 162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아뢰었다 — "세존이시여, 열반이라 열반이라 말씀하시는데, 세존이시여, 이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모든 식(識)의 자성인 훈습의 소굴[알라야]과 뜻[意]과 뜻으로 이루어진 식[意識]이라는 견해의 훈습이 전의(轉依)되는 것, 이를 모든 부처님과 나는 열반이라 하니, 이는 열반으로 나아가는 자성이 공(空)한 대상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열반은 성스러운 지혜로 스스로 증득하여 나아가는 경계이며, 항상함과 끊어짐이라는 분별과 있음과 없음을 벗어난 것이다. 어찌하여 항상하지 않은가? 곧 자기와 공통된 모습에 대한 분별이 끊어졌기 때문에 항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끊어지지 않음이란 무엇인가? 곧 과거·미래·현재의 모든 뜻이 스스로도 나아가기 때문에 끊어지지 않는다.
또한 마하마띠여, 대반열반(大般涅槃)은 소멸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다. 만일 마하마띠여, 대반열반이 죽음이라면, 다시 태어남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소멸이라면, 지어진 것[有爲]이라는 특징에 떨어질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대반열반은 소멸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다. 요가행자들은 변화하여 떠남[死沒]을 벗어난 것을 증득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대반열반은 끊어버림도 아니고 도달함도 아니기에 끊어짐도 아니요 항상함도 아니며, 하나의 뜻도 아니요 여러 뜻도 아닌 것을 열반이라 말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성문·연각의 열반은 자기와 공통된 모습을 밝게 앎으로써 번뇌와의 어울림을 벗어남으로 말미암는다. 대상에 대한 그릇된 봄이 없음으로써 분별이 나아가지 않으니, 그로써 그들에게 열반이라는 생각이 있게 된다.
또한 마하마띠여, 두 가지 자성의 특징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곧 말[名言]의 자성에 대한 집착과 사물의 자성에 대한 집착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말의 자성에 대한 집착은 무시이래의 말이라는 희론의 훈습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일어난다. 그 가운데 사물의 자성에 대한 집착은 또한 마하마띠여,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을 깨닫지 못함으로부터 일어난다.
또한 마하마띠여, 두 가지 가피(加持)로 가피를 받은 보살들은 여래·응공·정등각들의 발에 엎드려 질문을 청한다. 어떤 두 가지 가피로 가피를 받는가? 곧 삼매의 성취라는 가피와, 온몸의 입[口]으로써 손으로 관정하는 가피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들은 첫째 지위에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대승의 광명'이라는 이름의 보살 삼매에 든다. 이 삼매에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보살마하살들에게, 시방의 세계에 계신 여래·응공·정등각들께서 입들을 나타내 보이시고, 온몸의 입과 말씀을 나타내 보임으로써 가피를 베푸신다. 마치 마하마띠여, 금강장(金剛藏) 보살마하살과, 그와 같은 특징과 공덕을 갖춘 다른 보살마하살들에게 행해졌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첫째 지위에서 보살마하살들은 삼매 성취의 가피를 얻는다. 백천 겁 동안 쌓은 선근으로써 차례로 지위의 순응함과 거스름의 특징으로 나아가, 대법운지(大法雲地)라는 보살지에서 큰 연꽃 누각의 자리에 앉아 있는 보살마하살을, 그에 걸맞은 보살마하살들에게 둘러싸이고 온갖 보배 장식으로 꾸며진 관을 쓴 이를, 자황색과 황금색과 참파카 꽃과 달빛과도 같은, 시방세계에서 모여든 승리자들의 손으로, 그 연꽃 누각 자리에 앉은 보살마하살의 정수리에, 자재로이 다스리는 전륜성왕이나 제석천왕처럼 온몸의 입으로써 손으로 관정한다. 그 보살과 다른 보살들도 손의 관정이라는 가피로 가피를 받았다고 일컬어진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보살마하살들의 두 가지 가피이니, 이 두 가지 가피로 가피를 받은 보살마하살들은 모든 부처님의 입을 뵙게 된다. 그 밖의 이들은 여래·응공·정등각들을 뵙지 못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들에게 나타나는 삼매와 신통과 가르침의 모습이라 할 만한 것은 모두 부처님의 두 가지 가피로 가피를 받은 것이다. 만일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들에게 가피 없이 말재간[辯才]이 나타난다면, 어리석은 범부들에게도 마하마띠여, 말재간이 나타날 것이다. 어째서인가? 곧 가피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하마띠여, 풀과 떨기나무와 나무와 산도, 그리고 갖가지 악기와 성과 궁전과 집과 누각의 자리들도, 여래의 들어가시는 가피에 의해 소리를 낸다. 하물며 마하마띠여, 지각 있는 존재이면서 벙어리·장님·귀머거리인 이들도 마하마띠여, 자기의 허물로부터 벗어나게 됨에랴. 이처럼 마하마띠여, 여래의 가피는 큰 특별한 공덕을 지닌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그런데 세존이시여, 여래·응공·정등각들께서는 어찌하여 보살마하살들이 삼매의 성취에 머무는 때와 특별한 지위에서 관정의 가피를 베푸십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귀의 업과 번뇌를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며, 성문의 선정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여래의 지위를 스스로 증득하게 하기 위함이며, 얻은 법의 증득을 더욱 늘려가기 위함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여래·응공·정등각들께서는 보살마하살들에게 가피로써 가피를 베푸신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가피를 받지 못한 보살마하살들은 삿된 외도와 성문과 마귀의 뜻에 떨어져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까닭으로 보살마하살들은 여래·응공·정등각들의 은혜로운 거두어 주심을 입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인간 가운데 왕[부처님]들의 가피는 서원으로써 청정해진 것이니, 관정과 삼매 등이 첫째 지위로부터 열째 지위에 이르기까지 베풀어진다. (2품 163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은 다시 세존께 아뢰었다 — "세존께서 연기(緣起)를 설하시면서, 원인이라는 명목만을 세우셨을 뿐 스스로의 이치가 본래 자리 잡은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도 원인으로부터의 생겨남을 말하니, 곧 근본원질[勝性]·자재천(自在天)·사람[神我]·시간·미진(微塵)이라는 조건들로부터 존재들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다만 다른 조건들의 계열로써 존재들의 생겨남을 말씀하실 뿐이고, 교리[宗義]의 특별한 차이는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외도들도 있음과 없음으로부터의 생겨남을 말하며, 존재들이 있게 된 뒤 조건들에 의해 무너진다고 말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 —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행(行)들이, 나아가 늙음과 죽음에 이르기까지」라는 것도, 세존께서 말씀하신 이것은 원인 없다는 주장의 명목일 뿐이니, 이는 원인이 있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라는 것은 동시에 있다고 안립하는 이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차례로 나아감에 의거하여 안립하는 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외도들의 명목이야말로 오히려 뛰어나지 세존의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인가? 곧 세존이시여, 외도들의 원인은 연기하지 않고 결과를 이루어내지만, 세존의 원인은 결과에 의지하며 결과도 원인에 의지합니다. 원인과 조건이 뒤섞여 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허물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세간의 원인 없음은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라고 말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나에게는 원인 없다는 주장이나 원인과 조건이 뒤섞이는 허물이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라고 말하는 데서 따르지 않는다. 붙잡음[所取]과 붙잡는 자[能取]가 있지 않기 때문이며,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붙잡음과 붙잡는 자에 집착하여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의 자기 대상의 있음과 없음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마하마띠여, 이 허물이 따르는 것이지, 연기의 원인을 세우는 나에게는 아니다."
마하마띠가 다시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말이 있다는 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세존이시여, 존재들이 없다면 말이 나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은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말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존이시여, 모든 존재는 있는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있지 않은 존재들에 대해서도 말이 행해진다. 곧 토끼 뿔·거북 털·석녀(石女)의 아들 등에 대해서도 세간에서 말이 행해짐을 본다. 마하마띠여, 이것들은 존재도 아니고 존재 아님도 아니지만 말해진다. 그러므로 그대가 마하마띠여, 「말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가 있다」고 말한 그 주장은 이미 물리쳐진 것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모든 부처님 세계에서 말이 통용되는 것도 아니다. 마하마띠여, 말이란 지어진 것이다. 어떤 부처님 세계에서는 눈 깜빡이지 않고 응시함으로써 법을 설하고, 어떤 곳에서는 몸짓으로, 어떤 곳에서는 눈썹을 치켜올림으로써, 어떤 곳에서는 눈동자를 움직임으로써, 어떤 곳에서는 웃음으로써, 어떤 곳에서는 하품으로써, 어떤 곳에서는 헛기침 소리로써, 어떤 곳에서는 세계를 기억함으로써, 어떤 곳에서는 몸이 흔들림으로써 설한다. 마하마띠여, 마치 눈 깜빡이지 않고 향기로운 향내가 나는 세계인 보현(普賢) 여래·응공·정등각의 부처님 세계에서, 눈 깜빡이지 않는 눈으로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저 보살마하살들이 생겨나지 않는 법의 인(忍)[無生法忍]과 다른 특별한 삼매들을 증득하는 것과 같으니,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말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이것도 볼 수 있으니, 이 세간에서 벌레와 파리 등과 같은 어떤 중생들은 말 없이도 자기 할 일을 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허공과 토끼 뿔과 석녀(石女)의 아들도, 있지 않되 말해지니, 존재들에 대한 분별도 그와 같다. (2품 164송)
원인과 조건의 화합에서 어리석은 이들은 생겨남을 분별하니, 이 이치를 알지 못하여 삼계의 소굴에서 헤맨다. (2품 165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아뢰었다 — "세존이시여, 항상함[常]이라는 말은 또 어디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미혹[錯亂] 그 자체에 대해서이다, 마하마띠여. 이 미혹이야말로 성인들에게도 그릇됨[顚倒]으로써 나타나 보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아지랑이·불티·털끝의 티끌·건달바성·환술·꿈·거울에 비친 모습을 세간의 지혜롭지 못한 이들은 그릇되게 여기나 지혜로운 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이것들이 나타나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하마띠여, 이 미혹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 보인다 해도, 미혹이 항상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째서인가? 곧 있음과 없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마하마띠여, 어떻게 미혹이 있음과 없음을 벗어난 것인가? 곧 모든 어리석은 이들의 갖가지 경계이기에, 마치 바다의 물결이나 강물처럼 아귀들에게는 보이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미혹은 존재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물이 다른 이들에게는 나타나 보이므로, 존재 아닌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미혹은 성인들에게는 그릇됨과 그릇되지 않음을 벗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이러한 까닭으로 미혹은 항상하니, 곧 표상의 특징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마하마띠여, 미혹은 갖가지 다채로운 표상의 분별로 분별되더라도 다름에 이르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미혹은 항상한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미혹이 어떻게 진실[眞如]이 되는가? 어떤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성인들에게는 이 미혹에 대해 그릇되다는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그릇되지 않다는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가? 마하마띠여, 성인들은 이 미혹에서 결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실체적 생각을 갖는 이들이 아니고, 성스러운 지혜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갖는 이들도 아니다. 마하마띠여, '어떤 것'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이들의 헛소리이지 성인들의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 미혹은 그릇됨과 그릇되지 않음으로 분별됨으로써 두 가지 종성(種姓)을 가져오게 되니, 곧 성인의 종성이거나 어리석은 범부의 종성이다. 성인의 종성은 다시 마하마띠여, 세 가지에 이르니, 곧 성문·연각·부처의 구별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되는 미혹은 어떻게 성문승의 종성을 낳는가? 곧 마하마띠여, 자기와 공통된 모습에 대한 집착으로 집착함으로써 성문승의 종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그 미혹은 성문승의 종성을 가져오는 것이 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그 같은 미혹이 어떻게 분별되어 연각승의 종성을 가져오는가? 곧 마하마띠여, 바로 그 미혹의 자기와 공통된 모습에 대한 집착이 다른 이와의 어울림을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연각승의 종성을 가져오는 것이 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지혜로운 이들에 의해 그 같은 미혹이 어떻게 분별되어 불승(佛乘)의 종성을 가져오는가? 곧 마하마띠여,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을 깨달음으로써,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을 분별하지 않고 분별함으로써 불승의 종성을 가져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이것이 종성이다. 이것이 종성의 뜻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갖가지 사물에 대한 실체적 관념으로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되는 미혹은 윤회하는 수레의 종성을 가져오니, '이것은 바로 이러하며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미혹은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갖가지 사물로서 두루 헤아려진다. 그러나 그것은 사물도 아니고 사물 아닌 것도 아니다. 마하마띠여, 바로 이 미혹이 분별되지 않을 때, 성인들에게는 마음[心]·의(意)·의식(意識)이라는 거칠고 두터운 훈습의 자성인 법이 전의(轉依)됨으로 말미암아, 그 미혹은 성인들에게 진여(眞如)라고 불린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이렇게 말해진다 — 진여도 마음을 벗어난 것이다. 마하마띠여, 바로 이 구절을 밝히기 위해 내가 말한 것이다 — 분별들을 벗어난, 모든 분별을 여읜 것이라고, 이렇게까지 말해진 것이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미혹은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환술과 같아서, 특징에 대한 집착으로서는 미혹이 있지 않다. 만일 마하마띠여, 미혹이 특징에 대한 집착으로써 있는 것이라면, 존재에 대한 집착이 결코 벗어나지지 않을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는 연기(緣起)나 외도의 원인에 의한 생겨남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만일 미혹이 환술과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다른 미혹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환술은 미혹의 원인이 아니다. 거칠고 두터운 허물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니, 마하마띠여, 환술은 거칠고 두터운 허물을 가져오지 않는다. 분별되지 않는 환술은 또한 마하마띠여, 다른 사람의 주술의 가피로부터 나아가는 것이지, 자기 분별의 거칠고 두터운 훈습의 가피로부터가 아니다. 그것은 허물을 가져오지 않는다. 마하마띠여, 이것은 다만 어리석은 이들의 마음의 견해가 지닌 미혹일 뿐이지,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을 성인들이 갖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의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성인은 미혹을 보지 않으며 또한 그 가운데 진실도 보지 않으니, 미혹이야말로 진실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진실이 있다고 한다면. (2품 166송)
만일 모든 미혹을 떨쳐버리고서도 표상이 생겨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남은 미혹이 될 것이니, 마치 눈병이 깨끗해지지 않은 것과 같다. (2품 167송)
또한 마하마띠여, 환술은 없지 않다. 같은 이치[法性]로 봄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이 환술과 같음이 있게 된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그런데 갖가지 환술에 대한 집착의 특징으로써 모든 법이 환술과 같음이 있게 됩니까, 아니면 실답지 않음에 대한 집착의 특징으로써입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갖가지 환술에 대한 집착의 특징으로써 모든 법이 환술과 같음이 있게 되는 것이라면, 세존이시여, 존재들은 환술과 같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째서인가? 곧 색(色)의 갖가지 특징에는 원인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색이 환술처럼 갖가지 특징의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게 하는 어떤 원인도 실로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세존이시여, 갖가지 환술이라는 특징에 대한 집착과의 같은 이치로 말미암아 존재들이 환술과 같은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갖가지 환술이라는 특징에 대한 집착과의 같은 이치로 말미암아 모든 법이 환술과 같은 것이 아니라, 마하마띠여, 실답지 않고 번갯불처럼 빠른 것과의 같은 이치로 모든 법이 환술과 같은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번갯불의 덩굴이 찰나에 무너져 보였다가 사라지는 것이 어리석은 이들에게 나타나 보이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모든 존재는 스스로 분별한 자기와 공통된 모습이 살펴 봄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색(色)의 특징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나타나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환술은 없지 않으니, 같은 이치로 말미암아 존재들의 있음이 말해진다. 모든 법은 실답지 않고 빠른 번갯불과 같으니, 그러므로 환술에 견주어진다고 일컬어진다. (2품 168송)
또한 마하마띠가 다시 여쭈었다 —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 「모든 존재는 생겨나지 않으며 환술과 같다」는 것에 대해서인데,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씀하시면 앞뒤 말씀이 서로 어긋나는 허물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존재들의 생겨나지 않음을 환술과 같음으로써 말씀하시는 것은?"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내가 존재들의 생겨나지 않음을 환술과 같음으로써 말하는 것에는 앞뒤 말씀이 서로 어긋나는 허물이 없다. 어째서인가? 곧 생겨남과 생겨나지 않음이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을 깨달음으로써, 있음과 없음이라는 바깥 존재의 생겨나지 않음을 봄으로 말미암아, 마하마띠여, 앞뒤 말씀이 서로 어긋나는 허물에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마하마띠여, 외도들의 원인에 의한 생겨남을 물리치기 위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 「모든 존재는 환술처럼 생겨나지 않는다」고. 마하마띠여, 외도의 어리석은 무리들은 있음과 없음이라는 존재들의 생겨남을 바라니, 자기 분별의 갖가지 집착이라는 조건으로부터가 아니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나에게는 두려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생겨나지 않음이라는 말만이 말해지는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존재에 대한 가르침은 윤회를 거두어들이기 위함이며 없다는 데 떨어져 끊어짐을 막기 위함이다. 나의 제자들이 갖가지 업으로 태어남에 대해 감관과 대상을 거두어 취하기 위하여, 존재라는 말을 붙잡음으로써 윤회를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환술과 같은 존재의 자성이라는 특징을 가르쳐 보임으로써, 마하마띠여, 존재의 자성이라는 특징을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삿된 견해라는 특징에 떨어진 뜻을 지니고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을 확정하지 못하며, 원인과 조건의 행위로 생겨난다는 특징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범부들을 막기 위하여, 환술과 꿈의 자성이라는 특징을 지닌 모든 법을 나는 설하는 것이다. 이 어리석은 범부들은 삿된 견해라는 특징의 뜻에 집착하여, 있는 그대로 자리 잡음을 봄으로써 자기와 남을 모든 법에 대해 어긋나게 할 것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모든 법이 있는 그대로 자리 잡음을 봄이란, 곧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에 들어감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생겨나지 않음에는 원인이 없음을 보이고, 있음에는 윤회를 거두어들임을 보이니, 환술 등에 견주어 보아야 하며 특징을 분별해서는 안 된다. (2품 169송)
또한 마하마띠여, 이름의 무리[名身]와 구절의 무리[句身]와 글자의 무리[文身]의 특징을 보여주리니, 이 이름의 무리와 구절의 무리와 글자의 무리를 잘 살펴 아는 보살마하살들은 뜻과 구절과 글자를 따라감으로써 빨리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닫고, 그와 같이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할 것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몸[身]'이라 함은, 곧 어떤 사물에 의지하여 이름이 지어지는 것이니, 그 몸이 사물이다. 몸[身]과 형체[體]는 다른 뜻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이름의 무리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구절의 무리란 무엇인가? 곧 구절이 가리키는 사물의 있음을 확정하는 것이다. 완결[究竟]과 얻음[得]은 다른 뜻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구절의 무리에 대한 가르침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글자의 무리란 무엇인가? 곧 그것에 의해 이름과 구절이 드러나는 것이다. 글자[文]와 표(標)와 특징과 얻음과 시설(施設)은 다른 뜻이 아니다.
또한 마하마띠여, 구절의 무리란 구절의 작용이 완결됨이다. 이름이란 다시 마하마띠여, 글자들의 이름의 자성이 나뉘는 것이니, 아(a)로부터 하(ha)에 이르기까지이다. 그 가운데 글자란 다시 마하마띠여, 짧고 길고 늘어지는 글자들이다. 그 가운데 구절의 무리란 다시 마하마띠여, 구절의 길[句道]을 가는 것들, 곧 코끼리·말·사람·사슴·짐승·소·물소·염소 등이 구절의 무리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다. 이름과 글자는 다시 마하마띠여, 형체 없는 네 가지 온(蘊)이니, 이름으로써 말해지므로 이름이라 하고, 자기와 공통된 모습으로 드러나므로 글자라 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이름의 무리와 구절의 무리와 글자의 무리에 대한 이름과 구절의 가르침의 특징이다. 그대는 여기에서 익힘을 닦아야 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글자와 구절의 무리와 이름에 특히 집착하니, 어리석고 지혜 없는 이들이 마치 코끼리가 큰 진흙탕에 빠지듯 그러하다. (2품 170송)
또한 마하마띠여, 도리와 원인에 대한 지혜가 모자란 삿된 논사들은, 미래세에 지혜로운 이들에게 하나임과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이라는 견해와 특징을 벗어난, 두 극단을 벗어난 법을 질문 받고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는 질문이 아니다, 이치에 맞지 않다"라고. 곧 "색(色) 등으로부터 무상함이 다른 것인가 다르지 않은 것인가"라거나, 이와 같이 "열반이 형성된 것[行]들로부터, 특징이 특징 지어지는 것으로부터, 속성이 속성을 지닌 것으로부터, 물질적인 것[大種所造]이 큰 것[大種]으로부터, 보임[所見]이 봄[能見]으로부터, 미진(微塵)이 티끌들로부터, 지혜가 요가행자로부터 다른 것인가 다르지 않은 것인가"라는 등등, 이러한 차례로 이어지는 특징의 방식으로 질문 받았을 때, 판정하지 않은 채로 "세존께서는 판정하지 않은 것으로 남겨두셨다"고 그들은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미혹된 사람들은, 듣는 이들의 지혜가 모자라기에 여래·응공·정등각들께서 중생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하여 판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판정하지 않는 것들 또한 외도들의 견해의 주장을 물리치기 위하여 여래들께서는 가르치지 않으신다. 마하마띠여, 외도들은 이렇게 주장하니 — 곧 "목숨[命]이 곧 몸이다", "목숨은 다르고 몸은 다르다" 등등이 판정되지 않은 주장이다. 마하마띠여, 원인에 대해 어지러운 외도들에게는 판정되지 않은 것이 있으나 나의 가르침에는 그렇지 않다. 마하마띠여, 나의 가르침에서는 붙잡음[所取]과 붙잡는 자[能取]가 어우러지지 않아 분별이 나아가지 않는다. 그들에게 어찌 판정하지 않고 남겨둘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마하마띠여, 붙잡음과 붙잡는 자에 집착하여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을 확정하지 못하는 지혜를 지닌 이들에게는 판정하지 않고 남겨둘 것이 있다. 마하마띠여, 여래·응공·정등각들께서는 네 가지 방식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써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신다. 마하마띠여, '남겨둠[置答]'이라는 것은 근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내가 때를 달리하여 뒷날 설하고자 남겨둔 것이지, 근기가 무르익은 이들에게 남겨둘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마하마띠여, 행위와 짓는 자를 여읜 모든 법은 생겨나지 않으니, 짓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생겨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모든 존재는 어떤 까닭으로 자성이 없는가? 마하마띠여, 스스로의 지혜로 살펴볼 때 자기와 공통된 모습이 있지 않음을 확정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은 자성이 없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또한 마하마띠여, 모든 법은 어떤 까닭으로 당겨지지도 않고 밀쳐지지도 않는가? 마하마띠여, 자기와 공통된 모습이 당겨지려 해도 당겨지지 않고, 밀쳐지려 해도 밀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모든 법은 당김과 밀침을 벗어나 있다. 또한 마하마띠여, 모든 법은 어떤 까닭으로 사라지지 않는가? 곧 존재의 자성이라는 특징이 있지 않으므로 모든 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또한 마하마띠여, 모든 법은 어떤 까닭으로 무상하다고 말하는가? 곧 특징이 생겨나는 것이 무상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무상하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모든 법은 어떤 까닭으로 항상한가? 곧 특징이 생겨남과 생겨나지 않음이 있지 않으므로 무상하지 않기에 항상하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모든 법은 항상하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네 가지 답이 있으니, 한쪽으로 정해진 답과 되물어야 할 것과, 나누어 답할 것과 판정하지 않고 남겨둘 것이니, 이로써 외도의 주장을 물리친다. (2품 171송)
있음과 없음으로부터의 생겨나지 않음을 수론(數論)과 승론(勝論)의 학파들도 말하니, 그들에 의해서도 이미 판정되지 않은 것으로 모두 드러났다. (2품 172송)
지혜로써 살펴 나누어 보아도 자성은 확정되지 않으니, 그러므로 그것들은 말할 수 없고 자성이 없다고 가르쳐진 것이다. (2품 173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아뢰었다 — "수다원(須陀洹)들의 수다원과(須陀洹果)로 나아가는 갈래를 나누는 이치의 특징을 저를 위해 설하여 주소서. 이 수다원과로 나아가는 갈래를 나누는 이치의 특징에 능숙함으로써,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사다함·아나함·아라한으로 이어지는 방편의 특징의 이치를 알아, 그와 같이 중생들을 위해 법을 설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두 가지 무아(無我)의 특징과 두 가지 장애를 두루 청정하게 하여, 지위들의 특징을 뛰어넘어 나아가, 여래의 사유할 수 없는 나아가는 경계의 대상을 증득하여, 갖가지 형상을 나투는 여의주와 같이 모든 중생이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되고, 모든 법의 대상으로 나아가는 몸의 향유(享有)를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되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그러면 들어라, 잘 새겨듣고 마음에 잘 간직하라. 내가 그대를 위해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이러한 세 가지가 수다원들의 수다원과의 갈래이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곧 낮은 것과 중간 것과 뛰어난 것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낮은 것은 일곱 번의 태어남을 최대한으로 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중간 것은 서너 번이나 다섯 번의 태어남으로 완전한 열반에 든다. 또한 마하마띠여, 뛰어난 것은 바로 그 태어남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그런데 마하마띠여, 이 세 가지에는 세 가지 얽매임[結]이 무디거나 중간이거나 강하게 있을 뿐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무엇이 세 가지 얽매임인가? 곧 나라는 몸이 있다는 견해[有身見]와 의심과 계율과 서원에 대한 그릇된 집착[戒禁取]이다. 마하마띠여, 이 세 가지 얽매임은 뛰어나고 뛰어남을 거듭함으로써 아라한들의 아라한과가 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나라는 몸이 있다는 견해는 두 가지이니, 곧 본래부터 있는 것[俱生]과 두루 계탁된 것[分別起]이다. 마치 의타기(依他起)의 자성과 두루 계탁된 자성의 관계와 같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의타기의 자성을 의지처로 삼아 갖가지 두루 계탁된 자성에 대한 집착이 나아가듯이, 그것도 거기서 있는 것도 아니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니며 있으면서 있지 않은 것도 아니니, 진실 아니게 두루 헤아려진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이들은 아지랑이를 사슴이 물로 여기듯이 갖가지 자성의 특징에 대한 집착으로써 분별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수다원의 두루 계탁된 나라는 몸이 있다는 견해이니, 무지로 인해 오랜 세월 집착이 쌓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인(人)의 무아(無我)에 대한 붙잡음이 없어짐으로써 끊어진다. 또한 마하마띠여, 수다원의 본래부터 있는 나라는 몸이 있다는 견해는, 자기와 남의 몸이 같음으로 말미암아 네 온(蘊)이 색(色)의 특징을 지녔기 때문이며, 색의 생겨남이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며, 사대가 서로 원인이 되는 특징을 지녔기 때문이며, 색이 사대와 별도로 모여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다원이 있음과 없음이라는 견해를 봄으로 말미암아 나라는 몸이 있다는 견해가 끊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라는 몸이 있다는 견해가 끊어진 이에게는 탐욕이 나아가지 않는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나라는 몸이 있다는 견해의 특징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의심의 특징이란 무엇인가? 곧 얻어야 할 법의 증득을 잘 봄으로써, 앞서 나라는 몸이 있다는 견해의 두 가지 분별이 끊어졌기에 법들에 대한 의심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청정함과 청정하지 못함에 관하여 다른 스승의 견해가 있지 않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수다원의 의심의 특징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수다원은 어떻게 계율에 그릇되게 집착하지 않는가? 곧 괴로움을 낳는 태어남의 처소라는 특징을 잘 보았기에 그릇되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그릇된 집착이란 무엇인가? 곧 계율과 서원과 고행과 규율로써 어리석은 범부들은 향락의 즐거움을 바라며 존재의 태어남을 원하는 것이지, 그릇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달리 수다원은 스스로 증득하는 특별한 나아감으로 그 공덕을 회향하는 것이다. 분별없고 번뇌 없는 법의 특징이라는 모습으로써 계율의 조목들에 의해 해탈로 나아가게 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수다원의 계율과 서원에 대한 그릇된 집착의 특징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세 가지 얽매임을 끊은 수다원에게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나아가지 않는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께서는 탐욕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떤 것이 끊어지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대상에 대한 애욕의 감관인, 여인과의 관계로 인한 탐욕은 지금 당장은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태어남을 원인으로 하는 것이니, 어루만짐과 두드림과 껴안음과 입맞춤과 품음과 냄새 맡음과 곁눈질과 바라봄으로 일어나는 탐욕이다. 마하마띠여, 그의 탐욕은 나아가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곧 삼매의 즐거운 머묾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끊어지는 것이지, 열반의 증득을 향한 탐욕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마하마띠여, 사다함과(斯陀含果)의 특징이란 무엇인가? 곧 한 번의 색(色)의 특징이라는 나타남에 대한 분별이 나아가는 것이다. 표상에 대한 견해와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특징이 있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선정으로 나아가는 특징을 잘 보았기에 이 세간에 한 번 와서 괴로움을 끝내고서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다. 그러므로 사다함이라 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아나함(阿那含)은 어떻게 되는가? 곧 과거·미래·현재의 색(色)의 특징에 대한 있음과 없음으로 나아감과, 견해의 허물이라는 잠재적 경향[隨眠]에 대한 분별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며, 색을 끊었기 때문에 얽매임들에 대해 다시 오지 않는다 하여 아나함이라 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아라한(阿羅漢)은 선정과 선정 대상과 삼매와 해탈과 힘과 신통과 번뇌와 괴로움의 분별이 있지 않으므로 아라한이라 한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께서는 세 가지 아라한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이 아라한이라는 말은 어느 쪽에 붙여지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고요함으로 나아가는 오직 하나의 길[唯一趣道]을 증득한 이입니까, 아니면 깨달음의 서원을 거듭 닦은 선근이 일시적으로 미혹된 이입니까, 아니면 화현으로 나투어진 이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고요함으로 나아가는 오직 하나의 길을 증득한 성문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또한 마하마띠여, 다른 이들, 곧 보살행을 닦아온 이들과 부처님의 화현으로 나투어진 이들은, 방편의 능숙함과 선근의 서원을 앞세운 까닭에 대중의 모임에서 아라한과를 증득한 듯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니, 부처님 대중의 모임을 장엄하기 위해서이다. 마하마띠여, 이는 분별로 나아가는 형태가 다른 갖가지 가르침이니, 곧 결과의 증득과 선정과 선정하는 자와 선정 대상이 나뉘어져 있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에 들어감으로써 결과를 얻는 특징이 가르쳐지는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만일 수다원에게 「이것이 얽매임들이니, 나는 이것들에 얽매이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둘이라는 분별에 떨어지는 허물이 될 것이며, 아(我)에 대한 견해에 떨어진 것이 되고 얽매임을 끊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선정과 무량심(無量心)과 무색계(無色界)를 뛰어넘기 위하여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이라는 특징에서 벗어남을 닦아야 한다. 상(想)과 수(受)가 사라지는 성취[滅盡定]도 마하마띠여, 자기 마음이 나타낸 나아감을 벗어난 것은 그에게 맞지 않으니, 오직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선정(禪定)들과 무량심(無量心)들과 무색계(無色界)의 삼매들과, 상(想)이 온전히 사라짐[滅盡定]도 오직 마음뿐임에는 있지 않다. (2품 174송)
수다원(須陀洹)의 결과와 사다함(斯陀含)과, 아나함(阿那含)의 결과와 아라한(阿羅漢)됨은 마음의 어지러운 분별이다. (2품 175송)
선정하는 자와 선정과 선정의 대상과, 끊음[斷]과 진리를 봄[見諦]도, 이는 다만 분별일 뿐이니, 이를 깨닫는 이는 해탈한다. (2품 176송)
또한 마하마띠여, 지혜[慧]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곧 살펴 헤아리는 지혜[觀察慧]와, 분별하는 특징에 대한 붙잡음을 세우는 지혜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살펴 헤아리는 지혜란 무엇인가? 곧 그 지혜로써 존재의 자성이라는 특징을 살펴 헤아릴 때, 네 갈래[四句]를 여읜 채 얻을 수 없는 것, 이것이 살펴 헤아리는 지혜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네 갈래란 무엇인가? 곧 하나임과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 있음과 없음, 항상함과 무상함을 여읜 것을 네 갈래라 나는 말한다. 마하마띠여, 이 네 갈래를 여읜 것이 모든 법이라 말해진다. 마하마띠여, 이 네 갈래는 모든 법을 살피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분별하는 특징에 대한 붙잡음을 세우는 지혜란 무엇인가? 곧 마하마띠여, 마음의 분별하는 특징에 대한 붙잡음으로써, 뜨겁고 축축하고 움직이고 굳다는 진실 아니게 두루 헤아려진 특징을 지닌 사대(四大)를, 주장의 원인이 되는 특징이라는 비유에 대한 집착으로써 있지 않은 것을 진실인 양 덧보태는 것, 이것이 분별하는 특징에 대한 붙잡음을 세우는 지혜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두 가지 지혜의 특징이니, 이 두 가지 지혜의 특징을 갖춘 보살들은 법과 인(人)의 무아(無我)라는 특징으로 나아가, 형상 없는 지혜로 살피는 수행에 능숙하여, 첫째 지위를 증득하고, 백 가지 삼매에 든다. 그리고 부처님과 보살 백 명을 특별한 삼매의 증득으로써 뵙게 되며, 과거와 미래로 백 겁을 들어가며, 백 세계를 비춘다. 백 세계를 비추고서 위 지위들의 특징을 아는 이치를 알아, 서원의 특별함으로써 노닐며, 대법운(大法雲)의 관정으로 관정을 받고, 여래의 스스로 증득한 지위를 증득하여, 궁극의 열 번째 지위에 잘 매인 법을 지니고서,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 갖가지 화현의 빛살로 빛나며, 스스로 증득한 경지의 즐거움에 삼매로 든다.
또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사대(四大)와 사대로 이루어진 것[大種所造]에 능숙해야 한다. 그러면 마하마띠여, 보살은 어떻게 사대와 사대로 이루어진 것에 능숙한 이가 되는가?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이로부터 스스로 이렇게 익힌다 — "그것은 진실이니, 여기에는 사대가 생겨나지 않으며 이 사대들도 생겨나지 않은 것이다"라고 밝게 살핀다. 이렇게 밝게 살피는 자는, 오직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뿐임을 깨달음으로써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이 없기에, 이름이란 다만 분별일 뿐이며, 이 자기 마음이 나타낸 분별일 뿐인 삼계는 사대와 사대로 이루어진 것을 여읜 것임을 밝게 살피니, 네 갈래[四句]의 이치로 청정해진, 아(我)와 나의 것[我所]을 여읜, 있는 그대로 자기와 공통된 모습이 자리 잡은 그대로 머무르는, 생겨나지 않는 자기와 공통된 모습으로 성립된 것임을 본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사대에서 사대로 이루어진 것은 어떻게 있게 되는가? 곧 마하마띠여, 매끄러움을 분별하는 사대는 안팎의 물의 요소[水大]를 이루어내며, 마하마띠여, 뜨거움을 분별하는 사대는 안팎의 불의 요소[火大]를 이루어내며, 마하마띠여, 움직임을 분별하는 사대는 안팎의 바람의 요소[風大]를 이루어내며, 마하마띠여, 형색을 나누는 것을 분별하는 사대는 다시 허공을 아우른 안팎의 땅의 요소[地大]를 낳는다. 그릇된 진실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다섯 무더기의 온(蘊)이라는 사대와 사대로 이루어진 것이 나아간다. 또한 마하마띠여, 식(識)은 갖가지 대상에 대한 집착과 갈망을 원인으로 하기에 다른 갈래[趣]로 이어지는 데서 식이 나아간다. 마하마띠여, 땅의 요소와 사대로 이루어진 것에는 사대가 원인이 되나, 사대들에게는 원인이 아니다. 어째서인가? 곧 마하마띠여, 존재의 표지와 특징을 붙잡음과 형태와 행위의 결합을 지닌 것들에게는 행위의 결합이 생겨남이 있으나, 표지 없는 것들에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이 사대와 사대로 이루어진 것의 특징은 외도들이 분별하는 것이지 내가 분별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마하마띠여, 온(蘊)들의 온의 자성이라는 특징을 보여주리라.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다섯 가지 온이 있다. 무엇인가? 곧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네 가지 온은 형체가 없으니, 수·상·행·식이다. 마하마띠여, 색(色)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사대는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닌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형체 없는 것들에게는 넷이라는 수가 있지 않으니, 마치 허공과 같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허공은 수의 특징을 뛰어넘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허공이다'라고 분별되는 것과 같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온들도 수의 특징으로 헤아림을 뛰어넘어 있음과 없음을 벗어나고 네 갈래를 여읜 것이지만, 수로 헤아려 가리키는 것으로 어리석은 이들이 가리키는 것이지 성인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성인들에 의해서는 다시 마하마띠여, 환술의 갖가지 형상과 모습처럼 다름과 다르지 않음을 여읜 것으로 시설되니, 마치 꿈속의 그림자와 같은 사람과도 같다. 의지처가 다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성스러운 지혜로 나아감에 대한 미혹으로 인해 마하마띠여, 온에 대한 분별이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온들의 온의 자성이라는 특징이니, 그대는 이 분별을 벗어나야 하며, 벗어난 뒤에는 번뇌와 떨어진 법의 가르침을 베풀어야 한다. 모든 부처님의 대중 모임에서 외도의 견해를 막기 위하여, 마하마띠여, 떨어진 법의 가르침을 베풂으로써 법의 무아(無我)를 보는 것이 청정해지고, 멀리 나아가는 지위[遠行地]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그 멀리 나아가는 큰 지위에 들어가, 여러 삼매를 자재로이 다스리는 이가 된다. 그리고 뜻으로 이루어진 몸[意生身]을 증득함으로써 환술과 같은 삼매를 증득한다. 힘과 신통과 자재력으로 나아가, 마치 땅[大地]처럼 모든 중생이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는 이가 된다. 마하마띠여, 마치 대지가 모든 중생이 의지하여 사는 곳이 되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모든 중생이 의지하여 사는 이가 된다.
또한 마하마띠여, 열반에는 네 가지가 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곧 존재의 자성이 없어지는 열반과, 특징의 갖가지 존재가 없어지는 열반과, 자기 특징의 존재가 없어짐을 깨닫는 열반과, 온(蘊)들의 자기와 공통된 모습의 이어짐이 끊어지는 열반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외도들의 네 가지 열반이지 나의 가르침이 아니다. 나의 가르침에서는 다시 마하마띠여, 분별하는 뜻으로 이루어진 식[意識]이 전의(轉依)되는 것을 열반이라 말한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그런데 세존께서는 여덟 가지 식(識)을 안립하지 않으셨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안립하였다, 마하마띠여."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만일 안립하셨다면, 어찌하여 뜻으로 이루어진 식[意識]만이 전의(轉依)되고 일곱 가지 식은 그렇지 않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그 일곱 가지 식들은 뜻으로 이루어진 식을 원인과 반연으로 삼기에 일곱 가지 식이 나아가는 것이다. 뜻으로 이루어진 식은 다시 마하마띠여, 대상을 분별하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나아가면서, 훈습으로써 아뢰야식을 길러낸다. 뜻[意]과 함께하며 아(我)와 나의 것[我所]에 대한 붙잡음의 집착을 헤아리는 모습으로 뒤따라 나아간다. 나뉘지 않는 몸의 특징을 지닌 아뢰야식을 원인과 반연으로 삼아, 자기 마음이 나타낸 대상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마음의 무리[識群]가 서로 원인이 되어 나아간다. 바다의 물결처럼 마하마띠여, 자기 마음이 나타낸 대상이라는 바람에 이끌려 나아가고 물러간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그 뜻으로 이루어진 식이 전의됨으로써 일곱 가지 식의 전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나는 존재로써도 행위로써도 특징으로써도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니, 분별을 원인으로 하는 식(識)이 그칠 때 나는 열반에 드는 것이다. (2품 177송)
그것을 원인으로 하고 그것을 반연하여, 뜻[意]의 나아감이라는 의지처에 의지하니, 뜻으로 이루어진 식은 마음의 원인이 되고 식(識)도 그에 의지한다. (2품 178송)
마치 큰 바다가 다하면 물결이 생겨나지 않듯이, 그와 같이 갖가지 식(識)들도 그쳐서 나아가지 않는다. (2품 179송)
또한 마하마띠여, 두루 계탁된 자성의 갈래를 나누는 이치의 특징을 보여주리니, 이 두루 계탁된 자성의 갈래를 나누는 이치의 특징을 잘 분별하여 앎으로써, 그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분별과 두루 헤아림을 벗어나, 스스로 증득한 성스러운 자기 나아감과 외도의 이치로 나아감을 잘 보는 지혜를 지니고, 붙잡음[所取]과 붙잡는 자[能取]의 분별을 끊어버려, 의타기(依他起)의 갖가지 다채로운 특징을 두루 계탁된 자성의 모습으로 다시 분별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두루 계탁된 자성의 갈래를 나누는 이치의 특징이란 무엇인가? 곧 말에 대한 분별, 말해지는 대상에 대한 분별, 특징에 대한 분별, 뜻[義]에 대한 분별, 자성에 대한 분별, 원인에 대한 분별, 견해에 대한 분별, 도리[理]에 대한 분별, 생겨남에 대한 분별, 생겨나지 않음에 대한 분별, 관계[緣]에 대한 분별, 얽매임과 풀림에 대한 분별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두루 계탁된 자성의 갈래를 나누는 이치의 특징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말에 대한 분별이란 무엇인가? 곧 갖가지 목소리와 노래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말에 대한 분별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말해지는 대상에 대한 분별이란 무엇인가? 곧 '어떤 자성을 지닌 말해질 사물이 있어, 성스러운 지혜로 나아가 알 수 있는 것이며, 그것에 의지하여 말이 나아간다'고 분별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특징에 대한 분별이란 무엇인가? 곧 바로 그 말해지는 대상인 아지랑이와 같은 것에서, 뜨겁고 축축하고 움직이고 굳다는 특징으로써 모든 존재를 분별하는 것과 같이, 특징의 다채로움에 대한 집착으로 집착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뜻[義]에 대한 분별이란 무엇인가? 곧 금과 은과 갖가지 보배라는 뜻의 대상에 대한 집착이다. 그 가운데 자성에 대한 분별이란 무엇인가? 곧 '이것은 바로 이러하며 다르지 않다'고 외도의 분별하는 견해로써 존재의 자성을 확정하여 분별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원인에 대한 분별이란 무엇인가? 곧 어떤 원인과 조건으로써 있음과 없음이 나뉘는 것이니, 원인이라는 특징의 생겨남으로부터 분별하는 그것이 원인에 대한 분별이다. 그 가운데 견해에 대한 분별이란 무엇인가? 곧 있음과 없음, 하나와 다름, 둘 다와 둘 다 아님이라는 외도들의 삿된 견해와 분별에 대한 집착이다. 그 가운데 도리에 대한 분별이란 무엇인가? 곧 아(我)와 나의 것[我所]이라는 특징의 도리에 대한 논쟁의 가르침이다. 그 가운데 생겨남에 대한 분별이란 무엇인가? 곧 조건들에 의해 있음과 없음이라는 존재의 생겨남에 대한 집착이다. 그 가운데 생겨나지 않음에 대한 분별이란 무엇인가? 곧 본래 생겨나지 않은 모든 존재가, 있지 않다가 조건들에 의해 원인 없는 형체로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 관계에 대한 분별이란 무엇인가? 곧 마치 금과 실처럼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얽매임과 풀림에 대한 분별이란 무엇인가? 곧 얽매는 원인과 얽매이는 것에 대한 집착과 같은 것이다. 마치 사람이 밧줄의 매듭을 지었다가 다시 푸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두루 계탁된 자성의 갈래를 나누는 이치의 특징이니, 이 두루 계탁된 자성의 갈래를 나누는 이치의 특징에 모든 어리석은 범부들이 집착한다. 있음과 없음이라는 의타기(依他起)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이들은, 마하마띠여, 두루 계탁된 자성의 갖가지 다채로움에 집착한다. 환술을 의지처로 삼는 갖가지 모습을 봄과 같이, 다른 환술을 보는 지혜로써 어리석은 이들은 분별한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환술은 갖가지 다채로움과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만일 다른 것이라면, 갖가지 다채로움이 환술을 원인으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르지 않은 것이라면, 갖가지 다채로움과 환술의 다채로움 사이에 구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구별은 보인다. 그러므로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그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은 환술을 있음과 없음으로써 집착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마음[心]은 대상과 관계하고, 식별하는 지혜[識]는 논리를 따짐에서 나아가며, 형상 없음과 특별한 경계에서는 반야(般若)가 나아간다. (2품 180송)
두루 계탁된 자성이라는 것은 의타기(依他起) 가운데 있지 않으니, 두루 계탁된 것은 미혹으로 붙잡히는 것이지 의타기가 두루 헤아려지는 것이 아니다. (2품 181송)
갖가지 부분들이 이루어짐으로써 환술이 성립하지 않듯이, 갖가지 표상[相]도 그와 같이 두루 헤아려짐으로써 성립하지 않는다. (2품 182송)
표상은 거칠고 두터운 것으로 이루어진 마음에서 생겨난 얽맴이니, 두루 계탁된 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의타기의 것들로써 분별하는 것이다. (2품 183송)
이 두루 헤아려진 존재라는 것은 바로 그 의타기(依他起)이니, 두루 헤아려진 갖가지 다채로운 모습이 의타기 가운데서 분별되는 것이다. (2품 184송)
세속[世俗]과 궁극의 뜻[勝義]이 있으니, 셋째의 원인 없음은 있지 않다. 두루 헤아려진 것이 세속이라 일컬어지니, 이것이 끊어짐으로써 성인의 경계가 된다. (2품 185송)
마치 요가행자에게 하나의 사물이 갖가지로 나타나 보이나 그 가운데 실은 갖가지가 있지 않듯이, 두루 헤아려진 특징도 그와 같다. (2품 186송)
눈병 든 이들에게 갖가지 형상의 봄이 두루 헤아려지듯이, 눈병은 형상도 아니고 형상 아님도 아니니, 의타기(依他起)도 지혜로운 이들에게는 그와 같다. (2품 187송)
금이 본래 청정하고 물이 흐림을 여읜 것과 같으며, 허공이 구름 없음과 같으니, 이와 같이 두루 헤아려진 것도 본래 청정하다. (2품 188송)
두루 헤아려진 존재는 실로 있지 않으나 의타기(依他起)는 있으니, 덧보탬과 덜어냄을 분별하는 이는 파멸한다. (2품 189송)
만일 두루 헤아려진 것이 의타기의 자성으로부터 없는 것이라면, 존재 없이 존재가 있게 되고 존재로부터 존재 아님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2품 190송)
두루 헤아려진 것을 의지하여 의타기(依他起)가 얻어지니, 표상과 이름의 관계로부터 두루 헤아려진 것이 생겨난다. (2품 191송)
두루 헤아려진 것은 궁극에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며 다른 것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니, 그때에 청정한 궁극의 뜻인 자성이 알려진다. (2품 192송)
두루 계탁된 것은 열 가지이며 의타기(依他起)는 여섯 가지이니, 스스로 증득하는 진여로 알아야 할 것이므로 이로부터 특별한 차별이 없다. (2품 193송)
다섯 가지 법[五法]이 진실이 되며 세 가지 자성[三自性]도 그러하니, 요가행자가 이를 분명히 알면 진여를 벗어나지 않는다. (2품 194송)
의타기(依他起)인 표상[相]이 바로 이름[名]이니 그것이 두루 계탁된 것이며, 두루 계탁된 표상은 의타기성으로부터 나아간다. (2품 195송)
그러나 지혜로써 자세히 살펴보면 의타기도 아니고 두루 계탁된 것도 아니니, 원성실(圓成實)의 존재는 있지 않거늘 어찌 지혜로써 분별되겠는가. (2품 196송)
원성실의 존재는 있음과 없음을 여읜 것으로 알려지니, 있음과 없음에서 벗어난 것이거늘 어찌 두 가지 자성이 되겠는가. (2품 197송)
두루 계탁된 자성 가운데 두 가지 자성이 두 가지로 자리잡으니, 계탁된 것은 갖가지로 나타나 보이고 청정한 것은 성인의 경계이다. (2품 198송)
계탁된 것은 갖가지로 빛나는 모습이니 의타기의 것들로써 분별되며, 만일 다르게 계탁된다면 외도의 주장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2품 199송)
분별함이 두루 계탁된 것이라 일컬어지니 원인의 생겨남을 봄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두 가지 분별을 벗어난 것이 바로 원성실이 된다. (2품 200송)
마하마띠가 다시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지혜로 나아가는 특징인 하나의 수레[一乘]를 설하여 주소서. 세존이시여, 이 스스로 증득하는 하나의 수레로 나아가는 특징으로써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지혜의 하나의 수레에 능숙하여 부처님 법에서 다른 이로 말미암아 이끌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헤아림[量]과 성스러운 가르침[至敎]과 분별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보살마하살은 홀로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스스로 증득하는 지혜로써 관찰하며, 다른 이로 말미암아 이끌리지 않고 견해의 분별을 여의어, 점점 더 높은 여래의 지위로 들어감으로써 정진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지혜로 나아가는 특징이다. 그 가운데 하나의 수레로 나아가는 특징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하나의 수레의 길을 증득하여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수레라고 나는 말한다. 하나의 수레의 길을 증득하여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취해지는 것[所取]과 취하는 것[能取]의 분별이 있는 그대로 머무르지 않아 나아가지 않음으로부터 분별의 하나의 수레로의 깨달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 하나의 수레의 깨달음은 다른 외도와 성문·연각·범천 등이 이전에 얻은 적이 없고 오직 나만이 얻은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하나의 수레라고 일컬어진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무슨 까닭으로 세존께서는 세 가지 수레[三乘]를 가르치시고 하나의 수레는 가르치지 않으십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스스로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하는 법이기 때문에 모든 성문과 연각에게 하나의 수레라고 말하지 않는다. 마하마띠여, 모든 성문과 연각은 여래의 계율과 벗어남의 방편에 대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해탈하는 것이지 스스로 [해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알아야 할 것을 가리는 장애[所知障]의 업의 훈습을 끊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든 성문과 연각에게는 하나의 수레가 없다. 법의 무아(無我)를 깨닫지 못하였고 헤아릴 수 없는 변화로부터 벗어남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성문들을 위하여 세 가지 수레를 가르친다. 마하마띠여, 그들이 법의 무아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허물의 훈습이 끊어질 때, 그때 그들은 훈습의 허물과 삼매의 교만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번뇌 없는 세계[無漏界]에서 완전히 깨어난다. 그리고 다시 세간을 벗어난 번뇌 없는 세계에 속한 자량(資糧)들을 채워서 헤아릴 수 없는 법신(法身)의 자재함을 얻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천신의 수레[天乘]와 범천의 수레[梵乘]와 성문의 수레와 또한 그와 같이 여래의 수레와 연각의 수레, 이러한 수레들을 나는 말한다. (2품 201송)
마음이 나아가는 한, 수레들에게는 실로 궁극이 없으나, 마음이 전환될 때에는 수레도 없고 수레를 타는 자도 없다. (2품 202송)
수레의 확립이라는 것은 실로 있지 않으나 나는 수레의 차별을 말하니, 어리석은 이들을 이끌어들이기 위하여 수레의 차별을 나는 말한다. (2품 203송)
이와 같이 세 가지 해탈과 법의 무아(無我), 그리고 평등한 지혜라 일컬어지는 것, 그들은 번뇌로부터 해탈로써 벗어난 자들이다. (2품 204송)
마치 나무토막이 바다에서 물결에 의해 떠밀려 흘러가듯이, 그와 같이 어리석은 성문은 특징[相]에 의해 떠밀려 흘러간다. (2품 205송)
훈습의 번뇌에 매여 있으나 뒤엉킨 번뇌[纏]로부터는 벗어나 있으니, 그들은 삼매의 교만에 취하여 번뇌 없는 세계[無漏界]에 머무른다. (2품 206송)
그에게는 궁극에 이르는 나아감도 없고 다시 돌이키지도 않으니, 삼매의 몸을 얻어서는 겁(劫)이 다하도록 깨어나지 못한다. (2품 207송)
마치 취한 사람이 술기운이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깨어나듯이, 그와 같이 그들도 부처님 법이라 일컬어지는 나의 몸을 얻게 될 것이다. (2품 208송)
이와 같이 능가경에서 삼만육천 가지 온갖 법의 모임이라 이름하는 둘째 품을 마친다.
제3품 무상품(無常品, Anityatā-pariv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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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세존께서는 다시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뜻으로 이루어진 몸[意成身]으로 나아가는 갈래를 나누는 이치의 특징을 내가 가르치리라. 그것을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뜻으로 이루어진 몸에는 세 가지가 있다. 그 세 가지란 무엇인가? 이른바 삼매의 즐거움에 드는 뜻으로 이루어진 몸과 법의 자성을 깨닫는 뜻으로 이루어진 몸, 그리고 갈래 모임과 함께 나는 지어감의 작용인 뜻으로 이루어진 몸이다. 첫째부터 그 위로 지위[地]의 특징을 두루 알아 요가행자들이 증득해 나아간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삼매의 즐거움에 드는 뜻으로 이루어진 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셋째·넷째·다섯째 지위에서 스스로의 마음의 갖가지 벗어남에 머무름으로써, 마음이라는 큰 바다에서 일어나는 물결인 식(識)의 특징인 즐거움에 드는 뜻이 나아가지 않으니,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내는 대상의 있음과 없음을 두루 앎으로 말미암아 뜻으로 이루어진 몸이라 일컬어진다. 그 가운데 법의 자성을 깨닫는 뜻으로 이루어진 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여덟째 지위에서 환술 등 모든 법이 나타남이 없음을 자세히 살펴 깨달음으로써, 마음의 전의(轉依)를 얻은 이가 환술과 같은 삼매를 증득하고 다른 삼매의 문들도 증득함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특징의 자재함과 신통이 꽃피어 뜻의 빠름과 같으며, 환술과 꿈과 그림자와 같고 사대(四大)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사대와 사대로 이루어진 것과 같으며, 온갖 형색의 다채로운 모습이 모두 갖추어져 모든 부처님 세계의 대중의 모임에 두루 이르는 몸이니, 법의 자성으로 나아감에 이르렀으므로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일컬어진다. 그 가운데 갈래 모임과 함께 나는 지어감의 작용인 뜻으로 이루어진 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모든 부처님 법을 스스로 증득하는 즐거움의 특징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갈래 모임과 함께 나는 지어감의 작용인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일컬어진다. 여기에서 마하마띠여, 그대는 세 가지 몸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 깨닫는 데에 수행을 지어야 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나에게는 수레도 없고 대승도 없으며, 소리도 없고 문자도 없다. 진리도 없고 해탈도 없으며, 나타남이 없는 경계도 없다. (3품 1송)
그러나 수레라는 것, 대승이라는 것은 삼매에 자재함이며, 뜻으로 이루어진 갖가지 몸이 자재함의 꽃으로 장엄된 것이다. (3품 2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께서는 다섯 가지 무간(無間)을 가르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나 선여인이 범하면 즉시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그 다섯 가지 무간이란 무엇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그 가운데 다섯 가지 무간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어머니와 아버지를 살해함과 아라한을 살해함과 승가의 화합을 깨뜨림과 여래의 몸에 나쁜 마음으로 피를 나게 함이다."
"마하마띠여, 그 가운데 중생들의 어머니란 무엇인가? 이른바 다시 태어남을 일으키는 갈애[渴愛]가 기쁨과 탐욕을 동반하여 어머니로서 일어난다. 무명(無明)은 아버지로서 처소의 무리[處聚]가 생겨나게 한다. 이 둘, 어머니와 아버지의 지극한 근본을 끊음으로 말미암아 어머니와 아버지를 살해함이 된다. 그 가운데 원수와 같은 잠재된 번뇌[隨眠]들이 쥐의 독과 같이 성내는 성질을 지닌 것들을 지극히 소멸시킴으로 말미암아 아라한을 살해함이 된다. 그 가운데 승가의 화합을 깨뜨림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 무더기[蘊]의 화합을 지극히 그 근본을 부숨으로 말미암아 승가의 화합을 깨뜨림이라 일컬어진다. 마하마띠여, 자기 자신과 공통됨과 바깥의 것이 오직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임을 깨닫는 여덟 가지 식(識)의 무리들을, 세 가지 해탈에 대하여 번뇌 없는 나쁜 분별로써 지극히 파괴함으로 말미암아 식(識)이라는 부처에게 나쁜 마음으로 피를 나게 함이니, 이것을 무간을 지음이라 일컫는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안으로의[內] 다섯 가지 무간이니, 선남자나 선여인이 범하면 무간을 지은 자가 되어 법을 통달한 자가 된다."
"또한 마하마띠여, 밖으로의[外] 무간을 내가 그대에게 가르치리니, 이것이 가르쳐짐으로써 그대와 다른 보살들이 오는 세상에서 미혹함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 가운데 그것들은 무엇인가? 이른바 가르침의 경문에서 자세히 설명된 무간이니, 범하면 세 가지 해탈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깨달아 들지 못하게 되는 것이나, 다만 신통으로 나타낸 가지[化現加持]의 깨달아 듦은 예외이다. 마하마띠여, 신통으로 나타낸 가지의 성문은 보살의 가지에 의해서거나 여래의 가지에 의해서이니, 어떤 다른 무간을 지은 자에게 뉘우침이 있을 때 그 뉘우치는 견해를 되돌리기 위하여, 짐을 내려놓은 자에게 뉘우치는 견해가 없게 하기 위하여, 다시 또 [수행을] 북돋우게 하고자 하여 신통으로 나타낸 가지의 깨달아 듦을 내가 보인 것이다. 마하마띠여, 무간을 지은 자에게는 한결같이 깨달아 듦이 없는 것이 아니니, 다만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닦아 앎으로 말미암아, 몸과 재물과 머무는 곳으로 나아가는 분별과 나[我]와 나의 것[我所]이라는 집착을 여읜 봄으로 말미암아, 어느 때인가 선지식을 만나 다른 갈래[趣]의 갈림에서 스스로의 분별의 허물로부터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갈애[渴愛]는 어머니라 일컬어지고 무명(無明)은 그와 같이 아버지이니, 대상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식(識)은 부처라고 가르쳐진다. (3품 3송)
아라한이란 다섯 가지 잠재된 번뇌[隨眠]이며 승가는 무더기[蘊]의 모임이니, 사이 없이 사이를 끊음으로 말미암아 업의 무간(無間)이 된다. (3품 4송)
마하마띠가 다시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부처님 세존들께서 어떻게 부처님 세존들의 부처됨[佛性]이 되는지 가르쳐 주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법과 인(人)의 무아(無我)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두 가지 장애[二障]를 두루 앎으로 말미암아, 두 가지 죽음[二死]을 증득함으로 말미암아, 두 가지 번뇌를 끊음으로 말미암아, 마하마띠여, 부처님 세존들의 부처됨이 있게 된다. 마하마띠여, 바로 이 법들을 증득함으로 말미암아 성문과 연각도 바르게 깨달은 자가 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나는 하나의 수레[一乘]를 가르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무아(無我)의 두 가지와 번뇌 또한 그와 같이 두 가지 장애이니, 헤아릴 수 없는 변화로부터의 죽음을 증득함으로써 여래가 된다. (3품 5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 계시면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뜻하신 것입니까 — '바로 내가 지나간 모든 부처님들이며, [과거 여러 생의] 태어남과 다시 태어남의 갖가지 모습들이었다. 바로 내가 그때 그 시절에 만다따 왕이었고, 코끼리였고, 앵무새였고, 인드라였고, 비야사였고, 수네뜨라였다'라고 하시며, 이와 같은 갖가지 십만 가지 본생담[本生譚]을 세존께서 가르치셨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네 가지 같음[四種平等]을 뜻하여 여래·응공·정등각들은 대중 가운데서 말을 내나니, 이른바 '바로 내가 그때 그 시절에 구류손불이었고 구나함모니불이었고 가섭불이었다'라고 함이다. 어떤 네 가지 같음을 뜻하는가? 이른바 문자의 같음과 말의 같음과 법의 같음과 몸의 같음이다. 마하마띠여, 이 네 가지 같음을 뜻하여 여래·응공·정등각들은 대중 가운데서 말을 낸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문자의 같음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어떤 문자로써 나의 이름이 '부처'라고 하듯이, 바로 그와 같은 문자로써 저 부처님 세존들의 그 문자들도 [일컬어지니], 마하마띠여, 그 문자들은 문자의 자성으로서 다름이 없는 문자들이다. 이것이 마하마띠여, 문자의 같음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여래·응공·정등각들의 말의 같음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나에게도 예순네 가지 모습을 지닌 범천의 음성과 같은 말소리와 말의 분별이 나아가듯이, 마하마띠여, 저 여래·응공·정등각들에게도 이와 같이 예순네 가지 모습을 지닌 범천의 음성과 같은 말소리와 말의 분별이 나아가니, 줄지도 늘지도 않고 다름이 없어 칼라빈까 새와 범천의 음성과 같은 자성이다. 그 가운데 몸의 같음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나와 저 여래·응공·정등각들은 법신(法身)으로써도 형색의 특징과 부수적인 상호(相好)를 지닌 몸으로써도 같아서 다름이 없으니, 다만 교화받을 이들의 뜻에 따르는 것은 예외이다. 그때그때 중생들의 갈래[趣]의 차별에 따라 여래들은 형색의 다채로움을 나타내 보인다. 그 가운데 법의 같음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저들과 내가 서른일곱 가지 깨달음을 돕는 법[三十七菩提分法]을 증득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 네 가지 같음을 뜻하여 여래·응공·정등각들은 대중 가운데서 말을 낸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가섭불과 구류손불과 구나함모니불도 바로 나이니, 같음에서 생겨난 자로서 나는 승리자의 아들들에게 말한다. (3품 6송)
마하마띠가 다시 여쭈었다 —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 '여래가 바르게 깨달은 그 밤부터 완전한 열반에 드는 그 밤까지, 그 사이에 단 한 글자도 여래가 말한 적이 없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니, 말하지 않음이 바로 부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신 것은, 여래·응공·정등각께서 무엇을 뜻하여 '말하지 않음이 부처님의 말씀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두 가지 법을 뜻하여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어떤 두 가지 법인가? 이른바 스스로 증득하는 법성(法性)을 뜻함과 예로부터 머무르는 법성을 뜻함이다. 마하마띠여, 이 두 가지 법을 뜻하여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 가운데 스스로 증득하는 법성을 따름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저 여래들이 증득한 것을 나 또한 증득하였으니, 줄지도 늘지도 않아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로 나아가는 것으로서 말의 분별을 여의고 문자의 두 가지 나아감을 벗어난 것이다. 그 가운데 예로부터 머무르는 법성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마하마띠여, 이것은 예로부터 있는 법성이니, 마치 황금과 은과 진주의 광맥과 같이, 마하마띠여, 법계(法界)의 머무름이다 — 여래들이 나오든 여래들이 나오지 않든, 이 법들의 법성과 법의 머무름과 법의 정해짐은 늘 그러하다. 마하마띠여, 예로부터 있는 성곽의 길과 같다. 마하마띠여,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광야를 헤매다가 예로부터 있던 성곽을 보되 [그곳으로] 들어가는 평탄한 길이 있음을 보았다고 하자. 그가 그 성으로 들어가서, 들어가 머무르면서 성에서의 삶의 즐거움을 누렸다고 하자. 마하마띠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그 사람이 그 길을 만들어서 그 길로 그 성에 들어가고 성의 갖가지 [삶을] 누린 것이겠는가?"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바로 이와 같이 나와 저 여래들이 증득한 것 — 이 법성과 법의 머무름과 법의 정해짐과 진여와 실다움과 진실함은 늘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 여래가 바르게 깨달은 그 밤부터 완전한 열반에 드는 그 밤까지, 그 사이에 단 한 글자도 여래가 말한 적이 없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깨달은 그 밤과 완전한 열반에 든 그 밤, 이 사이에 나는 아무것도 드러낸 것이 없다. (3품 7송)
스스로 증득하는 법의 머무름을 뜻하여 내가 말한 것이니, 저 부처님들과 나에게 있어 아무런 차별도 없다. (3품 8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청하였다 —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모든 법에는 있음과 없음의 특징이 없음을 가르쳐 주소서. 그리하여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있음과 없음을 여의어 속히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이 세간은 둘에 의지하니 이른바 있음에 의지함과 없음에 의지함이다. 있음과 없음에 대한 욕망과 견해에 떨어져서, 벗어남이 아닌 것에서 벗어남이라는 생각을 낸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어떻게 세간이 있음에 의지하는가? 이른바 있는 원인과 조건들로써 세간이 생겨나는 것이지 있지 않은 것들로써가 아니며, 있는 것이 생겨나면서 생겨나는 것이지 있지 않은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렇게 말하는 자는 존재들의 있음이라는 원인과 조건들과 세간에 대하여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가 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어떻게 없음에 의지하게 되는가? 이른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인정한 뒤에 다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있음과 없음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존재들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존재의 특징을 여읜 까닭이며, 부처님과 성문과 연각들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존재의 특징에서 벗어난 까닭에 [그것들이] 있지 않다고 [말한다]. 마하마띠여, 여기에서 누가 파멸론자[虛無論者]가 되는가?"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인정한 뒤에 다시 인정하지 않는 이가 그러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훌륭하다, 훌륭하다, 마하마띠여. 참으로 훌륭하구나, 마하마띠여, 그대가 이렇게 말한 것은. 다만 마하마띠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있음과 없음으로 말미암아서만 파멸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처와 성문과 연각을 파멸시키는 자도 [파멸론자가] 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안으로도 밖으로도 번뇌들이 얻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하마띠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얻어지지 않으니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없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부처와 성문과 연각을 파멸시키는 자가 된다. 저 부처와 성문과 연각들은 본래 해탈한 이들이니, 묶임과 묶는 원인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하마띠여, 묶일 것이 있을 때에 묶임이 있고 묶는 원인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 또한, 마하마띠여, 파멸론자가 되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있음과 없음이 없다는 특징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이것을 뜻하여 내가 말한 것이다 — 참으로 수미산만한 인아견(人我見)이 차라리 나을지언정, 없음에 집착하는 자의 공(空)에 대한 견해는 그렇지 않다. 마하마띠여, 없음에 집착하는 자는 파멸론자가 된다. 자기 특징과 공통된 특징의 견해에 떨어진 뜻을 지녀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의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 자로서, 인정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바깥의 존재를 항상하다고 보는 견해로부터, 찰나의 이어짐이 다름으로 나뉘는 무더기[蘊]와 계(界)와 처(處)들이 이어짐의 계속됨으로써 소멸하여 돌이켜진다고 하는 것을, 문자를 여읜 [진실한] 겁(劫)들로 분별하는 자 또한 파멸론자가 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있음과 없음이라는 이 둘은 끝까지 마음의 경계이니, 경계가 소멸함으로써 마음이 바르게 소멸한다. (3품 9송)
대상에 대한 취함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소멸함도 없고 없지 않음도 없으니, 진여라는 실다움이 있음이 마치 성인들의 경계와 같다. (3품 10송)
있지 않다가 생겨나거나 혹은 있다가 사라지는 것, 조건들에 의한 있음과 없음도, 그것들은 나의 가르침에 머무르지 않는다. (3품 11송)
외도들에 의해서도 부처님들에 의해서도 나에 의해서도 그 누구에 의해서도, 조건들로써 있음이 이루어지지 않거늘 어찌 없음이 있게 되겠는가. (3품 12송)
조건들에 의해 있음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에 없음이 있으랴, 생겨남을 주장하는 삿된 견해로써 있음과 없음이 분별된다. (3품 13송)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고 아무것도 소멸하지 않는 이에게는, 세간을 여읜 것으로 보는 그에게 있음도 없음도 다가오지 않는다. (3품 14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청하였다 —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선서(善逝)시여 저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이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신 여래·응공·정등각이시여 저를 위하여, 실다운 이치[悉檀]의 도리의 특징을 가르쳐 주소서. 이 실다운 이치의 도리의 특징을 잘 분별하여 통달함으로써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실다운 이치의 도리의 특징으로 나아감을 얻어, 속히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닫고, 모든 논사(論師)와 외도들에 의해 다른 이로 이끌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모든 성문과 연각과 보살들에게 실다운 이치의 도리의 특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실다운 이치의 도리[悉檀]와 가르침의 도리[敎理]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실다운 이치의 도리란 무엇인가? 이른바 스스로 증득한 특별한 특징으로서 말의 분별과 문자를 여의어 번뇌 없는 세계로 나아감에 이르게 하는, 스스로 증득하는 지위로 나아가는 자기만의 특징으로서 모든 논사와 외도의 마군을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외도의 마군들을 물리쳐서 스스로 증득하는 나아감이 빛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실다운 이치의 도리의 특징이다. 그 가운데 가르침의 도리란 무엇인가? 이른바 아홉 가지 부문[九分敎]의 갖가지 가르침으로서, 다름과 다르지 않음, 있음과 없음의 치우친 견해를 여의고 방편의 능숙한 방법을 우선으로 하여 중생들에게 봄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무엇에 의해 이해되든 그것을 그를 위해 가르치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가르침의 도리의 특징이다. 여기에서 마하마띠여, 그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은 수행을 지어야 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실다운 이치의 도리와 스스로 증득하는 가르침을 나누어 아는 이들이 이를 보나니, 그들은 논리의 지배로 나아가지 않는다. (3품 15송)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것과 같은 진실한 존재는 있지 않으나, 없음으로써 해탈이 있음을 논사들은 어찌 인정하지 않는가. (3품 16송)
생겨남과 무너짐에 매인 지어진 것[有爲]을 보는 이들은, 두 가지 견해를 키우니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보지 못한다. (3품 17송)
오직 하나만이 진실이 되니 뜻을 여읜 열반이며, 파초의 줄기와 환술 같은 것으로 세간을 계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3품 18송)
탐욕도 있지 않고 성냄도 어리석음도 인(人)도 있지 않으니, 갈애로부터 일어난 무더기[蘊]들은 꿈과 같이 있는 것이다. (3품 19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청하였다 —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선서시여 저를 위하여, 있지 않은 분별[虛妄分別]의 특징을 가르쳐 주소서. 세존이시여, 있지 않은 분별은 어떻게, 무엇으로써, 무엇에 의해, 누구의 것으로서 나아가면서 나아가는 것입니까? '있지 않은 분별, 있지 않은 분별'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시는데, 세존이시여 이것은 어떤 법의 다른 이름입니까 — 이른바 '있지 않은 분별'이라 하는 것이. 혹은 무엇을 거듭 분별함으로써 있지 않은 분별이 되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훌륭하다, 훌륭하다, 마하마띠여. 참으로 훌륭하구나, 마하마띠여, 그대가 이러한 뜻을 청할 만하다고 생각한 것은. 마하마띠여, 그대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하여, 세간에 대한 연민으로, 큰 무리의 뜻과 이익과 즐거움을 위하여, 천신들과 인간들을 위하여 나아간 것이다.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뜻의 갖가지 다채로움에 대한 있지 않은 분별의 집착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나아가면서 나아간다. 마하마띠여, 취해지는 것[所取]과 취하는 것[能取]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그리고 마하마띠여,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자세히 살피지 못한 뜻을 지닌 이들의, 있음과 없음의 견해의 치우침에 떨어진 이들의, 그리고 마하마띠여, 외도의 견해와 거듭된 분별의 훈습으로 배양된 이들의, 바깥의 갖가지 대상을 얻음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마음의 작용의 무리가 분별이라 이름 붙여져 나아가면서 나아가니, 나[我]와 나의 것[我所]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만일 뜻의 갖가지 다채로움에 대한 있지 않은 분별의 집착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분별이, 있음과 없음의 견해의 치우침에 떨어져 취해지는 것과 취하는 것에 대한 외도의 견해와 거듭된 분별로 배양된 이들의, 바깥의 갖가지 대상을 얻음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마음의 작용의 무리가 분별이라 이름 붙여져,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있음과 없음의 갖가지 존재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나아가면서 나아가는 것이라면 — 세존이시여, 바로 그와 같이 바깥 대상의 갖가지 특징이 있음과 없음의 치우침에 떨어진 특징이며 있음과 없음을 여읜 것이고 견해의 특징에서 벗어난 것이듯이, 세존이시여 바로 그와 같이 궁극의 뜻[勝義]과 헤아림[量]과 감관과 부분과 비유와 원인의 특징에서도 벗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한편에서는 갖가지 분별이 있지 않은 대상의 갖가지 존재에 대한 집착을 거듭 분별하면서 나아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궁극의 뜻의 특징에 대한 집착을 거듭 분별하면서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세존께는 어긋난 원인의 주장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 한편에서는 나아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나아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니, 있음과 없음의 치우침에 의지하는 집착과, 있지 않은 거듭된 분별의 견해의 나아감을 말씀하시는 것이 마치 갖가지 환술의 인물의 다채로움으로부터 이루어진 하나의 모습과 같이 분별함으로써, 분별로써 특징의 다채로움의 있음과 없음을 [설명하시면서], 분별의 벗어남에 대해서는 세간론자[順世外道]의 견해의 뜻에 떨어지시는 것이 아닙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분별은 나아가지도 않고 되돌아가지도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있음과 없음의 분별이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며, 바깥에 보이는 것의 있음과 없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마하마띠여, 분별은 나아가지도 않고 되돌아가지도 않는다. 다만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이들이 스스로의 마음의 갖가지 다채로움을 분별하여 계탁하기 때문에, 행위의 나아감을 우선으로 하는 분별이 갖가지 다채로움의 있음이라는 특징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나아간다고 나는 말한다. 그렇다면 마하마띠여, 어떻게 어리석은 범부들이 스스로의 분별하는 마음일 뿐임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에서] 되돌려진 견해를 지니고, 결과와 원인과 조건에서 되돌려진 허물을 지니고, 스스로의 마음일 뿐임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의지처가 전환된 이들로서, 모든 지위[地]에서 밝은 지혜[明]를 지어, 여래의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로 나아감인 다섯 가지 법과 자성과 사물에 대한 견해와 분별의 벗어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나는 이렇게 말한다 — 분별은 있지 않은 대상의 갖가지 다채로움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나아가며, 스스로의 분별의 갖가지 다채로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두루 앎으로 말미암아 해탈하게 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원인들과 조건들로써 세간이 나아간다고 하는 이들, 네 가지 극단[四句]에 갖추어진 그들은 나의 도리에 능숙한 자가 아니다. (3품 20송)
없는 것으로도 세간은 생겨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도, 있음과 없음으로도 결코 [생겨나지] 않으니, 조건들과 원인들로써 [생겨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것과 같다. (3품 21송)
있음도 없음도 있음과 없음도 아니게 세간을 볼 때에, 그때 마음이 돌이켜지고 무아(無我)를 증득하게 된다. (3품 22송)
모든 존재는 생겨나지 않은 것이니 조건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며, 모든 조건은 결과이니 결과로부터 존재가 생겨나지 않는다. (3품 23송)
결과로부터 결과가 생겨나지 않으니 결과에 둘이라는 허물이 따르게 되며, 둘이라는 허물로써도 결과로부터 존재가 얻어지지 않는다. (3품 24송)
지어진 것[有爲]을 반연[所緣]과 능연[能緣]을 여읜 것으로 볼 때에, 오직 마음일 뿐임이 확정되나니, 나는 오직 마음일 뿐임을 말한다. (3품 25송)
오직임[唯]이란 자성의 자리매김이니 조건들에 의한 존재를 여읜 것이며, 궁극의 있지 않음이 지고한 브라흐만이니, 나는 이 오직임을 말한다. (3품 26송)
자아는 오직 임시로 세워진 진실[假說]로서 있는 것이지 실체로서 있는 것이 아니니, 무더기[蘊]들의 무더기됨도 그와 같이 임시로 세워진 것이지 실체로서가 아니다. (3품 27송)
네 가지 같음이 있으니 특징의 같음과 원인의 같음과 존재로부터 생겨남의 같음, 그리고 넷째로 요가행자들의 무아(無我)의 같음이다. (3품 28송)
모든 견해로부터 돌이켜짐이니 계탁하는 것과 계탁함을 여읜 것이며, 얻을 수 없음과 생겨나지 않음, 이것을 나는 오직 마음일 뿐임이라 말한다. (3품 29송)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며 있음과 없음을 여읜 것, 마음을 벗어난 진여, 이것을 나는 오직 마음일 뿐임이라 말한다. (3품 30송)
진여(眞如)와 공성(空性)과 실제(實際)와 열반과 법계(法界)와, 뜻으로 이루어진 갖가지 몸, 이것을 나는 오직 마음일 뿐임이라 말한다. (3품 31송)
분별의 훈습에 매인 갖가지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 사람들에게 바깥의 것으로 일컬어지니, 오직 마음일 뿐임이 곧 세간의 것이다. (3품 32송)
보이는 것으로서의 바깥은 있지 않으니 마음이 갖가지로 보이는 것이며, 몸과 누림과 머무는 곳, 이것을 나는 오직 마음일 뿐임이라 말한다. (3품 33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 — 보살마하살과 다른 이들은 말해진 그대로 뜻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마하살은 말해진 그대로 뜻을 취하는 자가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말[語]이란 무엇이며 뜻[義]이란 무엇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그 가운데 말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말과 문자의 결합인 분별로서, 이와 어금니와 입천장과 혀와 입술이 맞닿아 나오는 서로 간의 말함이니, 분별의 훈습을 원인으로 하는 것이 말이라 일컬어진다. 그 가운데 뜻이란 또한 무엇인가? 이른바 들음[聞]과 사유[思]와 닦음[修]으로 이루어진 지혜로써, 홀로 고요한 곳에서 열반의 성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을, 스스로의 지혜로써 훈습의 의지처가 전환됨을 우선으로 하여,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로 나아가는 지위의 특별한 뜻의 특징으로 나아감을 자세히 살피는 보살마하살이 뜻에 능숙한 자가 된다."
"또한 마하마띠여, 말과 뜻에 능숙한 보살마하살은 말이 뜻과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님을 두루 본다. 그리고 뜻도 말에 대해 [그러하다]. 그리고 또한 마하마띠여, 만일 뜻이 말과 다른 것이라면, [뜻은] 말이 아닌 것을 드러내는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뜻은 말에 의해 들어가게 되니, 마치 등불에 의해 재물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어떤 사람이 등불을 들고 재물을 살펴보며 '이것이 나의 재물이며, 이러한 종류의 것이 이 곳에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바로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말의 분별이라는 등불로써 보살마하살들은 말의 분별을 여의고서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경계로 들어간다."
"또한 마하마띠여,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아 본래 완전히 열반에 든 세 가지 수레와 하나의 수레, 그리고 다섯 가지 마음의 자성 등에 대해, 말해진 그대로의 뜻에 대한 집착에 의지하여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더함과 덜함의 견해에 떨어지게 된다. [사물이] 다르게 자리잡고 있음에도 다르게 거듭 분별하는 것이, 마치 환술의 다채로움을 봄에 대한 분별과 같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환술의 다채로움은 다르게 보아야 함에도 어리석은 이들은 다르게 계탁하나, 성인들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말해진 그대로 분별하여 법성(法性)에 [있지 않은 것을] 덧보태니, 그들은 그 덧보탬으로 말미암아 지옥의 처소에 떨어지게 된다. (3품 34송)
자아는 무더기[蘊]로써 있는 것이 아니며 무더기들도 자아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니, 그것들은 분별되는 그대로도 아니고 그것들이 있지 않은 것도 아니다. (3품 35송)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그대로 모든 존재의 있음이 있다면, 그들이 본 그대로 있게 되어 모두가 진실을 보는 자가 될 것이다. (3품 36송)
모든 법이 있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오염도 없고 청정함으로부터도 [청정도 없으니], 그것들은 보이는 그대로도 아니고 그것들이 있지 않은 것도 아니다. (3품 37송)
또한 마하마띠여, 내가 그대에게 지혜[智]와 식(識)의 특징을 가르치리니, 이 지혜와 식의 특징을 잘 분별하여 통달함으로써 그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지혜와 식의 특징으로 나아감을 얻어 속히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완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세 가지 지혜가 있으니 세간의 지혜와 세간을 벗어난 지혜와 세간을 가장 벗어난 지혜이다. 그 가운데 생겨나서 무너지는 것이 식(識)이며, 생겨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것이 지혜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특징[相]과 특징 없음에 떨어진 것이 식이니 있음과 없음의 갖가지 특징을 원인으로 하는 것이며, 특징과 특징 없음을 벗어난 것이 지혜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쌓임의 특징이 식이며 쌓이지 않음의 특징이 지혜이다. 그 가운데 세 가지 지혜란 자기 특징과 공통된 특징을 확정하는 것과 생겨남과 사라짐을 확정하는 것과 생겨나지 않고 소멸하지 않음을 확정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세간의 지혜는 있음과 없음의 치우침에 집착하는 모든 외도와 어리석은 범부들의 것이다. 그 가운데 세간을 벗어난 지혜는 자기 특징과 공통된 특징에 떨어진 뜻에 집착하는 모든 성문과 연각들의 것이다. 그 가운데 세간을 가장 벗어난 지혜는 나타남이 없는 법을 자세히 살핌으로써 소멸하지도 생겨나지도 않음을 봄으로 말미암아, 있음과 없음의 치우침을 여의고 여래의 지위인 무아(無我)를 증득함으로 말미암아 나아가는 부처와 보살들의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걸림 없음의 특징이 지혜이며, 대상의 다채로움에 걸리는 특징이 식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세 가지 화합[三和]이 사라지고 생겨남에 함께하는 특징이 식이며, 걸림 없는 자성의 특징이 지혜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얻을 수 없음의 특징이 지혜이니,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지혜로 나아가는 경계는 마치 물속의 달과 같아 들어감도 나감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마음으로써 업이 쌓이고 지혜로써 [그것이] 다스려지며, 반야(般若)로써 나타남이 없음과 위신력을 증득하게 된다. (3품 38송)
마음은 대상과 관계하고 지혜는 논리를 따짐에서 나아가며, 나타남이 없는 특별한 경계에서는 반야가 나아간다. (3품 39송)
마음[心]과 의(意)와 식(識)과 상(想)과 분별을 여읜 이들, 분별의 법성을 얻은 이들은 성문들이지 승리자의 아들들이 아니다. (3품 40송)
고요한 특별한 인욕[忍] 가운데 여래의 상서로운 지혜가, 특별한 뜻을 위하여 일어나니 자세히 행함을 여읜 것이다. (3품 41송)
나에게는 반야가 세 가지이니, 성스러운 것으로써 빛나는 것과, 특징이 계탁되는 것으로써, 그리고 존재들을 가리는 것으로써이다. (3품 42송)
두 가지 수레와 관계하지 않고 없음을 여읜 반야는 있음에 대한 집착으로써 성문들에게 나아가며, 오직 마음일 뿐임으로 들어감으로써의 반야는 여래의 것으로 여겨진다. (3품 43송)
또한 마하마띠여, 변화[轉變]를 주장하는 외도들에게는 아홉 가지 변화의 견해가 있으니, 이른바 모양의 변화와 특징의 변화와 원인의 변화와 이치의 변화와 견해의 변화와 생겨남의 변화와 존재의 변화와 조건의 나타남의 변화와 행위의 나타남의 변화이다. 마하마띠여, 이 아홉 가지 변화의 견해를 뜻하여 모든 외도들은 있음과 없음의 치우침에서 생겨남과 변화를 주장하는 자가 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모양의 변화란 무엇인가? 이른바 모양이 다르게 됨을 봄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금이 장신구로 갖가지 모습으로 바뀌어 보이는 것과 같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금이 팔찌나 반지나 만자(卍字) 모양 등으로 변화됨으로써 갖가지 모양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이나, 금이 존재로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모든 존재의 변화를 어떤 외도들은 분별하니 다른 것들도 원인으로써 [분별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와 같지도 않고 다르게 계탁되는 것을 취하지 않고서는 그렇지도 않다. 이와 같이 모든 변화의 차별은 응유(凝乳)와 우유와 술과 과일이 익음과 같이 보아야 한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이와 같이 응유와 우유와 술과 과일 등 하나하나의 변화는 분별의 변화로서 외도들에 의해 분별되나, 여기에서 아무것도 있음과 없음으로 변화하는 것이 없으니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이 없기 때문이며, 바로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범부들의 스스로의 마음의 분별이 닦여 나아감을 보아야 한다. 마하마띠여, 여기에는 아무런 법도 나아가거나 되돌아가지 않으니, 환술과 꿈에서 나아가는 형색을 보는 것과 같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꿈에서 나아감과 되돌아감이 [있는 듯] 얻어지나 [실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시간과 모양의 변화를, 존재와 감관들에서, 그리고 중유(中有)로 거두어짐을 계탁하는 이들은 깨달은 이가 아니다. (3품 44송)
승리자들은 세간을 연기(緣起)로 생겨난 것으로 계탁하지 않으니, 다만 이 세간은 신기루[乾闥婆城]와 같은 조건일 뿐이다. (3품 45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의 뜻의 매듭[結節]을 풀어내기 위하여 다시 세존께 청하였다 —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선서시여 저를 위하여, 여래·응공·정등각이시여 저를 위하여, 모든 법의 매듭과 매듭의 특징을 가르쳐 주소서. 이 매듭과 매듭의 특징을 잘 분별하여 통달함으로써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모든 매듭과 매듭의 방편에 능숙하여, 말해진 그대로의 뜻에 대한 집착이라는 매듭에 떨어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법의 매듭과 매듭에 능숙함으로써 말과 문자에 대한 거듭된 분별을 지혜로써 물리치고서, 모든 부처님 세계의 대중 가운데를 다니는 이로서, 힘[力]과 자재함[自在]과 신통[神通]과 다라니(陀羅尼)의 인(印)으로 잘 인쳐져, 갖가지 신통의 광명으로 열 가지 궁극의 발판에서 견고히 지혜에 매인 이들로서, 애씀 없이 달과 해와 보배와 큰 요소들이 행하여 나아가는 것과 같이, 모든 지위에서 스스로의 분별의 특징으로부터 돌이켜진 견해를 지니고, 꿈과 환술 등 모든 법을 따라 봄으로 말미암아 부처님 지위의 의지처로 들어간 이들로서, 모든 중생계를 마땅한 그 법의 가르침으로써 이끌어들여, 꿈과 환술 등 모든 법의 있음과 없음의 치우침을 여의고 무너짐과 생겨남의 분별을 여읜 것으로서, 말이 다르게 바뀌어 나아가는 것에 의지하여 확립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훌륭하다, 훌륭하다, 마하마띠여.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모든 법의 말해진 그대로의 뜻에 대한 집착의 매듭은 헤아릴 수 없으니, 특징에 대한 집착의 매듭, 조건에 대한 집착의 매듭, 있음과 없음에 대한 집착의 매듭, 생겨남과 생겨나지 않음의 분별에 대한 집착의 매듭, 소멸함과 소멸하지 않음에 대한 집착의 거듭된 분별의 매듭, 수레와 수레 아님에 대한 집착의 거듭된 분별의 매듭, 지어진 것[有爲]과 지어지지 않은 것[無爲]에 대한 거듭된 분별의 집착의 매듭, 지위[地]와 지위 아님의 스스로의 특징에 대한 분별의 집착의 매듭, 스스로의 분별의 완전한 깨달음에 대한 분별의 매듭, 있음과 없음의 치우침과 외도에 의지하는 거듭된 분별의 매듭, 세 가지 수레와 하나의 수레의 완전한 깨달음에 대한 분별의 매듭이다. 이러한 것들과 다른 것들이,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범부들의 스스로의 분별의 매듭들이니, 이 매듭을 뜻하여 어리석은 범부들이 거듭 분별하면서, 마치 누에가 [실을 뽑아 고치를 짓듯이] 스스로의 분별하는 견해라는 매듭의 실로써 자신과 남을, 스스로의 분별하는 견해라는 매듭의 실을 즐거워함으로 말미암아 둘러싸니, 있음과 없음이라는 매듭의 특징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여기에는 아무런 매듭도 매듭의 특징도 없으니 모든 법을 여읜 것으로 봄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분별이 나아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을 여읜 것으로 보는 자로서 머무른다."
"또한 마하마띠여, 바깥의 있음과 없음이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특징임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남이 없는 오직 마음일 뿐임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있음과 없음이라는 모든 존재의 분별의 매듭을 여읜 것으로 봄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에는 매듭도 매듭 아닌 특징도 없다. 마하마띠여, 여기에서 아무것도 묶이지 않고 풀려나지도 않으니, 다만 뒤바뀜에 떨어진 지혜로써 묶임과 풀려남이 알려질 뿐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모든 법에는 있음과 없음의 매듭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범부들에게는 세 가지 매듭이 있으니 이른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다시 태어남을 일으키는 갈애가 기쁨과 탐욕을 동반하는 것이니, 이것을 뜻하여 갈래[趣]의 매듭들이 생겨난다. 그 가운데 매듭과 매듭 지음은 중생들의 다섯 갈래이니, 매듭이 완전히 끊어짐으로 말미암아, 마하마띠여, 매듭도 매듭 아닌 특징도 알려지지 않는다. 또한 마하마띠여, 세 가지 화합의 조건과 행위의 화합에 대한 집착을 위하여 매듭이 있으니, 식(識)들이 끊임없이 나아가는 화합으로써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존재의 매듭이 있게 된다. 세 가지 화합의 조건이 되돌려짐으로 말미암아, 식들이 세 가지 해탈을 따라 봄으로 말미암아, 모든 매듭이 나아가지 않는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있지 않은 분별[虛妄分別]이 매듭의 특징이라 일컬어지니, 그것을 있는 그대로 두루 앎으로 말미암아 매듭의 그물이 사라진다. (3품 46송)
존재와 지혜와 말에 대한 취함으로 말미암아 마치 누에와 같이, 스스로의 분별로써 어리석은 이들, 매듭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묶이게 된다. (3품 47송)
마하마띠가 다시 여쭈었다 —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 — 이러저러한 분별로써 이러저러한 존재들이 분별되나, 그것은 그것들의 자성이 되지 못하니 다만 두루 계탁된 것일 뿐이다라고 하셨는데, 세존이시여 만일 다만 두루 계탁된 것일 뿐이어서 존재의 자성의 특징을 확정함이 없다면,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오염과 청정의 없음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 모든 법이 두루 계탁된 자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 마하마띠여, 그대가 말한 그대로이다.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범부들이 분별하는 것과 같이 존재의 자성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마하마띠여, 그것은 다만 두루 계탁된 것일 뿐이니 존재의 자성의 특징을 확정함이 없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성인들이 존재의 자성을 확정하는 것과 같이 — 성스러운 지혜로써, 성스러운 봄으로써, 성스러운 반야의 눈으로써 — 그와 같이 존재의 자성은 있게 된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만일 그러하다면, 세존이시여, 성인들이 성스러운 지혜와 성스러운 봄과 성스러운 반야의 눈으로써, 하늘의 육안이 아닌 것으로써, 존재의 자성을 확정하는 것과 같이 그러하고, 어리석은 범부들이 분별하는 것과 같이 존재의 자성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면,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어리석은 범부들에게 성스러운 존재의 사물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분별로부터의 돌이킴이 있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세존이시여, 그들은 뒤바뀐 것도 아니고 뒤바뀌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이른바 성스러운 사물의 자성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있음과 없음의 특징의 나아감을 봄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성인들도 사물을 분별하는 것과 같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 스스로의 특징의 대상은 경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들에게도 존재의 자성의 특징은 원인과 원인 아님을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다만 두루 계탁된 자성으로만 알려집니다. 이른바 존재의 스스로의 특징에 대한 견해에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에게는 경계가 되지만 그들에게는 그러하지 않으니, 이와 같이 무한소급[無窮]이 따르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존재의 자성의 특징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세존이시여, 존재의 자성의 특징이 두루 계탁된 자성을 원인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계탁으로써 거듭 분별되면서도 계탁되는 그대로가 되지 않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거듭된 분별의 특징은 다른 것이고 자성의 특징은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분별의 자성의 특징에는 서로 다른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어리석은 범부들에 의해 계탁될 때에는 그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다만 중생들의 분별로부터의 돌이킴을 위하여 이렇게 말해지는 것이니, 거듭된 분별로써 분별되는 그대로는 있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입니까 — 세존께서는 중생들에게 없음이라는 견해를 물리치시고서, 사물의 자성에 대한 집착으로써, 성스러운 지혜의 경계인 대상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없음이라는 견해가 다시 떨어지게 하시며, 성스러운 지혜의 사물의 자성에 대한 가르침으로써 여읜 법의 가르침 없음이 지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나는 여읜 법의 가르침 없음을 짓지 않으며, 성스러운 사물의 자성에 대한 가르침으로써 있음이라는 견해가 떨어지게 하지도 않는다. 다만 마하마띠여, 두려움의 자리를 여의게 하기 위하여,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존재의 자성의 특징에 집착해온 중생들에게, 성스러운 지혜의 사물의 자성에 대한 집착의 특징이라는 견해로써 여읜 법의 가르침을 짓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나는 존재의 자성에 대한 가르침을 짓지 않는다. 다만 마하마띠여, 스스로 증득한 있는 그대로의 여읜 법에 머무는 이들이 될 것이다. 미혹으로부터 특징 없음을 봄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으로 들어가서, 바깥에 보이는 것의 있음과 없음으로부터 돌이켜진 견해를 지니고서, 세 가지 해탈을 증득한 있는 그대로의 여읜 법에 머무는 이들이 될 것이다. 미혹으로부터 특징 없는 견해를 지니고 세 가지 해탈을 증득한 있는 그대로의 인(印)으로 잘 인쳐져, 존재의 자성들에 대하여 스스로 증득한 지혜로써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머무는 이들로서, 있음과 없음이라는 사물의 견해를 여읜 이들이 될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모든 법은 생겨나지 않는다'라고 보살마하살이 주장[宗]을 세워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주장이 모든 자성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원인으로부터 나아가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생겨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되풀이해 말하는 보살마하살은, 마하마띠여, 주장으로부터 물러나게 된다. '모든 법은 생겨나지 않는다'는 그 주장, 이것은 그의 주장에서 물러나는 것이니, 주장이 그것에 의지하여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그 주장 또한 생겨나지 않은 것이라면, 모든 법 안에서 생겨나지 않는 특징이 생겨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주장의 [근거가 되는] '모든 법은 생겨나지 않는다'는 그 말도 버려지게 된다. 주장의 부분[宗支]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있음과 없음의 생겨나지 않음이 주장의 것이 된다. 마하마띠여, 그 주장은 모든 존재 안에 있는 것이니, 있음과 없음의 생겨나지 않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만일 마하마띠여, 그 생겨나지 않은 주장으로써 '모든 존재는 생겨나지 않는다'고 주장을 짓는다면, 이렇게 해도 주장의 무너짐이 따르게 된다. 주장이 있음과 없음의 생겨나지 않는 존재의 특징이기 때문에 주장을 지어서는 안 된다. 마하마띠여, 생겨나지 않은 자성의 특징이 그들의 주장이 된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그들은 주장을 지어서는 안 된다. 많은 허물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며, 부분[支分]들이 서로 원인이 되고 [서로] 다른 것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부분들의 주장을 지어서는 안 된다 — 이른바 '모든 법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와 같이 '모든 법은 공(空)하고 자성이 없다'고,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이 주장을 지어서는 안 된다. 다만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환술과 꿈과 같이 모든 존재를 가르쳐야 하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견해와 지혜를 미혹하게 하기 때문에, 모든 법을 환술과 꿈과 같은 존재로 가르쳐야 하니, 다만 어리석은 이들의 두려움의 자리를 여의게 하기 위한 것은 예외이다.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범부들은 없음이라는 견해에 떨어진 자들이니, 그들에게 두려움이 생길 수 있다 — [자아가] 없다고 [생각하여]. 마하마띠여, 두려워하게 되면 대승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자성도 없고 인식[識]도 없고 사물도 없고 아뢰야식도 없으니, 이것들은 죽은 몸과 같은 그릇된 논사들인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된 것이다. (3품 48송)
모든 법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외도를 논파하기 위함이니, 조건을 갖춘 존재들이 그 누구로부터도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품 49송)
모든 법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반야로써 분별해서는 안 되니, 그것에 원인이 있고 그것이 성립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지혜가 버려지게 된다. (3품 50송)
눈병 든 사람들에게 머리카락 같은 것[髮毛]이 잘못 붙잡히듯이, 이와 같이 이 존재에 대한 분별도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잘못 분별된다. (3품 51송)
삼계(三界)는 다만 임시로 세워진 것[假立]일 뿐 사물의 자성으로서는 있지 않으나, 논사들은 임시로 세워진 것을 사물의 존재로 계탁할 것이다. (3품 52송)
표상[相]과 사물과 인식[識]과 뜻[意]의 요동, 그것을 뛰어넘어서 나의 아들들은 분별없이 다닌다. (3품 53송)
물 없는 곳에서 물이라는 집착과 하늘에서의 아지랑이[陽炎]와 같이, 보이는 것도 그와 같으니 어리석은 이들과 성인들에게 특별히 [다르게 나타난다]. (3품 54송)
성인들의 봄은 청정하여 세 가지 해탈로부터 생겨나니, 생겨남과 무너짐을 벗어난 것으로서 나타남 없음에 노니는 이들의 것이다. (3품 55송)
존재들의 나타남 없음은 요가행자들에게 없음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니, 있음과 없음의 같음으로 말미암아 성인들에게 결과가 생겨난다. 어찌 없음이 존재들의 같음을 짓겠으며 어떻게 [그러하겠는가]. (3품 56송)
마음이 바깥과 안의 움직이는 것을 알지 못할 때, 그때 같음이라는 마음의 봄이 소멸을 짓는다. (3품 57송)
마하마띠가 다시 여쭈었다 —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 — 반연[所緣]되는 대상을 지혜가 얻지 못할 때에 오직 인식일 뿐임[唯識]이 확립된다. 인식에 취해지는 것[所取]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취하는 것[能取] 또한 취해짐이 없게 된다. 그 취해짐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분별이라 이름 붙여진 지혜가 나아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세존이시여 이것은 존재들의 자기 특징과 공통된 특징의 다르지 않은 다채로움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혹은 자기 특징과 공통된 특징의 다채로운 존재의 자성이 압도됨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혹은 담장과 울타리와 성벽과 흙과 물과 바람과 불에 가려짐과 지나치게 멀거나 가까움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알아야 할 것[所知]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혹은 어리고 늙고 눈멀고 [감관이] 온전치 못함으로 말미암아 감관들이 알아야 할 대상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자기 특징과 공통된 특징의 다르지 않은 다채로움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얻지 못하는 것이라면, 세존이시여 그것은 지혜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세존이시여, 있는 대상을 얻지 못하는 이것은 무지(無知)입니다. 혹은 자기 특징과 공통된 특징의 다채로운 존재의 자성이 압도됨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얻지 못하는 것이라면, 세존이시여 그것은 바로 무지이지 지혜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알아야 할 것이 있을 때에 지혜가 나아가는 것이지 없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과 관계함으로 말미암아 알아야 할 것에 대한 지혜라고 일컬어집니다. 혹은 담장과 울타리와 성벽과 흙과 물과 바람과 불에 가려짐과 지나치게 멀거나 가까움으로 말미암아, 어리고 늙고 눈멀고 [감관이] 온전치 못함과 같이, 감관들의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이라면 — 그것이 이와 같이 얻지 못하는 것이라면, 세존이시여 그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있는 대상을 [얻지 못하는] 바로 그것은 무지이니 지혜의 온전치 못함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그것은 그와 같이 무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그것은 바로 지혜이지 무지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뜻하여 내가 말한 것이 아니다 — '반연되는 대상을 지혜가 얻지 못할 때에 오직 인식일 뿐임이 확립된다'라고. 다만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있음과 없음이라는 바깥 존재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지혜도 대상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 얻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혜와 알아야 할 것이 나아가지 않는다. 세 가지 해탈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지혜 또한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논사들은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의 있음과 없음이라는 희론에 훈습된 뜻으로는 이와 같이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알지 못하는 자들로서 바깥 사물의 모양이라는 특징의 있음과 없음을 지어서, 분별이 나아가지 않음을 오직 마음일 뿐임이라고 가르칠 것이다. 나[我]와 나의 것[我所]이라는 특징에 대한 취함의 집착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지혜와 알아야 할 것을 거듭 분별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혜와 알아야 할 것을 거듭 분별함으로써,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을 자세히 살펴 얻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단멸의 견해[斷見]에 의지하게 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만일 있는 반연 대상을 지혜가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지이지 지혜가 아니라는 것, 이것이 논사들의 도리이다. (3품 58송)
다르지 않은 특징의 없음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보지 못한다면, 가려짐과 멀고 가까움이 그것이니, 그것은 그릇된 지혜라고 말해진다. (3품 59송)
어리고 늙고 눈먼 것으로 말미암아 지혜가 생겨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있는 알아야 할 것이니, 그것은 그릇된 지혜라고 말해진다. (3품 60송)
또한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범부들은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의 희론(戱論)이라는 더러운 습성으로 스스로 거듭 분별하는 연극에서 춤추면서, 자신의 실다운 이치의 도리의 가르침에는 능숙하지 못하여,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바깥 존재의 특징에 집착해서 방편의 가르침의 경문에 집착하나, 네 가지 극단[四句]을 벗어나 청정한 자신의 실다운 이치의 도리는 자세히 살피지 못한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가르침과 실다운 이치의 도리의 특징을 가르쳐 주소서. 이로써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오는 세상에서 가르침과 실다운 이치의 도리에 능숙하여, 그릇된 논사인 외도와 성문과 연각의 수레를 따르는 이들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과거·미래·현재의 여래·응공·정등각들의 법의 도리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가르침의 도리와 실다운 이치를 확립하는 도리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가르침의 경문의 도리란 무엇인가? 이른바 갖가지 자량(資糧)의 경(經)의 가르침이니, 마음이 즐거워하는 바에 따라 중생들을 위해 가르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실다운 이치의 도리란 다시 무엇인가? 이른바 요가행자들이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분별로부터 돌이킴을 짓게 하는 것이니, 하나됨과 다름됨, 함께함과 함께하지 않음의 치우침에 떨어짐을 [벗어나], 마음[心]과 뜻[意]과 의식(意識)을 뛰어넘은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경계로 나아감으로서, 원인과 이치와 견해의 특징을 벗어나 물들지 않은 것이며, 있음과 없음의 두 극단에 떨어진 모든 그릇된 논사인 외도와 성문과 연각의 수레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닿지 않는] 것이니, 그것을 나는 실다운 이치[悉檀]라고 말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실다운 이치의 도리와 가르침의 특징이니, 여기에서 그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은 수행을 지어야 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나에게는 도리가 두 가지이니 실다운 이치[悉檀]와 가르침[敎]이며,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가르침을 설하고 요가행자들에게는 실다운 이치를 설한다. (3품 61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께서 이전에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 말씀하시기를, 세간론자[順世外道]의 갖가지 논변의 재주는 가까이해서도 안 되고 섬겨서도 안 되고 받들어 모셔서도 안 되니, 그를 가까이하는 자는 세간의 재물만을 거두게 될 뿐 법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세존께서는 세간론자의 갖가지 논변의 재주를 가까이하는 자는 세간의 재물만을 거두게 될 뿐 법의 [이익을] 거두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세간론자의 갖가지 논변의 재주는, 갖가지 원인이 되는 낱말과 표현으로써 어리석은 이들을 미혹하게 하니, 이치에 맞지도 않고 뜻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저 어리석은 이의 허튼 말과 같은 것을 가르칠 뿐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세간론자의 갖가지 논변의 재주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문자의 다채로움과 능숙함으로 어리석은 이들을 끌어들이나, 진실의 도리로 들어감으로써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모든 법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두 극단에 떨어진 견해로써 어리석은 이들을 미혹하게 하고, 자기 자신도 소멸시킨다. 갈래[趣]의 매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고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바깥 존재의 자성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분별의 돌이킴이 있지 않게 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세간론자의 갖가지 논변의 재주는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민과 고뇌 등으로부터, 갖가지 낱말과 표현과 원인과 비유의 거둠으로써 어리석은 이들을 미혹하게 한다."
"마하마띠여, 인드라(帝釋)조차도 온갖 논서에 능숙한 지혜를 지녀 스스로 언어학의 논서를 지은 자였다. 그의 제자로서 용의 모습을 한 이가 하늘의 인드라의 모임에서 서원을 세워 말하기를, '그대의 천 개 바퀴살 수레가 부서지거나, 나의 낱낱의 용의 몸의 목이 잘리게 하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간론자의 제자인 용의 모습을 한 이는 정당한 논법으로 천신들의 인드라를 이기고 천 개 바퀴살의 수레를 부순 뒤 다시 이 세간으로 돌아왔다.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이것이 세간론자의 갖가지 원인과 비유에 의지한 것이니, 이로써 축생조차도 배워 익혀서 천신과 아수라의 세간을 갖가지 낱말과 표현으로 미혹하게 하는 것이다. 얻음과 잃음에 대한 견해의 집착으로써 집착하게 하니, 하물며 인간들에게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세간론자는 멀리 벗어나야 할 것이니, 괴로움과 태어남의 원인을 실어 나르는 까닭이며, 가까이해서도 섬겨서도 받들어 모셔서도 안 된다. 마하마띠여, 세간론자들은 몸과 지혜와 대상에 대한 얻음일 뿐인 것을 갖가지 낱말과 표현으로 가르친다. 마하마띠여, 세간론은 십만 가지나 있으나, 다만 뒷세상의 마지막 오십 년에는 [서로] 나뉘고 부합하지 않게 될 것이니, 그릇된 논리와 원인과 견해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스승의 뜻을] 받아 지니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나뉘고 부합하지 않게 될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세간론은 나뉘고 부합하지 않으며 갖가지 원인으로 지어진 것이니, 자신의 원인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외도들이 가르치는 것이지 그들 자신의 도리가 아니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어떤 외도에게도 자신의 논서의 도리는 없다. 다만 세간론일 뿐인 것을 갖가지 모습으로 헤아릴 수 없는 원인의 방편으로 가르친다. 그리고 자신의 도리를 알지 못하니, 미혹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세간론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외도들이 세간론일 뿐인 것을 갖가지 낱말과 표현과 비유의 거둠으로써 가르치며, 자기 자신의 원인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자신의 도리를 [알지 못한 채 가르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세존께서도 여러 곳에서 모여든 천신과 아수라와 인간들에게 갖가지 낱말과 표현으로써 다만 세간론만을 가르치시는 것이 아닙니까 — 세존 자신의 견해가 모든 외도의 견해의 가르침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나는 세간론을 가르치지 않으며 얻음과 잃음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마하마띠여, 나는 얻음과 잃음이 없음을 가르친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얻음이라는 것은 생겨남의 무더기이니 모임의 다다름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잃음이라는 것은 사라짐이다. 얻음과 잃음이 없다는 것은 생겨나지 않음의 다른 이름이다. 마하마띠여, 나는 모든 외도의 분별 안에 있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바깥의 있음과 없음에 대해 집착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에 머무름으로 말미암아, 치달리는 분별이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표상의 경계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분별이 나아가지 않는다. 분별이 나아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표상 없음과 공(空)과 원함 없음이라는 세 가지 해탈로 들어가서 해탈했다고 일컬어진다."
"마하마띠여, 나는 기억한다 — 내가 어느 땅의 한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세간론자인 어떤 바라문이 나에게 다가왔다. 다가와서는 [내게 말할] 기회를 주지도 않은 채 이렇게 말하였다 — '고따마여, 모든 것은 지어진 것[所作]입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바라문이여, 만일 모든 것이 지어진 것이라면, 이것이 첫째 세간론이오. [만일 그대가] 고따마여, 모든 것은 지어지지 않은 것[非所作]이라고 [말한다면], 바라문이여 만일 모든 것이 지어지지 않은 것이라면, 이것이 둘째 세간론이오.' 이와 같이 [나는 말하였다] — '모든 것은 무상하다, 모든 것은 항상하다, 모든 것은 생겨날 수 있다, 모든 것은 생겨날 수 없다 — 바라문이여, 이것이 여섯째 세간론이오.' 다시 그 세간론자인 바라문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고따마여, 모든 것은 하나됨이며, 모든 것은 다름이며, 모든 것은 둘 다임이며, 모든 것은 둘 다 아님이니, 모든 것은 원인에 의지하는 것이오 — 갖가지 원인의 생겨남을 봄으로 말미암아서요.' '바라문이여, 이것 또한 열한째 세간론이오.' '다시 또, 고따마여, 모든 것은 [기별로써] 설명되지 않는 것이며 모든 것은 [기별로써] 설명되는 것이오. 자아가 있다, 자아가 없다, 이 세간이 있다, 이 세간이 없다, 저 세간이 있다, 저 세간이 없다, 저 세간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해탈이 있다, 해탈이 없다, 모든 것은 찰나적이다, 모든 것은 찰나적이지 않다, 허공과 택멸(擇滅)과 비택멸(非擇滅)과 열반은, 고따마여, 지어진 것인가 지어지지 않은 것인가, 중유(中有)가 있는가 중유가 없는가.'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마하마띠여 — '바라문이여, 만일 그러하다면, 바라문이여 이것 또한 세간론일 뿐이며 나의 것이 아니오. 바라문이여, 이것은 그대의 세간론이오. 나는, 바라문이여,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의 희론과 분별의 훈습이라는 더러운 습성을 원인으로 하는 삼계(三界)를 말하는 것이오. 바라문이여,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나아가는 것이지 바깥 존재를 얻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오. 외도들에게 자아와 감관과 대상의 세 가지가 서로 만남[三事和合]이 있는 것과 같이 나에게는 그러하지 않소. 나는, 바라문이여,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도 아니고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도 아니오. 다만 취해지는 것[所取]과 취하는 것[能取]으로서의 분별만을 임시로 세워서 연기(緣起)를 가르치는 것이오. 그리고 그대와 같은 이나 다른 이들도 자아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이어짐[相續]으로써는 깨닫지 못하오. 마하마띠여, 열반과 허공과 [번뇌의] 소멸이라는 것들도 그 진실은 헤아림[數]으로 얻어지지 않거늘, 하물며 지어진 것이겠는가.'"
"또한 마하마띠여, 세간론자인 바라문은 이렇게 말하였다 — '고따마여, 이 삼계(三界)는 무지와 갈애와 업을 원인으로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원인이 없는 것입니까?' 이 두 가지도 세간론이오. 고따마여, 모든 존재는 자기 특징과 공통된 특징에 떨어진 것이오. 바라문이여, 이것 또한 세간론일 뿐이오. 바라문이여, 뜻의 요동이 바깥 대상에 대한 집착의 분별에 [머무는] 그만큼이 세간론이오."
"또한 마하마띠여, 세간론자인 바라문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고따마여, 세간론이 아닌 것이 있습니까? 바로 나의 것만이 모든 외도들에 의해 인정되어 갖가지 낱말과 표현과 원인과 비유의 거둠으로써 가르쳐집니다.' '바라문이여, 그대의 것도 아니고 인정되지 않은 것도 아니며 가르쳐지지 않은 것도 아니고 갖가지 낱말과 표현이 아닌 것도 아니며 뜻에 부합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 있소. 무엇이 세간론이 아닌 것으로서 인정되어 가르쳐지지 않는 것인가? 바라문이여, 세간론이 아닌 것이 있으니, 그곳에는 모든 외도와 그대의 지혜가 미치지 못하오 — 바깥 존재로 말미암아, 실답지 않은 분별의 희론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는. 이른바 분별이 나아가지 않는 것이니, 있음과 없음이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나아가지 않소. 바깥 대상을 취함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자신의 자리에 머무는 것으로 보이오. 그러므로 이것이 세간론이 아닌 것이니 나의 것이고 그대의 것이 아니오. '자신의 자리에 머문다'는 것은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이오. 생겨나지 않음이라는 것이 분별의 나아가지 않음이라 일컬어지오. 바라문이여, 이것이 세간론이 아닌 것이오. 요약하자면, 바라문이여, 식(識)의 오고 감과 죽고 태어남과 바람과 집착과 얽매임과, 봄과 견해와 처소와 집착과, 갖가지 특징에 대한 집착과, 중생들의 갈애의 원인에 대한 집착이 있는 곳, 바라문이여 이것이 그대의 세간론이지 나의 것이 아니오.' 마하마띠여, 나는 이와 같이 세간론자인 바라문에게 다가와 질문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물러난 나에 의해 [답을 얻고는] 잠자코 물러갔다."
그때 검은 날개를 지닌 용왕이 바라문의 모습으로 다가와 세존께 이렇게 말하였다 — "그렇다면 고따마여, 저 세상[來世]이란 실로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젊은이여,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고따마여, 저는 여기 흰 섬[白洲]에서 왔습니다." "바라문이여, 바로 그것이 저 세상이오." 그러자 그 젊은이는 답할 말이 없어 굴복한 채 사라졌으니, [세존께] 다시 묻지도 않고서 스스로 자신의 도리를 다시 세우는 생각을 하며, 나의 도리 바깥에 있는 가련한 이로서 나아가지 않음의 특징을 원인으로 주장하며 석가의 아들[세존]을 [속으로 헐뜯으면서도], 스스로 분별하여 보이는 특징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분별의 나아가지 않음을 [실은 자기도 모르게] 찬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대, 마하마띠여, 그대는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 무슨 까닭으로 세간론자의 갖가지 논변의 재주를 가까이하는 자는 세간의 재물만을 거두게 될 뿐 법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는가라고.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법과 재물이란 어떤 뜻의 말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훌륭하다, 훌륭하다, 마하마띠여. 오는 세상의 사람들을 살펴서 이 두 낱말의 뜻에 대해 자세한 헤아림이 나아간 것이다.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그 가운데 재물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재물이란 만지고 당기며 매만지고 붙잡아 맛보는 것이니, 바깥 대상에 대한 집착이며 두 극단으로 들어감이다. 그릇된 견해로 말미암아 다시 무더기[蘊]가 나타나며,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민과 고뇌가 나아가는 것이니, 다시 태어남을 일으키는 갈애를 처음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을 재물이라고 나와 다른 부처님 세존들이 말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재물을 거둠이지 법을 거둠이 아니니, 세간론자를 섬기는 자가 얻게 되는 것이 세간론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법을 거둠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법과 인(人)의 두 가지 무아(無我)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법과 인의 무아의 특징을 봄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나아가지 않으며, 지위[地]를 차례로 뛰어넘어 앎으로 말미암아 마음[心]과 뜻[意]과 의식(意識)으로부터 돌이켜지고, 모든 부처님의 지혜의 관정(灌頂)으로 나아가며, 가지(加持)의 자리를 취함이 없이 모든 법에 대해 애씀 없이 자재함이 있는 것을 법이라 일컬으니, 모든 견해의 희론인 분별의 존재라는 두 극단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마하마띠여, 외도의 주장은 어리석은 이들을 두 극단에 떨어뜨리니 지혜로운 이들은 그렇지 않다 — 이른바 단멸[斷]과 항상함[常]이다. 원인 없음을 주장함을 취함으로 말미암아 항상하다는 견해가 되며, 원인이 무너져 원인이 있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단멸의 견해가 된다. 다만 생겨남과 머무름과 무너짐을 봄으로 말미암아 나는 이를 '법'이라고 말한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법과 재물의 판별이니, 여기에서 그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은 배워야 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거두어들임[攝法]으로써 중생들을 다스리고 계율로써 자재하게 하며, 반야로써 견해를 소멸시키고 해탈로써 더욱 자라나게 한다. (3품 62송)
외도들에 의해 헛되이 가르쳐지는 이 모든 것이 세간론이니, 결과와 원인의 바른 견해로써는 그들 자신의 실다운 이치[悉檀]가 있지 않다. (3품 63송)
나 홀로 결과와 원인을 여읜 나 자신의 실다운 이치를, 세간론을 여읜 것을 제자들의 무리에게 가르친다. (3품 64송)
오직 마음일 뿐임에는 보이는 것이 있지 않으나 마음이 둘로 나뉘어 보이는 것이니, 취해지는 것과 취하는 것의 상태로써 [나뉘되] 항상함과 단멸을 여읜 것이다. (3품 65송)
마음이 나아가는 그만큼이 세간론이 되니, 분별의 나아가지 않음이 세간을 스스로의 마음으로 본다. (3품 66송)
얻음이란 결과인 뜻의 이루어짐이며 잃음이란 결과가 사라짐을 봄이니, 얻음과 잃음을 두루 앎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나아가지 않는다. (3품 67송)
항상함과 무상함, 지어진 것과 지어지지 않은 것, 높음과 낮음, 이와 같은 것들 모두가 세간론의 도리가 된다. (3품 68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열반, 열반'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무엇의 다른 이름입니까 — 이른바 모든 외도들에 의해 분별되는 '열반'이라는 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 외도들이 열반을 분별하는 그대로, 그들의 분별에 걸맞은 열반은 있지 않다."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어떤 외도들은 무더기[蘊]와 계(界)와 처(處)의 소멸로 말미암아, 대상에 대한 욕망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법이 없음을 봄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마음의 작용의 무리가 나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미래·현재의 대상을 기억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등불의 씨앗불이 [다하듯이] 붙잡을 것의 그침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나아가지 않는다고 그들은 칭송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그들에게는 그것을 열반이라는 생각으로 여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소멸이라는 견해로써 완전한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이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감을 해탈이라 칭송하니, 마치 바람과 같이 대상에 대한 분별의 그침 등에서 [옮겨간다고 한다]. 또 다른 외도들은 지혜와 알아야 할 것에 대한 봄의 소멸로 말미암아 해탈이라 칭송한다. 또 다른 이들은 분별이 나아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항상함과 무상함을 봄으로써 해탈을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은 갖가지 표상에 대한 분별이 괴로움과 태어남을 실어 나른다고 칭송하니,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에 능숙하지 못한 이들이다. 표상에 대한 두려움에 겁먹어 표상을 봄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바라는 표상에 대해 열반이라는 생각을 낸다. 또 다른 이들은 안과 밖의 모든 법의 자기 특징과 공통된 특징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소멸하지 않음으로써 과거·미래·현재의 존재가 있다고 하여 열반을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은 자아와 중생과 목숨[命]과 길러지는 것[養]과 사람[人]과 인(人)과 모든 법이 소멸하지 않는 것으로써 열반을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 마하마띠여, 어리석고 지혜가 서투른 외도들은 근본물질[自性]과 사람[神我]이 다름을 봄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삼덕의] 변화의 지음으로 말미암아 열반을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은 공덕과 죄의 다함으로 말미암아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은 번뇌의 다함과 지혜로 말미암아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은 자재천(自在天)이 자유로이 짓는 자임을 봄으로 말미암아 세간의 열반을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은 이 생겨남이 세간의 것으로서 서로 나아가는 것이지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니], 바로 그것이 원인에 대한 집착이나 미혹함으로 말미암아 깨닫지 못하며, 그것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열반을 계탁한다. 또 다른 외도들, 마하마띠여, 진리의 길을 증득함으로 말미암아 열반을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은 덕(德)과 덕을 지닌 것[德者]이 서로 관계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됨과 다름됨, 함께함과 함께하지 않음을 봄으로써 열반이라는 생각을 낸다. 또 다른 이들은 자성으로부터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마치 공작의 다채로움과 갖가지 보배의 광맥과 가시의 날카로움과 같이 존재들의 자성을 보고서 열반을 분별한다. 또 다른 이들, 마하마띠여, 스물다섯 가지 진리[二十五諦]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계탁하며], 또 다른 이들은 생주(生主)에 의한 여섯 가지 덕[六德]의 가르침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열반을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은 시간을 짓는 자를 봄으로 말미암아 '세간의 나아감이 시간에 의지한다'고 하여 그것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열반을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 마하마띠여, 존재로써, 또 다른 이들은 존재 아님으로써, 또 다른 이들은 존재와 존재 아님을 두루 앎으로써, 또 다른 이들은 존재와 열반이 다르지 않음을 봄으로써 열반을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 마하마띠여, 스스로 '일체지자(一切智者)의 사자후를 외치는 자'라고 칭송하니, 마치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바깥의 있음과 없음에 집착하지 않아 네 가지 극단[四句]을 여읜 것과 같이, 있는 그대로 머무름을 봄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분별이 두 극단에 떨어지지 않음으로써 취해지는 것과 취하는 것을 얻을 수 없어, 모든 헤아림[量]에 대한 취함이 나아가지 않음을 봄으로 말미암아 진실이 미혹하게 하는 것이므로 진실에 대한 취함이 없으니, 그것을 물리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법을 증득함으로써, 두 가지 무아(無我)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두 가지 번뇌로부터 돌이켜져서, 두 가지 장애가 청정해짐으로 말미암아, 지위를 차례로 뛰어넘어 여래의 지위에 이르러 환술 등의 온갖 삼매인 마음[心]과 뜻[意]과 의식(意識)으로부터 돌이켜짐으로써 열반을 계탁한다. 이와 같이 다른 것들도, 논사들과 그릇된 외도들이 지어낸 것들로서 도리에 맞지 않는 것들이니 지혜로운 이들은 이를 여읜다. 마하마띠여, 이들 모두는 두 극단에 떨어진 이어짐[相續]으로써 열반을 계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과 다른 분별들로써, 마하마띠여, 모든 외도들에 의해 열반이 두루 계탁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것도 나아가거나 되돌아가는 것이 없다. 마하마띠여, 낱낱의 외도의 열반을, 그들 자신의 논서의 지혜로써 살펴보면 어긋나게 된다. 그들이 분별하는 그대로 머무르지 않으니, 뜻[意]의 오고 감의 요동으로 말미암아 그 누구에게도 열반은 있지 않다. 여기에서 그대는, 마하마띠여, 배우고서 다른 보살마하살들과 함께 모든 외도의 열반에 대한 견해를 돌이켜야 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외도들은 열반에 대한 견해를 저마다 따로따로 분별하니, 이는 다만 계탁일 뿐 그들에게 해탈의 방편은 있지 않다. (3품 69송)
묶을 것과 묶임을 벗어난 것이며 방편을 여읜 것이거늘, 외도들은 해탈을 분별하나 해탈은 있지 않다. (3품 70송)
외도들의 도리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보이니,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해탈이 있지 않거늘 어찌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되는가. (3품 71송)
결과와 원인에 대한 그릇된 견해로 말미암아 모든 외도들이 미혹하게 되었으니,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의 치우침을 주장하는 그들에게는 해탈이 있지 않다. (3품 72송)
희론(戱論)의 말다툼을 즐기는 어리석은 이들은 진실에 대해 넓은 뜻을 짓지 못하니, 말다툼은 삼계의 괴로움의 근원이며 진실이야말로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원인이다. (3품 73송)
마치 거울에 형상이 보이나 실로 있는 것이 아니듯이, 훈습이라는 거울 속에서 마음이 둘로 나뉘어 어리석은 이들에게 보인다. (3품 74송)
마음이 나타낸 것임을 두루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둘로 나뉘어 생겨나며, 마음이 나타낸 것임을 두루 앎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나아가지 않는다. (3품 75송)
오직 마음만이 갖가지가 되니 나타내어지는 것과 나타내는 특징을 여읜 것이며, 보이는 형상은 보이는 것으로 있는 것이 아니거늘 어리석은 이들은 그렇게 분별한다. (3품 76송)
삼계(三界)는 다만 분별일 뿐이니 바깥의 대상은 있지 않으나, 분별이 갖가지로 보이는 것을 어리석은 이들은 분명히 알지 못한다. (3품 77송)
경(經)마다 분별이 말해지니 명칭들의 사이로써이며, 말해지는 것[所詮]은 말[能詮]을 여읜 것이어서 나타내어지지 않는다. (3품 78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여래·응공·정등각의 스스로 깨달은 부처됨[自覺佛性]을 가르쳐 주소서. 이로써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여래에 능숙하여 스스로와 남을 깨닫게 하기를 바랍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그대 스스로 물어보라. 그대가 감당할 수 있는 그대로 내가 답하리라."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여래·응공·정등각은 지어지지 않은 것입니까, 지어진 것입니까, 결과입니까, 원인입니까, 나타내어지는 것[所相]입니까, 나타내는 특징[能相]입니까, 말해지는 것[所詮]입니까, 말[能詮]입니까, 아는 것[能知]입니까, 알려지는 것[所知]입니까 — 이와 같은 낱말의 어원들로써, 세존께서는 다른 것입니까 다르지 않은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여래·응공·정등각은 이와 같은 낱말의 어원들로써 지어지지 않은 것도 아니고 지어진 것도 아니며 결과도 원인도 아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양쪽의 허물이 따르기 때문이다. 만일 마하마띠여, 여래가 지어진 것이라면 무상하게 될 것이다. 무상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결과가 여래가 될 것이니, 이는 나와 다른 여래들에게 원치 않는 것이다. 만일 지어지지 않은 것이라면, 자신의 본체를 얻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모아온 자량(資糧)이 헛되게 될 것이니, 마치 토끼뿔과 같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의 아들과 같게 될 것이다, 지어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결과도 아니고 원인도 아닌 것은 있음도 없음도 아니다. 그리고 있음도 없음도 아닌 것은 네 가지 극단[四句]의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네 가지 극단이 세간의 언어 관습이다. 그리고 네 가지 극단의 바깥에 있는 것은 다만 말뿐인 것이 되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의 아들과 같다. 마하마띠여,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의 아들은 다만 말뿐이지 네 가지 극단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혜로운 이들에게는 헤아림[量]이 아니다. 이와 같이 모든 여래라는 낱말의 뜻을 지혜로운 이들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모든 법은 무아(無我)이다'라고 말한 것도, 마하마띠여, 그 뜻을 알아야 한다. 마하마띠여, 자아가 없는 상태가 무아이다. 모든 법은 자신의 본체로써는 있으나 다른 것의 본체로써는 있지 않으니, 마치 소와 말과 같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소의 본체가 말의 본체가 되는 것이 아니고 말의 본체가 소의 본체가 되는 것도 아니니,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며, 그 둘이 스스로의 특징으로써 없는 것도 아니어서 그 둘은 스스로의 특징으로써는 바로 있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모든 법은 스스로의 특징으로써 없는 것이 아니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범부들은 분별을 취함으로써 무아라는 뜻을 깨닫는 것이지 분별없음으로써가 아니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의 공(空)함과 생겨나지 않음과 자성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와 같이 여래는 무더기[蘊]와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만일 무더기와 다르지 않은 것이라면, 무더기가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무상하게 될 것이다. 만일 다른 것이라면, 둘이 있을 때 다르게 되는 것이니 마치 소의 뿔과 같다."
"그 가운데 비슷함을 봄으로 말미암아 다르지 않음이며, 짧고 긺을 봄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의 다름이다. 마하마띠여, 오른쪽 소뿔은 왼쪽 것과 다르며, 왼쪽도 오른쪽 것과 [다르다]. 이와 같이 짧고 긺도 서로에게 [다르다]. 이와 같이 색깔의 다채로움으로도 [다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여래는 무더기와 계(界)와 처(處)와 다른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해탈로부터도 여래는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여래는 바로 '해탈'이라는 말로 가르쳐진다. 만일 해탈과 다른 것이라면, 형색의 특징을 갖춘 것이 될 것이다. 형색의 특징을 갖춤으로 말미암아 무상하게 될 것이다. 만일 다르지 않은 것이라면, 요가행자들에게 증득의 특징의 나뉨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마하마띠여, 나뉨이 요가행자들에 의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도 알아야 할 것과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마하마띠여,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으며, 결과도 원인도 아니고, 지어진 것[有爲]도 지어지지 않은 것[無爲]도 아니며, 아는 것도 알려지는 것도 아니고, 나타내는 특징도 나타내어지는 것도 아니며, 무더기도 아니고 무더기와 다른 것도 아니며, 말도 말해지는 것도 아니고, 하나됨과 다름됨, 함께함과 함께하지 않음에 매인 것도 아닌 것, 그것은 모든 헤아림[量]에서 돌이켜진 것이다. 모든 헤아림에서 돌이켜진 것은 다만 말일 뿐인 것이 된다. 다만 말일 뿐인 것은 생겨나지 않은 것이다. 생겨나지 않은 것은 소멸하지 않는 것이다. 소멸하지 않는 것은 허공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허공은 결과도 원인도 아니다. 그리고 결과도 원인도 아닌 것은 반연할 것이 없는 것이다. 반연할 것이 없는 것은 모든 희론을 뛰어넘은 것이다. 모든 희론을 뛰어넘은 것, 그것이 여래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바로 정등각(正等覺)됨이다. 이것이 바로 그 부처의 부처됨이니, 모든 헤아림과 감관으로부터 돌이켜진 것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헤아림[量]과 감관을 벗어난 것이며 결과도 원인도 아니니, 아는 것과 알려지는 것을 여읜 것이며 나타내어지는 것과 나타내는 특징을 여읜 것이다. (3품 79송)
무더기[蘊]에 연하여 완전히 깨달은 이는 그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으니, 아무에게도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그것을 어떻게 밝힐 수 있으랴. (3품 80송)
지어진 것도 아니고 지어지지 않은 것도 아니며 결과도 원인도 아니고, 무더기도 아니고 무더기 아닌 것도 아니니, 뒤섞임으로 말미암아 다른 것도 아니다. (3품 81송)
어떤 존재로써도 계탁되어 보이지 않는 그것을, 없다고 나아가서는 안 되니, 이것이 바로 법들의 법성(法性)이다. (3품 82송)
있음을 앞세운 없음이라는 것도 있음이 없음을 앞세운 것이니, 그러므로 없음이라고도 나아가서는 안 되고 있음이라고도 계탁해서는 안 된다. (3품 83송)
자아와 무아에 미혹하여 다만 허물에만 의지하는 이들, 두 극단에 빠진 그들은 파멸한 자들로서 어리석은 이들을 파멸시킨다. (3품 84송)
모든 허물을 여읜 나의 도리를 볼 때에, 그때 그들은 바르게 보는 것이니 그들은 인도자[導師]를 헐뜯지 않는다. (3품 85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선서(善逝)시여, 가르침의 경문에서 세존께서 취하신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음[不生不滅]에 대해 가르쳐 주소서.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것이 여래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세존이시여 이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음이라는 것은 없음[無]입니까, 아니면 여래의 또 다른 다른 이름입니까?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 —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는 것으로서 세존께서는 모든 법을 있음과 없음의 치우침을 보지 않음으로써 가르치신다고 하셨는데, 만일 모든 법이 생겨나지 않은 것이라면, 세존이시여 법의 붙잡음에 이르지 못하니 모든 법이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은 이것이 어떤 법의 또 다른 다른 이름이라면, 세존이시여 그것을 말씀해 주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여래는 없음이 아니며, 모든 법에 대한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음의 취함도 [없음이 아니다]. 조건에 의지해서도 안 되고 뜻 없는 생겨나지 않음의 취함도 내가 짓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하마띠여, 이것은 뜻으로 이루어진 법신(法身)인 여래의 다른 이름이니, 모든 외도와 성문과 연각과 일곱째 지위에 머무는 보살들의 경계가 아닌 곳이다. 그 생겨나지 않음이 여래의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은 다른 이름[異名]의 말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인드라와 샤끄라와 뿌란다라, 손과 손바닥과 손아귀, 몸과 육체와 신체, 대지와 땅과 지구, 허공과 창공과 하늘과 같이, 이와 같은 하나하나의 존재에는 갖가지로 분별된 많은 다른 이름을 나타내는 말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름이 많다고 해서 존재가 많다고 분별되는 것이 아니며, 자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나 또한 이 사바세계에서 삼백구십육만이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름으로 어리석은 이들에게 들려서 나타나니, 그들은 나를 부르되 이것들이 여래의 이름의 다른 표현임을 알지 못한다. 그 가운데 어떤 이들은, 마하마띠여, 나를 '여래(如來)'라고 알고, 어떤 이들은 '스스로 있는 이[自存者]'라고 알며, [또 어떤 이들은] 인도자[導師]·잘 인도하는 이[善導者]·이끄는 이[引導者]·부처[佛]·성인[仙人]·황소[牛王]·범천(梵天)·비슈누·자재천(自在天)·근본(根本)·까삘라·존재의 끝[有際]·아리쉬따네미·달[月]·해[日]·라마·비야사·앵무새[鸚鵡]·인드라·발리·바루나라고 알기도 한다. 또 다른 이들은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음[不生不滅]·공성(空性)·진여(眞如)·진실(眞實)·실다움[實相]·실제(實際)·법계(法界)·열반·항상함[常]·같음[平等]·둘이 아님[不二]·소멸하지 않음[不滅]·표상 없음[無相]·조건[緣]·부처의 원인의 가르침·해탈·도(道)와 진리[道諦]·일체지(一切智)·승리자[勝者]·뜻으로 이루어진 것[意成]이라고 알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것들로써, 마하마띠여, 삼백구십육만이라는 줄지도 늘지도 않는 이름들로 여기와 다른 세계들에서 사람들이 나를 아니, 마치 물속의 달이 들어가고 나옴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들은 둘이라는 치우침에 떨어진 이어짐[相續]으로 말미암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예를 표하고 공양하나, 낱말의 어원에는 능숙하지 못하여 [내가 하나임을] 분별하지 못한 채, 자신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가르침의 경문의 말에 집착한다.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음을 없음이라고 계탁할 것이며, 여래의 이름과 낱말의 다른 표현인 인드라·샤끄라·뿌란다라를 [여래의 다른 이름으로 알지 못하니], 자신의 도리를 확립하는 경문을 믿어 알지 못하고, 모든 법에 대해 말해진 그대로의 뜻의 경문을 따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저 미혹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말해진 그대로가 바로 뜻이며, 뜻은 말과 다르지 않다고.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뜻은 형체가 없는 것이니 말과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말이 바로 뜻이라고 [여기는 것은] 말의 자성을 두루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은 서투른 지혜 때문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그들은 이와 같이 알지 못한다 — 말은 생겨나서 무너지는 것이나 뜻은 생겨나지도 무너지지도 않는 것임을. 마하마띠여, 말은 문자에 떨어진 것이나 뜻은 문자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있음과 없음을 여의었기 때문에 태어남이 없고 형체가 없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여래들은 문자에 떨어진 법을 가르치지 않으니, 문자들은 있음과 없음으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문자에 떨어진 뜻을 지닌 이는 예외이니, 마하마띠여, 문자에 떨어진 법을 가르치는 자는 헛된 말을 하는 것이니 법은 문자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나와 다른 부처님과 보살들은 가르침의 경문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 여래는 단 한 글자도 말한 적이 없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법에는 문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뜻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니, 다만 분별을 임시로 세워서 말할 뿐이다. 취함이 없다면, 마하마띠여, 모든 법의 가르침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가르침이 끊어짐으로 말미암아 부처와 연각과 성문과 보살들이 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들이 있지 않다면 무엇을 누구에게 가르치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가르침의 경문의 말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마하마띠여, 그 가르침의 경문은 [사람에 따라] 어긋나는 것이니, 중생의 뜻이 나아가는 바에 따라, 갖가지 믿는 바가 다른 중생들을 위하여, 마음[心]과 뜻[意]과 의식(意識)으로부터 돌이킴을 위하여 나와 다른 여래·응공·정등각들에 의해 법의 가르침이 지어지는 것이지,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지혜의 증득이라는 확립에 의한 것이 아니니, 모든 법의 나타남 없음과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두 갈래의 분별이 돌이켜지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은 뜻[義]에 의지해야 하며 문자[文]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마하마띠여, 문자를 따르는 선남자나 선여인은 스스로를 소멸시키고 남의 뜻도 깨닫게 하지 못한다. 그릇된 견해에 떨어진 이어짐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입장이 [흔들려] 헤매게 되니, 모든 법과 지위[地]의 스스로의 특징에 능숙하지 못하고 낱말의 어원을 알지 못하는 그릇된 외도들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모든 법과 지위의 스스로의 특징에 능숙하고 낱말과 다른 표현과 어원으로 나아감에 이르러 존재와 뜻의 이치에 능숙한 이들은, 그때 스스로를 바른 표상의 즐거움으로써 기쁘게 하고, 남들도 바르게 대승에 자리잡게 한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대승이 바르게 거두어질 때에 부처와 성문과 연각과 보살들이 거두어짐이 이루어진다. 부처와 보살과 성문과 연각이 거두어짐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이 거두어짐이 이루어진다. 모든 중생이 거두어짐으로 말미암아 바른 법이 거두어짐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른 법이 거두어짐으로 말미암아, 마하마띠여, 부처의 계보가 끊어지지 않음이 이루어진다. 부처의 계보가 끊어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특별한 감관[根]의 특별한 얻음이 알려진다. 그러므로 그 특별한 감관의 얻음들에서, 보살마하살들은 태어남을 거두어들여 대승에 자리잡게 함으로써, 열 가지 자재함[十自在]의 갖가지 형색의 옷을 지닌 이가 되어 중생들의 특별한 잠재된 성향의 특징으로 나아간 이로서 진여[如]를 위하여 법을 가르친다."
"그 가운데 진여[如]란 다르지 않음이니 진실이다. 애씀도 없고 애쓰지 않음도 없는 특징으로서 모든 희론이 그친 것이 진실이라 일컬어진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선남자나 선여인은 말해진 그대로의 뜻에 대한 집착에 능숙해서는 안 된다. 진실에는 문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가락을 [가리키는] 것만 바라보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리켜 보인다고 하자. 그가 손가락 끝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응시한다고 하자. 바로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이의 부류와 같은 어리석은 범부들의 무리는, 말해진 그대로의 손가락 끝에 대한 집착에만 사로잡혀 목숨을 마칠 것이니, 말해진 그대로의 손가락 끝의 뜻을 버리고서 궁극의 뜻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이들을 위한 음식이 [익혀지지 않고] 조리되지 않은 것이라면, 어떤 이가 조리되지 않은 것을 먹었다고 하자. 그는 미친 사람이라고 분별될 것이니, 음식이 차례대로 조리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생겨나지 않음과 소멸하지 않음도 조리됨이 없이는 [드러나] 빛나지 않는다. 반드시 여기에는 조리됨이 있어야 하니, 손가락 끝을 붙잡는 것을 [궁극의] 뜻으로 보는 것과 같이 자신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뜻에 힘써야 한다. 마하마띠여, 뜻은 [희론을] 여읜 것으로서 열반의 원인이다. 말은 분별과 관계된 것으로서 윤회를 실어 나른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뜻은 많이 들은 이[多聞]로부터 얻어진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많이 들음이라는 것은 이른바 뜻에 능숙함이지 말에 능숙함이 아니다. 그 가운데 뜻에 능숙함이란 모든 외도의 주장과 섞이지 않은 봄이니, 스스로도 떨어지지 않고 남들도 떨어지게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진실한 뜻에서, 마하마띠여, 많이 들음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뜻을 원하는 이는 이러한 이들을 가까이해야 한다. 이와 반대되는, 말해진 그대로의 뜻에 집착하는 이들은 진실을 찾는 자에게는 멀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는 부처님의 위신력의 가피를 받아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께서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음을 보시는 것으로써는 아무런 특별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세존이시여, 모든 외도들의 원인들도 생겨나지 않고 소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도 허공과 택멸(擇滅)과 열반의 세계는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외도들도 원인과 조건을 근거로 하는 세간의 생겨남을 칭송합니다. 세존께서도 무지와 갈애와 업의 분별의 조건들로부터 세간의 생겨남을 칭송하십니다. 바로 그 원인에 다른 이름의 특별함을 생겨나게 하여 '조건'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깥의 조건들로써 바깥의 것들이 [생겨납니다]. 그들과 세존께서도 [모두] 존재들의 생겨남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이 주장은 외도의 주장과 특별한 차이가 없습니다. 원자[極微]와 근본물질[自性]과 자재천과 생주(生主) 등도 아홉 가지 실체를 갖추어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도 모든 존재가 생겨나지 않고 소멸하지 않는다고 [하시니], 있음과 없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물[實有]이 소멸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특징은 생겨나지도 소멸하지도 않습니다. 그 나아감으로 나아가더라도 사물은 사물의 자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 사물의 분별의 변화를, 세존이시여, 모든 외도들도 분별하고 세존께서도 [분별하십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 주장은 특별함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특별함을 말씀하셔야 할 것이니, 그로써 여래의 주장이 특별하게 되고 모든 외도의 주장과 같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세존 자신의 주장이 특별하지 않다면, 외도들도 부처가 되는 허물이 따르게 될 것이니,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음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한 세계에 여러 여래가 생겨날 수 없다고 처소도 아니고 기회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존 자신의 주장이 특별하지 않다면, 있음과 없음의 결과를 거둠으로 말미암아 여래가 많아짐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나의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음은 외도들의 생겨나지 않고 소멸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같지 않으며, 생겨남과 무상함을 [주장하는 것]과도 같지 않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마하마띠여, 외도들에게는 존재의 자성이 실로 있어서 생겨나지 않는 변하지 않는 특징을 얻은 것이지만, 나의 것은 그와 같이 있음과 없음의 치우침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나의 것은 있음과 없음의 치우침을 여읜 것이며 생겨남과 무너짐을 벗어난 것으로서, 존재도 아니고 존재 아님도 아니니, 환술의 형상의 다채로움을 봄과 같이 존재 아님도 아니다. 어찌하여 존재가 아닌가? 이른바 형색의 자성이라는 특징을 취함이 없기 때문이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써 취함과 취하지 않음으로써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모든 존재는 존재도 아니고 존재 아님도 아니다. 다만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나아가지 않으니, 스스로에게 편안한 세간은 지음이 없는 것이다. 어리석은 이들은 지음이 있는 것으로 계탁하나 성인들은 그렇지 않다. 있지 않은 대상에 대한 분별이라는 뜻의 어지러움, 이것이, 마하마띠여, 신기루의 성[乾闥婆城]이나 환술로 만든 사람과 같은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하마띠여, 어떤 어리석은 이의 부류가 신기루의 성에서 환술로 만든 사람의 무리들이 갖가지로 들어가거나 나가는 것을 보고서 계탁하기를 '이들은 들어갔고 이들은 나갔다'고 한다고 하자.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도 들어가거나 나간 자가 없다. 다만 그러한 만큼이 분별의 어지러운 존재일 뿐이니, 그들에게도 바로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생겨남과 생겨나지 않음의 어지러움이 어리석은 이들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지어진 것[有爲]도 지어지지 않은 것[無爲]도 없으니 환술로 만든 사람의 생겨남과 같다. 그리고 환술로 만든 사람은 생겨나지도 소멸하지도 않으니 있음과 없음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이 모든 법은 무너짐과 생겨남을 여읜 것이다. 다만 그릇됨에 떨어진 생각으로써 어리석은 이들이 생겨남과 소멸을 계탁하는 것이지 성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 가운데 그릇됨이라는 것은, 마하마띠여, 존재의 자성이 계탁되는 그대로도 아니고 다르게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르게 계탁된다면 모든 존재의 자성에 대한 집착이 있게 될 것이다. 여읜 것으로 봄과 여의지 않은 것으로 봄이 아니라면 분별의 돌이킴 또한 있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표상 없음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것이지 표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표상은 다시 태어남의 원인이기 때문에 훌륭하지 않다. 표상 없음이라는 것은, 마하마띠여, 분별의 나아가지 않음이며 생겨나지 않음이니 열반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 가운데 열반이란, 마하마띠여, 있는 그대로의 뜻의 자리를 봄이니 분별하는 마음과 마음의 작용의 무리가 전환됨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다. 여래가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지혜를 증득함, 이것을 열반이라고 나는 말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생겨남을 돌이키기 위한 뜻으로 생겨나지 않음을 성립시키는 원인 없음의 주장을 나는 가르치나, 어리석은 이들은 이를 분명히 알지 못한다. (3품 86송)
이 모든 것은 생겨나지 않은 것이나 존재들이 있지 않은 것도 아니니, 신기루와 꿈과 환술이라 일컫는 존재들은 원인 없이 있는 것이다. (3품 87송)
생겨나지 않은 자성이며 공(空)한 것들이라고 무엇으로써 나에게 말하는가. 화합[和合]을 벗어난 것으로서 지혜로써는 존재가 붙잡히지 않으니, 그러므로 공하고 생겨나지 않고 자성 없음을 나는 말한다. (3품 88송)
화합도 그와 같이 낱낱이 보이는 것의 없음으로 말미암아 있지 않으니, 외도의 견해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서 화합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3품 89송)
꿈과 눈병으로 보이는 머리카락과 환술과 신기루와 아지랑이가 원인 없이 보이듯이, 세간의 다채로움도 그러하다. (3품 90송)
원인 없음의 주장으로써 [외도를] 물리쳐서 생겨나지 않음을 성립시키니, 생겨나지 않음이 성립될 때에 나의 인도함[敎導]은 사라지지 않는다. 원인 없음이 가르쳐질 때에 외도들에게 두려움이 생겨난다. (3품 91송)
어떻게, 무엇으로, 어디로부터, 어디에서 생겨남이 원인 없이 있게 되겠는가. 지어진 것[有爲]이 원인 없이도 아니고 원인들로부터도 아니라고 볼 때에, 그때 무너짐과 생겨남을 주장하는 견해가 돌이켜진다. (3품 92송)
생겨나지 않음이란 없음인가, 아니면 조건을 살펴봄인가, 아니면 이것이 존재의 이름인가, 혹은 뜻 없는 것인가, 나에게 말해다오. (3품 93송)
생겨나지 않음은 없음도 아니고 조건을 살펴봄도 아니며, 이것은 존재의 이름도 아니고 뜻 없는 이름도 아니다. (3품 94송)
성문과 연각과 외도들의 경계가 아닌 곳, 그리고 일곱째 지위에 이른 이들의 [경계도 아닌] 그것이 생겨나지 않음의 특징이다. (3품 95송)
원인과 조건으로부터 돌이켜짐이며 원인의 소멸함, 오직 마음일 뿐임의 확립, 이것을 나는 생겨나지 않음이라 말한다. (3품 96송)
존재들의 원인 없는 나아감이며 계탁하는 것과 계탁함을 여읜 것, 있음과 없음의 치우침을 벗어난 것, 이것을 나는 생겨나지 않음이라 말한다. (3품 97송)
보이는 것을 벗어난 마음이며 두 가지 자성을 여읜 것, 의지처의 전환됨, 이것을 나는 생겨나지 않음이라 말한다. (3품 98송)
바깥 존재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며 마음의 취함도 아니니, 꿈과 눈병의 머리카락과 환술과 신기루와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며, 모든 견해를 끊음, 그것이 생겨나지 않음의 특징이다. (3품 99송)
이와 같이 공(空)과 자성 없음 등의 낱말들을 모두 분명히 알아야 하니, 결코 공함으로써 공한 것이 아니라 다만 생겨나지 않는 공함으로써이다. (3품 100송)
조건들의 모임[集]은 나아가고 되돌아가나, 그 모임과 따로 있는 것은 생겨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 (3품 101송)
모임과 따로 어디에도 다른 존재는 있지 않으니, 외도들이 분별하는 것과 같이 하나됨과 따로임으로써가 아니다. (3품 102송)
존재는 없는 것으로도 생겨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도, 있음과 없음으로도 어디서도 [생겨나지] 않으니, 다만 이 모임이 나아가고 되돌아갈 뿐이다. (3품 103송)
이것은 다만 언어관습[假名]일 뿐이니 서로 의지하는 모임이며, 조건들의 모임과 따로 다른 뜻은 있지 않다. (3품 104송)
생겨날 것의 없음으로 말미암은 생겨나지 않음, 외도의 허물을 여읜 것, 다만 모임일 뿐임을 나는 가르치나, 어리석은 이들은 분명히 알지 못한다. (3품 105송)
모임과 따로 어디엔가 생겨날 존재가 있다고 하는 이는, 원인 없음을 주장하는 자로 알아야 하니 모임을 무너뜨리는 자이다. (3품 106송)
등불이 사물들의 무리를 드러내듯이 모임이 그러하니, 모임과 따로 어디엔가 어떤 존재가 있다고 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3품 107송)
자성이 없고 생겨나지 않으며 본래 허공과 같으니, 모임과 따로 있다고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계탁된 법들이 [그러하다]. (3품 108송)
서로 다른 생겨나지 않음이 성인들이 증득한 법성이니, 태어남의 생겨남을 [보는] 그것에서 생겨나지 않음에 대한 인욕[無生法忍]이 있게 된다. (3품 109송)
이 모든 세간을 다만 모임으로만 볼 때에, 이것이 다만 모임일 뿐임을 [알 때에], 그때 마음이 삼매에 든다. (3품 110송)
무지와 갈애와 업 등이 안의 모임이 되며, 물레와 흙과 그릇과 바퀴 등, 씨앗과 존재 등이 바깥의 모임이다. (3품 111송)
다른 것으로부터 어디엔가 조건들에 의해 존재가 생겨난다고 하는 이, 이것이 다만 모임일 뿐임이 아니라고 하는 이, 그들은 도리와 경전에 머무는 자가 아니다. (3품 112송)
만일 생겨날 존재가 있지 않다면 무엇의 조건으로부터의 지혜가 있겠는가. 이것들은 서로가 서로를 생겨나게 하는 것들이니 그러므로 이것들이 조건이라 일컬어진다. (3품 113송)
뜨겁고 축축하고 움직이고 굳은 법들은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된 것이니, 이 모임에는 [실다운] 법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참으로 자성 없음이다. (3품 114송)
의사들이 환자에 따라 처방의 차별을 짓듯이, 의술[醫書]에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병의 차별로 말미암아 나뉘는 것이다. (3품 115송)
이와 같이 나도 번뇌의 허물로 오염된 중생들의 흐름에서, 감관들의 힘을 알고서 중생들에게 도리를 가르친다. (3품 116송)
번뇌와 감관의 차별로써 나의 가르침이 나뉘는 것이 아니니, 오직 하나의 수레만이 있으며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正道]가 상서로운 것이다. (3품 117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다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무상함, 무상함이라고, 세존이시여, 모든 외도들에 의해 분별됩니다. 그리고 세존께서도 모든 가르침의 경문에서 가르치시기를 — 슬프도다, 지어진 것[行]들은 무상하니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이라고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진실입니까 그릇된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무상함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모든 외도들에 의해 여덟 가지로 무상함이 계탁되나 나에 의해서는 아니다. 어떤 여덟 가지인가?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 '처음 일어남[始起]이 그침이 무상함이다'라고. 처음 일어남이란, 마하마띠여, 생겨남이니 생겨나지 않는 것이 무상함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모양의 그침을 무상함이라고 칭송한다. 또 다른 이들은 형색 자체가 무상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들은 형색의 다른 변화를 무상함이라고 [말한다] — 끊임없는 계속됨으로써 모든 법의 자기 본질[自相]의 무너지고 나뉨이, 우유가 응유(凝乳)로 변화하는 다른 것과 같이 보이지 않게 사라져 모든 존재에서 나아가는 것이지 [진짜] 항상함이 아니라고. 또 다른 이들은 존재를 무상함으로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은 존재와 존재 아님을 무상함으로 계탁한다. 또 다른 이들은 생겨나지 않음을 무상함이라 하니, 모든 법의 무상함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마하마띠여, 존재와 존재 아님의 무상함이란 이른바 사대(四大)와 그로부터 이루어진 것들의 스스로의 특징의 무너짐을 얻을 수 없음이니, 사대의 자성이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 가운데 생겨나지 않음의 무상함이란 이른바 항상함과 무상함, 있음과 없음의 나아가지 않음이니, 모든 법을 보지 못함이며 극미(極微)로 자세히 살핌으로부터 보지 못함이다. 이것은 생겨나지 않음의 다른 이름이지 생겨남의 것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생겨나지 않음의 무상함의 특징이니, 이를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외도들이 생겨남의 무상함이라는 주장에 떨어지게 된다."
"또한 마하마띠여, 존재가 항상함인 이에게는, 스스로의 뜻의 분별로써만 항상함이지 무상함이 존재[의 본성]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무상함인 것이다. 여기에서 마하마띠여, 모든 존재의 없음이 무상함의 결과이다. 그리고 무상함이 없이는 모든 존재의 없음을 얻을 수 없으니, 마치 몽둥이와 돌과 방망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부수는 것과 부서지는 것과 같다. 서로 다르지 않음을 봄이 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상함이 원인이고 모든 존재의 없음이 결과이다. 그리고 결과와 원인에는 '이것이 무상함이고 이것이 결과이다'라는 다름이 있지 않다. 결과와 원인이 다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는 항상하니, 존재에 원인이 없기 때문이다. 마하마띠여, 모든 존재의 없음은 원인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범부들은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원인은 닮지 않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만일 낳는다면, 그들에게 모든 존재의 무상함이 닮지 않은 결과가 될 것이니, 결과와 원인의 나뉨이 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결과와 원인의 나뉨이 보인다. 만일 무상함이 없음이라면, 행위의 원인이 되는 상태의 특징에 떨어진 것이 될 것이며, 하나의 존재로써 모든 존재에서 다하게 될 것이다. 행위의 원인이 되는 상태의 특징에 떨어졌기 때문에 무상함 자체가 항상하게 될 것이니, 무상함 등 모든 존재가 항상하게 되어 바로 항상한 것이 될 것이다."
"만일 무상함이 모든 존재 안에 포함된 것이라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무상함이] 세 시간[三世]에 떨어진 것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 지나간 형색은 그것과 함께 소멸한 것이다. 오지 않은 것도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이다. 형색이 생겨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형색과도 다르지 않은 특징이다. 그리고 형색이란 사대(四大)의 특별한 배치이다. 사대의 물질적 자성은 소멸하지 않으니, 다른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을 여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외도들에게 소멸이 있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대와 그로 이루어진 것인 온 삼계에서, 생겨남과 머무름과 변화가 임시로 세워지는 것이다. 사대와 그로 이루어진 것을 벗어나서, 외도들이 계탁하는 무상함이라는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그리고 사대는 나아가지도 되돌아가지도 않으니 자성의 특징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그 가운데 처음 일어남이 그침이라는 무상함이란 — 사대가 다시 다른 사대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니,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 스스로의 특징에서는 차별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 차별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다시 일어남이 없어, 둘로 됨의 결합으로 말미암아 일어나지 않음의 무상함이라는 생각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모양의 그침이라는 무상함이란 — 이른바 사대와 그로 이루어진 것은 겁(劫)의 파괴에 이르기까지 소멸하지 않는다. 마하마띠여, 겁의 파괴란 극미(極微)까지 자세히 살펴 검토하는 것이니, 사대와 그로 이루어진 모양이 다르게 됨을 봄으로 말미암은 소멸이며, 길고 짧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사대 자체에서 소멸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사대의 모양의 그침을 봄으로 말미암아 상키야[數論]의 주장에 떨어지게 된다."
"그 가운데 모양의 무상함이란 — 이른바 형색만이 무상한 것이지 사대가 [무상한 것이] 아니다. 만일 사대의 무상함이라면, 세간의 언어 관습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세간의 언어 관습이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세간론자의 견해에 떨어지게 될 것이니, 모든 존재가 다만 말뿐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스스로의 특징의 생겨남을 봄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 변화의 무상함이란 — 이른바 형색이 다르게 됨을 봄이지 사대의 [변화가] 아니니, 마치 금이 장신구의 모양으로 변화됨을 봄과 같다. 금이 존재로부터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장신구의 모양이 소멸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 변화에 떨어진 이들도 이와 같은 방식들로써 외도들에 의해 무상함의 견해가 분별되는 것이다. 사대는 불에 타더라도 스스로의 특징으로써는 타지 않으니, 서로에게서 스스로의 특징이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큰 요소[大種]와 그로 이루어진 것의 존재의 끊어짐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것은, 마하마띠여, 항상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바깥 존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삼계가 오직 마음일 뿐이라는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특징에 대한 가르침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큰 요소의 특별한 배치가 나아가지도 되돌아가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대와 그로 이루어진 것으로 말미암아 분별의 취해지는 것과 취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특징이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분별의 두 가지 나아감을 두루 앎으로 말미암아,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이라는 견해가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분별은 분별의 지음[行]에 의해 나아가는 것이지 짓지 않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다. 마음의 분별인 존재와 존재 아님이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세간과 세간을 벗어난 것과 세간을 가장 벗어난 모든 법에는 항상함도 무상함도 없다. 스스로의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릇된 견해로 두 극단에 떨어진 이어짐[相續]으로써, 모든 외도들이 스스로의 분별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일찍이 성립된 적 없는 논설을 하는 자들로서 무상함을 계탁한다. 그리고 세 가지가 있으니, 마하마띠여, 모든 외도와 세간과 세간을 벗어난 것과 세간을 가장 벗어난 모든 법의 특징으로서, 말의 분별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범부들은 깨닫지 못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처음 일어남의 그침과 모양이 다르게 됨과, 존재의 무상함과 형색을, 미혹한 외도들은 계탁한다. (3품 118송)
존재들에게는 실로 소멸이 있지 않으니 사대는 사대의 본질로서 머물러 있으나, 갖가지 견해에 빠진 그 외도들은 항상함을 계탁한다. (3품 119송)
어떤 외도에게도 소멸도 생겨남도 있지 않으니, 사대는 사대의 본질로서 항상한 것이거늘 누구에게 무상함을 계탁하는가. (3품 120송)
이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일 뿐이니 마음이 둘로 나뉘어 나아가되, 취해지는 것과 취하는 것의 상태로써이며 나[我]와 나의 것[我所]은 있지 않다. (3품 121송)
범천 등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나는 오직 마음일 뿐임을 말하니, 오직 마음일 뿐임을 벗어난 범천 등은 얻을 수 없다. (3품 122송)
이와 같이 능가경 대승경(大乘經)에서 무상품(無常品)이라 이름하는 셋째 품을 마친다.
제4품 현관품(現觀品, Abhisamaya-pariv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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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모든 보살·성문·연각의 멸(滅)의 차례와 이어짐의 특징에 대한 능숙함을 가르쳐 주소서. 그 차례와 이어짐의 특징에 대한 능숙함으로써,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멸의 즐거움에 드는 삼매의 문(門)으로 말미암아 미혹되지 않고, 성문·연각과 외도의 미혹에도 떨어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여섯째 지위[第六地]에 이르러 보살마하살들과 모든 성문·연각들은 멸(滅)에 든다. 일곱째 지위[第七地]에서는 다시 찰나찰나마다 보살마하살들이 모든 존재의 자성의 특징을 벗어남으로써 [멸에] 드나, 성문·연각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들 성문·연각의 멸의 성취[滅盡定]는 지어짐을 지닌 것으로서 취해지는 것과 취하는 것의 특징에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곱째 지위에서 찰나찰나마다 [멸에] 드니 — '모든 법에 다름 없는 특징을 얻게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은 모든 법에는] 다채로운 특징이 없지 않다. 선함과 선하지 못함의 자성의 특징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에 대한 [멸의] 성취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째 지위에서는 찰나찰나마다 [멸에] 드는 성취의 능숙함이 없어서, 그로써 [부득이] 드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여덟째 지위[第八地]에서는 보살마하살들과 성문·연각들의 마음[心]·뜻[意]·의식(意識)이라는 분별의 상(想)이 돌이켜짐이 있게 된다. 첫째 지위로부터 여섯째 지위까지는 마음·뜻·의식일 뿐인 삼계(三界)를 자세히 살피어, 아(我)와 나의 것[我所]을 여읜, 자기 마음의 분별에서 일어난 것임을 보되, 바깥 존재의 특징의 다채로움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 마음일 뿐임을 [본다]. 어리석은 이들은 취해지는 것과 취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상태로 변화하여 스스로의 앎을 깨닫지 못하니, 비롯함 없는 때로부터의 거친 습기(習氣)인 분별의 희론(戱論)의 훈습으로 배어 있기 때문이다."
"마하마띠여, 여덟째 지위에는 성문·연각과 보살들의 열반이 있다. 그러나 보살들은 여래들에 의해 삼매로써 지녀져서, 그 삼매의 즐거움으로부터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게 되니, 여래의 지위가 아직 원만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게] 지녀지지 않는다면 모든 행위가 그쳐 쉬게 될 것이며, 여래의 가문의 계통이 끊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부처님 세존들께서는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위대함을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보살들은]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성문·연각들은 삼매의 즐거움에 이끌려 가니,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거기에서 완전한 열반이라는 생각이 있게 된다."
"마하마띠여, 나는 일곱 지위[七地]에서 — 마음·뜻·의식의 특징을 익히 앎에 대한 능숙함, 아(我)와 나의 것[我所]과 취해지는 것과 취하는 것이라는 법(法)과 인(人)의 무아(無我)의 나아감과 그침의 자기와 공통된 특징을 익히 앎, 사무애해(四無礙解)를 확실히 앎에 대한 능숙함, 자재함[自在]의 맛봄과 즐거움이라는 지위의 차례에 차례로 들어감, 그리고 보리분법(菩提分法)의 나뉨을 짓노니 — 보살마하살들이 자기와 공통된 특징을 깨닫지 못함으로써 지위의 차례와 이어짐에 능숙한 이들이 되지 못하고 외도의 그릇된 견해의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니, 그러므로 지위의 차례라는 시설(施設)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여기에는 나아가거나 되돌아가는 어떤 것도 있지 않으니, 이는 다만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인 이 지위의 차례의 이어짐과 삼계(三界)의 다채로운 방편일 뿐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들은 깨닫지 못한다.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이들을 위하여 지위의 차례의 이어짐이라는 시설과 삼계의 다채로운 방편이 세워지니, 부처님의 법의 곳간[佛法藏]에 의해서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성문·연각들은 보살의 여덟째 지위에서 멸의 성취[滅盡定]의 즐거움에 취하여,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에 능숙하지 못한 채, 자기와 공통된 특징을 가리는 습기(習氣)와 인(人)·법(法)의 무아를 취하는 견해에 떨어져서, 분별에 의한 열반이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며, [모든 법이] 여읜 것임을 아는 법에 대한 생각을 지니지는 못한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보살들은 멸의 삼매의 즐거움이라는 문(門)을 보고서도, 예전의 서원과 자비와 연민을 갖추어 궁극의 자리와 갈래의 나뉨을 아는 이들로서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실은 이미] 완전한 열반에 든 것이니, 분별이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취해지는 것과 취하는 것이라는 분별이 그들에게서 돌이켜졌다.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임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에 대한 분별이 나아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마음·뜻·의식이 바깥 존재의 자성의 특징에 집착함을 분별할 뿐이다. 그러므로 부처님 법의 원인이 나아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앞세워 나아가니, 여래의 스스로 증득하는 지위에 이르기 때문이며, 마치 꿈속에서 사람이 큰 물을 건너는 것과 같다."
"이를테면 마하마띠여, 어떤 사람이 잠들어 꿈속에서 큰 애씀과 간절함으로 자신을 큰 물결에서 건져내려 하다가, [실은] 건너지 못한 채 그대로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이렇게 살펴본다 — '이것이 진실인가, 거짓인가?' 그는 이렇게 자세히 본다 — '이것은 진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니,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안 것에 대한 경험된 분별의 습기가 다채로운 형태와 모습으로, 비롯함 없는 때로부터의 분별에 떨어져, 있음과 없음의 견해라는 분별을 여읜 채, 의식(意識)에 의해 경험된 것으로서 꿈속에서 나타나 보인 것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보살마하살들은 보살의 여덟째 지위에서 분별이 나아가지 않음을 보고서, 첫째 지위로부터 일곱째 지위까지 다닌 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에 대한 현관(現觀)으로써 환술 등의 법과 같음[平等]을 [알아], 모든 법에 대한 간절함과 취해지는 것과 취하는 것이라는 분별이 그친 마음과 마음작용의 분별의 흐름을 보고서 부처님의 법에 힘쓴다.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한 이 힘씀이, 마하마띠여, 보살들의 열반이지 없어짐[斷滅]이 아니니, 마음·뜻·의식이라는 분별의 상(想)이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생겨나지 않는 법의 인(忍)[無生法忍]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여기 궁극의 뜻[勝義]에는 차례도 없고 차례의 이어짐도 없으니, 형상 없는 분별을 여읜 법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마음일 뿐인 형상 없음에 머묾들과 부처님의 지위를,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셨고 말씀하시며 말씀하게 하시니. (4품 1송)
마음[心]이란 일곱 지위이며 여기 여덟째는 형상 없음이니, 두 지위는 머묾이며 나머지 지위는 나의 것인 지위이다. (4품 2송)
스스로 증득하여 알아지는 청정한 지위, 이것이 나의 것인 지위이니, 대자재천(大自在天)의 궁극의 자리인 색구경천(色究竟天)이 빛난다. (4품 3송)
마치 타오르는 불에서 빛살들이 나오듯이, 그 다채롭고 마음을 사로잡으며 부드러운 [빛살들이] 삼계(三界)를 변화하여 짓나니. (4품 4송)
삼계를 변화하여 지어, 어떤 것은 예전에 이미 변화하여 지어진 것이거늘, 그 가운데서 나는 수레들[乘]을 가르치나니 — 이것이 나의 것인 지위이다. (4품 5송)
열째가 곧 첫째가 되고 첫째가 여덟째가 되며, 아홉째가 또한 일곱째가 되고 일곱째가 여덟째가 된다. (4품 6송)
둘째가 셋째가 되고 넷째가 다섯째가 되며, 셋째가 여섯째가 되나니, 형상 없음에 어찌 차례가 있으랴. (4품 7송)
이와 같이 능가경에서 현관품(現觀品)이라 이름하는 넷째 품을 마친다.
제5품 여래상무상품(如來常無常品, Tathāgatanityānityatva-pariv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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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여래·응공·정등각은 항상한 것입니까, 아니면 무상한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여래는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둘 다에 허물이 따르기 때문이다. 마하마띠여, 어느 쪽이든 허물이 따르게 될 것이다. 항상하다면 원인이라는 허물이 따르게 될 것이니, 마하마띠여, 모든 외도들의 원인은 항상하되 지어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지어지지 않고 항상한 것이 아니므로 항상한 것이 아니다. 무상하다면 지어졌다는 허물이 따르게 될 것이며, 온(蘊)의 표지와 특징이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온의 무너짐이라는 단멸(斷滅)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래에게는 단멸이 있지 않다. 마하마띠여, 지어진 것은 모두 무상하니, 항아리·천·풀·나무·벽돌 등과 같다.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허물이 따르므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일체지(一切智)의 지혜의 자량(資糧)이 헛되게 될 것이다. [만일 무상하다면] 여래도 지어진 것이 되어 특별한 원인이 있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여래는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다."
"또한 마하마띠여, 여래는 항상한 것이 아니다. 어째서인가? 허공이 [원인들의] 쌓임이라는 것이 헛되게 되는 허물이 따르기 때문이다. 마치 마하마띠여, 허공이 항상함도 무상함도 아니어서 항상함과 무상함을 벗어난 것이듯이, [여래도] 하나임과 다름, 둘 다임과 둘 다 아님, 항상함과 무상함이라는 허물로써 말해질 수 없다."
"또한 마하마띠여, [만일 여래가 항상하다면] 토끼·말·나귀·낙타·개구리·뱀·파리·물고기의 뿔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니, 생겨나지 않은 것의 항상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겨나지 않은 것의 항상함이라는 허물이 따르므로 여래는 항상한 것이 아니다."
"또한 마하마띠여, 여래가 항상하다고 할 수 있는 방편이 있으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현관(現觀)으로 증득한 지혜가 항상하기 때문에 여래는 항상하다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현관으로 증득한 지혜는 여래·응공·정등각들에게 항상한 것이다. 여래들이 생겨나든 생겨나지 않든, 이 법성(法性)과 법의 정해진 이치[法定]와 법의 머묾[法住]은 모든 성문·연각·외도의 현관에서 그대로 머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허공에 법이 머무는 것이 아니며, 어리석은 범부들이 깨닫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여래들의 증득의 지혜는 반야(般若)의 지혜로 빛나게 된 것이다. 마하마띠여, 여래·응공·정등각들은 마음[心]·뜻[意]·의식(意識)과 온(蘊)·계(界)·처(處)와 무명(無明)의 습기로 빛나게 된 것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삼계(三界)는 모두 실답지 않은 분별에서 생겨난 것이나, 여래들은 실답지 않은 분별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둘이 있을 때 항상함과 무상함이 있게 되는 것이지, 둘 아님[不二]에는 [그것이] 있지 않다. 마하마띠여, 둘이란 모든 법의 둘 아니고 생겨나지 않는 특징을 여읜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하마띠여, 여래·응공·정등각들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다. 마하마띠여, 말의 분별이 나아가는 한, 항상함과 무상함이라는 허물이 따르게 된다. 마하마띠여, 분별하는 지혜가 다함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이들의 항상함과 무상함이라는 집착이 그치게 되는 것이지, [모든 것을] 여읜 견해의 지혜가 다함으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항상함과 무상함을 벗어나 있으면서도 항상함과 무상함으로 빛나는 부처님들을, 누구든 항상 이와 같이 보는 이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5품 1송)
항상함과 무상함에는 [지혜의] 이루어짐이 헛되다는 허물이 따르니, 분별하는 지혜가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항상함과 무상함이 그치게 된다. (5품 2송)
주장을 짓는 한, 그 모든 것에는 뒤섞임의 허물이 있게 되니, 자기 마음일 뿐임을 자세히 보는 이는 논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5품 3송)
이와 같이 능가경에서 여래상무상품(如來常無常品)이라 이름하는 다섯째 품을 마친다.
제6품 찰나품(刹那品, Kṣaṇika-pariv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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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이렇게 청하였다 —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선서시여 저를 위하여, 온(蘊)·계(界)·처(處)의 나아감과 그침을 가르쳐 주소서. 아(我)가 있지 않다면 누구의 나아감이나 그침이 있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이들은 나아감과 그침에 의지하여, 괴로움의 다함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열반을 알지 못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여래장(如來藏)은 선함과 선하지 못함을 원인으로 하여 모든 태어남의 갈래를 짓는 것으로서 나아가되, 광대와 같이 갈래에 얽매이면서도 아(我)와 나의 것[我所]을 여읜 것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셋이 화합하는 조건의 작용이 나아간다. 그러나 외도들은 원인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어 깨닫지 못한다. 비롯함 없는 때로부터의 갖가지 희론(戱論)의 거친 습기로 배어 있는 것을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부르니, 무명(無明)의 습기의 자리에서 생겨난 일곱 가지 식(識)들과 함께, 큰 바다의 물결처럼 항상하여 끊어지지 않는 몸으로 나아가되, 무상함이라는 허물을 여읜 것으로서 아(我)를 주장함을 벗어나 지극히 본래 청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 밖의 식들, 곧 뜻[意]과 의식(意識) 등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으로서 찰나적인 것이니, 이 일곱 가지 식들도 모두 실답지 않은 두루 헤아림[分別]을 원인으로 하여 생겨난 특별한 형태와 모습이 화합함을 반연하며, 이름과 표상[名相]에 집착하고, 자기 마음이 나타낸 형색의 특징을 깨닫지 못하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고, 해탈의 원인이 되지 못하며, 이름과 표상이 일으키는 탐욕에서 생겨나 그것을 낳고 그것을 원인으로 반연하는 것이다. 그 취해진 감관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이 다하여 멸함으로써 곧바로 [다음 식이] 생겨나지 않을 때, 스스로의 분별하는 앎으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상(想)과 수(受)가 사라지는 성취[滅盡定]에 든 이들과 네 가지 선정과 진리와 해탈에 능숙한 요가행자들에게는, [식이] 나아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해탈이라는 생각이 있게 된다."
"그리고 여래장이라 일컬어지는 아뢰야식이 [아직] 돌이켜지지 않았을 때에는, 나아가는 일곱 가지 식들의 멸함이 있지 않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일곱 가지] 식들은 [여래장을] 원인과 반연으로 삼아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며, 모든 성문·연각과 외도의 요가행자들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人)의 무아(無我)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공통된 특징을 취함으로 말미암아, 온·계·처에 여래장이 나아간다. 오법(五法)의 자성과 법의 무아를 봄으로 말미암아 지위의 차례와 이어짐이 돌이켜짐에 따라 [식들이] 그친다. 다른 외도의 길의 견해로써는 살펴 헤아릴 수 없다. 이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지위[不動地]인 보살지에 자리 잡아, 열 가지 삼매의 즐거움의 문이라는 길들을 얻는다. 여러 부처님들이 삼매로써 지녀 주시어, 불가사의한 부처님 법인 스스로의 서원을 살펴봄으로써, 삼매의 즐거움이라는 실제(實際)에서 [완전한 열반에 드는 것을] 막으시니,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경지로 나아가 얻게 되는, 모든 성문·연각·외도와 공통되지 않는 요가의 길들로써 열 가지 성스러운 종성(種姓)의 길을 얻으며, 삼매의 지어감을 여읜 지혜로 이루어진 몸[智意成身]을 [얻는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특별한 뜻을 구하는 보살마하살들은 여래장이라 일컬어지는 아뢰야식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마하마띠여, 만일 아뢰야식이라 일컬어지는 여래장이 여기에 있지 않다면, 아뢰야식이라 일컬어지는 여래장이 있지 않을 때 나아감도 그침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이와 성인 모두에게 나아감과 그침이 있다. [보살들은]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경지를 보는 현재의 법의 즐거움에 머물러 지내며, 그 짐을 내려놓지 않는 요가행자들로서, [범부들은] 통달하기 어려운 이들이다. 마하마띠여, 이 여래장인 아뢰야식의 경계는, 모든 성문·연각과 외도의 사변적인 견해로 보건대는 본래 청정한 것임에도 마치 부정(不淨)한 것처럼 손님과 같은 번뇌에 물들어 그들에게 나타나 보이는 것이지, 여래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마하마띠여, 여래들에게는 [이것이] 마치 손바닥 위의 아말라 열매처럼 눈앞에 뚜렷한 경계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바로 내가 슈리말라(Śrīmālā) 왕비를 빌어 가르침의 경문에서 설한 것이며, 또한 다른 섬세하고 정묘하며 청정한 지혜를 지닌 보살들을 가피하여 [설한 것이니], 아뢰야식이라 일컬어지는 여래장이 일곱 가지 식들과 함께 나아감에 집착하는 성문들에게 법무아(法無我)를 보여주기 위하여, 슈리말라 왕비를 가피하여 여래의 경계를 설한 것이지, 성문·연각과 다른 외도의 사변의 경계가 아니다. 다만 마하마띠여, 여래의 경계일 뿐인 이 여래장인 아뢰야식의 경계는, 그대와 같이 섬세하고 정묘한 지혜로 [법을] 분별하는 보살마하살들과, 뜻[義]에 의지하는 이들의 것이지, 말해진 그대로의 가르침의 경문에 집착하는 모든 다른 외도와 성문·연각들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그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은 이 여래장인 아뢰야식을 모든 여래의 경계로서 두루 아는 데에 힘써야 하며, 다만 들은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여래들의 [태]장(藏, garbha)은 일곱 가지 식(識)들과 함께하여 나아가며, 둘 아닌 것이로되 취함으로 말미암아 [나아가고], 두루 앎으로 말미암아 그친다. (6품 1송)
비롯함 없는 [때로부터의] 분별로 닦여진 마음[心]은 그림자와 같이 나타나 보이니, 있는 그대로 자세히 보는 이에게는 대상의 모습[相]일 뿐이요 대상은 있지 않다. (6품 2송)
마치 어리석은 이가 손가락 끝을 [보되] 달을 붙잡지 못하듯이, 이와 같이 문자에 집착한 이는 나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6품 3송)
마음[心]은 광대처럼 춤추며 뜻[意]은 어릿광대와 같고, 다섯 가지 식(識)들과 함께한 [의]식(識)은 무대처럼 보이는 것을 두루 헤아린다. (6품 4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이렇게 청하였다 —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선서시여 저를 위하여, 오법(五法)과 자성(自性)과 식(識)과 두 가지 무아(無我)로 나뉘는 갈래의 특징을 가르쳐 주소서. 이 두 가지 무아로 나뉘는 갈래의 특징으로써,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모든 지위의 차례와 이어짐에서 이 법들을 밝게 알아, 그 법들로써 모든 부처님 법에 들게 되고, 모든 부처님 법에 듦으로써 마침내 여래의 스스로 증득한 지위에 들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오법과 자성과 식과 두 가지 무아로 나뉘는 갈래의 특징을 그대에게 설하리라. 이른바 이름[名]과 표상[相]과 분별(分別)과 정지(正智)와 진여(眞如)이니, [이로써] 여래의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경지에 들어감이, 항상함과 단멸과 있음과 없음의 견해를 여읜, 현재의 법의 즐거움에 드는 삼매의 즐거운 머묾으로서 요가행자들에게 나타나 이루어진다. 마하마띠여, 오법과 자성과 식과 두 가지 무아, 그리고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과 바깥 존재의 있음과 없음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분별이 나아가나 성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분별이 나아가고 성인들에게는 그러하지 않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이들은 이름과 생각[想]과 언어에 대한 집착으로 마음을 따라간다. [마음을] 따라가면서 갖가지 특징을 시설함으로써 아(我)와 나의 것[我所]이라는 견해에 떨어진 뜻으로 [사물의] 다채로운 광채에 집착한다. 집착하면서 무지에 뒤덮여 물들며, 물든 채로 탐욕[貪]·성냄[瞋]·어리석음[癡]에서 생겨나는 업을 짓는다. 짓고 나서는 마치 누에고치를 짓는 벌레처럼 거듭거듭 스스로의 분별로 자신을 둘러싸고서 갈래라는 바다와 광야에 떨어져, 두레박의 기계처럼 [멈추지 못하고] 나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법이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환술과 아지랑이와 물속의 달과 같은 자성으로 헤아려진 것이며, 아(我)와 나의 것을 여읜 것이고, 실답지 않은 분별에서 일어난 것이며, 표지와 특징을 여읜 것이고, 무너짐과 생겨남과 머묾과 나아감을 벗어난 것이며, 자기 마음이 나타낸 분별에서 생겨난 것이지 자재천(自在天)이나 시간[時]이나 미진(微塵)이나 근본물질[勝性]에서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이들은 이름과 표상에 휩쓸려 표상을 따라간다."
"마하마띠여, 그 가운데 표상[相]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안식(眼識)에 나타나는 색(色)이라는 생각이니, 이와 같이 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소리·냄새·맛·닿임·법(法)이라는 생각, 이를 표상이라 나는 말한다. 마하마띠여, 그 가운데 분별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이름을 일컫는 것이니, '이 표상을 드러내는 이것은 이러하지 저러하지 않다'라고 코끼리·말·수레·보병·여자·남자 등이라는 생각으로 그 분별이 나아간다. 마하마띠여, 정지(正智)란 무엇인가? 이른바 이름과 표상을 얻을 수 없음이니, 서로 손님과 같은 것이기에 식(識)이 나아가지 않으며,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아서 모든 외도·성문·연각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기에 정지라 일컫는다. 또한 마하마띠여, 이 정지로써 보살마하살은 이름을 실재화하지도 않고 표상을 실재화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더함[增益]과 덜함[損減]이라는 두 극단의 그릇된 견해를 여읜, 이름과 표상이라는 뜻에 대해 [식이] 나아가지 않는 식(識)이다. 이와 같이 나는 이를 진여(眞如)라 말한다. 마하마띠여, 진여에 자리 잡은 보살마하살은 형상 없음의 경계를 얻음으로써 환희지(歡喜地)라는 보살지를 얻는다."
"그는 환희지라는 보살지를 얻고 나서, 모든 외도의 악한 갈래에서 돌이켜져 세간을 벗어난 법의 갈래에 두루 들어가며, 특징을 익히 앎으로써 환술 등을 앞세운 모든 법의 갈래를 밝게 알아,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법의 갈래의 특징을 [터득하고], 사변적 견해를 벗어난 흥취를 지니고서 차례로 나아가 마침내 법운지(法雲地)에 이른다. 법운지 이후로는 삼매의 힘과 자재함과 신통으로 꽃피운 여래의 지위를 얻는다. 그는 [그 지위를] 얻고 나서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갖가지 변화의 광명으로 마치 물속의 달처럼 빛나며, 여덟 갈래[八分]로 잘 갖추어진 법으로써 갖가지 믿음과 이해에 따라 중생들을 위해 법을 가르치니, 그 몸은 뜻과 의식의 나타남을 여읜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진여에 들어감으로써 보살마하살들이 얻는 것이다."
마하마띠가 다시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오법(五法) 안에는 세 가지 자성이 포섭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세 가지 자성은] 별개의 특징으로 성립된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바로 여기에 세 가지 자성이 포섭되어 있으며, 여덟 가지 식과 두 가지 무아도 [포섭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이름[名]과 표상[相]은 두루 계탁된 자성[遍計所執性]으로 알아야 한다. 마하마띠여, 그것을 의지처로 하여 나아가는 분별로서 마음[心]과 마음의 작용[心所]이라 일컬어지며, 동시에 때에 맞추어 일어나되 마치 해가 빛살들과 함께하듯이 갖가지 특징을 자성으로 하여 분별을 지니는 것, 이것을 마하마띠여,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는 자성이라 일컫는다. 정지(正智)와 진여는, 마하마띠여, 무너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원성실성(圓成實性)이라는 자성으로 알아야 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에 집착함으로써 분별은 여덟 가지로 나뉜다. 표상이 실답지 않은 특징으로 두루 계탁된 것이기에, 아(我)와 나의 것[我所]을 취하는 두 가지가 그침으로 말미암아 두 가지 무아가 생겨난다. 마하마띠여, 이 오법 안에 모든 부처님 법이 포섭되어 있으며, 성문·연각·보살의 지위의 나뉨과 이어짐도, 여래들의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지혜로 들어감도 [포섭되어 있다]."
"또한 마하마띠여, 오법(五法)이란 표상[相]·이름[名]·분별(分別)·진여(眞如)·정지(正智)이다. 마하마띠여, 그 가운데 표상이란 무엇인가? 형태와 모습과 특별한 형상과 색(色) 등의 특징이 나타나 보이는 것, 이것이 표상이다. 그 표상에서 항아리 등이라는 생각이 지어져 '이는 이러하지 저러하지 않다'라고 하는 것, 이것이 이름이다. 그 이름을 일컫는 것, 표상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는 같은 법이다'라고 하는 것, 이것을 마하마띠여, 마음과 마음의 작용이라 일컬어지는 분별이라 한다. 이름과 표상이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임은, 지혜가 다함으로 말미암아 서로 경험되지 않고 두루 계탁되지 않은 것이기에 이 법들의 진여라 한다. 진실하고 실다우며 확정되고 궁극이며 본성이자 자성으로서 얻을 수 없는 것, 이것이 여여(如如)한 특징이다. 나와 다른 여래들이 [이를] 따라 증득하여 있는 그대로 가르치고 시설하며 드러내고 밝히었으니, 그것을 따라 증득하여 바르게 깨달음으로써 끊어짐과 항상함으로부터 분별이 나아가지 않아,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지혜에 수순하며 외도의 편[黨]과 다른 편인 성문·연각의 갈래의 특징[에 떨어지지 않는 것], 이것이 정지(正智)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오법이다. 바로 이 안에 세 가지 자성과 여덟 가지 식과 두 가지 무아와 모든 부처님 법이 포섭되어 있다. 마하마띠여, 여기에서 그대는 스스로의 지혜의 능숙함을 지어야 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짓게 해야 하니, 남에 의해 이끌리는 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오법(五法)과 자성(自性)과 여덟 가지 식(識), 그리고 두 가지 무아(無我), 이것이 대승(大乘)을 온전히 포섭함이 된다. (6품 5송)
이름[名]과 표상[相]과 분별(分別)은 두 가지 자성[遍計所執性·依他起性]의 특징이며, 정지(正智)와 여여함[眞如]은 원성실성(圓成實性)의 특징이다. (6품 6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가르침의 경문에서 '여래들은 강가 강의 모래알과 같이 과거·미래·현재에 [무수히 있다]'고 말씀하신 것, 세존이시여 이는 말해진 그대로의 뜻으로 취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어떤 특별한 뜻이 있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그것을 말씀해 주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말해진 그대로의 뜻으로 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강가 강의 모래알의 헤아림으로써 삼세(三世)의 부처님의 헤아림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세간을 뛰어넘음으로 말미암아, 마하마띠여, 비유란 비유 아닌 것이니 닮음과 닮지 않음 때문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여래·응공·정등각들은 닮음과 닮지 않음이라는, 세간을 뛰어넘은 비유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마하마띠여, 이는 내가, 그리고 저 여래들이 비유로써만 든 것이다. '강가 강의 모래알과 같이 여래·응공·정등각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항상함과 무상함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범부들, 외도의 뜻과 그릇된 견해에 매인 이들, 생사(生死)의 존재의 바퀴를 따르는 이들을 두렵게 하여 — '어찌하여 이들은 존재의 갈래라는 바퀴의 좁은 길에서 두려워하며 특별한 뜻을 구하는 이들이 되어 특별함을 얻으려 애쓰지 않는가'라고 — 부처가 되기 쉬움을 보이기 위한 것이며, 또한 여래들의 출현이 우담바라 꽃과 같지 않다고 하여 정진을 시작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가르침의 경문에서는 내가 교화받을 중생들을 헤아려 '여래들은 우담바라 꽃처럼 만나기 지극히 어려운 출현이다'라고 설하였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우담바라 꽃은 누구에게도 이전에 보인 적이 없어 [앞으로도] 보이지 않을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여래들은 세간에서 [실제로] 보였고 지금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스스로의 이치를 세우는 논의에 의거하여 '여래들은 우담바라 꽃처럼 만나기 지극히 어려운 출현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스스로의 이치를 세우는 논의를 가르칠 때에는, 세간을 뛰어넘은 비유들이 마땅하게 지어지니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리석은 범부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될 것이다.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지혜의 경계에서는 비유가 나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여래들은 진실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비유가 세워지지 않는다."
"다만 마하마띠여, 이는 비유로서만 지어진 것이니, 이른바 '강가 강의 모래알과 같은 여래들'이라 함은 [모래알들이] 같아서 다르지 않고 두루 헤아리거나 분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마하마띠여, 강가 강의 모래알이 물고기·거북이·돌고래·악어·물소·사자·코끼리 등에 의해 흔들려도 '우리가 흔들리는가 아닌가' 두루 헤아리거나 분별하지 않으며, 분별없이 맑고 때를 여읜 것과 같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여래·응공·정등각들의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지혜라는 강가의 큰 강물의 힘과 신통과 자재함이라는 모래알들은, 모든 외도와 어리석은 물고기들인 다른 논사들에 의해 흔들려도 두루 헤아리거나 분별하지 않는다. 여래들은 예전의 서원으로 말미암아 중생들의 모든 즐거움의 성취를 원만하게 하려 하나 [그것에 대해서도] 두루 헤아리거나 분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래들은 강가 강의 모래알과 같이 차별이 없으니, 좋아함과 미워함을 여읜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마하마띠여, 강가 강의 모래알이 땅의 특징을 자성으로 함으로써 땅이니, 겁화(劫火)에 불타더라도 땅의 자성을 버리지 않는 것과 같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땅은 불의 요소[火大]에 매인 것이 아니므로 불타지 않으니, 다만 어리석은 범부들이 진실 아닌 것에 떨어진 이어짐으로 인해 불탄다고 두루 헤아릴 뿐이며, [실은] 불타지 않으니 그것이 불의 원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여래들의 법신(法身)은 강가 강의 모래알과 같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마하마띠여, 강가 강의 모래알이 헤아릴 수 없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여래들의 빛살의 광명은 헤아릴 수 없어서,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한 채근으로 말미암아 모든 부처님 대중의 모임에 여래들에 의해 두루 퍼진다. 마치 마하마띠여, 강가 강의 모래알이 모래알이 아닌 다른 자성을 일으키지 않고 모래알의 상태 그대로 모래알이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여래·응공·정등각들에게는 생사(生死)에 나아감도 그침도 있지 않으니, 존재의 나아감의 원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마치 마하마띠여, 강가 강의 모래알을 덜어내어도 [그 수를] 알 수 없고 더하여도 [그 수를] 알 수 없듯이, 마하마띠여, 이와 마찬가지로 여래들의 지혜는 중생을 성숙시키는 작용으로도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으니, 법(法)에는 몸[身]이 없기 때문이다. 마하마띠여, 몸을 지닌 것에는 무너짐이 있으나 몸을 지니지 않은 것에는 그렇지 않으며, 법에는 몸이 없다. 마치 마하마띠여, 강가 강의 모래알이 버터기름이나 참기름을 구하는 이들에 의해 짜여도 버터기름이나 참기름 등을 여읜 것이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여래들은 중생의 괴로움에 짓눌려도 법계(法界)의 자재함이라는 서원의 즐거움을 버리지 않으니, 마하마띠여, 큰 자비[大悲]를 갖추었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이 [아직]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은 한 여래들도 [그러하다]. 마치 마하마띠여, 강가 강의 모래알이 물이 없어도 [흐르는 것이 아니라] 물의 흐름에 따라 흐르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여래들의 모든 부처님 법의 가르침은 열반의 흐름에 수순하여 나아간다. 그러므로 '강가 강의 모래알과 같은 여래들'이라 일컫는 것이다. 마하마띠여, 이는 [생사에] 나아간다는 뜻으로 여래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나아간다는 뜻은 무너짐이 된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생사(生死)의 최초의 끝은 알려지지 않는다. 알려지지 않는 것을 어찌 나아간다는 뜻으로 가르치겠는가? 마하마띠여, 나아간다는 뜻은 단멸(斷滅)이니, 어리석은 범부들은 이를 잘 알지 못한다."
마하마띠가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만일 생사(生死)를 윤회하는 중생들에게 최초의 끝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중생들에게 해탈이 알려지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비롯함 없는 때로부터의 희론(戱論)의 거친 습기인 분별을 원인으로 하는 것이 그치고, 자기 마음이 나타낸 바깥 대상임을 두루 앎으로 말미암아 분별의 의지처가 돌이켜짐[轉依], 마하마띠여, 이것이 해탈이지 없어짐[斷滅]이 아니다. 그러므로 '끝이 없다'는 말은, 마하마띠여,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다. 마하마띠여, [생사에] 끝이 없다는 것은 다만 분별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별 이외의 어떤 다른 중생이라는 것도 있지 않으니, 안으로든 밖으로든 지혜로써 살펴보아도 [그러하다]. 마하마띠여, 지혜[能知]와 알려지는 것[所知]을 여읜 것이 모든 법이다. 다만 자기 마음의 분별을 두루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나아가나, 그것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그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강가 강의 모래알과 같은 인도자[導師]들을 보는 이들, 무너짐도 나아감도 없는 궁극에 이른 이들을 보는 그들이야말로 여래들을 보는 것이다. (6품 7송)
강가 강의 모래알이 모든 허물을 여의고 물의 흐름에 수순하여 항상하듯이, 이와 같이 부처님의 부처됨[佛性]도 그러하다. (6품 8송)
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선서시여, 여래·응공·정등각이시여, 모든 법의 찰나에 무너짐과 그것들이 무너지는 특징을 가르쳐 주소서.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모든 법은 찰나적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모든 법, 모든 법'이라 함은 이른바 선함과 선하지 못함, 지어진 것[有爲]과 지어지지 않은 것[無爲], 세간과 세간을 벗어난 것, 허물 있음과 허물 없음, 번뇌 있음과 번뇌 없음[有漏·無漏], 취해진 것과 취해지지 않은 것이다. 마하마띠여, 간략히 말하면 다섯 가지 취함의 무더기[五取蘊]는 마음[心]·뜻[意]·의식(意識)의 습기를 원인으로 하니, 마음·뜻·의식의 습기로 자란 어리석은 범부들에 의해 선함과 선하지 못함으로 두루 계탁된다. 마하마띠여, 삼매의 즐거움의 성취들은 현재의 법의 즐거움에 머무는 상태로서 성인들의 것이므로 선하고 번뇌 없는 것이라 일컬어진다. 마하마띠여, 선함과 선하지 못함이란 이른바 여덟 가지 식(識)이다. 무엇이 여덟인가? 이른바 여래장(如來藏)이라 일컬어지는 아뢰야식과 뜻[意]과 의식(意識), 그리고 외도들에 의해서도 일컬어지는 다섯 가지 식의 무리[五識身]이다. 마하마띠여, 그 가운데 다섯 가지 식의 무리는 의식과 함께하여, 선함과 선하지 못함이라는 특징이 서로 이어지되 구별되며, 이어짐과 결합으로는 몸이 나뉘지 않은 채 나아가면서 나아간다. 그리고 나아가고서는 무너진다.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임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앞의 식이] 곧바로 멸함에 뒤이어 다른 식이 나아간다. 형태와 특별한 모습을 취하는 의식(意識)은 다섯 가지 식의 무리와 함께 상응하여 나아가되 찰나의 순간에도 머물지 않으니, 이를 나는 찰나적이라 말한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여래장이라 일컬어지는 아뢰야식은 뜻과 함께하여, 나아가는 식들의 습기로는 찰나적이나 번뇌 없는 습기로는 찰나적이지 않다. 그러나 어리석은 범부들은 찰나론에 집착하여 모든 법의 이 찰나적임과 찰나적이지 않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것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단멸의 견해로써 지어지지 않은 법조차도 없애버리게 될 것이다. 마하마띠여, 다섯 가지 식의 무리는 생사에 윤회하지 않으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지 않고 열반의 원인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여래장은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는 원인과 함께하여, 네 가지 습기에 흠뻑 젖어 나아가고 그친다. 그러나 찰나론이라는 견해의 분별에 습기 배인 뜻을 지닌 어리석은 이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다."
"또한 마하마띠여, 오래도록 겁(劫)이 다하도록 머무는 것으로서, 금강(金剛)과 부처님의 사리[佛骨]와 같은 특별한 얻음은 무너지지 않는다. 만일 마하마띠여, 현관(現觀)으로 증득함이 찰나적이라면 성인들이 성인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인들이 성인 아니게 되는 일은 있지 않다. 마하마띠여, 금[金]과 금강(金剛)은 오래도록 겁이 다하도록 머물러도 저울에 달면 줄지도 늘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찌하여 안과 밖의 모든 법에 대해 숨은 뜻[密意]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한 어리석은 이들이 찰나라는 뜻으로 [그것들을] 분별하는가?"
마하마띠가 다시 여쭈었다 — "세존께서 '여섯 가지 바라밀(波羅蜜)을 원만히 함으로써 부처됨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것, 그 여섯 가지 바라밀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원만함에 이르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이 바라밀에는 세 가지 나뉨이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세간의 것과 세간을 벗어난 것과 가장 세간을 벗어난 것이다. 마하마띠여, 그 가운데 세간의 바라밀은 아(我)와 나의 것[我所]을 취하는 집착에 사로잡혀, 두 극단을 취하며 갖가지 존재로 태어나는 감관과 대상을 위하여 색(色) 등의 대상을 바라는 이들이 보시바라밀을 원만히 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이들은 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般若)바라밀을 원만히 하며, 신통을 이끌어내어 범천(梵天)이 되고자 한다. 그 가운데 세간을 벗어난 바라밀로써 성문·연각은 열반을 취하는 뜻에 떨어져, 마치 어리석은 이들이 자신의 즐거움인 열반을 바라듯이 보시 등에 힘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가장 세간을 벗어난 것은,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일 뿐인 분별을 취함으로부터, 자기 마음의 두 가지[能取·所取]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나아가지 않아, 취함과 붙잡음이 있지 않음으로써, 자기 마음의 색(色)의 특징에 집착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하여 보시바라밀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는 보살마하살들과 궁극의 요가행자들의 것이다. 바로 그 반연[所緣]에서 분별이 나아가지 않음을 계율로 지니는 것, 이것이 지계바라밀이다. 취해지는 것과 취하는 것을 두루 앎으로써 바로 그 분별이 나아가지 않음을 견뎌내는 것, 이것이 인욕바라밀이다. 밤낮으로 요가에 수순하는 봄으로써 분별이 돌이켜짐에 힘쓰는 정진, 이것이 정진바라밀이다. 분별이 그침으로 말미암아 외도의 열반이라는 집착에 떨어지지 않는 것, 이것이 선정바라밀이다. 그 가운데 반야바라밀이란, 자기 마음의 분별이 있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두루 살핌으로써 자세히 살피어 두 극단에 떨어지지 않아 의지처가 돌이켜짐[轉依]으로 예전의 업이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경지를 얻기 위하여 힘쓰는 것, 이것이 반야바라밀이다. 마하마띠여, 이것이 바라밀들이니 이것이 바라밀의 뜻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지어진 것[有爲]을 공(空)하고 무상하며 찰나적이라고 어리석은 이들은 두루 헤아리니, 강물과 등불과 씨앗의 비유로써 찰나라는 뜻을 분별한다. (6품 9송)
작용이 없고 여읜 것이며 다함을 여읜 것, 그리고 법들의 생겨나지 않음, 이를 나는 찰나라는 뜻이라 말한다. (6품 10송)
생겨남 바로 뒤의 무너짐을, 나는 실로 어리석은 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으니, [다만] 존재들의 끊임없음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나아감에서 흔들릴 뿐이다. (6품 11송)
그 앎이 저 마음들이 함께 나아가게 하는 원인이니, [생겨남] 사이에 어떤 상태가 있어 색(色)이 아직 생겨나지 않는 것인가. (6품 12송)
곧바로 뒤이어 무너진 마음에서 다른 [마음]이 나아가니, 색(色)은 때에 머물지 않거늘 무엇을 반연하여 나아가겠는가. (6품 13송)
실답지 않음을 원인으로 하는 마음이 어디에서 나아가는 것인지 성립되지 않거늘, 어찌 그 찰나의 무너짐을 확정할 수 있으랴. (6품 14송)
요가행자들의 삼매의 성취와 금(金)과 부처님의 사리[佛骨]와 광음천(光音天)의 궁전들은, 세간의 원인으로부터 무너지지 않는다. (6품 15송)
[모든 지위에] 머묾과 증득되는 법들과 부처님들의 지혜의 원만함, 비구(比丘)됨과 서원[三昧耶]의 증득이 실로 눈앞에 보이거늘, 어찌 찰나적이라 하겠는가. (6품 16송)
건달바성(乾闥婆城)과 환술 등의 색(色)들이야말로 찰나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실답지 않은 것들과 실다운 것들, 그리고 어떤 실다운 것들은 손안에 든 것과 같다. (6품 17송)
이와 같이 능가경에서 찰나품(刹那品)이라 이름하는 여섯째 품을 마친다.
제7품 화신품(化身品, Nairmāṇika-pariv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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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다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아라한(阿羅漢)들에게도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수기(授記)하셨습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여래의 상태에서 완전한 열반의 법을 갖지 못한 이들입니다. 여래께서 무상정등각을 이루신 그 밤과 완전한 열반에 드신 그 밤 사이에, 세존께서는 단 한 글자도 말씀하지도 발설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여래들은 항상 선정에 들어 계시어 사유하지도 살피지도 않으시나, 변화한 몸들을 변화하여 지음으로써 그 [변화한 몸들]로써 여래의 할 일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식(識)들의 찰나찰나 서로 이어져 나뉘는 특징을 가르치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금강수(金剛手, Vajrapāṇi)는 항상 끊임없이 따라다닙니다. 또한 생사의 최초의 끝은 알려지지 않으면서도 완전한 열반은 알려집니다. 그리고 마라(魔)들과 마라의 업들과 업의 실타래가 있으며, 짠짜(Cañcā)라는 어린 바라문 여인과 순다리(Sundarī)와 출가한 여인 등이 [세존을 비방하였고], 마치 씻긴 발우 등과 같이, 세존이시여, [세존께도] 업의 장애가 나타나 보입니다. 그렇다면 세존께서는 허물을 끊지 않으신 채로 어찌 모든 형상을 아는 지혜[一切種智]를 얻으셨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남김없는 열반의 경계[無餘涅槃界]에 의거하며, 또한 보살행을 행하는 이들을 북돋기 위하여 [수기한 것이다]. 마하마띠여, 여기와 다른 부처님 세계들에는 보살행을 행하는 이들이 있으니, 성문승(聲聞乘)의 열반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성문승을 좋아함을 돌이키고 대승(大乘)의 갈래를 북돋우기 위하여, 변화하여 지은 성문들을 변화신(變化身)들로써 수기하는 것이지 법성(法性)의 부처님들로써 [수기하는 것이] 아니다. 마하마띠여, 이를 의거하여 성문에 대한 수기가 가르쳐진 것이다. 마하마띠여, 성문·연각들에게는 번뇌장(煩惱障)을 끊는 특별함이 있지 않으니 해탈이 한맛[一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소지장(所知障)을 끊음이 있지 않다. 마하마띠여, 소지장은 법무아(法無我)를 보는 특별함으로 말미암아 청정해진다. 그러나 번뇌장은 인무아(人無我)를 보는 익힘을 앞세워 끊어지니, 의식(意識)이 돌이켜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법의 장애로부터의 벗어남은 다시 아뢰야식의 습기가 돌이켜짐으로 말미암아 청정해진다. 예전의 법이 머무름에 의거하고, 예전에 없던 마지막 것이 있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다만 예전에 끊어진 그 글자들로써 사유하지도 살피지도 않고 법을 가르치니, 밝게 아는 지음[了知]과 잊지 않는 기억[不失念]으로 말미암아 사유하지도 살피지도 않는 것이며, 네 가지 습기의 자리를 끊었기 때문이고, 두 가지 흘러 옮김[死沒]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번뇌장과 소지장 두 가지를 끊었기 때문이다."
"마하마띠여, 뜻[意]·의식(意識)·안식(眼識) 등 일곱 가지는 찰나적이니, 습기를 원인으로 하고 선(善)하고 번뇌 없는 측면을 여읜 것으로서 생사에 윤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여래장(如來藏)은 열반과 즐거움과 괴로움을 원인으로 하여 윤회한다. 그러나 공(空)함에 어지럽혀진 뜻을 지닌 어리석은 범부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다. 마하마띠여, 금강수(金剛手)는 변화하여 지어진 여래들을 곁에서 따르는 것이지, 근본[本]의 여래·응공·정등각들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마하마띠여, 근본의 여래는 모든 헤아림[量]과 감관을 벗어난 것으로서 모든 어리석은 성문·연각·외도들의 것이다. 현재의 법의 즐거움에 머무는 이들은 현관(現觀)의 법과 지혜의 인(忍)으로써 그것[근본의 여래]에 다다른다. 그러므로 금강수는 그들을 따르지 않는다. 모든 변화하여 지어진 부처님들은 업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니, 그들 안에 여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과 다른 곳에 여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옹기장이가 [흙덩이 등을] 반연 삼아 일을 하듯이, [여래도] 중생의 일을 하며 특징을 갖춘 [모습으로] 가르치는 것이지, 스스로의 이치를 세우는 논의인 스스로 증득하는 성스러운 경지의 경계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범부들은 여섯 가지 식의 무리가 멸함으로써 단멸(斷滅)의 견해에 의지하니, 아뢰야식을 깨닫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항상하다는 견해를 지니게 된다. 마하마띠여, 스스로의 뜻의 분별에는 최초의 끝이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의 뜻의 분별이 돌이켜짐으로 말미암아 해탈이 알려진다. 네 가지 습기를 끊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허물을 끊게 된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세 가지 수레[三乘]와 수레 아님이 있으나 부처님들에게는 완전한 열반이 있지 않으니, [아라한들은] 모두 부처됨에 수기되었고 허물을 여읜 이들로서 가르쳐졌다. (7품 1송)
현관(現觀)의 궁극인 지혜와 남음 없는 [열반의] 갈래, 그리고 위축된 이들을 북돋움 — 이를 의거하여 [수기가] 가르쳐진 것이다. (7품 2송)
부처님들에 의해 일으켜진 지혜와 바로 그 부처님들에 의해 가르쳐진 길, 그것으로써 나아가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써가 아니니,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완전한 열반이 있지 않다. (7품 3송)
존재[有]와 욕망[欲]과 색(色)과 견해의 습기는 실로 네 가지이니, 의식(意識)에서 생겨나 아뢰야식과 뜻[意]에 머문다. (7품 4송)
의식(意識)과 안식(眼識) 등으로 말미암은 단멸(斷滅)과 무상함, 그리고 비롯함 없는 것[阿賴耶]으로 말미암은 항상함, 이것이 [뒤바뀐] 견해를 지닌 이들의 열반이다. (7품 5송)
이와 같이 능가경에서 화신품(化身品)이라 이름하는 일곱째 품을 마친다.
제8품 육식품(肉食品, Māṃsabhakṣaṇa-pariv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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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게송으로 세존께 여쭙고 나서 다시 청하였다 — "세존이시여, 여래·응공·정등각께서는 저를 위하여 육식(肉食)의 공덕과 허물을 가르쳐 주소서. 이로써 저와 다른 보살마하살들이, 미래와 현재의 때에 육식하는 중생의 갈래의 습기로 배어 있어 고기의 맛에 탐닉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맛에 대한 갈애를 끊게 하는 법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저 육식하는 중생들이 맛에 대한 갈애를 벗어나 법의 맛이라는 음식을 구함으로써, 모든 중생을 외아들처럼 사랑함을 따라 서로 큰 자비[大慈]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얻고서 모든 보살지에서 요가를 이루어 속히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이루거나, 혹은 성문·연각의 지위에서 쉬었다가 위없는 여래의 지위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존이시여, 세간론자[順世外道]의 견해에 사로잡혀 있음과 없음의 편에 [떨어져] 단멸(斷滅)과 항상함을 주장하는 다른 외도들조차도, 잘못 설해진 법으로써나마 고기를 먹는 것을 막고 스스로도 먹지 않습니다. 하물며 자비를 한맛[一味]으로 하시는 정등각이시며 뛰어난 세간의 구호자이신 [세존께서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런데 세존의 가르침에서는 고기를 스스로도 먹고, 먹는 것을 막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모든 세간을 가엾이 여기시고 모든 중생을 외아들처럼 평등하게 보시는 대자비하신 분이시여, 연민을 일으키시어 저를 위하여 육식의 공덕과 허물을 가르쳐 주소서. 그리하여 저와 다른 보살들이 그와 같이 중생들을 위해 법을 가르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하다면 마하마띠여, 들으라. 잘 그리고 지극히 잘 마음에 새기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은 세존의 말씀을 받들었다.
세존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까닭들로 말미암아 자비를 자성으로 하는 보살에게는 모든 고기가 먹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가운데 요점만을 그대에게 설하리라. 마하마띠여, 여기 이 오랜 길을 윤회하는 중생들 가운데, 예전에 어머니였거나 아버지였거나 형제였거나 자매였거나 아들이었거나 딸이었거나 혹은 어느 한쪽으로든 친족과 권속이었던 적이 없는, 얻기 쉬운 어떤 중생도 있지 않다. 다른 태어남에서 의지처가 바뀌어 짐승과 축생과 새의 태 안에 있게 된 그 친족을, 혹은 친족이었던 이를, 모든 존재를 자기 자신처럼 여기고자 하는 이가, 어찌 부처님 법을 구하는 보살마하살로서 모든 중생류에서 생겨난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는가? 마하마띠여, 나찰(羅刹)들조차도 여래들의 이 훌륭한 법을 듣고서 자애로운 마음을 지니게 되어 고기 먹기를 그치니, 하물며 법을 구하는 사람들이겠는가.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저러한 태어남의 바뀜 속에서 모든 중생이 친족과 권속이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니, 모든 중생을 외아들처럼 여기는 생각을 닦기 위하여 모든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자비를 자성으로 하는 보살에게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마하마띠여, [출처가] 뒤섞여 있음으로 말미암아서도 계행을 지니는 보살에게는 모든 고기가 먹지 못할 것이다. 마하마띠여, 개·나귀·낙타·말·소·사람의 고기 등은 세간에서도 먹지 못하는 고기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그것들이 저잣거리에서 양고기라 하여 값을 위해 팔리는 일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서도 마하마띠여, 보살에게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정혈(精血)에서 생겨난 것이기에, 청정하고자 하는 보살에게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뭇 생명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기에, 자애[慈]를 원하는 요가행자인 보살에게 모든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이를테면 마하마띠여, 마치 돔바족·짠달라족·어부 등 고기 먹는 중생들을 멀리서 보고서도 개들이 두려움으로 짖고 어떤 것들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니 '이들이 우리도 죽일 것이다'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하마띠여, 허공과 땅과 물에 의지해 사는 다른 미세한 생명들도, 고기를 먹는 이들을 멀리서 보고 예민한 코로 그 냄새를 맡으면 마치 나찰을 [만난] 사람처럼 재빨리 달아나며, 어떤 것들은 죽음의 의심마저 품는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뭇 생명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기에, 큰 자비[大慈]에 머무는 요가행자인 보살에게, 성인 아닌 이들이 즐기는 악취 나는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명예롭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성인들이 여의는 것이기에 보살에게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마하마띠여, 성인들은 선인(仙人)의 음식을 먹는 것이지 고기와 피를 음식으로 삼지 않으니, 이러한 까닭으로도 보살에게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호하고 가르침에 대한 비방을 피하고자 하는 이에게도, 자비를 자성으로 하는 보살에게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마하마띠여, 마치 세간에는 가르침을 비방하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는 것과 같다. [그들에게] 사문됨이 조금이라도 있으며, 하물며 바라문됨이 있겠는가? 그들은 예전 선인(仙人)들의 음식을 버리고 육식하는 자처럼 고기로 배를 가득 채우며, 허공과 땅과 물에 의지해 사는 미세한 생명들을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하면서 이 세간을 두루 다닌다. '그들에게는 사문됨이 무너졌고 바라문됨이 부서졌으며, 그들에게는 법도 없고 율도 없다'라고 하여, 갖가지로 미워하는 마음을 지닌 이들이 [그렇게] 가르침을 비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호하고 가르침에 대한 비방을 피하고자 하는 이에게도, 마하마띠여, 자비를 자성으로 하는 보살에게 모든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죽은 시체의 악취와 마찬가지로 [고기가] 역겨운 것이기에도 보살에게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마하마띠여, 죽은 사람의 고기가 불태워질 때와 그 밖의 다른 중생의 고기가 [불태워질 때], 냄새에 어떤 다름도 없다. 두 고기가 불태워질 때의 악취는 똑같다. 그러므로 마하마띠여, 청정하고자 하는 요가행자인 보살에게 모든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무덤가나 숲과 산림에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외딴 곳에서 눕고 앉아 지내며, 자애에 머무는 요가행자와 요가수행자들, 지명(持明)을 성취하고자 하는 지명자(持明者)들에게 [고기는] 지명의 성취와 해탈의 장애가 되는 것이기에, 그리고 대승(大乘)으로 나아가는 선남자·선여인들의 모든 요가의 성취에도 장애가 되는 것으로 자세히 살펴보는 이들, 곧 자신과 남의 이익을 바라는 이에게도, 마하마띠여, 보살에게 모든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또한 색(色)을 반연하는 식(識)의 조건이 되는 맛을 낳는 것이기에, 모든 존재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 자비로운 이에게 모든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천신들도 이를 멀리한다고 하여, 자비로운 이에게 모든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입은 바로 이 생에서도 지극히 악취가 나게 된다고 하여도, 마하마띠여, 자비로운 이에게 모든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다. [고기를 먹는 이는] 괴로이 잠들고 괴로이 깨어나며, 나쁘고 소름 끼치는 꿈들을 본다. 빈집에 홀로 외따로 지낼 때에는 사람 아닌 것들이 그의 정기(精氣)를 빼앗아간다.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때로는 소스라치기도 하며 까닭 없이 놀라기도 한다. 음식에서 알맞은 양을 알지 못하며, 먹고 마시고 씹고 씹지 않은 것이 바르게 맛으로 소화되어 자양이 되는 것 등을 이루지 못하고, 벌레와 기생충이 많고 문둥병의 원인이 되는 [나쁜] 몸속을 지니게 되어 병이 많아지며, 역겹다는 생각도 얻지 못한다. 마하마띠여, 아들의 고기를 약처럼 [비유하여] 음식을 가르친 나로서, 어찌 성인 아닌 이들이 즐기고 성인들이 여의는 것이며, 이처럼 많은 허물을 가져오고 많은 공덕을 여읜, 선인의 음식이 아닌 고기와 피의 음식을 제자들에게 허락하겠는가?"
"마하마띠여, 나는 [다음과 같이] 허락하였다 — 모든 성인들이 즐기고 성인 아닌 이들은 여의며 많은 공덕을 지니고 많은 허물을 여읜, 예전의 모든 선인들이 마련한 음식으로서 쌀·보리·밀·녹두·콩·렌즈콩 등과 버터기름·참기름·꿀·사탕수수즙·설탕·석밀(石蜜) 등에 갖추어진 음식은 허락할 만하다고. 그러나 마하마띠여, 미래의 때에 갖가지 율(律)의 분별을 말하며 육식하는 집안의 습기로 배어 있는, 맛에 대한 갈애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 훌륭한 음식을 [비방하여]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고기에 대한] 이 모든 금지는 예전의 승리자들에 의해 [수기의] 소임을 받고 선근(善根)을 심었으며 믿음이 두텁고 분별없는 이들이 많이 있는, 사꺄족의 가문에서 태어난 선남자·선여인들로서 모든 수레[乘]로 나아가는 이들, 무덤가에 머무는 이들, 자애에 머무는 이들, 숲에 사는 요가행자와 요가수행자들이, 모든 요가를 성취하고 모든 중생을 외아들처럼 여기는 생각을 닦기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마하마띠여, 예전에 있었던 일이니, 지난 세상에 시하사우다사(Siṃhasaudāsa)라는 이름의 왕이 있었다. 그는 고기 먹는 것에 지나치게 탐닉하며, 맛에 대한 갈애에 극도로 집착하여 마침내 사람의 고기까지 먹게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벗과 대신과 친족과 권속들에게조차 버림받았으니, 하물며 백성들에게서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나라와 영토를 버리게 되는 커다란 재앙을 고기로 말미암아 겪게 되었다.
또한 마하마띠여, 인드라(帝釋)도 천신들의 주인됨을 얻고서, 예전 태어남의 고기를 먹은 습기의 허물로 말미암아 매의 모습을 취하였고, [그때] 비슈바까르만(Viśvakarma)이 비둘기의 형상을 지니고서 [그를 시험하려] 다가온 일이 있었다. 그리고 [비둘기는] 저울에 자신을 올려놓았다. 그로 말미암아 허물없는 이를 가엾이 여긴 왕 시비(Śibi)가 큰 고통으로써 [자신의 살을 잘라 비둘기를 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마하마띠여, 여러 생을 거듭 닦은 천신들의 왕인 제석천(帝釋天)조차도 자신과 남에게 허물을 가져왔거늘, 하물며 다른 이들이겠는가.
또한 마하마띠여, 다른 왕들 중에도 말에 의해 [잡혀] 끌려가 숲속을 헤매다가 암사자와 교합하게 된 이들이 있었으니, 목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손을 낳았고, 사자와의 동거에서 이어진 깔마샤빠다(Kalmāṣapāda) 등의 왕자들은, 예전 태어남의 고기를 먹은 허물의 습기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왕이 되었으면서도 사람의 고기를 먹는 자들이 되었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바로 이 생에서도, 겨우 일곱 채의 오두막이 있는 마을에서조차 고기에 대한 지나친 탐닉으로 말미암아 [고기 먹기를] 익혀서, 사람의 고기를 먹는 무서운 다까(ḍāka)나 다끼니(ḍākinī)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태어남의 바뀜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고기 맛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사자·호랑이·표범·이리·승냥이·고양이·자칼·올빼미 등 고기를 많이 먹는 태에 [떨어지며], 그보다 더 많이 육식하는 이들은 나찰(羅刹) 등의 더욱 무서운 태에 떨어지게 된다. 그곳에 떨어진 이들은 괴로움으로써나마 [다시] 사람의 태를 만나게 되나, [완전한] 열반은 더더욱 아득하다. 마하마띠여, 이와 같은 것들이 고기를 미리 먹은 이들에게 생겨나는 허물이며, 반대로 [고기를 먹지 않으면] 더 많은 공덕이 있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어리석은 범부들은 이러한 것들과 다른 공덕과 허물을 깨닫지 못한다. 마하마띠여, 이와 같은 공덕과 허물을 봄으로 말미암아, 자비를 자성으로 하는 보살에게 모든 고기는 먹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만일 어느 누구도 어떻게든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그로 말미암아 [중생을] 죽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마하마띠여, 대개 값을 위하여 허물없는 중생들이 사소하고도 다른 까닭들로 죽임을 당한다. 마하마띠여, 참으로 애처로운 일이니, 맛에 대한 갈애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이들에 의해 사람의 고기조차 사람들에 의해 먹히거늘, 하물며 다른 짐승과 새와 중생에게서 난 고기이겠는가. 마하마띠여, 대개 고기 맛에 대한 갈애로 괴로워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이런저런 그물과 함정이 두루 놓이니, 사냥꾼·백정·어부 등이 허물없는 하늘을 나는 것과 땅을 다니는 것과 물에 사는 중생들을 값을 위하여 갖가지 방식으로 살육한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마치 나찰들처럼 [연민이] 사라진 무자비하고 거친 마음을 지닌 이들 — 중생을 중생이라 여기면서도 죽이고 먹는 이들에게는 어떠한 경우에도 연민이 생겨나지 않는다.
마하마띠여, '짓지 않고 시키지 않고 헤아리지 않은' 것이라 일컫는 고기 [따위는] 허락할 만한 것이 있지 않으니, 그것을 취하여 성문들에게 허락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미래의 때에 바로 나의 가르침에서 출가하여 사꺄족의 아들됨을 자처하며 가사(袈裟)라는 깃발을 지닌 이들 가운데, 그릇된 사유에 의해 마음이 상하고 갖가지 율(律)의 분별을 말하며 살가야견(薩迦耶見)에 매이고 맛에 대한 갈애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어, 이런저런 육식의 그럴듯한 근거를 얽어 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 대해 실답지 않은 비방을 할 것이라 여길 것이다. 그들은 이런저런 [경문의] 뜻이 일어난 연유를 [자기 나름대로] 헤아려 말할 것이다 — '이 연유에서 이러한 뜻이 일어난 것이니, 세존께서 육식을 허락할 만한 것으로 인정하셨다'라고. 그리고 훌륭한 음식들에 대해서도 '여래께서도 몸소 드셨다고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어떤 경에서도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허락한 적이 없으며, 훌륭한 음식들 가운데서도 [고기가] 허락할 만한 것으로 가르쳐진 적이 없다.
그러나 마하마띠여, 만일 내가 [고기를] 허락하고자 하였다면, 혹은 성문들에게 [고기가] 먹을 만한 것이 될 수 있었다면, 나는 자애에 머무는 요가행자와 요가수행자들, 무덤가에 머무는 이들, 대승(大乘)으로 나아가는 선남자·선여인들이 모든 중생을 외아들처럼 여기는 생각을 닦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육식을 금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 그렇게] 금지하였다. 마하마띠여, 이는 법을 구하는 선남자·선여인들과, 모든 수레로 나아가는 이들과, 무덤가에 머무는 이들과, 자애에 머무는 이들과, 숲에 사는 요가행자와 요가수행자들이 모든 요가를 성취하고 모든 중생을 외아들처럼 여기는 생각을 닦기 위하여, 모든 고기를 금지한 것이다.
이런저런 가르침의 경문에서 계학처(戒學處)들을 차례로 묶어 사다리의 단[段]을 놓는 방편으로 삼분(三分)을 세워 [단계적으로] 금지되었지, [처음부터] 그것을 겨냥하여 [모두] 지어진 것이 아니다. 그로부터 나아가 자연히 죽은 열 가지 고기들도 [단계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여기 이 경에서는, 남김없이 모든 방식으로 방편 없이 모든 것이 금지된다. 마하마띠여, 그러므로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육식을 허락한 적이 없고, 허락하지 않으며,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마하마띠여, 출가한 이들에게 육식은 허락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 마하마띠여, '여래께서도 몸소 드셨다'고 하여 나에 대해 [그릇된] 이야기를 지어낼 것이나, 그것은 다른 어리석은 사람들, 스스로의 업의 허물이라는 장애에 뒤덮인 이들에게 오랜 밤 동안 이익 없고 해로운 결과가 될 것이다. 마하마띠여, 성스러운 성문들도 세속 사람의 음식을 먹지 않거늘, 하물며 고기와 피의 음식이 허락될 것이겠는가. 마하마띠여, 나의 성문과 연각과 보살들은 법(法)을 음식으로 삼는 것이지 음식물[飮食]을 음식으로 삼지 않으니, 하물며 여래들이겠는가. 마하마띠여, 여래들은 법신(法身)으로서 법을 음식으로 삼아 머무는 것이지 음식물을 몸으로 삼지 않으며, 모든 음식물에 머무는 것이 아니니, 모든 존재의 자량(資糧)에 대한 갈애와 추구의 습기를 토해내었고, 모든 번뇌의 허물의 습기를 여의었으며, 마음과 반야가 잘 해탈되었고, 일체를 아는 이이며 일체를 보는 이로서, 모든 중생을 외아들처럼 평등하게 보는 대자비하신 분들이다. 마하마띠여, 모든 중생을 외아들이라 여기는 나로서, 어찌 나의 아들의 고기를 성문들에게 먹도록 허락하겠으며, 하물며 스스로 먹겠는가? '[여래가] 성문들에게 허락하였다' 혹은 '스스로 드셨다'고 하는 것, 마하마띠여,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술과 고기와 파[菜蔥]를 나는 먹지 않으리니, 위대한 성인이시여, 말씀하시는 보살마하살들과 뛰어난 승리자들도 [그러하다]. (8품 1송)
성인 아닌 이들이 즐기고 악취 나며 명예롭지 못하게 하는, 육식하는 자의 음식인 고기를, 위대한 성인이시여, 먹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소서. (8품 2송)
먹을 때에 있는 허물들과 먹지 않을 때에 있는 공덕들, 마하마띠여, 그대는 육식에 있는 그 허물들을 알라. (8품 3송)
친족임과 [출처가] 뒤섞임과 정혈(精血)에서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뭇 생명들을 두렵게 하는 고기를 요가행자는 여의어야 한다. (8품 4송)
고기들과 파와 갖가지 술들, 그리고 부추와 마늘을, 요가행자는 항상 여의어야 한다. (8품 5송)
기름을 바름을 여의어야 하며, 화살에 찔린 이들 옆에서 잠들지 않아야 하고, 중생들의 구멍구멍에 큰 두려움이 되는 자리도 [피해야 한다]. (8품 6송)
음식으로부터 교만이 생겨나고 교만에서 분별이 생겨나며, 분별에서 태어난 탐욕[貪]이 있으니, 그러므로도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다. (8품 7송)
분별로부터 탐욕[貪]이 생겨나고 마음은 탐욕으로 미혹되니, 미혹된 이에게는 집착이 생겨나 [윤회에] 태어날 뿐 벗어나지 못한다. (8품 8송)
이익을 위해 중생이 죽임을 당하고 고기를 위해 재물이 주어지니, 이 두 악업을 지은 자는 규환지옥(叫喚地獄) 등에서 삶아진다. (8품 9송)
성인의 말씀을 어기고서 고기를 먹는 어리석은 자는, 사꺄의 가르침에 출가하고서도 두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이 된다. (8품 10송)
그들 악업을 지은 자들은 지극히 무서운 지옥으로 나아가니, 고기를 먹는 자들은 규환지옥 등의 무서운 곳에서 삶아진다. (8품 11송)
삼분(三分)으로 청정한 고기 — [직접] 짓지 않고 청하지 않고 부추기지 않은 것 — 란 실로 있지 않으니, 그러므로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한다. (8품 12송)
요가행자는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하니, 나와 부처님들에 의해 꾸짖어진 것이며, 서로를 잡아먹는 중생들은 육식하는 종족에서 생겨난다. (8품 13송)
악취 나고 천대받으며 미치광이가 되어, 짠달라족과 뿍까사족과 돔바족의 집안에 거듭거듭 태어나게 된다. (8품 14송)
다끼니(ḍākinī)의 태와 고기를 먹는 집안에 태어나며, 나찰녀(羅刹女)와 고양이의 태에 그 저열한 사람이 태어나게 된다. (8품 15송)
「상협경(象腋經)」과 「대운경(大雲經)」, 「열반경(涅槃經)」과 「앙굴마라경(鴦掘摩羅經)」과 이 「능가경(楞伽經)」에서 나는 고기를 물리쳤다. (8품 16송)
부처님들과 보살들과 성문들에 의해 꾸짖어졌으니, 만일 부끄러움 없이 [고기를] 먹는다면 항상 미치광이로 태어나게 된다. (8품 17송)
고기 등을 먹는 것을 여읨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바라문의 집안이나 요가행자의 종족에 태어나, 지혜롭고 재물을 지니게 된다. (8품 18송)
보고 듣고 의심되는 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고기를 물리쳐야 하니, 육식하는 종족에서 생겨난 사변가(思辨家)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다. (8품 19송)
마치 탐욕[貪]이 해탈의 장애가 되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고기와 술 등도 장애가 된다. (8품 20송)
미래의 때에 고기를 먹는 어리석은 말을 하는 자들이 말하리니, '고기는 허락된 것이며 허물없는 것으로 부처님들께서도 칭찬하셨다'고. (8품 21송)
약으로서의 고기 음식은 다시 아들의 고기에 비유되는 것이니, 요가행자는 알맞은 양으로 역겨움을 [알며] 걸식의 덩이를 행해야 한다. (8품 22송)
자애에 항상 머무는 이들에게 [고기는] 모든 방식으로 나에 의해 꾸짖어진 것이니, [고기를 먹는 자는] 사자·호랑이·이리 등과 함께 한곳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8품 23송)
그러므로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고기를 먹지 않아야 하니, 해탈의 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며, 이것이 실로 성인들의 깃발이다. (8품 24송)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 말씀의 핵심인 능가경에서 육식품(肉食品)이라 이름하는 여덟째 품을 마친다.
제9품 다라니품(陀羅尼品, Dhāraṇī-pariv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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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언陀羅尼의 구절들은 뜻을 번역하지 않고 산스크리트 음 그대로 옮기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므로, 아래 진언 부분은 로마자 표기 그대로 둔다.)
그때 세존께서는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 "마하마띠여, 그대는 이 능가경에서 과거·미래·현재의 부처님 세존들께서 말씀하셨고 말씀하시며 말씀하실 진언(眞言)의 구절들을 받아 지니라. 나도 지금 법을 설하는 이들을 거두어 지키기 위하여 [이를] 말하리라. 이와 같다 —
tuṭṭe tuṭṭe / vuṭṭe vuṭṭe / paṭṭe paṭṭe / kaṭṭe kaṭṭe / amale amale / vimale vimale / nime nime / hime hime / vame vame / kale kale / kale kale / aṭṭe maṭṭe / vaṭṭe tuṭṭe / jñeṭṭe spuṭṭe / kaṭṭe kaṭṭe / laṭṭe paṭṭe / dime dime / cale cale / pace pace / bandhe bandhe / añce mañce / dutāre dutāre / patāre patāre / akke akke / sarkke sarkke / cakre cakre / dime dime / hime hime / ṭu ṭu ṭu ṭu / ḍu ḍu ḍu ḍu / ru ru ru ru / phu phu phu phu / svāhā.
마하마띠여, 이것이 대승경(大乘經)인 이 능가경에서의 진언의 구절들이다. 마하마띠여,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든 이 진언의 구절들을 받아 지니고 마음에 새기며 읽고 외운다면, 천신이나 천녀나 용이나 용녀나 야차나 야차녀나 아수라나 아수라녀나 가루다나 가루다녀나 긴나라나 긴나라녀나 마후라가나 마후라가녀나 건달바나 건달바녀나 부다(部多)나 부다녀나 꿈반다나 꿈반다녀나 삐샤짜나 삐샤짜녀나 오스따라까나 오스따라끼나 아빠스마라나 아빠스마리나 나찰이나 나찰녀나 다까나 다끼니나 정기(精氣)를 빼앗는 자나 그 여성형이나 까따뿌따나나 까따뿌따니나 사람 아닌 것이나 그 여성형이든, 그들 모두는 [그를 침범할] 틈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만일 삿된 것에 사로잡히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이 [진언을] 백여덟 번 외워 가피를 준 것으로써 [그 삿된 것은] 울고 부르짖으며 어느 방향인가를 보고서 [그곳으로] 떠나가게 될 것이다.
또한 마하마띠여, 다시 다른 진언의 구절들을 말하리라. 이와 같다 —
padme padmadeve / hine hini hine / cu cule culu cule / phale phula phule / yule ghule yula yule / ghule ghula ghule / pale pala pale / muñce muñce muñce / chinde bhinde bhañje marde pramarde dinakare svāhā.
마하마띠여,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든 이 진언의 구절들을 받아 지니고 마음에 새기며 읽고 외운다면, 그에게는 천신이나 천녀나 용이나 용녀나 야차나 야차녀나 아수라나 아수라녀나 가루다나 가루다녀나 긴나라나 긴나라녀나 마후라가나 마후라가녀나 건달바나 건달바녀나 부다나 부다녀나 꿈반다나 꿈반다녀나 삐샤짜나 삐샤짜녀나 오스따라까나 오스따라끼나 아빠스마라나 아빠스마리나 나찰이나 나찰녀나 다까나 다끼니나 정기를 빼앗는 자나 그 여성형이나 까따뿌따나나 까따뿌따니나 사람이나 그 여성형이든, 그들 모두는 [그를 침범할] 틈을 얻지 못할 것이다. 누구든 이 진언의 구절들을 독송하면, 그로써 이 능가경을 독송한 것이 될 것이다. 이 진언의 구절들은 세존께서 나찰들을 막기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능가경에서 다라니품(陀羅尼品)이라 이름하는 아홉째 품을 마친다.
제10품 사가타품(伽陀品, Sagāthak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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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하마띠 보살마하살이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생성과 소멸을 여읜 세상은 허공의 꽃과 같으니, 있음도 없음도 아니라고 [당신은] 지혜와 자비로써 파악하십니다. (10품 1송)
상주(常住)와 단멸(斷滅)을 여읜 세상은 언제나 꿈과 같으니, 있음도 없음도 아니라고 [당신은] 지혜와 자비로써 파악하십니다. (10품 2송)
모든 법은 환영과 같아 마음[心]과 식(識)을 여의었으니, 그것들은 있음도 없음도 아닌 것으로 [당신의] 지혜와 자비로써 파악됩니다. (10품 3송)
법무아(法無我)와 인무아(人無我), 그리고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그대는 항상 무상(無相)으로써 청정하게 하시니, 지혜와 자비로써 그러하십니다. (10품 4송)
그대는 열반하지 않으며 열반에 있지도 않고, 열반이 그대 안에 머무는 것도 아니니, [그것은] 앎과 알려짐을 여의고 있음과 없음의 견해를 여읜 것입니다. (10품 5송)
이와 같이 일어남을 여읜 적정한 성인을 보는 이들은, 집착 없는 이가 되어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물듦이 없는 이가 됩니다. (10품 6송)
여름에 아지랑이가 마음을 홀리며 흔들리듯이, 사슴들은 [그것을] 물이라 붙잡으나 그 실체는 없습니다. (10품 7송)
이와 같이 식(識)의 씨앗도 보이는 경계에서 흔들리니, 어리석은 이들은 눈병 든 이가 헛것을 붙잡듯이 생겨나는 것을 붙잡습니다. (10품 8송)
선정을 닦는 이와 선정과 선정의 대상, 끊음과 진리를 봄, 이는 다만 분별일 뿐이니, 이를 깨닫는 이는 해탈합니다. (10품 9송)
이 법들은 헤아림에서 일어난 것이라 실체가 없으니, 그 헤아림조차도 공(空)한 것이므로, 이로써 [모든 것이] 공하다고 헤아려집니다. (10품 10송)
물속 나무의 그림자와 같은 다섯 번째까지의 온(蘊)과 식(識)이니, 환영과 꿈과 같은 이 보이는 것을 식(識)으로써 분별해서는 안 됩니다. (10품 11송)
환영과 허깨비와 기계장치 같고 언제나 번갯불과 같은 꿈이니, 세 가지 상속으로 끊어진 세상을 보는 이는 해탈합니다. (10품 12송)
이치에 맞지 않는 분별로 말미암아 식(識)이 일어나니, 여덟 가지와 아홉 가지로 다양하게 큰 바다에서 물결들이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10품 13송)
훈습(熏習)에 의해 항상 자라나는 지각[覺]은 뿌리와 견고한 의지처가 되니, 마치 자석에 끌리는 쇠처럼 마음은 대상에서 헤맵니다. (10품 14송)
모든 중생에 의지하는 종성(種姓)은 분별을 여의었으니, 지음에서 벗어나 앎과 알려짐을 여의고 [윤회에서] 돌이켜집니다. (10품 15송)
환영과 같은 삼매와 십지(十地)에서 벗어난 것을, 보십시오 — 마음의 왕[心王]을, 상(想)과 식(識)을 여읜 것을. (10품 16송)
마음이 전환될 때에는 그때 항상함에 머무니, 연꽃과 같은 궁전에서 환영의 경계로 생겨납니다. (10품 17송)
그곳에 머물게 되면 공용(功用) 없는 행에 이르러, 마치 온갖 형상의 마니보주처럼 중생을 위한 일을 행합니다. (10품 18송)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는 분별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으니, 어리석은 이들은 마치 석녀가 꿈에서 아들을 [얻었다 여기듯] 어리석게 붙잡습니다. (10품 19송)
자성 없음과 생겨남 없음, 인(人)과 온(蘊)의 상속, 연(緣)과 계(界)는 알려져야 할 것이니, 공성(空性)과 존재·비존재[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10품 20송)
나의 방편으로서의 가르침에서는 나는 특징[相]을 가르치지 않으나, 어리석은 이들은 존재로 여겨 특징과 특징 지어지는 것을 붙잡습니다. (10품 21송)
모든 것을 아는 자도 아니고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자도 아니며,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리석은 이들은 분별하나 깨달은 이와 세상은 [그러하지 않아], 나는 깨닫지도 않고 깨닫게 하지도 않습니다. (10품 22송)
이 가명(假名)은 다만 명칭일 뿐 특징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니, 온(蘊)은 마치 눈병 든 이가 [보는] 머리카락 타래와 같아서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됩니다. (10품 23송)
있지 않다가 생겨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인연[緣]으로 말미암아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석녀의 아들이나 허공의 꽃과 같이 유위(有爲)를 볼 때에, 그때 붙잡는 자와 붙잡히는 것을 미혹으로 보고서 [그것들은] 돌이켜집니다. (10품 24송)
나는 존재로서도 지음[作]으로서도 특징으로서도 열반하지 않으니, 분별의 원인인 식(識)의 그침으로 말미암아 나는 열반한 것입니다. (특징은 사라지지 않으니 거기서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됩니다.) (10품 25송)
마치 큰 흐름이 다하면 물결이 일어나지 않듯이, 이와 같이 식(識)의 갖가지 모습도 그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10품 26송)
[모든 법은] 공(空)하고 자성이 없으며 환영과 같아 생겨나지 않은 것이니, 있음도 없음도 존재하지 않아 이 존재들은 꿈과 같습니다. (10품 27송)
나는 헤아림[思辨]과 분별식(分別識)을 여읜 하나의 자성을 가르치니, 이는 두 가지 자성을 여읜 성인들의 하늘과 같은 경계입니다. (10품 28송)
마치 취한 이에게 갖가지 반딧불이 실재하지 않으나 보이는 것처럼, 이와 같이 세상도 계(界)의 어지러움으로 말미암아 자성으로서 [실재하지 않으나] 보입니다. (10품 29송)
마치 풀과 나무와 흙덩이에 환영이 빛나 보이나 그 환영은 실재하지 않듯이, 이와 같이 모든 법도 자성으로서는 [그러합니다]. (10품 30송)
붙잡는 자도 없고 붙잡히는 것도 없으며 묶이는 자도 없고 묶임도 없으니, [이는] 환영이나 아지랑이와 같고 꿈이라 불리는 눈병과 같습니다. (10품 31송)
진실을 구하는 이가 분별없이 물듦 없이 볼 때에, 그때 요가에 든 것이니 의심할 나위 없이 나를 보게 될 것입니다. (10품 32송)
마치 허공에 아지랑이가 있듯이 여기에는 어떠한 식(識)도 없으니, 이와 같이 법들을 아는 이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10품 33송)
있음과 없음의 인연 속에서 법들의 생겨남은 없으니, 삼계(三界)에서 미혹한 마음이 갖가지로 나타나 보이는 까닭입니다. (10품 34송)
꿈과 세상은 자성이 같으니 그 안에서 갖가지 형색들도 [그러하며], 감촉을 지닌 향수(享受)도 [자성이] 같아, 몸의 끝에 이르는 세간의 스승과 그 행위도 [모두 그러함을] 봅니다. (10품 35송)
마음이야말로 삼계(三界)의 근원이니 이 미혹한 마음이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보이는 것이라, 이 세상이 존재하지 않음을 헤아리지 말아야 하니, 이와 같은 세상의 나아감을 알고서라야 합니다. (10품 36송)
어리석은 이들은 미혹으로 말미암아 생겨남과 사라짐을 보나, 지혜를 갖춘 이는 생겨남도 사라짐도 보지 않습니다. (10품 37송)
모든 악을 여읜 하늘과 같은 색구경천(色究竟天)의 궁전에서, [보살들은] 항상 분별없이 [삼매에] 들어 마음[心]과 심소(心所)를 여읩니다. (10품 38송)
힘과 신통과 자재함을 얻어 그 삼매의 경지에 이른 이들은, 그곳에서 정각(正覺)을 이루니 화신(化身)은 여기에서 깨닫습니다. (10품 39송)
부처님들의 헤아릴 수 없는 화신(化身)들이 나타나니, 모든 곳에서 어리석은 이들은 그들로부터 법을 듣고서 받아들입니다. (10품 40송)
처음과 중간과 끝을 여의고 있음과 없음을 여의어, 두루하고 흔들림 없고 청정하며 갖가지 모습이 아니면서도 갖가지로 생겨나는 것이니, (10품 41송)
식(識)의 종성으로 덮여 모든 몸 지닌 이들에게 감추어져 있으니, 미혹으로부터 환영이 있는 것이지 환영이 미혹의 원인은 아닙니다. (10품 42송)
마음의 미혹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이든 있다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자성에 묶인 아뢰야식이 지어낸 것이니, 세상과 식(識)일 뿐임과 견해의 흐름과 법·인(法·人)을 [모두 그러함을 알아야 합니다]. (10품 43송)
이와 같이 세상을 살펴보고서 [마음이] 전환될 때에는, 그때 그는 나의 아들이 되어 원만한 법을 행하는 자가 됩니다. (10품 44송)
뜨겁고 축축하고 움직이고 단단한 법들을 어리석은 이들은 분별하니, 있지 않은 것에 대한 허망한 덧붙임이라 특징 지어지는 것도 특징도 없습니다. (10품 45송)
이 여덟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몸의 형태와 감관(根)과 색(色)을, 어리석은 이들은 분별하니, 미혹하여 윤회의 새장 속에 있습니다. (10품 46송)
인(因)과 연(緣)의 화합으로 어리석은 이들은 생겨남을 분별하니, 이 도리를 알지 못하여 삼유(三有)의 집에서 헤맵니다. (10품 47송)
모든 존재는 자성이 없으며 사람들의 말[言說]도 그러하니, 분별로 말미암은 화현(化現) 또한 꿈과 같아 존재하지 않으니, [이를] 살펴서 윤회하지도 말고 열반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10품 48송)
마음은 갖가지로 씨앗이라 불리는 것이 마음의 경계로 나타나 알려지니, 그 나타남에서 어리석은 이들은 생겨남을 분별하여 두 갈래의 분별을 즐깁니다. (10품 49송)
무지(無知)와 갈애(渴愛)와 업(業), 그리고 마음[心]과 심소(心所)는 소멸하지 않고 그로부터 [윤회가] 일어나니, 그러므로 그것을 의타(依他)라 여기는 것입니다. (10품 50송)
그리고 그들은 마음의 경계인 미혹한 대상을 분별하니, [그것은] 분별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그릇된 미혹으로 분별된 것입니다. (10품 51송)
마음은 인연과 결합하여 몸 지닌 이들에게서 일어나니, 인연들로부터 벗어난 것은 내가 보지 못하며 말하지도 않습니다. (10품 52송)
인연들로부터 벗어나 자기 특징[自相]을 여읜 것이 몸 안에 머물지 않을 때에는, 그것은 나에게 있어 경계가 되지 못합니다. (10품 53송)
마치 왕이나 부호가 사슴 모습의 갖가지 것들로 아들들을 유혹하여, 집에서 숲속 사슴들의 모임인 양 놀게 하듯이, (10품 54송)
이와 같이 나도 법들의 갖가지 그림자와 같은 특징[相]들로써, 스스로 증득해 알아야 할 아들[진실]인 실제의 궁극[實際]을 말합니다. (10품 55송)
마치 바다의 물결이 바람이라는 인연으로 일어나 춤추듯 계속되어 끊어짐이 없듯이, (10품 56송)
아뢰야식의 흐름도 이와 같이 항상 경계라는 바람에 의해 일어나, 갖가지 물결과 같은 식(識)들로써 춤추듯 일어납니다. (10품 57송)
붙잡히는 것과 붙잡는 자라는 자성으로 몸 지닌 이들의 마음이 기울어지니, 보이는 것에는 특징이 없건만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되는 것과 같습니다. (10품 58송)
궁극의 아뢰야식과 다시 식(識)일 뿐인 아뢰야는, 붙잡히는 것과 붙잡는 자를 벗어남으로써 진여(眞如)를 나는 가르칩니다. (10품 59송)
온(蘊)들 가운데는 자아도 없고 중생[有情]도 없으며 인(人)도 없으니, 식(識)이 생겨나고 식(識)이 사라질 뿐입니다. (10품 60송)
마치 그림에서 오목함과 볼록함이 보이나 존재하지 않듯이, 이와 같이 존재[有]들에서도 존재성(存在性)이 보이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10품 61송)
마치 건달바의 성(城)이나 사슴이 [물로] 여기는 아지랑이와 같이, 보이는 것은 이와 같이 항상 나타나되 지혜로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10품 62송)
[바른] 인식수단[量]과 감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결과도 아니고 원인도 아니며, 앎과 알려짐을 여의고 특징 지어지는 것과 특징을 여읜 것입니다. (10품 63송)
온(蘊)들에 의지한 정각자(正覺者)는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으니,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이를 어떻게 헤아려 안다 하겠습니까. (10품 64송)
인연(因緣)과 원인(原因)의 비유, 주장[宗]과 이유[因]로써, 꿈과 건달바의 성(城)의 바퀴, 아지랑이와 해와 달의 [비유]로써, (10품 65송)
보이지 않는 것을 가문 등의 비유로써 [나는] 생겨남을 말하니, 꿈이나 미혹이나 환영이라 불리는 것과 같이 이 세상은 공(空)하며 분별된 것입니다. (10품 66송)
삼계(三界)에 의지하지 않으며 안으로도 밖으로도 그러하니, 생겨나지 않는 존재[有]를 보고서 생겨나지 않음의 인(忍)이 생겨납니다. (10품 67송)
환영과 같은 삼매와 다시 의성신(意成身), 신통과 자재함, 마음의 힘들이 갖가지로 채색됩니다. (10품 68송)
생겨나지 않고 공(空)하며 자성 없는 존재들에게서, 그들의 미혹이 생겨나되 인연으로 말미암아 그쳐집니다. (10품 69송)
마음은 마음 자신을 나타내고 밖으로는 형색을 지닌 것을 나타내니, 다른 어떤 보이는 것도 존재하지 않건만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됩니다. (10품 70송)
[삼매의] 결집과 부처님의 그림자와 중생들의 [번뇌를] 찢어버림을, 잘 배운 이들은 가명(假名)으로써 다채로운 세상에 가피를 내립니다. (10품 71송)
몸[身]과 머무름[住]과 향수(享受)는 붙잡히는 것으로서의 세 가지 식(識)의 나타남이요, 의(意)와 집수(執受)의 나타남과 분별은 붙잡는 자로서의 세 가지입니다. (10품 72송)
분별과 분별되는 것이 실로 불변하는 경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은 진실을 보지 못하니 [이는] 논리가들이 헤아림의 미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0품 73송)
존재들에 자성 없음을 지혜로써 깨달을 때에는, 그때 요가행자는 상(相) 없음에 머물러 쉬게 됩니다. (10품 74송)
먹으로 더럽혀진 것을 어리석은 이들이 까마귀로 여기듯이, 바로 이것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들이 삼승(三乘)으로 여기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10품 75송)
여기에는 어떠한 성문(聲聞)도 없고 연각승(緣覺乘)에 속한 이도 없으니, 성문과 승자(勝者)에게 보이는 이 형색은, 자비를 본질로 하는 보살들이 화현(化現)으로 가르쳐 보이는 것입니다. (10품 76송)
삼유(三有)는 식(識)일 뿐이니 두 가지 자성으로 분별된 것이며, [마음이] 전환되면 곧 진여(眞如)이니, 법(法)과 인(人)의 유전(流轉)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0품 77송)
해와 달과 등불의 빛, 존재하는 것들과 마니보주들이 분별없이 [저절로] 작용하듯이, 이와 같이 부처님의 부처됨[佛性]도 그러합니다. (10품 78송)
마치 눈병 든 이들이 머리카락 타래를 그릇되이 붙잡듯이, 이와 같이 이 존재의 분별도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그릇되이 분별됩니다. (10품 79송)
머무름과 무너짐과 생겨남을 여의고 항상함과 무상함을 여읜, 잡염(雜染)과 청정(淸淨)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머리카락 타래와 같습니다. (10품 80송)
마치 누군가 인형이 금빛인 것을 보고서 세상을 [금이라 여기듯], 거기에는 금도 없고 땅도 금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10품 81송)
이와 같이 무시(無始) 이래의 마음과 심소(心所)에 의해 오염된 어리석은 이들은, 환영과 아지랑이에서 생겨난 존재를 실재하는 것으로 붙잡습니다. (10품 82송)
하나의 씨앗과 씨앗 없음, 그리고 바다와 같은 하나의 씨앗, 이 모든 씨앗까지도 [지닌] 마음을, 보십시오 — 갖가지로 채색된 것을. (10품 83송)
하나의 씨앗이 청정하여 전환되어 씨앗 없음이 될 때에는, 분별없음으로 말미암아 평등하니, 넘쳐남으로 말미암은 생겨남의 뒤섞임이 갖가지 씨앗을 가져오는 것을 모든 씨앗이라 말합니다. (10품 84송)
여기에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으며 인연으로 말미암아 사라지지도 않으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은 다만 인연들이 분별된 것일 뿐입니다. (10품 85송)
삼유(三有)는 가명(假名)일 뿐이니 자성으로서의 실체는 없으나, 가명을 실체와 자성으로 여겨 논리가들은 분별할 것입니다. (10품 86송)
존재의 자성을 알고자 하는 것으로는 미혹이 막아지지 않으니, 존재의 자성이 생겨나지 않음을 이와 같이 보아야 해탈합니다. (10품 87송)
환영이 아니라고도 없다고도 존재들의 같음에 의해 있음이 말해지지 않으니, 거짓되고 번갯불과 같아서 그러므로 환영과 같다고 일컬어집니다. (10품 88송)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생겨난 것도 아니며 어떠한 인연도 없으니, 어딘가에 마음으로 알려지는 것은 다만 언어관습[世俗言說]으로 말해지는 것입니다. (10품 89송)
무너짐과 생겨남과 잡염(雜染)은 인연들에 의해 막아지지 않으니,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것이 인연들에 의해 함께 막아집니다. (10품 90송)
자성도 없고 식(識)도 없으며 실체도 없고 아뢰야[식]도 없으니, 이것들은 남의 지배를 받는 그릇된 논리가들에 의해 분별된 것일 뿐입니다. (10품 91송)
승자(勝者)의 아들들이 세상이 마음일 뿐임을 볼 때에는, 그때 그들은 지음과 유위를 여읜 열반의 몸[涅槃身]을, 힘과 신통과 자재함을 갖추어 얻습니다. (10품 92송)
모든 형색의 나타남으로 마음이 작용할 때에는, 거기에는 마음도 없고 형색도 없으니, 무시(無始) 이래의 마음이 미혹된 것입니다. (10품 93송)
그때 요가행자는 나타남 없는 세상을 지혜로써 보니, 상(相)과 실체로서의 식(識)의 나타남과 뜻[意]의 흔들림, 그것을 넘어서서 나의 아들들은 분별없이 다니게 됩니다. (10품 94송)
건달바의 성(城)과 환영과 머리카락 타래와 아지랑이는, 진실이 아니건만 진실인 양 나타나니, 이와 같이 존재들에 대한 헤아림도 그러합니다. (10품 95송)
모든 존재는 생겨나지 않으며 다만 미혹만이 보이는 것이니, 어리석은 이들은 미혹을 생겨난 것으로 분별하여 두 갈래의 분별을 즐깁니다. (10품 96송)
태어남에 속한 마음은 갖가지로 훈습(熏習)에서 생겨나, 물결의 흐름처럼 작용하나 그것이 끊어지면 작용하지 않습니다. (10품 97송)
갖가지 대상을 지닌 채색됨이 마음에서 작용하는 것처럼, 어찌하여 허공에나 벽에는 그렇게 작용하지 않는 것입니까. (10품 98송)
만일 어떤 상(相)을 대상으로 삼아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라면, 인연에서 생겨난 마음은 식(識)일 뿐이라는 것과 맞지 않습니다. (10품 99송)
마음으로써 마음이 붙잡히니 어떠한 원인 있는 것도 없습니다. 마음의 법성(法性)은 청정하여 허공에는 훈습(熏習)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10품 100송)
자기 마음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작용하니, 밖으로는 보이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는 다만 식(識)일 뿐입니다. (10품 101송)
마음[心]은 아뢰야식이며, 뜻[意]은 헤아림[思量]을 본질로 하는 것이며, 대상들을 붙잡는 것으로써 식(識)이라 일컬어집니다. (10품 102송)
마음[心]은 항상 무기(無記)이며, 뜻[意]은 둘 다에 오가는 것이니, 나타나는 식(識)은 선(善)하거나 불선(不善)한 것입니다. (10품 103송)
궁극의 진리[勝義]의 문(門)은 두 가지 식(識)을 여읜 것이니, 삼승(三乘)의 시설이 나타남 없는 곳에 어찌 머물겠습니까. (10품 104송)
마음일 뿐임과 나타남 없음과 머무름[住]과 부처님의 경지[佛地]는, 이것이 바로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셨고 말씀하시며 말씀하실 것입니다. (10품 105송)
마음[心]은 일곱 가지 지(地)이며 나타남 없음은 여덟째이니, 두 가지 지(地)는 머무름[住]이며 나머지 지(地)는 나의 본질인 것입니다. (10품 106송)
스스로 증득해 알아야 할 청정한 지(地)도 또한 나의 본질이니, 대자재천(大自在天)의 경지는 색구경천(色究竟天)에서 빛납니다. (10품 107송)
마치 불에서 빛살들이 뻗어 나오듯이, 갖가지로 마음을 사로잡는 부드러운 [빛살들이] 삼유(三有)를 화현시킵니다. (10품 108송)
삼유(三有)를 무엇인가로 화현하니, 무엇인가는 이미 앞서 화현된 것이라, 거기에서 승(乘)들을 가르치니 이 지(地)가 나의 본질입니다. (10품 109송)
지(地)들의 증득에는 경지가 옮겨감에 시간이 없으니, 마음일 뿐임을 넘어서서 나타남 없음에 머무는 것이 결과입니다. (10품 110송)
있지 않음과 있음이 갖가지로 보이니, 어리석은 이들은 붙잡음이 뒤바뀐 것이라, [그] 뒤바뀜이 바로 갖가지임입니다. (10품 111송)
만일 분별없는 지혜에 실체가 있다고 한다면 맞지 않으니, 마음도 형색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분별없다 하는 것입니다. (10품 112송)
감관(根)들도 환영이라 불리며 대상들도 꿈과 같으니, 짓는 자와 업(業)과 지음도 어떠한 방식으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10품 113송)
선정[禪]들과 무량(無量)들, 무색계(無色界)의 삼매들, 상(想)의 그침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음일 뿐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10품 114송)
예류과(預流果)와 일래과(一來果), 불환과(不還果)와 아라한과(阿羅漢果)도 마음의 미혹입니다. (10품 115송)
공(空)하고 무상(無常)하며 찰나적인 유위(有爲)를 어리석은 이들은 분별하니, 강물과 등불 등의 비유로 찰나의 뜻이 분별됩니다. (10품 116송)
작용 없고 찰나적이며 홀로 떨어져 지음을 여읜, 법들의 생겨나지 않음을, 나는 찰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10품 117송)
있음과 없음의 생겨나지 않음은 수론파(數論派)와 승론파(勝論派)에 의해서도 일컬어지니, 그들에 의해서도 모든 것은 무기(無記)라고 밝혀졌습니다. (10품 118송)
네 가지 방식의 답변, 즉 한쪽으로 답함과 되물어 답함과, 나누어 답함과 제쳐둠[捨置], 그리고 외도의 주장을 막는 것입니다. (10품 119송)
모든 것은 세속(世俗)에서는 존재하나 승의(勝義)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니, 법들의 자성 없음은 승의(勝義)에서도 보이는 것이라, 자성 없음을 증득함이 세속이라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10품 120송)
만일 언어[言說]를 원인으로 하는 존재에 자성이 있다면, 언어에서 생겨난 존재가 없다는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10품 121송)
실체 없는 언어[言說]는 세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으니, 뒤바뀜에 실체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증득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10품 122송)
만일 뒤바뀜이 존재한다면 자성 없음은 존재하지 않게 되니, 뒤바뀜에 실체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무엇이든 증득되는 것은, 자성이 없는 것이 되어 어떠한 방식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10품 123송)
이 갖가지로 보이는 것은 더러움에 훈습된 마음이 형색의 나타남을 붙잡음이 밖으로 [드러난] 마음의 미혹입니다. (10품 124송)
분별로써 분별없음에 [이르러] 분별이 끊어지니, 분별로써 분별없음으로 공성(空性)의 진실을 봅니다. (10품 125송)
마치 환영으로 된 코끼리처럼 갖가지 잎사귀가 금인 양 [보이듯이], 이와 같이 무지에 훈습된 마음에는 보이는 것이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10품 126송)
성인은 미혹도 그 사이의 진실도 보지 않으니, 미혹이 곧 진실이 될 것이므로 [미혹과] 진실 사이에는 [구별이 없습니다]. (10품 127송)
모든 미혹을 떨쳐버리고서 만일 상(相)이 생겨난다면, 그것도 그의 미혹이 될 것이니, 마치 청정하지 못한 눈병과 같습니다. (10품 128송)
눈병 든 이가 미혹으로 말미암아 머리카락 타래를 붙잡듯이, 대상들에 대한 어리석은 이들의 붙잡음도 그와 같이 일어납니다. (10품 129송)
이 삼유(三有)는 머리카락 타래 같고 아지랑이의 물 같은 미혹이니, 꿈과 환영 같음을 살펴보는 이는 해탈합니다. (10품 130송)
분별과 분별되는 것과 분별의 작용, 묶음과 묶이는 것과 묶인 자, 이 여섯 가지가 해탈의 원인입니다. (10품 131송)
지(地)들도 없고 진리[諦]들도 없으며 국토[刹]도 없고 화현(化現)도 없으니, 부처님들과 연각(緣覺)들과 성문(聲聞)들도 분별된 것입니다. (10품 132송)
인(人)과 상속(相續)과 온(蘊), 인연(因緣)들과 극미(極微), 원질(原質)과 자재천(自在天)과 짓는 자[作者]도 마음일 뿐임에서 분별됩니다. (10품 133송)
마음은 실로 모든 곳, 모든 몸 지닌 이들 안에서 작용하니, 갖가지로 있지 않은 이들에 의해 붙잡히나 마음일 뿐임에는 특징이 없습니다. (10품 134송)
자아는 온(蘊)에 존재하지 않으며 온(蘊)들도 자아 안에 있지 않으니, 그것들은 분별되는 것과 같지 않으나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10품 135송)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것처럼 모든 존재의 있음이 [실재한다면], 만일 그것들이 보이는 그대로라면 모두 진실을 보는 이들이 될 것입니다. (10품 136송)
모든 법의 없음으로 말미암아 잡염(雜染)도 없고 청정도 없으니, 그것들은 보이는 그대로도 아니며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10품 137송)
미혹인 상(相)과 분별의 함[意]은 의타(依他)의 특징이니, 그 상(相)에 있어서의 이름은 변계소집(遍計所執)의 특징입니다. (10품 138송)
이름과 상(相)과 분별의 함이 생겨나지 않을 때에는, 인연으로 이루어진 실체의 표시가 원성실(圓成實)의 특징입니다. (10품 139송)
과보로 이루어진 부처님들과 화현으로 이루어진 승자(勝者)들, 중생들과 보살들, 그리고 곳곳의 국토(國土)들, (10품 140송)
법의 흐름으로 화현된 승자(勝者)들과 화현으로 이루어진 이들, 이들 모두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의 극락(極樂)에서 나온 것입니다. (10품 141송)
화현하는 이들이 설한 것과 과보로 이루어진 이들이 설한 것, 경전과 방등(方等)의 이치를, 그 요지를 알아야 합니다. (10품 142송)
승자(勝者)의 아들들이 설한 것과 인도자[尊]들이 설하는 것, 화현으로 이루어진 이들이 설한 것이지 과보로 이루어진 승자(勝者)들이 설한 것이 아닙니다. (10품 143송)
이 법들은 생겨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건달바의 성(城)이나 꿈이나 환영이나 화현과 같습니다. (10품 144송)
마음이 작용하니 마음이며, 마음 자체가 바로 해탈됩니다.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며, 마음 자체가 바로 그쳐집니다. (10품 145송)
대상의 나타남이 사람들의 마음이니, 마음이 분별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대상은 존재하지 않으니 이는 마음일 뿐이며, 분별없이 [보는 이는] 해탈합니다. (10품 146송)
무시(無始) 이래의 희론(戱論)과 추중(麤重)이 함께 갖추어져 있으니, 분별이 그로 인해 닦여져 그릇된 나타남이 작용합니다. (10품 147송)
대상의 나타남으로서의 식(識)에서 지혜[智]는 진여(眞如)를 경계로 하니, [마음이] 전환되어 나타남 없음이 되면 이는 성인들의 경계입니다. (10품 148송)
대상을 살피는 선정[觀察義禪]과 어리석은 이들이 행하는 선정[愚夫所行禪], 진여(眞如)를 대상으로 하는 선정[攀緣如禪]과 여래(如來)의 청정한 선정[如來禪], (10품 149송)
자성으로써 변계소집(遍計所執)된 모든 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의타(依他)에 의지하여 분별이 사람들에게 헤매게 합니다. (10품 150송)
의타(依他)가 청정하여 분별과 결합되지 않은 그대로일 때에는, [마음이] 전환되어 진여(眞如)이니, 이는 분별을 여읜 머무름[住]입니다. (10품 151송)
분별을 분별하지 말지니, 분별은 진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혹을 분별하는 이에게는 붙잡히는 것과 붙잡는 자가 [실재하지] 않으니, 밖의 대상을 봄이 분별이며 [그것이] 변계소집(遍計所執)의 자성입니다. (10품 152송)
그 분별로 자성을 분별하는 것이 인연에서 생겨난 것[依他]이니, 밖의 대상을 봄은 그릇된 것이며 대상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마음일 뿐입니다. (10품 153송)
도리로써 살펴보는 이들에게는 붙잡는 자와 붙잡히는 것이 그쳐지니, 밖의 대상은 존재하지 않건만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되는 것과 같습니다. (10품 154송)
훈습(熏習)에 흔들리는 마음은 대상의 나타남으로 작용하니, 두 갈래 분별의 그침으로 지혜는 진여(眞如)를 경계로 합니다. (10품 155송)
나타남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성인의 경계가 생겨나니, 이름과 상(相)과 분별의 함은 두 자성[변계소집·의타]의 특징이며, 바른 지혜[正智]와 진여(眞如)는 원성실(圓成實)의 특징입니다. (10품 156송)
부모의 화합으로 아뢰야[식]가 뜻[意]과 결합하니, 마치 기름 항아리 속의 쥐가 정액과 함께 자라나는 것과 같습니다. (10품 157송)
응결된 살덩이와 굳은 덩이와 부풀어 오른 것과 주머니 모양의 부정(不淨)한 것이 업(業)으로 채색되니, 업(業)의 바람과 큰 요소[大種]들로써 결과를 지닌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10품 158송)
다섯씩 다섯 가지가 다섯 번, 상처는 아홉 가지이니, 손톱과 이와 털로 덮여 [태아가] 꿈틀거리며 태어납니다. (10품 159송)
갓 태어난 것은 오물 속의 벌레와 같으나, 잠에서 깬 이처럼 사람은 눈으로 형색이 나타나 분별로 말미암아 자라나게 됩니다. (10품 160송)
입천장과 입술의 결합으로 분별에 의해 확정되어, 사람들의 말이 작용하니 마치 앵무새의 분별[말 흉내]과 같습니다. (10품 161송)
외도들의 주장에는 확정됨이 있으나 대승(大乘)에는 확정됨이 없으니, 중생의 의지처에서 일어나는 이것은 삿된 견해를 지닌 이들이 발붙일 곳이 아닙니다. (10품 162송)
스스로 증득해 알아야 할 나의 승(乘)은 논리가들의 경계가 아니니, 훗날 세존께서 떠나신 뒤에는, 말해보라 — 누가 이를 지니게 되겠습니까. (10품 163송)
선서(善逝)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미래의 때가 오리니, 마하마띠여, 그대는 알라 — 누가 그 이끄는 [가르침]을 지니게 될 것인지를. (10품 164송)
남인도의 베다리[땅]에서, 크게 이름나고 명성 높은 한 비구가 있으리니, 그의 이름은 용(龍, 나가)이라 불리며, 있음과 없음의 견해를 깨뜨리는 이입니다. (10품 165송)
세상에서 나의 승(乘)인 위없는 대승(大乘)을 밝히고서, 환희지(歡喜地)를 증득하여 그는 극락(極樂)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10품 166송)
지혜로 분석해 보는 이들에게 자성은 확정되지 않으니, 그러므로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며 자성 없는 것으로 가르쳐집니다. (10품 167송)
인연으로 생겨난 대상에는 있음과 없음이 존재하지 않으니, 인연 안에 속한 존재를 있다거나 없다고 분별하는 이들은, 나의 가르침으로부터 외도의 견해만큼이나 멀리 벗어난 이들이라고 나는 여깁니다. (10품 168송)
모든 존재에 대한 명칭[名言]은 수백 생애 동안 항상 서로 간에 분별로써 익혀지고 또 익혀지는 것입니다. (10품 169송)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온 세상은 큰 미혹에 빠지게 되니, 그러므로 미혹을 물리치기 위하여 명칭[名]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10품 170송)
세 가지 분별로써 어리석은 이들은 존재를 분별하니, 이름의 분별로 말미암은 미혹과 인연에서 생겨난 것으로 말미암은 [미혹입니다]. (10품 171송)
그치지 않고 생겨나지 않아 본래 허공과 같으나, 자성 없음을 자성으로 삼는 것들은 변계소집(遍計所執)의 특징을 지닌 것입니다. (10품 172송)
그림자와 그림과 환영과 아지랑이와 꿈에서 생겨나며, 불타는 바퀴[旋火輪]와 건달바의 성(城)과 메아리에서 생겨나는 것과 같은 것, (10품 173송)
둘 아니고[不二] 공(空)하며 진실의 궁극[實際]인 법성(法性), 나는 분별없음을 가르치니 이것이 원성실(圓成實)의 특징입니다. (10품 174송)
말과 마음의 경계는 그릇된 것이며 진실은 지혜로 분별되는 것이니, 두 극단[二邊]에 떨어진 마음은 그러므로 지혜로 분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10품 175송)
있음과 없음이라는 두 극단에까지 이르는 것이 마음의 경계이니, 그 경계가 떨쳐질 때에 바른 마음이 그쳐집니다. (10품 176송)
대상을 붙잡음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그침으로써도 존재하지 않으니, 진여(眞如)의 경지가 존재함이 성인들의 경계와 같습니다. (10품 177송)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지혜로운 이들에게 나타나는 것처럼 나타나지 않으니, 지혜로운 이들에게는 모든 법이 특징 없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10품 178송)
마치 어리석은 이들이 목걸이의 놋쇠를 금으로 분별하듯이, 이와 같이 금이 아니면서 금빛인 법들을 그릇된 논리가들은 [금으로 분별합니다]. (10품 179송)
있지 않다가 생겨나고 있다가 다시 사라지는 것, 인연으로 있고 없음, 이러한 것들은 나의 가르침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10품 180송)
시작도 끝도 없음으로 말미암아 진실한 특징에 머무는 것들이니, 세상에서 [그것을] 원인과 결과로 [여기나] 논리가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10품 181송)
과거의 존재도 있고 미래의 존재도 있으며, 현재의 존재도 있는 까닭에, 존재들은 생겨나지 않은 것입니다. (10품 182송)
변화[轉變]와 시간의 배열이 존재[有]와 존재와 감관(根)들에 있다고, 중유(中有)의 붙잡음을 분별하는 이들은 깨달은 이가 아닙니다. (10품 183송)
승자(勝者)들은 세상을 연기(緣起)로 생겨난 것이라 말씀하지 않으시니, 다만 이 세상은 인연일 뿐이라 건달바의 성(城)과 같습니다. (10품 184송)
이는 다만 법의 언어관습[法施設]일 뿐이니 거기에서 이것이 그것이라 일컬어지는 것이라, 언어관습을 떠나서는 [별도로] 다른 것이 없어 생겨나지도 않고 그쳐지지도 않습니다. (10품 185송)
거울과 물과 눈동자, 그릇들과 마니보주에는, 그림자[影像]가 그 안에 보이나 그림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10품 186송)
이와 같이 마음도 존재의 나타남이니 마치 허공에 아지랑이가 [보이듯이], 갖가지 형색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이 마치 꿈에서 석녀가 아들을 [낳음과] 같습니다. (10품 187송)
나에게는 승(乘)도 대승(大乘)도 없으며 음성도 없고 문자도 없으며, 진리들도 없고 해탈들도 없으며 나타남 없는 경계도 없습니다. (10품 188송)
다만 대승(大乘)이라는 승(乘)은 삼매의 자재함이니, 의성신(意成身)이 갖가지로 자재함의 꽃으로 장엄된 것입니다. (10품 189송)
하나됨과 다름됨으로써 존재는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서 [있는 것이니], 생겨남은 함께 모임이라 말해지고, 그침은 바로 사라짐입니다. (10품 190송)
생겨나지 않음의 공성(空性)이 하나이며, 생겨난 것들에 있어서의 공성이 [또 다른] 하나이니, 생겨나지 않음의 공성이 으뜸이며, 생겨난 것의 공성은 사라져 없어집니다. (10품 191송)
진여(眞如)와 공성(空性)과 실제(實際), 열반(涅槃)과 법계(法界)와 같은 것, 의성신(意成身)의 갖가지 몸을, 나는 여러 방편의 말로 가르쳤습니다. (10품 192송)
경(經)과 율(律)과 논(論)으로써 청정함을 분별하는 이들은, 글에 [의지할] 뿐 뜻에 의지하지 않으니, 그들은 무아(無我)에 의지한 이들이 아닙니다. (10품 193송)
외도들에 의해서도 부처님들에 의해서도 나에 의해서도 그 누구에 의해서도, 인연으로 [사물의] 있음이 성립되는 것이니 어찌 없음이 되겠습니까. (10품 194송)
누구에 의해 있음이 성립되었기에 인연으로 말미암아 그것의 없음이 있겠습니까. 생겨남의 주장이라는 그릇된 견해로 [어리석은 이들은] 있음을 없음으로 분별할 것입니다. (10품 195송)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고 아무것도 그쳐지지 않는 이에게는, 있음도 없음도 이르지 않으니 세상을 [있음·없음을] 떠나서 보는 것입니다. (10품 196송)
토끼의 뿔이라 불리는 것과 같은 분별이 사람들에게 존재하니, 그것을 분별하는 이들은 미혹된 것으로 마치 사슴이 아지랑이를 [물로 여기듯] 합니다. (10품 197송)
분별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작용하니, 원인 없는 분별은 분별로서도 맞지 않습니다. (10품 198송)
물 없는 곳에 물이라는 붙잡음이 마치 허공에 아지랑이 같으니,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대상이 [실재한다고] 보이나 성인들에게는 특별히 그렇지 않습니다. (10품 199송)
성인들의 청정한 견해는 세 가지 해탈에서 생겨나니, 생겨남과 무너짐을 여의고 나타남 없음에서 나아갑니다. (10품 200송)
깊고 넓고 광대한 지혜와 국토(國土)들의 장엄을, 나는 승자(勝者)의 아들들에게 가르치며, 성문(聲聞)들에게는 무상(無常)을 [가르칩니다]. (10품 201송)
무상(無常)한 삼유(三有)는 공(空)하여 자아와 나의 것을 여읜 것이니, 성문(聲聞)들에게는 이와 같이 공통의 특징[共相]을 가르칩니다. (10품 202송)
모든 법에 집착 없음과 홀로 다니는 멀리 떠남[遠離], 연각(緣覺)의 아들들에게는 논리를 여읜 결과를 가르칩니다. (10품 203송)
몸 지닌 이들의 밖의 것으로서의 변계소집(遍計所執)과 의타(依他)를, 자아의 미혹을 보지 못하는 데서 그로부터 마음이 작용합니다. (10품 204송)
열째는 첫째가 되고 첫째는 여덟째가 되며, 아홉째는 일곱째가 되고 일곱째는 다시 여덟째가 됩니다. (10품 205송)
둘째는 셋째가 되고 넷째는 다섯째가 되며, 셋째는 여섯째가 되니, 나타남 없음에 어찌 차례가 있겠습니까. (10품 206송)
나타남 없음이란 존재들의 없음이지 요가행자에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니, 있음과 없음의 평등함으로 성인들의 결과가 생겨납니다. (10품 207송)
어떻게 존재들의 없음이 평등함을 짓는 것입니까. 마음이 밖과 안의 흔들림을 알지 못할 때에는, 그때 평등한 마음의 봄으로써 소멸을 짓습니다. (10품 208송)
시작 없는 윤회 속에서 존재를 붙잡음에 사로잡혀 있으니,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마치 못으로 못을 빼내듯 유혹되어 돌이켜집니다. (10품 209송)
그것을 원인으로 하고 그것을 대상으로 하여 뜻[意]의 나아감에 의지하니, 마음에 원인을 주고 식(識)에 의지합니다. (10품 210송)
과보로 이루어진 가피[加持]로부터, 무리[衆]에 태어남에서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그로써 꿈에서 얻어지는 것과 네 가지 신통(神通)이 있습니다. (10품 211송)
꿈에서 얻어지는 것과 부처님의 가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 무리[衆]에 태어나는 종성(種姓)에 속한 이들, 그들은 식(識)의 과보로 생겨난 것입니다. (10품 212송)
훈습(熏習)으로 닦여진 마음은 존재의 나타남으로 작용하니, 어리석은 이들이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나는] 생겨남을 가르칩니다. (10품 213송)
말이 특징을 갖춘 존재를 분별하는 동안에는, 마음은 자신의 미혹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깨닫게 됩니다. (10품 214송)
어찌하여 생겨남이 말해지며 어찌하여 보이는 것은 말해지지 않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이 될 때에, 누구의 무엇이 어떻게 어디서 말해지겠습니까. (10품 215송)
마음은 자성으로 맑으나 뜻[意]은 흐리게 만드는 것이니, 뜻[意]은 식(識)들과 함께 항상 훈습(熏習)을 던집니다. (10품 216송)
아뢰야[식]는 몸을 버리고 뜻[意]은 나아갈 곳을 바라니, 식(識)은 대상의 나타남을 미혹으로 보고서 이끌려 갑니다. (10품 217송)
나의 마음이 보이는 것이니 밖의 대상은 존재하지 않으니, 이와 같이 미혹을 살펴보고서 진여(眞如)를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10품 218송)
선정을 닦는 이들의 경계와 업(業)과 부처님의 위신력, 이 세 가지는 헤아릴 수 없으니 식(識)의 경계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10품 219송)
미래와 과거, 열반과 인(人)이라는 말, 나는 세속(世俗)으로써 이것들을 가르치나 승의(勝義)는 문자를 여읜 것입니다. (10품 220송)
부파(部派)들과 외도들은 한쪽의 견해에 의지하니, 마음일 뿐임에 미혹하여 밖의 존재를 분별합니다. (10품 221송)
연각의 깨달음[緣覺菩提]과 부처됨[佛果]과 아라한과(阿羅漢果)와 부처님을 뵘, 감추어진 씨앗이 깨달음에 있으니, 꿈속에서도 그것은 이루어집니다. (10품 222송)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무슨 까닭으로, 무슨 목적으로 [이러하다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 나는 마음이 지극히 고요하여 있음과 없음이라는 견해의 가르침을 [설한 것입니다]. (10품 223송)
마음일 뿐임에 미혹한 이들을 위해서는 환영과 같은 있음·없음의 가르침을, 생겨남과 무너짐에 결합된 것으로서, 특징 지어지는 것과 특징을 여읜 것으로 [설합니다]. (10품 224송)
분별은 뜻[意]이라 불리는 것이니 다섯 가지 식(識)들과 함께하고, 그림자의 무리가 물과 같은 것들에서, 마음의 씨앗이 작용합니다. (10품 225송)
마음[心]과 뜻[意]과 식(識)이 작용하지 않을 때에는, 그때 의성신(意成身)을 얻어 부처님의 경지에 이릅니다. (10품 226송)
인연(因緣)과 계(界)와 온(蘊), 법들의 자기 특징[自相], 가명(假名)과 인(人)과 마음, 이것들은 꿈이나 머리카락 타래와 같습니다. (10품 227송)
환영과 꿈과 같은 세상을 보고서 진실에 의지해야 하니, 진실이란 특징[相]을 여의고 논리와 원인을 여읜 것입니다. (10품 228송)
성인들이 스스로 증득해 아는 머무름[住]을 항상 기억해야 하니, 논리와 원인에 미혹한 세상을 진실에 들게 해야 합니다. (10품 229송)
모든 희론(戱論)이 그침으로 말미암아 미혹은 작용하지 않으니, 지혜가 분별하는 동안에는 미혹이 작용합니다. (10품 230송)
자성 없음과 존재, 상주(常住)와 무상(無常)이 공(空)한 것이니, 이는 생겨남을 주장하는 이들의 견해이지 생겨나지 않음을 주장하는 이들의 것이 아닙니다. (10품 231송)
하나됨과 다름됨과 그 둘 다, 자재천(自在天)으로부터, 그리고 뜻대로[任意], 시간(時間)과 원질(原質)로부터, 다른 인연들로써 세상은 분별됩니다. (10품 232송)
윤회의 씨앗인 식(識)은 보이는 것이 있을 때에 작용하니, 마치 벽이 있을 때에 그림이 [그려지듯], 완전한 앎[了知]으로 말미암아 그쳐집니다. (10품 233송)
환영으로 만들어진 사람과 같이 사람들에게 죽음과 태어남이 작용하니,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미혹으로 말미암아 묶임과 해탈이 작용합니다. (10품 234송)
안[內]과 밖[外]의 두 가지 법들과 인연(因緣)들, 이를 살펴보는 요가행자는 나타남 없음에 머뭅니다. (10품 235송)
마음은 훈습(熏習)에 의해 나뉘지 않으며 마음도 훈습과 함께하지 않으니, 나뉘지 않는 특징의 마음이 훈습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10품 236송)
의식(意識)에서 생겨나는 훈습(熏習)은 때[垢]와 같으니, 흰 천과 같은 마음은 훈습으로써 빛나지 않습니다. (10품 237송)
허공을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라고 내가 말하듯이, 아뢰야[식]도 그와 같이 몸 안에서 있음과 없음을 여읜 것입니다. (10품 238송)
의식(意識)에서 벗어나 흐림을 여읜 마음을, 모든 법을 깨달음으로써, 나는 깨달은 마음[覺心]이라 말합니다. (10품 239송)
세 가지 상속(相續)으로 끊어지고 있음과 없음을 여읜, 네 가지 극단[四句]에서 벗어난 존재[有]는 언제나 환영과 같습니다. (10품 240송)
두 가지는 자성[변계소집·의타]이 되고 일곱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지(地)들이 되며, 나머지 지(地)와 부처님의 지(地)는 원성실(圓成實)이 됩니다. (10품 241송)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와 욕계(欲界)의 적멸(寂滅), 이 몸뚱이 안에서 모든 것이 마음의 경계로서 말해졌습니다. (10품 242송)
[무언가가] 얻어지는 동안에는 미혹이 작용하니, 미혹은 자기 마음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작용하지도 돌이켜지지도 않습니다. (10품 243송)
생겨나지 않음에는 원인이 없고 존재[有]에는 윤회의 포섭이 있으니, 환영 등과 같음을 보는 이는 특징을 분별하지 않습니다. (10품 244송)
삼승(三乘)과 일승(一乘)과 승(乘) 없음을 나는 말하니, 어리석고 둔한 지혜를 지닌 이들과 성인들의 [경계가] 다름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10품 245송)
나에게 생겨남은 두 가지이니 특징[相]과 증득(證得)이며, 도리[理]의 방식은 네 가지이니 정설(定說)과 이치에 맞는 가르침[應理教]입니다. (10품 246송)
모양[形]과 형태의 특별함으로써 미혹을 보고서 분별하니, 이름과 모양을 여읨으로 말미암아 자성은 성인들의 경계입니다. (10품 247송)
분별로써 분별되는 동안에는 그것이 변계소집(遍計所執)의 특징이니, 분별의 헤아림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자성은 성인들의 경계입니다. (10품 248송)
상주(常住)하고 항상하는 진실인 종성(種姓)은 실체의 자성이니, 진여(眞如)는 마음을 벗어난 것이며 분별을 여읜 것입니다. (10품 249송)
만일 어떤 실체가 청정하지 않다면 어느 것에도 잡염(雜染)이 없을 것이니, 마음이 청정해지고 또 잡염도 보이는 까닭에, 그러므로 진실은 청정한 실체이며 성인들의 경계인 것입니다. (10품 250송)
인연으로 생겨나고 분별을 여읜 세상을, 환영이나 꿈과 같음을 살펴보는 이는 해탈합니다. (10품 251송)
추중(麤重)의 훈습(熏習)들이 갖가지로 마음과 함께 결합되어 있으니, 사람들에게는 밖으로 보이는 것이지 마음의 법성(法性)이 아닙니다. (10품 252송)
마음의 법성(法性)은 청정하니 마음은 미혹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며, 미혹은 추중(麤重)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그로써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10품 253송)
미혹일 뿐인 것이 진실이 될 것이니 진실은 다른 곳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유위(有爲) 안에도 다른 곳에도 [있지] 않으나 다만 유위를 봄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0품 254송)
특징 지어지는 것과 특징을 여읜 유위(有爲)를 볼 때에는, 그로써 자기 마음을 보는 세상은 떨쳐져 있을 것입니다. (10품 255송)
마음일 뿐임에 올라서서 밖의 대상을 분별하지 말아야 하며, 진여(眞如)를 대상으로 삼아 머물러서 마음일 뿐임도 넘어서야 합니다. (10품 256송)
마음일 뿐임을 넘어서서 나타남 없음도 넘어서야 하니, 나타남 없음에 머무는 요가행자, 그가 대승(大乘)을 봅니다. (10품 257송)
공용(功用) 없는 나아감은 고요하며 서원(誓願)으로 청정해진 것이니, 무아(無我)를 본질로 하는 으뜸의 지혜는 나타남 없음에서도 [따로] 보이지 않습니다. (10품 258송)
마음의 경계를 보아야 하고 지혜[智]의 경계를 보아야 하며, 반야[慧]의 경계를 보아야 하니, [그러면] 특징[相]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10품 259송)
마음의 고제(苦諦)와 집제(集諦)는 지혜의 경계이며, 두 가지 진리[道諦·滅諦]와 부처님의 경지는 반야[慧]가 작용하는 곳입니다. (10품 260송)
결과의 증득과 열반(涅槃),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八正道]도 그러하니, 모든 법을 깨달음으로써 부처님의 지혜가 청정해집니다. (10품 261송)
눈과 형색과 빛, 허공과 뜻[意], 이것들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아뢰야[식]에서 생겨난 식(識)이 일어납니다. (10품 262송)
붙잡히는 것과 붙잡음과 붙잡는 자는 실체 없는 이름일 뿐이니, 원인 없는 분별을 [실재한다고] 여기는 이들은 깨달은 이가 아닙니다. (10품 263송)
대상에는 이름이 없고 이름에도 대상이 없듯이, 원인과 원인 아닌 것에서 생겨난 분별을 분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10품 264송)
모든 존재의 자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말[言說]도 이와 같이 존재하지 않으니, 공성(空性)이나 공성의 뜻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는 헤맵니다. (10품 265송)
진리의 확립을 헤아림으로 보고서 [설해진] 가명(假名)의 가르침, 이 진리는 다섯 갈래로 성립되나 하나됨으로 [귀결되어] 끊어집니다. (10품 266송)
희론(戱論)의 마군[魔]을 깨뜨려서 있음과 없음을 벗어나야 하니, 없음에 대한 바람도 존재[有]에 대한 그릇된 생각도 무아(無我)를 봄으로 말미암아 [사라집니다]. (10품 267송)
상주(常住)함과 짓는 자가 있음은 다만 주장으로 세워진 것이니, 궁극의 진리는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모든 것이] 그쳐진 곳에서 법을 보는 것입니다. (10품 268송)
아뢰야[식]에 의지하여 뜻[意]이 작용하며, 마음[心]과 뜻[意]에 의지하여 식(識)이 작용합니다. (10품 269송)
덧붙임 위에 다시 덧붙임을 더하듯 진여(眞如)와 마음의 법성(法性)[이라는 명칭도 그러하니], 이를 살펴보는 요가행자는 마음일 뿐임을 아는 지혜를 얻습니다. (10품 270송)
뜻[意]도 특징[相]도 실체도 항상함과 무상함으로 여기지 않으니, 생겨남도 생겨나지 않음도 요가행자는 요가에서 여기지 않습니다. (10품 271송)
두 가지 대상[能取所取]을 분별하지 않으니 식(識)은 아뢰야[식]에서 생겨난 것이며, 하나의 대상을 두 가지 마음으로써는 그 생겨남을 알지 못합니다. (10품 272송)
말하는 자도 없고 말해지는 것도 없으며 공(空)함도 없으니 자기 마음을 봄으로 말미암아,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견해의 그물이 작용합니다. (10품 273송)
인연들이 온다는 것도 없으며 감관(根)들도 어떠한 것도 없으니, 계(界)도 없고 온(蘊)도 없으며 탐욕도 없고 유위(有爲)도 없습니다. (10품 274송)
업(業)의 불도 이전에 없었으며 지어진 것도 없고 유위(有爲)도 없으니, 궁극[際]도 없고 능력[力]도 없으며 해탈도 없고 속박도 없습니다. (10품 275송)
무기(無記)의 존재도 없으며 법도 비법(非法)도 없으며, 시간도 없고 열반도 없으며 법성(法性)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10품 276송)
부처님도 없고 진리들도 없으며 결과도 없고 원인들도 없으며, 뒤바뀜도 열반도 없으며 사라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습니다. (10품 277송)
열두 가지 지분[十二支]도 없으며 끝도 끝없음도 없으니, 모든 견해를 끊기 위하여 나는 마음일 뿐임을 말합니다. (10품 278송)
번뇌들과 업(業)의 길들, 몸[身]과 짓는 자들과 결과도, 아지랑이나 꿈과 같으며 건달바의 성(城)과 같습니다. (10품 279송)
마음일 뿐임의 확립으로 말미암아 둘[能所]이 돌이켜진 것이 존재의 특징이니, 마음일 뿐임에 머무름으로 말미암아 상주(常住)와 단멸(斷滅)의 견해[가 극복됩니다]. (10품 280송)
열반에는 온(蘊)들도 없고 자아도 특징[相]도 없으니, 마음일 뿐임에 들어감으로써 해탈에 대한 붙잡음에서 돌이켜집니다. (10품 281송)
보이는 대지[大地]를 원인으로 하는 허물이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타나니, 마음은 보이지 않는 데서 생겨난 것이라 그로써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10품 282송)
몸과 향수(享受)와 머무름[住]에 확립된 것으로 사람들에게 훈습(熏習)이 나타나니, 마음은 있음도 없음도 아니어서 훈습에서는 빛나지 않습니다. (10품 283송)
때[垢]는 흰 것 위에서 나타나지 흰 것 위에서 때가 나타나지는 않으니, 마치 짙은 구름에 허공이 [가려지듯], 이와 같이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10품 284송)
마음으로써 업(業)이 쌓이고 지혜[智]로써 [그것이] 분석되며, 반야[慧]로써 나타남 없음과 위신력에 이르게 됩니다. (10품 285송)
마음은 대상에 결합되어 있고 지혜[智]는 논리에서 작용하니, 나타남 없음의 특별함에서는 반야[慧]가 작용합니다. (10품 286송)
마음[心]과 뜻[意]과 식(識), 그리고 분별을 여읜 상(想), 분별없는 법성(法性)을 증득한 것은 성문(聲聞)들이지 승자(勝者)의 아들들이 아닙니다. (10품 287송)
인(忍)과 인(忍)의 특별함에서 여래(如來)의 청정한 지혜가, 특별한 뜻을 위하여 일상적인 행함을 여의고 생겨납니다. (10품 288송)
변계소집(遍計所執)의 자성은 존재하나 의타(依他)는 존재하지 않으니, 분별된 것은 미혹으로 붙잡히나 의타(依他)는 분별되지 않습니다. (10품 289송)
마음은 있지 않다가 생겨난 것이니 마음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으며, 몸과 향수(享受)와 머무름[住]에 확립된 것으로 사람들에게 훈습(熏習)이 나타납니다. (10품 290송)
모든 형색[色]이 큰 요소[大種]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형색이 큰 요소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있으니, 건달바의 성(城)과 꿈과 환영과 아지랑이는 큰 요소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10품 291송)
나에게 있어 성스러운 반야[慧]는 세 가지이니 그로써 밝혀지는 것이며, 마음은 보이지 않는 데서 생겨난 것이라 그로써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10품 292송)
몸과 향수(享受)와 머무름[住]에 확립된 것으로 사람들에게 훈습(熏習)이 나타나니, 그로써 특징[相]을 분별하는 이는 자성들을 가리는 것입니다. (10품 293송)
두 가지 승(乘)을 여의고 나타남을 여읜 반야[慧]는, 생겨남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성문(聲聞)들에게서 작용하며, 마음일 뿐임에 들어감으로써 여래(如來)의 때 묻지 않은 반야[慧]가 [작용합니다]. (10품 294송)
만일 있음과 없음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난다면, 하나됨과 다름됨의 견해가 반드시 그것들에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10품 295송)
갖가지 나아감[趣]이 이루어지되 마치 환영처럼 성립되지 않듯이, 이와 같이 갖가지 상(相)도 분별되는 것이나 성립되지 않습니다. (10품 296송)
상(相)의 추중(麤重)으로 이루어진 속박은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니, 알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변계소집(遍計所執)은 의타(依他)로 분별됩니다. (10품 297송)
분별된 것[변계소집]인 존재가 바로 의타(依他)이니, 분별된 것은 갖가지 그림자 같은 것으로 의타(依他)는 분별됩니다. (10품 298송)
세속(世俗)과 승의(勝義), 셋째의 것은 원인을 지닌 것이 아니니, 분별된 것이 세속이라 이치에 맞으며, 그것이 끊어짐으로 말미암아 성인의 경계입니다. (10품 299송)
마치 요가행자들에게 하나의 실체가 갖가지로 빛나 보이나, 거기에는 갖가지임이 존재하지 않듯이, 이와 같이 [그것이] 변계소집(遍計所執)의 특징입니다. (10품 300송)
마치 눈병 든 이들에 의해 형색을 봄이 갖가지로 분별되듯이, 눈병은 형색도 아니고 형색 아님도 아니듯이, 의타(依他)도 그와 같이 지혜로운 이들에게 [그러합니다]. (10품 301송)
마치 금이 청정하고 물이 흐림을 여읜 것과 같으며, 허공이 짙은 구름 없음과 같듯이, 이와 같이 분별된 것[변계소집]은 청정합니다. (10품 302송)
나에게 있어 성문(聲聞)은 세 가지이니, 화현으로 이루어진 이와 서원(誓願)에서 생겨난 이, 탐욕과 성냄을 여읜 성문은 법에서 생겨난 이입니다. (10품 303송)
보살도 세 가지이나 부처님들께는 특징[相]이 없으니, 중생들의 낱낱 마음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나타납니다. (10품 304송)
분별된 것[변계소집]인 존재는 없으며 의타(依他)는 존재하니, 덧붙임[增益]과 손감[損減]의 분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10품 305송)
만일 분별된 것[변계소집]이 없음이 된다면 의타(依他)의 자성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존재 없이는 존재가 없으며 존재는 없음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10품 306송)
변계소집(遍計所執)에 의지하여 의타(依他)가 얻어지니, 상(相)과 이름의 결합으로 말미암아 변계소집이 생겨납니다. (10품 307송)
궁극에 이르러 이루어지지 않은 것[변계소집]과 다른 것에서 생겨난 것[의타]으로 말미암아, 그때에 청정한 승의(勝義)의 자성이 알려집니다. (10품 308송)
변계소집(遍計所執)은 열 가지이며 의타(依他)는 여섯 가지이니, 진여(眞如)와 스스로 증득해 가는 것에는 구별이 없습니다. (10품 309송)
오법(五法)이 진실이며 자성도 세 가지이니, 이를 살펴보는 요가행자는 진여(眞如)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10품 310송)
별자리와 구름의 모양, 해와 달과 같은 모습, 이렇게 사람들에게 마음이 보이니, 보이는 그림자는 훈습(熏習)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10품 311송)
이것들[온갖 존재]은 큰 요소에서 자기 본질을 얻은 것이니 특징 지어지는 것도 특징도 아니며, 모든 요소로 이루어진 것들이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면 형색도 요소로 이루어진 것이 됩니다. (10품 312송)
큰 요소[大種]들은 생겨나지 않은 것이니 요소들 가운데는 요소로 이루어진 것이 없으며, 큰 요소들은 원인이 되고 땅과 물 등은 결과가 됩니다. (10품 313송)
실물의 가명(假名)으로서의 형색과, 환영으로 생겨난 것, 꿈이나 건달바의 형색과, 다섯째로 아지랑이, (10품 314송)
일천제(一闡提)는 다섯 가지이며 종성(種姓)도 다섯 가지가 되며, 다섯 가지 승(乘)과 승(乘) 없음, 열반은 여섯 가지가 됩니다. (10품 315송)
온(蘊)의 구별은 스물넷이며 형색은 여덟 가지가 되며, 부처님은 스물넷이 되며 승자(勝者)의 아들[보살]도 두 가지입니다. (10품 316송)
도리[理]는 백여덟이며 성문(聲聞)도 세 가지이니, 부처님들의 국토는 하나이며 부처님도 하나가 됩니다. (10품 317송)
해탈은 세 가지이며 마음의 흐름은 네 가지이니, 무아(無我)는 나에게 여섯 가지가 되며 알려져야 할 것[所知]도 네 가지입니다. (10품 318송)
원인들을 여의고 견해의 허물을 여읜, 스스로 증득해 알아야 할 흔들림 없는 위없는 대승(大乘), (10품 319송)
생겨남과 생겨나지 않음은 여덟 가지와 아홉 가지가 되며, 하나의 순서 있는 때[一次第時]와 하나의 정설(定說)이 있습니다. (10품 320송)
무색계(無色界)는 여덟 가지이며 선정[禪]의 구별은 여섯 가지이니, 연각(緣覺)의 아들들에게는 벗어남[出離]이 일곱 가지가 됩니다. (10품 321송)
삼세(三世)도 존재하지 않으며 항상함과 무상함도 존재하지 않으니, 지음과 업(業)과 결과도 꿈의 일과 같습니다. (10품 322송)
처음과 끝이 생겨나지 않은 부처님들과 성문(聲聞)들과 승자(勝者)의 아들들, 마음은 보이는 것을 여의어 항상 환영과 같은 법입니다. (10품 323송)
태[胎]와 [탄생의] 수레바퀴와 태어남과 출가와 도솔천의 궁전, 모든 국토에 이르는 것들도 태어남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게 보입니다. (10품 324송)
옮겨감과 나아감과 중생, 가르침과 열반, 진리와 국토에 대한 깨달음도 인연에 의해 촉발된 것입니다. (10품 325송)
세상, 나무들, 섬, 무아(無我)를 통한 외도의 편력, 선정[禪]과 승(乘)과 머무름[住]의 증득, 헤아릴 수 없는 결과의 경계, (10품 326송)
달과 별의 종성(種姓)들, 왕의 종성, 하늘의 궁전, 야차와 건달바의 종성들, 업(業)에서 생겨나고 갈애에서 생겨난 것, (10품 327송)
헤아릴 수 없는 변화와 훈습(熏習)에 결합된 죽음[死沒], 죽음이 끊어짐과 없음으로 말미암아 번뇌의 그물이 그쳐집니다. (10품 328송)
재물과 곡식과 금(金), 논밭과 재산은 분별되는 것이니, 소와 염소와 종들, 그리고 말과 코끼리 등도 [그러합니다]. (10품 329송)
[요가행자는] 뚫린 침상에서 자지 말며 땅에도 [진흙 등을] 바르지 말아야 하니, 금과 은으로 된 그릇, 청동과 구리로 된 것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10품 330송)
푸르고 붉은 담요와 가사(袈裟)를, 소똥과 진흙과 열매·잎으로 [물들여] 요가행자는 흰 것을 항상 물들여야 합니다. (10품 331송)
돌이나 흙으로 된 것, 쇠로 된 것, 소라나 수정으로 된 것을, 요가행자는 그릇으로 지녀야 하며 마가다국의 [발우처럼] 온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10품 332송)
칼은 네 손가락 길이여야 하고 굽어서 물건 자르는 데 [쓰이는] 것이니, 요가에 몰두하는 요가행자는 기술[技藝]을 배우지 말아야 합니다. (10품 333송)
요가를 지니고 요가로 나아가는 요가행자는 사고 팖을 행하지 말아야 하니, 이것을 절 관리인[園丁]들이 행하여야 할 법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10품 334송)
감관(根)을 지키고 뜻[義]을 알며 경(經)과 율(律)에 [능통하되], 재가자와 어울리지 않는 이, 그를 나는 요가행자라 말합니다. (10품 335송)
빈집이나 무덤가나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짚더미나 노천에서 요가행자는 거처를 정해야 합니다. (10품 336송)
항상 세 가지 옷을 걸치고 무덤가든 어디든지, 옷을 위해서는 마련해야 할 것이니, 편안히 온 이가 [옷을] 베풀어 주는 경우라야 [받습니다]. (10품 337송)
[요가행자는] 멍에 길이만큼만 [앞을] 살피며 걸어야 하고 걸식(乞食)에 전념해야 하니, 마치 벌들이 꽃들에서 [꿀을 모으듯] 그와 같이 걸식을 행해야 합니다. (10품 338송)
무리와 어울리는 무리, 그리고 비구니들과 함께함이 있다면, 그것은 삿된 생계와 어울리는 것이니 요가행자에게는 마땅하지 않습니다. (10품 339송)
왕들과 왕자들, 대신들과 장자들에게, 걸식을 위하여 [친분을] 청하지 말아야 하니 요가에 전념하는 요가행자는 [그러합니다]. (10품 340송)
죽음과 출산으로 부정(不淨)한 집안의 음식과, 벗의 정으로 [얻은] 것, 그리고 비구·비구니와 어울려 [얻은] 것은, 요가행자에게 마땅하지 않습니다. (10품 341송)
절에서 항상 규정대로 연기를 내며 조리되는 것과, [자신을] 지목하여 마련된 것도, 요가행자에게 마땅하지 않습니다. (10품 342송)
생겨남과 무너짐을 여의고 있음과 없음의 양변을 떠난, 나타내어지는 것과 나타내는 특징이 결합된 것으로, 요가행자는 세상을 관해야 합니다. (10품 343송)
삼매의 힘과 결합되고 신통(神通)과 자재력(自在力)을 갖춘 요가행자가 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으니, 만약 생겨남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그러합니다]. (10품 344송)
극미(極微)와 시간과 근본원인(自性)이라는 원인들로 [세상을] 분별하지 말아야 하니, 요가행자는 인(因)과 연(緣)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세상을 분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10품 345송)
자신의 분별로 분별된 세상은 갖가지로 훈습(熏習)에서 일어난 것이니, 요가행자는 항상 존재[有]를 환영과 꿈과 같은 것으로 통찰해야 합니다. (10품 346송)
항상 훼손(誹謗)과 [실재를] 덧붙임을 여읜 견해로써, 몸과 향유(享有)와 처소로 나타나는 삼계(三界)의 존재를 분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10품 347송)
음식과 걸식을 마친 뒤 확실히 몸을 곧게 하여 두고, 부처님들과 보살들께 거듭거듭 예배하고서, (10품 348송)
율(律)과 경(經)의 도리로부터 진실을 거두어들여, 요가를 아는 이는 오법(五法)과 자심(自心)과 무아(無我)를 관해야 합니다. (10품 349송)
스스로 증득한 법성(法性)이 청정한 [보살의] 지위(地)들과 부처의 지위를, 요가행자는 이렇게 관해야 하니 [그리하면] 큰 연꽃에서 관정(灌頂)을 받습니다. (10품 350송)
모든 갈래를 두루 돌아 존재[有]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낸 이는, 갖가지 요가를 시작하여 상서로운 적정(寂靜)의 길로 나아갑니다. (10품 351송)
달과 해의 모습과 같고 연꽃잎의 빛살과 같은 광명을, 그리고 허공의 불처럼 갖가지인 것을, 요가행자는 [빛의] 무더기로 봅니다. (10품 352송)
이 갖가지 표상(相)들은 외도의 길로 [사람을] 이끄니, 성문(聲聞)의 경지와 벽지불(辟支佛)의 경계에 떨어지게 합니다. (10품 353송)
이 모든 것을 떨쳐버려 나타남이 없게 되었을 때에는, 그때에 모든 세계에서 모여온 부처님들의 손이라는 해[日]가, 진여(眞如)를 따르는 표상으로 그의 정수리를 어루만집니다. (10품 354송)
모양 없는 것으로서 존재가 있으니 이는 상주(常住)와 단멸(斷滅)을 여읜 것이며, 있음과 없음의 양변을 떠난 이들은 중도(中道)를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10품 355송)
인(因) 없음을 주장하는 이들은 인(因) 없음과 단멸의 견해를 분별하니, 바깥 사물[外境]을 알지 못함으로 인해 중도를 없애버릴 것입니다. (10품 356송)
존재를 붙잡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단멸의 견해가 되지 않게 하려고, [실재를] 덧붙이고 훼손함으로써 중도를 설할 것입니다. (10품 357송)
마음일 뿐임[唯心]을 깨달음으로써 바깥 사물이라는 의지처가 소멸되니, 분별의 그침, 바로 이것이 중도의 실천입니다. (10품 358송)
마음일 뿐임을 [따로] 보지 않으니 보이는 것이 없음으로 인해 [분별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도의 실천이니 나와 다른 [부처님들도] 설한 바입니다. (10품 359송)
생겨남과 생겨나지 않음, 있음과 없음, 그리고 공(空)함과, 모든 사물의 자성 없음, 이 이원(二元)을 분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10품 360송)
분별의 작용으로 사물이 [실재한다 여기며] 해탈이 없다고 어리석은 이들은 분별합니다. 마음의 작용을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 이원(二元)의 집착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10품 361송)
자기 마음이 보이는 것임을 깨달음으로써 이원의 집착은 끊어지니, 끊음이란 곧 두루 앎[遍知]이지 분별되는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10품 362송)
마음이 보이는 것임을 두루 앎으로 인해 분별은 일어나지 않으니, 분별의 일어나지 않음이 곧 마음을 여읜 진여(眞如)입니다. (10품 363송)
외도의 허물을 여읜 일어남이 만약 보인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이들에게 [진실로] 파악될 만한 것이 되며, 그침도 없앰이 아닌 것으로부터 [그러합니다]. (10품 364송)
이것을 깨달음으로 인해 부처의 경지가 있다고 나와 부처님들께서 설하셨으니, 다르게 분별한다면 외도의 주장에 떨어지고 맙니다. (10품 365송)
태어남이 없으면서도 태어남으로 나타나며, 죽음[死沒]이 없으면서도 죽어가니, [부처님들은] 마치 물에 비친 달빛처럼 동시에 수많은 세계들에서 나타나 보입니다. (10품 366송)
하나가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기도 하여 [비처럼] 뿌리며 타오르니, 마음에서 사유로 이루어진 것이 되어 그들은 마음일 뿐임을 설합니다. (10품 367송)
마음들 가운데 있는 마음일 뿐임, 그리고 마음 아닌 것으로서 마음에서 생겨난 것들, 갖가지 모습과 형태들도 마음일 뿐임 속으로 돌아갑니다. (10품 368송)
성인들의 왕[牟尼王, 부처]으로서, 성문(聲聞)의 모습으로써, 벽지불과 닮은 [모습으로써], 그리고 그 밖의 갖가지 모습들로써, 그들은 마음일 뿐임을 설합니다. (10품 369송)
무색(無色)의 모습을 무색으로써, 지옥 중생들에게는 지옥의 모습으로, [부처님들은] 중생들에게 [갖가지] 모습을 나타내 보이시니 [이는] 마음일 뿐임을 [알게 하려는] 까닭입니다. (10품 370송)
환영과 같은 삼매와 뜻으로 이루어진 몸[意成身], 그리고 열 가지 지위(十地)와 자재력을, [마음의] 전환을 이룬 이들은 얻습니다. (10품 371송)
자신의 분별이라는 전도(顚倒)와 희론(戲論)의 움직임으로 인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아는 것에서 어리석은 이들은 관념[想]에 얽매입니다. (10품 372송)
표상은 곧 의타(依他)의 것이니, 그 가운데 이름[名]이 붙는 것이 분별된 것[遍計所執]입니다. 분별된 표상은 의타성(依他性)으로부터 일어납니다. (10품 373송)
지혜로써 분석해보면 [그것은] 의타(依他)도 아니고 분별된 것도 아니니, 원성실(圓成實)한 존재도 없는데 어찌 지혜로써 분별될 수 있겠습니까? (10품 374송)
원성실(圓成實)한 존재는 있음과 없음을 여읜 것으로 존재하니, 있음과 없음을 여읜 것인데 어찌 두 가지 자성(自性)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10품 375송)
분별된 자성(변계소집성)에 [의지하여] 두 가지 자성(의타·원성실)이 성립되어 있으니, 분별된 것은 갖가지로 나타나 보이지만 청정한 것은 성인의 경계입니다. (10품 376송)
분별된 것은 갖가지 모습으로 의타(依他) 가운데서 분별되니, 달리 분별한다면 외도의 주장에 의지하게 됩니다. (10품 377송)
분별은 원인으로부터 생겨남을 봄으로써 '분별'이라 일컬어지니, 두 가지 분별을 여읜 것, 바로 그것이 원성실(圓成實)입니다. (10품 378송)
세계와 부처님들과 화신(化身)들, 하나의 수레[一乘]와 세 가지 수레[三乘], 나는 열반이 없다고 [말하니], 모든 것은 공(空)하며 생겨남을 여읜 것입니다. (10품 379송)
서른여섯 가지 부처의 구별들과 각기 다른 열 가지 구별들, 중생들의 마음의 흐름들, 이것들이 [바로] 세계이지 그릇[器世間]이 아닙니다. (10품 380송)
분별된 사물이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지만 실은 거기에 갖가지임이 없듯이, 그와 같이 세간도 부처의 법[佛法]입니다. (10품 381송)
법신불(法身佛)이 곧 부처이며 나머지는 그의 화현(化現)이니, 중생들은 자기 씨앗의 흐름을 부처를 봄으로써 봅니다. (10품 382송)
미혹된 표상과의 관계로 인해 분별이 일어나니, 분별은 진여(眞如)와 다르지 않으며 표상이 곧 분별인 것도 아닙니다. (10품 383송)
자성신(自性身)과 수용신(受用身), 화현(化現)인 다섯 가지 화신(化身), 그리고 서른여섯의 부처 무리, [이 모두의 근본이 되는] 부처가 자성불(自性佛)입니다. (10품 384송)
파랑과 빨강, 소금과 소라, 우유와 사탕수수즙, 떫은 맛과 과일과 꽃 등, 그리고 해에서 나오는 빛살들처럼, (10품 385송)
바다에서 물결이 [바다와] 다르지도 다르지 않지도 않듯이, 일곱 가지 식(識)들도 그와 같이 마음[心]과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10품 386송)
바다의 변화라는 것이 곧 물결의 갖가지 모습이듯이, 아뢰야식도 그와 같이 갖가지로 식(識)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납니다. (10품 387송)
마음[心]과 의(意)와 식(識)은 특징을 나타내기 위하여 분별되니, 여덟 가지 식은 나뉘지 않는 특징을 지녀서 나타내어지는 것도 없고 나타내는 특징도 없습니다. (10품 388송)
바다와 물결 사이에 구별이 없듯이, 식(識)들도 마음에서 변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10품 389송)
마음[心]으로써 업(業)이 쌓이고 의(意)로써 그것이 헤아려지며, 식(識)으로써 [대상을] 알고 다섯 가지 [식]으로써 보이는 것을 분별합니다. (10품 390송)
파랑과 빨강의 양상으로 식(識)이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이니, 물결과 마음의 같은 성질을 어찌하여 [그렇다 하시는지] 대성인(大聖人)이시여 말씀해 주소서. (10품 391송)
파랑과 빨강의 양상은 물결에는 있지 않으니, [그러나] 마음의 작용이 [그렇게] 묘사되는 것은 어리석은 이들을 위해 특징을 나타내려는 것일 뿐입니다. (10품 392송)
그 [진여]에는 작용이 있지 않으니 자기 마음은 붙잡히는 것[所取]을 여의었습니다. 붙잡히는 것이 있을 때에 붙잡는 것[能取]이 물결과 함께 성립하는 것입니다. (10품 393송)
몸과 향유(享有)와 처소로서 식(識)이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이니, 그러므로 그 작용은 물결과 함께 닮은 것으로 보입니다. (10품 394송)
바다가 물결의 모습으로 춤추듯 일어나는 것으로 관찰되듯이, 아뢰야식의 작용도 그와 같은데 어찌하여 지혜로써 붙잡히지 않는 것입니까? (10품 395송)
어리석은 이들의 지혜가 모자람으로 인해, 아뢰야식은 바다와 같은 것으로, 물결의 작용과 같은 성질이라는 비유로써 이끌려 설명되는 것입니다. (10품 396송)
해가 떠오를 때 낮은 이나 뛰어난 이에게나 똑같이 [비추듯이], 그와 같이 세상의 빛이신 당신께서도 어리석은 이들에게 진실을 설하십니다. (10품 397송)
법들에 [의지하여] 머무름을 지으시고서는 어찌하여 진실을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만약 진실을 말씀하신다면, 진실은 [본래] 마음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10품 398송)
바다의 물결처럼, 거울 속이나 꿈속에서처럼, [모든 것이] 동시에 보이듯이, 그와 같이 마음도 자신의 경계에서 [동시에 나타나지만], 대상들의 결핍으로 인해 순서대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10품 399송)
식(識)으로써 알고 다시 의(意)로써 헤아리며, 다섯 [식]으로써 보이는 것이 나타나 보이지만, 삼매에 든 이에게는 순서가 없습니다. (10품 400송)
마치 어떤 그림 스승이나 그의 제자가 그림을 위하여 물감을 펼치듯이, 나의 가르침도 그와 같습니다. (10품 401송)
그림은 물감에도 있지 않고 벽에도 그릇에도 있지 않으니, 중생들을 이끌기 위하여 물감으로써 그림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10품 402송)
어긋남 없는 가르침으로써 진실은 문자를 여읜 것이지만, 법에 [의지하여] 머무름을 지어서 나는 요가행자들에게 진실을 설합니다. (10품 403송)
진실은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로서 분별하고 분별되는 것을 여읜 것이니, 나는 부처님의 아들[불자]들에게 [그렇게] 설하고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달리 설합니다. (10품 404송)
갖가지 환영이 보이지만 [실재로는] 있지 않듯이, 가르침도 그와 같이 갖가지로 보이지만 어긋남이 없습니다. (10품 405송)
어떤 이에게 [맞는] 가르침이 다른 이에게는 가르침이 아닐 수 있으니, 마치 의사가 병자마다 [각기 다른] 약을 주듯이, 부처님들도 그와 같이 중생들에게 마음일 뿐임을 설하십니다. (10품 406송)
바깥[경계]이라는 훈습의 씨앗으로 인해 분별이 일어나니, 그것으로써 붙잡는 것이 의타(依他)이며 붙잡히는 것이 분별된 것[遍計]입니다. (10품 407송)
바깥 대상[所緣]이 붙잡히는 것은 마음에 의지하여 생겨나니, 미혹은 두 가지로 일어나며 제3의 원인은 없습니다. (10품 408송)
미혹이 생겨나는 바탕과, 그것이 의지하여 생겨나는 바를, 여섯과 열둘과 열여덟이라는 것도 나는 오직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10품 409송)
자기 씨앗과 붙잡히는 것의 관계로 인해 [있던] 아집(我執)이 끊어지고, 마음이 분별임을 깨달아 들어감으로써 법집(法執)이 끊어집니다. (10품 410송)
아뢰야식이라 하는 그것에서 [일곱 가지] 식(識)이 일어나니, 안[內]으로는 감각기관[根]이 되고 밖[外]으로는 [대상의] 나타남이 됩니다. (10품 411송)
별과 머리카락과 [허공의] 그물, 꿈의 형상이 어리석은 이들에게 [실재로 보이듯이],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와 상주(常住)함도 분별될 뿐 실재하지 않습니다. (10품 412송)
건달바성(乾闥婆城)과 환영과 아지랑이의 물처럼, 있지 않은 것들이 보이듯이, 의타(依他)도 그와 같습니다. (10품 413송)
자아와 감각기관이라는 [세속적] 비유를 나는 세 가지 마음[心·意·識]에 대해 설하니, 마음[心]과 의(意)와 식(識)은 [본래] 자상(自相)을 여읜 것들입니다. (10품 414송)
마음[心]과 의(意)와 식(識), 그리고 두 가지 무아(人無我·法無我), 오법(五法)과 [삼]자성, 이것이 바로 부처님들의 경계입니다. (10품 415송)
특징으로써는 세 가지가 되지만 하나이니 훈습을 원인으로 하는 것으로, 마치 벽 위에 하나의 물감으로 [갖가지] 그림이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10품 416송)
무아(無我)와 불이(不二), 마음[心]과 의식(意識), 오법(五法)과 [삼]자성, 이것들은 나의 종성(種姓)에는 있지 않습니다. (10품 417송)
마음이라는 특징을 여의고 식(識)과 의(意)를 떠나며, 법의 자성을 여읜 것, [이것이] 여래의 종성(種姓)을 얻는 것입니다. (10품 418송)
몸과 말과 뜻으로 거기에서는 선(善)함이 지어지지 않으니, 여래의 청정한 종성(種姓)은 [일상적] 행위를 여읜 것입니다. (10품 419송)
신통(神通)과 자재력(自在力)으로 청정하며 삼매의 힘으로 장엄되고, 뜻으로 이루어진 몸[意成身]인 마음, 이것이 상서로운 여래의 종성입니다. (10품 420송)
스스로 증득하여 아는 것으로 티끌 없고 원인이라는 특징을 여읜 것, 여덟째 [보살의] 지위와 부처의 지위, 이것이 여래의 종성이 됩니다. (10품 421송)
원행지(遠行地)와 선혜지(善慧地)와 법운지(法雲地)와 여래지(如來地), 이것이 바로 부처님들의 종성이며, 나머지는 이승(二乘)의 수레로 이끄는 것입니다. (10품 422송)
중생의 흐름의 차이로 인해, 그리고 어리석은 이들을 위한 특징을 나타내려는 뜻으로, 마음의 자재함을 얻은 부처님들에 의해 일곱 가지 지위(七地)가 설해집니다. (10품 423송)
말과 몸과 마음의 추중(麤重)함이 일곱째 지위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니, 여덟째 지위에서 그 의지처는 꿈의 흐름과 같은 것이 됩니다. (10품 424송)
여덟째와 다섯째 지위에서 부처님의 아들[불자]들은 기예(技藝)와 학문과 기술의 전승을 행하며, 존재의 거처에서 왕의 지위도 행합니다. (10품 425송)
생겨남과 생겨나지 않음, 공(空)함과 공하지 않음을 분별하지 말아야 하니, 자성이 있음과 자성이 없음은 마음일 뿐임에는 있지 않습니다. (10품 426송)
'이것은 진실이고 이것도 진실이며 이것은 거짓이다'라고 분별하는 것은, 벽지불과 성문들을 위한 가르침이지 부처님의 아들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10품 427송)
진실과 거짓,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님, 찰나적임과 특징이 있음도 아님, 가명(假名)의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이것들은] 마음일 뿐임에는 있지 않습니다. (10품 428송)
사물들은 세속(世俗)으로서는 존재하지만 승의(勝義)에서는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니, 자성 없는 것들에 대한 미혹, 그것이 진실한 세속제(世俗諦)가 됩니다. (10품 429송)
있지 않은 모든 법들에 대해 나는 가명(假名)을 짓나니, 언어표현과 세속의 통용은 어리석은 이들을 위한 것으로 진실을 여읜 것입니다. (10품 430송)
언어표현에서 생겨난 사물이 의미의 경계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어표현에서 생겨난 사물은 [실상을] 보면 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0품 431송)
벽이 없이는 그림이 없고 그림자에는 형체가 없듯이, 아뢰야식도 그와 같이 청정하여 물결에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10품 432송)
마음[心]은 배우와 같이 서 있고 의(意)는 어릿광대와 같으며, 다섯 가지 식(識)과 더불어 보이는 것을 물감처럼 분별합니다. (10품 433송)
가르침이라는 법의 유출(等流)과 유출로 이루어진 것, 이것이 곧 [진실한] 부처님들의 [몸]이며, 나머지는 화현의 몸입니다. (10품 434송)
보이는 것에는 마음이 있지 않되 마음은 보이는 것에 미혹되니, 몸과 향유(享有)와 처소로서 아뢰야식이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입니다. (10품 435송)
마음[心]과 의(意)와 식(識), 자성(自性), 오법(五法), 그리고 두 가지 청정한 무아(無我), [이것들을] 인도자들[부처님]께서 설하십니다. (10품 436송)
논리학자들의 경계도 아니고 성문들의 [경계]도 아닌 것을, 세존들께서는 스스로 증득하는 경계로서 설하십니다. (10품 437송)
길고 짧음 등은 서로 관계지어져 서로로부터 일어나니, 있음을 성립시키는 것에 없음은 없으며 있음은 없음을 성립시킵니다. (10품 438송)
실체를 극미(極微)로 나누어서 물질[色]을 분별하지 말아야 하니, 마음일 뿐임의 확립은 삿된 견해로써는 밝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10품 439송)
공(空)함을 분별하지 말고 또한 공하지 않음도 [분별하지] 말아야 하니, 있음과 없음이라는 것도 다만 분별일 뿐 분별되는 대상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10품 440송)
성질과 극미와 실체들의 결합으로 물질[色]이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되지만, 낱낱의 극미는 존재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그 뜻[대상]도 실재하지 않습니다. (10품 441송)
자기 마음이 보이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바깥의 것으로 나타나 보이지만, 바깥의 보이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그 대상도 실재하지 않습니다. (10품 442송)
그림, 머리카락 그물, 환영, 꿈, 건달바성, 회전하는 불덩이, 아지랑이, 이것들은 있지 않은 것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10품 443송)
상주(常住)와 무상(無常), 하나임과 [다름], 둘 다임과 둘 다 아님, 무시(無始)의 허물에 얽매인 어리석은 이들은 미혹되어 [이렇게] 분별합니다. (10품 444송)
수레[乘]의 구별이란 실은 있지 않으니 나는 하나의 수레[一乘]를 말합니다. 어리석은 이들을 이끌기 위한 뜻으로 수레의 차별을 말할 뿐입니다. (10품 445송)
세 가지 해탈과 법무아(法無我) 또한, 평등(平等)과 지혜와 번뇌라 일컬어지는 것들도, 해탈로써 그것들은 [모두] 벗어난 것입니다. (10품 446송)
바다에서 나무토막이 물결에 의해 이리저리 떠밀리듯이, 어리석은 성문(聲聞)도 그와 같이 특징[相]에 의해 떠밀려 갑니다. (10품 447송)
그에게는 궁극의 경지에 이름도 없고 다시 돌이킴도 없으니, 삼매의 몸을 얻고서는 [겁이 다하도록] 깨어나지 못합니다. (10품 448송)
훈습된 번뇌에는 얽매여 있으나 [번뇌의] 현행(現行)은 여읜 채, 삼매의 취기에 취한 그들은 무루(無漏)의 세계에 머뭅니다. (10품 449송)
마치 취한 사람이 술기운이 사라짐으로써 깨어나듯이, 그와 같이 그들도 부처의 법이라 일컬어지는 나의 몸을 얻게 될 것입니다. (10품 450송)
진흙에 빠진 코끼리가 이리저리 달리지 못하듯이, 삼매의 취기에 빠진 성문들도 그와 같이 [나아가지 못하고] 머무릅니다. (10품 451송)
인간의 왕[부처]들의 가피(加被)는 서원(誓願)으로써 청정해지니, 관정(灌頂)의 삼매를 비롯한 것은 첫째 지위와 열째 지위입니다. (10품 452송)
허공과 토끼의 뿔, 그리고 석녀(石女)의 아들처럼, 있지 않은 것들도 [언어로] 표현되듯이, 사물들에 대한 분별도 그와 같습니다. (10품 453송)
훈습을 원인으로 하는 세상은 없지도 않고 있음과 없음의 어느 것도 아니니, 이를 보는 이들, 법무아(法無我)에 통달한 이들은 해탈합니다. (10품 454송)
이름[名]과 자성이 분별된 것[遍計所執]이며, 다른 것에 의지하여 생겨난 것[依他起]이고, 원성실(圓成實)은 진여(眞如)라고 일컬어지니, 나는 언제나 경마다 이렇게 설하였습니다. (10품 455송)
문자[文]와 구절의 무리[句身]와 이름[名]에, 어리석고 지혜가 모자란 이들은 마치 큰 코끼리가 진흙에 [빠지듯이] 특히 집착합니다. (10품 456송)
천신의 수레[天乘], 범천의 수레[梵乘], 그와 같이 성문의 수레[聲聞乘], 여래의 수레[如來乘]와 벽지불의 [수레], 나는 이 수레들을 말합니다. (10품 457송)
마음이 [분별로] 작용하는 한 수레들의 궁극은 없으니, 마음이 전환되었을 때에는 수레도 없고 [수레를] 타는 이도 없습니다. (10품 458송)
마음[心], 분별, 요별(了別), 의(意)와 식(識), 아뢰야식과 삼계(三界)에 대한 애착, 이것들은 마음의 다른 이름들입니다. (10품 459송)
수명(壽命)과 온기(溫氣)와 식(識), 아뢰야식과 생명의 기능[命根], 그리고 의(意)와 의식(意識), [이것들은] 분별의 다른 특성들입니다. (10품 460송)
마음[心]으로써 몸이 지탱되고 의(意)는 항상 헤아리며, 식(識)은 마음의 대상[을 취하니] [다섯] 식(識)들과 더불어 [경계를] 분별합니다. (10품 461송)
갈애[愛]는 어머니라 일컬어지고 무명(無明)은 그와 같이 아버지이니, 대상을 깨달음으로 인해 식(識)은 '부처'라고 가르쳐집니다. (10품 462송)
아라한들은 잠재된 번뇌[隨眠]의 온(蘊)들이며 승가(僧伽)는 다섯 가지 온(五蘊)이니, 끊임없이 이어짐이 끊어짐으로 인해 업은 무간(無間)한 것이 됩니다. (10품 463송)
두 가지 무아(無我)와 번뇌들, 그와 같이 두 가지 장애[煩惱障·所知障], 불가사의한 변역(變易)의 죽음[死沒]으로부터의 얻음, 이것이 여래들입니다. (10품 464송)
종지(宗旨)의 뜻[宗通]과 방편의 뜻[說通], 그리고 스스로 증득함과 가르침을, 구별을 아는 이들은 보나니, 그들은 논리에 지배되지 않습니다. (10품 465송)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것과 같은 진실한 존재는 있지 않으니, 그런데 어찌하여 논리학자들은 존재 없음으로써의 해탈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까? (10품 466송)
생겨남과 무너짐에 결합된 유위(有爲)를 살펴보는 이들은, 두 가지 견해[有見·無見]를 키울 뿐 연(緣)들을 알지 못합니다. (10품 467송)
오직 하나의 진실이 있으니 그것은 의(意)를 여읜 열반이며, [지혜로운 이는] 세상을 파초(芭蕉)와 꿈과 환영과 같이 분별된 것으로 봅니다. (10품 468송)
탐욕도 성냄도 존재하지 않으며 어리석음도 개아(個我)도 존재하지 않으니, 갈애로부터 일어난 온(蘊)들은 꿈과 같은 것으로 존재합니다. (10품 469송)
내가 깨달음에 이른 그 밤과 반열반(般涅槃)에 든 그 밤, 이 사이에 나는 아무것도 드러내어 말한 바가 없습니다. (10품 470송)
스스로 증득한 법이 [본래] 머물러 있음에 의거하여 나는 설하였으니, 저 부처님들과 나에 의해서도 [설해진 것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10품 471송)
자아는 실체처럼 존재한다고 [여겨지나] 온(蘊)들은 특징을 여읜 것이니, 온들은 [세속적] 존재로서는 있으나 자아는 그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10품 472송)
인간과의 교류에서 오는 번뇌들에 대해 실천[의 길]을 밝게 아는 이는, 세간을 자기 마음[이 지어낸 것]으로 보는 이로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납니다. (10품 473송)
원인들과 조건들로써 세상이 일어난다고 [여겨] 네 가지 구절[四句]에 얽매인 이들은, 나의 이치에 통달한 이들이 아닙니다. (10품 474송)
세상은 있음과 없음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없음도 아니고 있음과 없음의 어느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어리석은 이들은 조건들과 원인들로써 [세상을] 분별하는 것입니까? (10품 475송)
있음도 없음도 아니고 있음과 없음의 어느 것도 아닌 것으로 세상을 볼 때에는, 그때 마음은 전환되고 무아(無我)를 증득하게 됩니다. (10품 476송)
모든 사물은 생겨나지 않은 것이니, [사물이] 조건들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조건들은 [사실] 결과이니, 결과로부터 존재가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10품 477송)
결과가 결과를 낳지는 않으니, [그렇다면] 결과에 둘이라는 오류가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둘이라는 오류가 따른다고 해서 결과가 없음이 [증명되어]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10품 478송)
유위(有爲)를 대상[所緣]과 대상 없음을 여읜 것으로 볼 때에는, 표상은 곧 마음일 뿐이니 나는 [이것을] 마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10품 479송)
오직 [분별로 이루어진] 것[唯]이라는 자성의 모습은 조건들에 의한 [실재하는] 존재를 여읜 것이니, 궁극에 다다름이 없는 것을 지고한 범(梵)이라 하며, 나는 이 오직[唯]이라는 것을 [그렇게] 말합니다. (10품 480송)
자아는 가명(假名)의 진리로서 [있을 뿐] 실체로서는 존재하지 않으니, 온(蘊)들의 온다움[蘊性]도 그와 같이 가명으로서일 뿐 실체로서는 아닙니다. (10품 481송)
네 가지 평등(平等)이 있으니 특징의 평등, 원인의 평등, 그릇[器世間]의 평등, 그리고 넷째로 요가행자들의 무아(無我)의 평등입니다. (10품 482송)
모든 견해들로부터의 벗어남은 분별하고 분별되는 것을 여읜 것이니, 붙잡을 수 없음과 생겨남 없음, 이것을 나는 마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10품 483송)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며 있음과 없음을 여읜 것, 마음을 여읜 진여(眞如), [이것을] 나는 마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10품 484송)
진여(眞如), 공성(空性), 실제(實際), 열반, 법계(法界), 뜻으로 이루어진 몸[意成身]인 마음, [이것들을] 나는 마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10품 485송)
분별의 훈습에 얽매인 갖가지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 사람들에게 바깥의 것으로 생겨나니, 마음일 뿐임이 곧 세간(世間)입니다. (10품 486송)
바깥의 보이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마음이 그린 그림이 보이는 것이니, 몸과 향유(享有)와 처소로 나타나는 것, [이것을] 나는 마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10품 487송)
성문들에게는 [번뇌가] 다했다는 지혜가, 부처님들에게는 태어남[의 화현]이, 벽지불의 아들들에게는 물듦 없음[번뇌의 다함]으로부터 일어납니다. (10품 488송)
바깥에는 실은 물질[色]이 있지 않으니 자기 마음이 바깥으로 보이는 것이며, 자기 마음을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 어리석은 이들은 유위(有爲)를 분별합니다. (10품 489송)
바깥의 대상을 [실재라고]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자기 마음이 그린 그림이라는 견해는 네 가지 구절[四句]에 연결된 이유들로 가로막힙니다. (10품 490송)
만약 지혜로운 이들이 자기 마음이 대상으로 옮겨간 것임을 안다면, 이유들도 없고 [네 가지] 구절도 없으며 비유의 부분들도 [필요치] 않습니다. (10품 491송)
분별된 특징을 가진 것을 분별들로써 분별하지 말아야 하니, 분별된 것에 의지하여서 분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10품 492송)
서로 다르지 않은 관계로 인해 [의타와 원성실은] 하나의 훈습을 원인으로 하니, [분별이] 손님처럼 우연히 옴으로 인해, 이 둘에서는 사람들에게 [따로] 마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10품 493송)
분별을 마음[心]과 심소(心所)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은 삼계(三界)에 머물러 있으니, 대상의 모습으로 일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분별된 자성[遍計所執性]입니다. (10품 494송)
나타남[現]과 씨앗[種子]의 결합으로 열두 가지 처(處)들이 있으니, 의지처[根]와 대상[所緣]의 결합으로부터 [일어나는] 과정을 나는 설합니다. (10품 495송)
거울 속의 영상이나 눈병 든 이의 머리카락 그물처럼, 그와 같이 훈습에 뒤덮인 마음을 어리석은 이들은 [실재라고] 봅니다. (10품 496송)
자신의 분별로 분별된 대상에서 분별이 일어나니, 바깥의 대상은 외도들이 분별하는 것처럼 존재하지 않습니다. (10품 497송)
밧줄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들이 [그것을] 뱀이라 붙잡듯이, 자기 마음의 대상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대상을 바깥의 것으로 분별합니다. (10품 498송)
밧줄은 밧줄임에 있어서는 하나임과 다름을 여읜 것이나, 이는 다만 자기 마음의 허물로 인해 밧줄이 [뱀으로] 분별되는 것입니다. (10품 499송)
어떤 것이 어떤 존재로서 분별되면서도 [그 자체로는] 특징지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없다고 이해해서는 안 되니, 이것이 모든 법(法)의 법성(法性)입니다. (10품 500송)
있음을 앞세운 없음도 없고 없음을 앞세운 있음도 있으니, 그러므로 없음으로도 나아가서는 안 되고 있음도 분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10품 501송)
분별된 것과 분별되고 있는 이것은 [그] 자체의 본질을 지니지 않으니, 본질 없음을 보고서도 어찌하여 분별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10품 502송)
물질[色]은 물질 자체로서는 존재하지 않으니 항아리와 옷 등도 그와 같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그로 인해 분별이 생겨납니다. (10품 503송)
만약 그대의 분별들이 무시(無始)의 유위(有爲)에 대한 미혹이라면, 사물들의 존재성은 무엇에 의해 미혹된 것인지 성인이시여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10품 504송)
사물들의 존재성은 있지 않으며 마음일 뿐임이 보이는 것이니,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함으로 인해 분별이 일어납니다. (10품 505송)
만약 분별된 것이 어리석은 이가 분별하는 그대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는 존재한다면, 그것은 [일상의] 지혜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10품 506송)
만약 그것이 성인들에게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것과는 다르며, 만약 성인들에게도 [그것이] 거짓이라면 성인들도 어리석은 이들과 같아지게 됩니다. (10품 507송)
성인들에게는 미혹이 없으니 이는 그들의 마음이 청정해졌기 때문이며, 마음의 흐름이 청정하지 못한 어리석은 이들은 분별된 것을 분별합니다. (10품 508송)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하여 허공에서 과일을 가져다주며 '얘야 울지 말고 이 아름다운 과일을 받아라'라고 하듯이, (10품 509송)
그와 같이 나도 모든 중생들에게 갖가지로 분별된 과일들로써, [그들을] 이끌어 있음과 없음의 양변을 여읜 이치를 설합니다. (10품 510송)
이전에 있지 않다가 [지금] 존재하게 된 것은 조건들에 뒤섞이지 않은 것이 아니며, 이전에 생겨나지 않았던 그것이 생겨난 것도 [본래] 자체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10품 511송)
자체를 얻지 못한 것은 어디서도 생겨나지 않은 것이니 조건들 없이는 [생겨나지] 않으며, 생겨난 것처럼 [보이는] 그 사물도 어디서든 조건들 없이는 [있지] 않습니다. (10품 512송)
이와 같이 요약하여 볼 때 [사물은] 없지도 않고 있음과 없음의 어느 것도 아니며, 조건들로부터 생겨난 것[존재]은 지혜로운 이들에게 분별되지 않는 것입니다. (10품 513송)
하나임과 다름에 대한 논의를, 삿된 외도의 어리석은 이들은 지어내지만, 조건들로써 [일어나는] 세간이 환영과 꿈과 같음을 알지 못합니다. (10품 514송)
언어표현의 경계를 넘어선 수레인 위없는 대승(大乘)의 뜻을 나는 잘 이끌어 [설하였으나], 어리석은 이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10품 515송)
인색함으로 인해 성문들과 그와 같이 외도들에 의해 설해진 것들은, 뜻에서 어긋나니 이는 그것들이 논리로써 설해졌기 때문입니다. (10품 516송)
특징[相], 사물[事], 형태[生], 그리고 이름[名]이라는 네 가지를, 이것을 대상[所緣]으로 삼아 분별이 일어납니다. (10품 517송)
하나가 되기도 여럿이 되기도 하며 범천의 몸의 자재함을 얻은 이들, 달과 해의 존재들을 없애지 않는 이들, 그들이 [참된] 아들입니다. (10품 518송)
성인의 견해를 갖추고 여실(如實)한 경지에 이르며, 관념[想]의 전환에 능숙하고 식(識)에서도 저 언덕[彼岸]에 이른 이들, (10품 519송)
이것이 바로 내 가르침 안에서 해탈한 아들들의 인장(印)이니, 있음과 없음을 여의고 감과 옴을 여읜 것입니다. (10품 520송)
만약 물질[色]과 식(識)이 소멸할 때 업(業)도 없어진다면, [세상은] 상주(常住)함도 무상(無常)함도 이르지 못할 것이며 윤회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10품 521송)
소멸의 때에 무너진 물질[色]은 장소로부터 돌이켜지니, 있음과 없음의 허물을 여읜 업(業)은 아뢰야식에 머무릅니다. (10품 522송)
물질[色]과 식(識)은 무너져 존재의 처소[阿賴耶]로 떨어지니, 물질과 식에 결합된 업(業)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10품 523송)
만약 그것들과 함께 결합된 업이 사람들에게서 무너진다면, 업의 관계가 무너졌을 때에는 윤회도 없고 열반도 없게 됩니다. (10품 524송)
만약 [업이] 그것들과 함께 무너졌으면서도 윤회 가운데 다시 생겨난다면, 물질[色]도 그것과 결합되어 [다시 나타나되] 다르지 않음으로 인해 그러할 것입니다. (10품 525송)
마음[心]과 물질[色]은 분별로 인해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니, 있음과 없음의 양변을 여읨으로 인해 사물들의 무너짐도 없습니다. (10품 526송)
분별된 것[遍計]과 의타(依他)는 서로 다르지 않은 특징으로 인해 [관계지어지니], 마치 물질[色]에서 무상(無常)함이 [일어나듯이] 서로가 서로를 낳는 것과 같습니다. (10품 527송)
다름과 다르지 않음을 여읜 것으로서 분별된 것은 확정되지 않으니, 있음과 없음이 어찌 [따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물질[色]에서의 무상함과 같습니다. (10품 528송)
분별된 것을 바르게 봄으로써 의타(依他)는 [따로] 생겨나지 않으며, 의타를 봄으로써 분별된 것은 진여(眞如)가 됩니다. (10품 529송)
분별된 것이 없어진다면 나의 인도(引導)도 없어지는 것이니, 그들은 나의 가르침에 대해 [실재를] 덧붙이고 훼손함을 행하는 것입니다. (10품 530송)
이와 같은 이들이 어느 때에 법을 훼손하는 자들이 될 때에는, 그들 모두는 함께 말할 만한 이들이 아니니 나의 인도를 무너뜨리는 자들입니다. (10품 531송)
지혜로운 이들에 의해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이들로 여겨져야 하며 비구의 일도 멀리해야 하니, [그들은] 분별된 것을 없애버리는 [실재를] 덧붙이고 훼손하는 자들입니다. (10품 532송)
머리카락 그물과 환영과 같고 꿈과 건달바성과 닮았으며, 아지랑이와 같이 보이는 것으로 분별하는 이들에게는, 있음과 없음의 견해가 [본래] 있지 않습니다. (10품 533송)
부처님들의 [가르침을] 배우지 않는 자는 그들의 포섭 안에서 행하지 않는 자이니, 이들은 [있음·없음] 두 극단에 떨어져 다른 이들도 파괴하는 자들입니다. (10품 534송)
분별된 사물이 [본래] 여읜 것임을 보는 요가행자들, 있음과 없음을 여읜 것으로 [보는] 그들의 포섭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10품 535송)
세상에서 금(金)과 보석과 진주가 생겨나는 광맥들이, 업을 원인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갖가지이며 어리석은 이들의 생계 수단이 되듯이, (10품 536송)
그와 같이 중생들의 종성(種姓)들도 갖가지이면서 업(業)을 여읜 것이니, 보이는 것이 없음으로 인해 업도 없고 업에서 생겨난 갈래[趣]도 없습니다. (10품 537송)
사물들의 존재성은 성인들이 관하는 것처럼은 있지 않으나, 그러나 사물들은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방식으로는 존재합니다. (10품 538송)
만약 사물들이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대로 존재한다면, 중생의 존재들이 있지 않은 것들 가운데는 어느 누구에게도 물듦[染]이 없을 것입니다. (10품 539송)
사물들의 다양함에 대한 물듦으로 인해, 감각기관에 의지한 윤회가, 무지(無知)와 갈애에 결부되어 몸을 지닌 이들에게 일어납니다. (10품 540송)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것과 같은 존재가 없는 이들에게는, 감각기관들의 작용도 없고 요가행자로서의 [작용도 없습니다]. (10품 541송)
만약 존재의 윤회의 원인이 되는 사물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로써 이 해탈은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아무 행위 없이 [저절로] 있게 될 것입니다. (10품 542송)
그렇다면 어리석은 이와 성인의 차이가 있음과 없음으로부터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세 가지 해탈을 행하는 성인들에게는 [분별된] 존재가 없습니다. (10품 543송)
온(蘊)들과 개아(個我)와 법(法)들, 그것들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이 없음, 그리고 조건들과 감각기관들을, 나는 성문들을 위하여 설합니다. (10품 544송)
그러나 원인 없는 마음일 뿐임과 [보살의] 위신력과 여러 지위들, 그리고 스스로 증득한 청정한 진여(眞如)를, 나는 부처님의 아들들을 위하여 설합니다. (10품 545송)
미래세에는 나의 가르침을 훼손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니, 가사(袈裟)를 걸치고서도 있음과 없음의 결과[를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10품 546송)
조건들로 인해 [세속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물들이 성인의 경계로서 존재하는데, 논리학자들은 분별된 존재는 있지 않다고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10품 547송)
미래세에는 승론파(勝論派, 카나다를 따르는 자)의 어리석은 무리들이 있을 것이니, 원인 없는 결과라는 삿된 견해로써 사람들을 파괴할 것입니다. (10품 548송)
세상은 극미(極微)들로부터 생겨났고 극미들은 원인이 없다고, 아홉 가지 실체가 상주(常住)한다고, 삿된 견해로써 설하게 될 것입니다. (10품 549송)
실체로부터 실체가 생겨나고 성질들로부터 그와 같이 성질들이 [생겨난다 하며], 존재하는 사물들의 다른 존재성을 없애버리게 될 것입니다. (10품 550송)
만약 [세상이] 있지 않다가 생겨난다면 세상에는 시작이 있게 될 것이나, 나는 윤회에는 앞선 끝[始原]이 없다고 말합니다. (10품 551송)
만약 삼계(三界)와 모든 헤아려지는 것들이 있지 않다가 생겨난다면, 개와 낙타와 나귀의 뿔이 생겨나는 것도 의심할 바 없을 것입니다. (10품 552송)
만약 눈과 물질[色]과 식(識)이 있지 않다가 생겨난다면, 돗자리와 왕관과 옷 등이 흙덩이에서 생겨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10품 553송)
옷들로부터는 돗자리가 생기지 않고 갈대들로부터도 그와 같이 옷이 [생기지 않으니], 하나가 [특정한] 하나의 [원인으로부터] 생겨나는데 어찌 조건들로써 [아무것이나]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10품 554송)
'생명[命]이 곧 몸[身]이다'라거나 '[세상은] 있지 않다가 생겨난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다른 이들의 주장들이니 나는 [다만 예로] 든 것입니다. (10품 555송)
[이렇게] 전제(前提)를 말하고서 나는 그들의 견해를 물리치며, 그들의 견해를 물리치고서는 나 자신의 견해를 설합니다. (10품 556송)
이런 까닭으로 나는 외도들의 주장을 언급하였으니, 나의 제자 무리들이 어리석어 있음과 없음의 견해에 의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10품 557송)
근본원질(勝因, pradhāna)로부터 세상이 생겨났다고, 어리석은 견해를 지닌 카필라의 후예(까삘라의 제자, 상키야학파)도 제자들에게 밝히니, [이는] 구나(guṇa, 속성)들의 변이라 [주장하는 것입니다]. (10품 558송)
[세상은]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실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조건(緣)들에 의한 것도 아니고 조건들이 아닌 것에 의한 것도 아니니, 조건들이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재하지 않는 것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10품 559송)
있음과 없음의 견해를 여의고 인(因)과 연(緣)을 떠나, 생겨남과 무너짐이 없는 것이 나 자신의 견해이니 [분별의] 대상을 여읜 것입니다. (10품 560송)
세상을 환영과 꿈에 비유되는 것으로, 인(因)과 연(緣)을 떠난 것으로, 항상 원인 없는 것으로 보는 이에게는 분별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10품 561송)
건달바성(乾闥婆城)과 아지랑이에 비유되고 항상 눈병으로 인한 헛것과 같으며, 있음과 없음의 견해를 여의고 인과 연을 떠난, 원인 없는 존재[有]로 보는 이는 마음의 흐름이 청정해집니다. (10품 562송)
사물이 실재하지 않음을 보는 이에게는 유심(唯心)도 실재하지 않으니, 어찌 사물 없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유심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10품 563송)
사물을 대상으로 삼아 사람들에게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니, 어찌 마음이 원인 없이 [생겨나겠습니까]? 유심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10품 564송)
진여(眞如)와 유심(唯心), 그리고 성인의 사물[實在]의 이치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니, 그들은 나의 이치에 능통한 이들이 아닙니다. (10품 565송)
만약 마음이 소취(所取)와 능취(能取)의 성질로 일어난다면, 이는 세속적인 마음이니 유심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10품 566송)
몸과 향유(享有)와 처소로 나타나는 것이 꿈처럼 생겨난다면, 두 가지 마음이라는 오류가 따르게 되나, 마음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니지 않습니다. (10품 567송)
칼이 자신의 날을 [베지 못하고] 손가락 끝이 자신을 [만지지 못하듯], 마음도 자신을 봄에 있어서 그와 같이 베지 못하고 닿지 못합니다. (10품 568송)
다른 것도 아니고 의타(依他)도 아니며 분별된 사물도 아니니, 오법(五法)과 두 가지 마음은 나타남이 없는 곳에는 있지 않습니다. (10품 569송)
생겨나게 하는 것과 생겨나는 것, 이 두 가지가 존재의 특징이니, 생겨나게 하는 것에 의거하여 나는 [모든 법이] 자성 없음을 말합니다. (10품 570송)
만약 갖가지 모습[의 세계]에서 분별이 생겨난다면, 허공과 토끼뿔에도 대상의 나타남이 있게 될 것입니다. (10품 571송)
대상의 나타남이 [곧] 마음이라면 그 대상은 분별되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니, 마음과 다른 분별된 대상은 말해질 수 없습니다. (10품 572송)
시작 없는 윤회에는 대상이 어디에도 있지 않으니, 자양분을 얻지 못한 마음이 어찌 대상의 나타남을 일으키겠습니까? (10품 573송)
만약 없음으로써 자양분을 얻는다면 그것은 토끼뿔에서도 있게 될 것이나, 없음으로써 자양분을 얻은 분별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10품 574송)
지금 실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전에도 그것은 실재하지 않았으니, 대상 아닌 것에 대상과 결합된 마음이 어찌 일어나겠습니까? (10품 575송)
진여(眞如)와 공성(空性), 실제(實際), 열반, 법계(法界), 그리고 모든 법의 불생(不生)이 승의(勝義)의 자성입니다. (10품 576송)
어리석은 이들은 인(因)과 연(緣)의 분별들로 있음과 없음에 떨어지니, 원인 없이 생겨나지 않는 존재[有]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0품 577송)
마음이 나타날 뿐 보여지는 것은 있지 않으니, 차별은 시작 없는 원인에서 비롯되는데, 시작 없는 것에도 대상은 있지 않은데 차별은 무엇으로 인해 생겨납니까? (10품 578송)
만약 없음으로써 자양분을 얻는다면 가난한 이가 부자가 될 것이니, 대상이 없는데 어찌 마음이 생겨나는지 성인이시여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10품 579송)
이 모든 것은 원인 없는 것이니 마음도 아니고 경계도 아니며, 마음은 자양분을 얻지 못하니 삼계(三界)는 행위를 떠난 것입니다. (10품 580송)
생겨남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불생(不生)을 성립시키고자, 나는 무인론(無因論)을 설하나 어리석은 이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니, 이 모든 것은 생겨나지 않은 것이나 사물들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10품 581송)
건달바성과 꿈과 환영이라 불리는 사물들은 원인 없이 존재하니, 생겨나지 않은 자성들을 그대는 어찌하여 나에게 공(空)하다고 말합니까? (10품 582송)
화합(和合)을 여읜 존재가 보이지 않을 때에, 그때 나는 [그것을] 공하고 생겨나지 않았으며 자성 없는 것이라 말합니다. (10품 583송)
꿈과 눈병으로 인한 헛것, 환영, 건달바성, 아지랑이는 원인 없이도 보이니, 세상의 갖가지 모습도 그와 같습니다. (10품 584송)
화합(和合)이라는 것도 그와 같이 하나이니 보여지는 것이 없으므로 실재하지 않으나, 외도의 견해처럼 소멸[로서의 화합의 부재]이 아니라 화합 [자체]가 실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10품 585송)
무인론(無因論)으로써 논파하여 불생(不生)을 성립시켜야 하니, 불생들로써 [모든 법이] 성립되는 나의 가르침[理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10품 586송)
무인론들로써 [법이] 설해질 때 외도들에게는 두려움이 생겨나니, [그들은] '어떻게, 무엇에 의해, 어디로부터, 어디에서 원인 없는 생성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10품 587송)
현자들이 무인(無因)이 [진정한] 원인 없음이 아님을 볼 때에, 그때 생성과 소멸을 주장하는 견해는 사라집니다. (10품 588송)
불생(不生)이란 없음입니까, [혹은] 생성의 발생이라는 특징입니까? 아니면 이것이 존재의 이름으로서 무의미한 것입니까,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10품 589송)
불생은 존재도 아니고 조건의 특징도 아니며, 존재의 이름도 아니고 무의미한 이름도 아닙니다. (10품 590송)
성문(聲聞)과 벽지불(緣覺)들과 외도들의 경계가 아니며 칠지(七地)에 이른 이들[의 경계도 아닌] 곳, 그것이 불생(不生)의 특징입니다. (10품 591송)
인(因)과 연(緣)을 떠난 것이요 원인의 부정(否定)이며, 유심(唯心)의 확립을, 나는 불생(不生)이라 말합니다. (10품 592송)
존재들의 원인 없는 일어남이요 분별된 것과 분별하는 것을 떠난 것이며, 있음과 없음의 견해에서 벗어난 것을, 나는 불생(不生)이라 말합니다. (10품 593송)
마음과 보여지는 것을 떠난 것이요 두 가지 자성을 떠난 것이며, 소의(所依)의 전환[轉依]을, 나는 불생(不生)이라 말합니다. (10품 594송)
사물들의 외적 존재도 아니고 마음에 의한 파악도 아니며, 모든 견해를 끊어버리는 것, 그것이 불생(不生)의 특징입니다. (10품 595송)
이와 같이 공(空)과 무자성(無自性) 등으로 모든 법을 통찰해야 하니, [법들은] 결코 공성(空性)에 의해 공한 것이 아니라 불생(不生)이라는 공성에 의해 [공한 것입니다]. (10품 596송)
조건(緣)들의 화합(和合)이 일어나고 사라지니, [그러나] 화합과 별개인 것은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습니다. (10품 597송)
화합과 별개인 다른 사물은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으니, 외도들이 하나됨과 별개됨으로써 분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10품 598송)
있음과 없음, 있으면서 없음도 아니고 있음도 없음도 아닌 것으로도 사물이 생겨나지 않으니, 이 화합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10품 599송)
이것은 다만 언어적 관례일 뿐이니 서로 의지하는 결합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며], 개별 조건들의 결합으로부터 생겨나는 대상이란 실재하지 않습니다. (10품 600송)
생겨나는 것의 없음이 곧 불생(不生)이니 외도의 허물을 여읜 것이라, 나는 [이를] 다만 결합일 뿐이라 설하나 어리석은 이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10품 601송)
결합과 별개로 생겨나는 사물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는, 무인론자(無因論者)로 알아야 하며 결합을 파괴하는 자입니다. (10품 602송)
등불이 사물들의 종류를 드러내듯이 결합도 그러하니, [그러나] 결합과 별개인 어떤 사물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10품 603송)
자성이 없고 생겨나지 않았으며 본래 허공에 비유되니, 결합과 별개인 법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된 것입니다. (10품 604송)
이 다른 불생(不生)은 성인들이 증득하는 법성(法性)이니, 그 [법]의 불생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이 될 것입니다. (10품 605송)
이 모든 세상을 다만 결합으로만 볼 때에, 이것이 다만 결합일 뿐임을 [알 때], 그때 마음은 삼매에 들게 됩니다. (10품 606송)
무명(無明)과 갈애(渴愛)와 업(業) 등은 내적인 결합이 되고, 물레와 흙과 막대와 바퀴 등, 씨앗과 원소 등은 외적인 [결합이 됩니다]. (10품 607송)
다른 것으로부터 사물이 조건들에 의해 생겨난다고 [하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다만 결합일 뿐인 것이 아니니, 그들은 이치와 성전(聖典)에 머무는 자들이 아닙니다. (10품 608송)
만약 생겨나는 사물이 없다면 무엇의 조건으로 인해 [생겨난다는] 인식이 있겠습니까? 이것들은 서로가 서로의 조건이 되니, 그러므로 그것들을 조건이라 부릅니다. (10품 609송)
뜨거움과 흐름, 움직임과 단단함이라는 법들은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된 것이니, 이 화합은 [실재하는] 법이 아니므로 자성이 없는 것입니다. (10품 610송)
의사들이 환자에 따라 치료법의 차이를 두듯이, 의술 자체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병증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10품 611송)
이와 같이 나는 번뇌의 허물로 심히 오염된 중생의 흐름에서, 근기(根機)의 힘을 알고서 어리석은 이들에게 [각기 맞는] 이치를 설합니다. (10품 612송)
번뇌와 근기의 차이로 인해 나의 가르침이 나뉘는 것은 아니니, 오직 하나의 수레[一乘]가 있을 뿐이며 그것이 팔정도(八正道)라는 상서로운 길입니다. (10품 613송)
항아리와 천과 왕관과 뿔을 원인으로 하는 것과 토끼뿔이 실재하지 않는 것은, 원인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나 그것 또한 실재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10품 614송)
있음을 성립시키는 것은 있지 않으며 없음, 없음도 타당하지 않으니, 있음은 없음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있음과 없음은] 서로 의지하는 원인입니다. (10품 615송)
어떤 것에 의지하여 다시 어떤 것이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이의 견해에서는, 원인 없는 것에 의지하여 어떤 것이 [나타난다는 것은] 원인 없음이 아닙니다. (10품 616송)
만약 그것이 다시 다른 것에 의지하고 그것도 또한 다른 것에 나타난다면, 무한소급의 오류가 따르게 되며 어떤 것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게 될 것입니다. (10품 617송)
잎과 나무 등에 의지하여 환영이 생겨나듯이, 사물도 그와 같이 의지하여 사람들에게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10품 618송)
환영의 그물은 잎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고 조약돌도 아니니, 어리석은 이들은 다만 환영을 환영의 모습을 지닌 의지처로 볼 뿐입니다. (10품 619송)
이와 같이 사물에 의지하여 만약 어떤 것이 소멸한다면, 보여지는 때에는 둘이 있지 않은데 어찌 어떤 것이 분별되겠습니까? (10품 620송)
분별들에 의해 분별된 것은 실재하지 않으며 분별 자체도 실재하지 않으니, 분별이 실재하지 않을 때에는 윤회도 없고 열반도 없습니다. (10품 621송)
분별이 실재하지 않을 때에는 분별이 일어나지 않으니, 일어나지 않는 마음이 어찌 [있겠습니까]? 유심(唯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10품 622송)
[만약] 여러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가르침에 진실됨이 없다면, 진실됨이 없으므로 해탈도 없고 세상의 갖가지 모습도 없을 것입니다. (10품 623송)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외적인 것은 실재하지 않으니, 마음이 훈습(熏習)에 의해 미혹되어 영상(映像)처럼 나타나는 것입니다. (10품 624송)
모든 사물은 생겨나지 않은 것이며 있음과 없음으로부터 생겨나지 않으니, 이 모든 것은 다만 마음일 뿐이며 분별들을 여읜 것입니다. (10품 625송)
어리석은 이들은 사물들을 조건들에 의한 것이라 말하나 현자들은 그렇지 않으니, 자성과 마음을 여읜 마음이 성인이 도달하는 상서로운 것입니다. (10품 626송)
상키야학파와 승론파(勝論派), 나체 [고행자]들, 바라문들, 그리고 파슈파타[교도]들도 그와 같이, 있음과 없음의 견해에 떨어져 있어 [진실이] 분별된 대상을 여의고 있습니다. (10품 627송)
자성 없고 생겨나지 않았으며 공(空)하고 환영에 비유되며 청정한 [법들을], 부처님들께서는 누구를 위해 설하셨으며 그대는 [그것을] 거듭 밝혔습니까? (10품 628송)
마음이 청정한 요가행자들을 위하여, 견해와 논리를 떠난 것들을, 부처님들께서 요가를 설하시며 나 또한 [그것을] 거듭 밝혔습니다. (10품 629송)
만약 이 모든 것이 마음이라면 세상은 무엇에 의지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땅 위에서 오고 가는 것은 무엇으로 인해 보이는 것입니까? (10품 630송)
새가 허공에서 분별에 의해 움직여, 의지함도 없고 대상으로 삼음도 없이 [나는 것이] 마치 땅 위를 다니는 것과 같듯이, (10품 631송)
이와 같이 모든 몸을 지닌 이들은 분별에 의해 움직여, 자신의 마음 안에서 노닐 뿐이니 마치 앵무새가 허공에서 [노니는 것과] 같습니다. (10품 632송)
몸과 향유(享有)와 처소로 나타나는 마음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말씀해 주소서. 그 나타남의 작용은 어떻게 무엇에 의해 [일어나는지], 유심(唯心)을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10품 633송)
몸과 향유와 처소, 그리고 그 나타남의 작용은 훈습(熏習)들에 의해, 이치에 맞지 않는 이들에게 나타남의 작용이 분별들에 의해 생겨납니다. (10품 634송)
경계는 분별된 사물이며 마음은 경계로부터 생겨난 것이니, 보여지는 것과 마음을 완전히 아는 것으로부터 분별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10품 635송)
이름이 이름 [붙여진 것]과 분리되어 있고 분별된 것임을 볼 때에, 능지(能知)와 소지(所知)를 여읜 유위(有爲)로부터 그때에 해탈합니다. (10품 636송)
이 앎이 곧 알아야 할 것이 되니 이름이 이름 [붙여진 것]에 대해 [실재하지 않음을] 통찰하는 것이며, 이와 다르게 아는 이들은 깨달은 이도 아니고 깨우치는 이도 아닙니다. (10품 637송)
오법(五法)과 [삼]자성, 그리고 여덟 가지 식(識), 두 가지 무아(無我), 이것이 대승(大乘)의 온전한 포괄입니다. (10품 638송)
능지(能知)와 소지(所知)가 [실체 없이] 분리된 것임을 세상[사람]이 볼 때에는, 이름도 없고 분별도 그때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10품 639송)
행위와 문자의 분별들이 그치는 것은 마음을 보는 것으로부터이니, 자신의 마음을 보지 못함으로 인해 분별이 일어납니다. (10품 640송)
무색(無色)의 네 온(蘊)에는 [수적인] 헤아림이 실재하지 않는데, 물질[色]이 [사]대(大)와 다른 특징을 지닌다면 어찌 물질의 다수성이 [있겠습니까]? (10품 641송)
특징을 버림으로써 [사]대(大)도 아니고 대(大)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게 되는데, 만약 물질이 다른 특징을 지닌다면 어찌하여 온(蘊)들로부터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10품 642송)
처(處)와 온(蘊)이 [실체를] 여의고 특징 없는 것임을 볼 때에, 그때 마음은 법무아(法無我)를 봄으로써 그치게 됩니다. (10품 643송)
경계와 감관(根)의 차이로 인해 식(識)은 여덟 가지로 생겨나며, 특징으로써 [그것은] 세 가지가 되니 나타남이 없는 곳에서 그치게 됩니다. (10품 644송)
아뢰야식(阿賴耶識)은 곧 의(意)에게 자아이며 자아에 속한 것이자 앎이니, 두 가지 집착[能取所取]으로부터 일어나며 완전히 앎으로써 그칩니다. (10품 645송)
[식이]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며 움직임이 없는 것임을 볼 때에, 그때에는 자아와 자아에 속한 것이라는 두 가지를 분별하지 않습니다. (10품 646송)
일어나지 않는 것은 자양분을 얻지 못하며 식(識)의 원인도 아니니, 결과와 원인을 여읜 것은 소멸하지도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10품 647송)
분별과 유심(唯心)인 세상을 무엇에 의해 [설명하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원인들과 결합되지 않고 소상(所相)과 능상(能相)을 여읜 것을 [말씀해 주소서]. (10품 648송)
자신의 마음이 갖가지로 보여지니 보여지는 모습으로 분별된 것이며, 마음과 보여지는 것을 완전히 알지 못함으로 인해 [그것을] 마음과 다른 대상으로 파악하게 됩니다. (10품 649송)
지혜로써 보지 못할 때에 없음의 견해가 생겨나니, 그에게 어찌 있음이 [있겠으며], 마음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없음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10품 650송)
분별은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니, 그러므로 있음이 생겨나지 않으며, 마음과 보여지는 것을 완전히 앎으로써 분별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10품 651송)
분별의 일어나지 않음이 곧 의지처 없는 전환[轉依]이니, 네 가지 견해[四句]를 물리치고서 [말하건대], 만약 사물들이 원인을 지닌 것이라면, (10품 652송)
이 다른 명칭의 차이는 무엇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성립되지 않으니, 그것들에 대해 필연적 귀결이 있게 되거나 [혹은] 원인으로부터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10품 653송)
인(因)과 연(緣)의 결합으로부터, 원인을 부정함으로써, 만약 조건들이 무상(無常)하다면 상주(常住)라는 허물이 물리쳐집니다. (10품 654송)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무상함으로 인해 생성도 없고 소멸도 없으니, 소멸해 가는 어떤 것도 원인성을 지닌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10품 655송)
보이지 않는 것이 어찌 무엇에 의해 [생겨나며], 존재[有]는 무상하지 않게 생겨나지 않으니, [보살은] 섭수(攝受)로써 중생을 조복(調伏)시키고 계율로써 [그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10품 656송)
지혜로써 [삿된] 견해를 없애야 하고 해탈들로써 [선근을] 증장시켜야 하니, 이 모든 순세론(順世論, Lokāyata)은 외도들에 의해 거짓되게 설해지는 것입니다. (10품 657송)
결과와 원인이라는 실재의 견해로써는 자신의 교의[自宗]가 성립되지 않으니, 나는 결과와 원인을 여읜 오직 하나의 자신의 교의를 [설합니다]. (10품 658송)
순세론을 여읜 [그것을] 나는 제자들의 무리에게 설하니, 유심(唯心)이며 보여지는 것은 실재하지 않으나 마음은 두 가지로 보여집니다, 소취(所取)와 능취(能取)의 성질로 [나타나되] 상주(常住)와 단멸(斷滅)을 여읜 것입니다. (10품 659송)
마음이 일어나는 한 그만큼 순세론이 되니, 세상[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볼 때에는 분별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10품 660송)
생겨남[生]은 결과의 완전한 이루어짐이고 소멸[滅]은 결과의 [사라짐을] 보는 것이니, 생겨남과 소멸을 완전히 앎으로써 분별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10품 661송)
상주(常住)와 무상(無常), 만들어진 것과 만들어지지 않은 것, 수승함과 열등함, 이와 같은 것들 모두가 순세론이 됩니다. (10품 662송)
천신과 아수라와 인간들, 축생과 아귀, 그리고 염라의 세계, 이 여섯 갈래[六道]가 [부처님에 의해] 설해졌으니 그곳에서 몸을 지닌 이들이 태어납니다. (10품 663송)
열등하고 수승하고 중간인 업으로 인해 그 [갈래]들 가운데 태어나니, 모든 선(善)들을 보호하고 지킴으로써 [태어남의] 차별이 있거나 혹은 해탈이 있습니다. (10품 664송)
찰나 찰나마다 그대에 의해 죽음과 태어남이 비구 대중에게 설해지니, [그] 취지를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10품 665송)
물질[色]로부터 다른 물질로 [변하듯이] 마음도 그와 같이 생겨나서는 무너지니, 그러므로 나는 제자들에게 찰나마다 생겨나는 연속됨을 설합니다. (10품 666송)
물질 하나하나마다 분별의 생성과 그와 같이 소멸이 있으니, 분별이 곧 중생이 되며 다른 분별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10품 667송)
찰나 찰나마다 타당하지 않은 이것을 나는 조건으로 인한 것이라 설하였으니, 물질에 대한 집착을 여의면 생겨남도 없고 무너짐도 없습니다. (10품 668송)
조건들과 조건들로부터 생겨난 것들, 무명(無明)과 진여(眞如) 등은, 두 가지 법으로 존재하나 진여는 둘 아닌 것이 됩니다. (10품 669송)
만약 조건들과 조건들로부터 생겨난 법들이 [서로] 구별된다면, 상주(常住) 등은 결과가 될 것이며 원인은 조건이 될 것입니다. (10품 670송)
결과와 원인을 파악함으로 인해 외도들과 [차이 없이] 구별되지 않게 될 것이니, 그러므로 그대와 부처님들의 주장은 성스럽지 않게 될 것입니다, 대성인이시여. (10품 671송)
오직 한 길이[尋] 되는 이 몸 안에서 세상[苦]과 세상의 발생[集], 그리고 소멸에 이르는 길[滅道]을, 나는 부처님의 아들들에게 설합니다. (10품 672송)
삼자성(三自性)에 대한 집착으로써 소취(所取)와 능취(能取)를 [실재로] 보는 범부들은,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분별합니다. (10품 673송)
그러므로 [나는] 전제(前提, 상대의 주장)로써 자성에 대한 집착을 [논파하기 위해] 취하나, [그릇된] 견해들을 물리치기 위함이니 자성을 [실체로] 분별해서는 안 됩니다. (10품 674송)
허물의 틈으로 인해 정해짐이 없으며 마음도 일어나지 않으니, 두 가지[能取所取]에 대한 집착이 일어남으로써 [비로소 그것이 그쳐] 진여는 둘 아닌 것이 됩니다. (10품 675송)
무명(無明)과 갈애(渴愛)와 업(業), 그리고 식(識) 등은 [모태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니, 무한소급과 [원인에 의해] 만들어짐 없이 [지어짐도] 없이 존재[有]가 생겨납니다. (10품 676송)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사물들의 네 가지 소멸이 설해지나, 두 가지로 일어나는 분별에서는 있음과 없음이 실재하지 않으니, 사구(四句)를 여의고 두 가지 견해[能所]를 떠난 것입니다. (10품 677송)
두 가지로 일어나는 분별을 보고서는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되니, 생겨나지 않은 사물들에 대해 지혜가 [분별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10품 678송)
생겨난 사물들에 대해서도 그것이 분별된 것이므로 분별하지 말아야 하니, 두 가지 견해를 물리치는 이치를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세존이시여. (10품 679송)
나와 다른 이들이 항상 있음과 없음에 대해 혼동하지 않듯이, 외도의 주장과 섞이지 않고 성문(聲聞)들에 의해서도 [오염되지 않은], 부처님의 아들들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부처님의 현관(現觀)의 수행을 [설합니다]. (10품 680송)
해탈의 원인이자 원인 아닌 것이며 또한 불생(不生)이라는 하나의 특징을 지닌 이것을, [외도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미혹시키니 현자들에 의해 항상 물리쳐져야 합니다. (10품 681송)
구름과 안개, 무지개의 빛과 같고 아지랑이와 눈병으로 인한 헛것, 환영과 같으니, 모든 사물은 자신의 분별로부터 생겨난 것인데 외도들은 세상을 자신들의 [잘못된] 원인들로써 분별합니다. (10품 682송)
불생(不生)과 진여(眞如), 실제(實際)와 공성(空性), 이것들은 물질[色]의 다른 이름들이니 [이를] 없음이라고 분별해서는 안 됩니다. (10품 683송)
세간에서 '손[手]'과 '팔[臂]'이, [또는] '인드라'와 '샤크라'와 '푸란다라'가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모든 사물에 대해 없음이라고 분별해서는 안 됩니다. (10품 684송)
물질과 공성은 다른 것이 아니며 불생(不生) 또한 그와 같으니, [그러나 이를] 다르지 않다고 분별해서는 안 되니 [그렇게 하면] 견해의 허물이 따르게 됩니다. (10품 685송)
사려분별[尋思]과 분별은 사물의 특징을 파악함으로부터 [일어나며], 길고 짧음 등 원만함은 변계(遍計, parikalpa)에 대한 파악으로부터 [일어납니다]. (10품 686송)
사려분별은 곧 마음[心, 阿賴耶]이 되고 변계는 그와 같이 의(意)가 되며, 분별은 의식(意識)이니 소상(所相)과 능상(能相)을 여읜 것입니다. (10품 687송)
외도들에 의한 불생(不生)과 나의 이치의 견해들에 의한 [불생], 이것이 구별 없이 분별된다면 견해의 허물이 따르게 됩니다. (10품 688송)
불생(不生)이라는 목적과 불생의 뜻을, 이치를 아는 이들이 아나니, 그들은 나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10품 689송)
[삿된] 견해를 거두어들이는 목적과, 의지처 없는 불생(不生)을, 두 가지 뜻을 완전히 앎으로부터 나는 불생을 말합니다. (10품 690송)
사물들은 생겨나지 않은 채로 실재합니까, 실재하지 않습니까, 말씀해 주소서, 대성인이시여. 무인론(無因論)으로서의 불생은 외도의 견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10품 691송)
무인론으로서의 불생은 [외도의] 편벽된 견해이니, 있음과 없음을 여읜 유심(唯心)을 나는 말합니다. (10품 692송)
[삿된] 견해를 원인으로 하는 생성과 불생을 물리쳐야 하니, 무인론에서의 불생과 [실제] 생성에는 원인이라는 의지처가 [잘못 전제되어 있습니다]. (10품 693송)
무공용(無功用)의 행위는 없으며 [만약] 행위가 있다면 견해가 뒤섞이게 되니, 방편과 서원(誓願) 등으로써의 견해를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모든 법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어찌 만다라(曼茶羅)가 생겨나겠습니까? (10품 694송)
소취(所取)와 능취(能取)의 분리로 인해 일어남도 없고 그침도 없으니, 사물로부터 다른 사물로의 견해, 그것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10품 695송)
법들의 불생(不生), 이것이 어떠한 것인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만약 중생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이 때문에 이것이 밝혀져야 합니다. (10품 696송)
앞뒤의 모순됨 모두를 설해 주소서, 대성인이시여. 외도의 허물을 여의고 편벽된 무인론을 떠난 것을 [말씀해 주소서]. (10품 697송)
일어나지 않음과 그침을,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논사들 중 으뜸이시여. 있음과 없음을 여의고 결과와 원인을 파괴하지 않는 것을 [말씀해 주소서]. (10품 698송)
지위[地]들의 순서에 따른 연속됨과 법의 특징을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세상[사람]은 [있음과 없음의] 양극단에 떨어져 [삿된] 견해들로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10품 699송)
생성 등으로 인해 불생(不生)이며 적정(寂靜)의 원인임을 깨닫지 못하니, 나에게는 어떤 만다라(曼茶羅)도 없으며 [고정된] 법성(法性)을 설하는 것도 아닙니다. (10품 700송)
둘[能所]이 있을 때에는 허물이 있게 되니 둘은 부처님들에 의해 청정하게 되었습니다. 사물들은 공(空)하고 찰나적이며 자성이 없고 생겨나지 않은 것입니다. (10품 701송)
[사물들은] 삿된 견해에 덮인 이들에 의해 분별되는 것이지 여래들에 의해서가 아니니, 분별의 일어남과 그침을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10품 702송)
어떠한 방식으로 경계라는 문(門)이 생겨나며, [그것은] 형색(形色)과 풍성함의 결합으로부터 희론(戲論)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10품 703송)
물질[色]을 밖에 있는 것으로 봄으로써 분별이 일어나니, 바로 그것을 완전히 앎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뜻을 보는 것이며, 성인의 종성(種性)에 수순하는 마음은 [다시] 일어나지 않습니다. (10품 704송)
[사]대(大)를 물리치고 나면 사물의 생성은 실재하지 않으니, [사]대의 모습을 지닌 마음을 항상 생겨나지 않은 것으로 통찰해야 합니다. (10품 705송)
분별을 분별하지 말아야 하니 현자들은 분별이 없기 때문이며, 분별을 분별하는 이에게는 오직 둘[能所]만이 있을 뿐 그침[涅槃]이 없습니다. (10품 706송)
불생(不生)을 주장하는 이에게는 환영의 이치도 보이니, 환영이 원인 없이 생겨난 것[이라는 것]은 [단멸이라는] 손실의 교의의 특징입니다. (10품 707송)
마음은 영상(映像)처럼 보이니 시작 없는 [훈습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대상의 모습을 지니나 대상은 실재하지 않으니 있는 그대로 통찰해야 합니다. (10품 708송)
거울 속에 물질[영상]이 하나됨과 다름을 떠나 보이나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듯이, 생성의 특징도 그와 같습니다. (10품 709송)
건달바성과 환영 등이 인(因)과 연(緣)을 특징으로 하듯이, 이와 같이 모든 사물의 생성도 [원인 없는] 비생성이 아닙니다. (10품 710송)
분별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서 두 가지로 일어남으로써 나타나며, 자아와 법이라는 가명(假名)으로써 [이루어지나] 어리석은 이들은 이를 통찰하지 못합니다. (10품 711송)
광대한 조건에 의지하는 성문(聲聞)과 아라한도 그와 같으니, 자신의 힘에 의지하고 부처님께 의지하는 이는 다섯째 성문의 길로 이끕니다. (10품 712송)
다른 때에 소멸함과 승의(勝義)에서와 상대적으로 [소멸함], [이] 네 가지 무상(無常)을 능통하지 못한 어리석은 이들이 분별합니다. (10품 713송)
어리석은 이들은 [있음과 없음의] 두 극단에 떨어져 있어 구나(guṇa, 속성)와 극미(極微)와 근본원질(自性)을 원인으로 삼으니, 있음과 없음의 견해를 취함으로 인해 해탈의 방편을 알지 못합니다. (10품 714송)
어리석은 이들이 손가락 끝을 [달인 줄 알고] 달로 붙잡듯이 못난 견해로 [그러하니], 이와 같이 문자에 집착한 이들은 나의 진실[眞如]을 알지 못합니다. (10품 715송)
[사]대(大)는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어 물질이라는 사물을 일으키는 것이니, [사]대의 이 배치는 [사]대에 의해 대(大)로 이루어진 것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10품 716송)
불[火大]에 의해 물질이 타고 물의 요소[水大]는 습윤한 성질을 지니며, 바람[風大]에 의해 물질이 흩어지니, 어찌 [사]대에 의해 [물질이 하나로] 일어나겠습니까? (10품 717송)
물질[色]과 온(蘊)과 식(識), 이 둘[名色]이며 다섯 가지가 아니니, 나는 온(蘊)들의 이명(異名)의 구별을 백 가지로 설합니다. (10품 718송)
마음[心]과 심소(心所)의 구별로써 현재[의 것]가 일어나니, 물질들은 서로 다르며 마음이 [곧] 물질이지 [사]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10품 719송)
흰색은 파란색 등에 의지하는 것이고 파란색은 흰색에 의지하는 것이니, 결과와 원인을 일으키고서 공성(空性)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10품 720송)
입증하는 것과 입증하는 자와 입증되어야 할 것, 차가움과 뜨거움, 소상(所相)과 능상(能相), 이와 같은 것들 모두는 논리학자들에 의해 성립되지 않습니다. (10품 721송)
마음[心, 阿賴耶]과 의(意), 그리고 여섯 가지 다른 식(識)들은 자아와 결합된 것이니, 하나됨과 다름을 여읜 이 아뢰야식이 일어납니다. (10품 722송)
상키야학파와 승론파(勝論派), 나체 [고행자]들, 논리학자들, 이슈바라(자재천)를 따르는 이들은, 있음과 없음의 견해에 떨어져 [진실이] 분별된 대상을 여의고 있습니다. (10품 723송)
형태와 모양의 차이는 [사]대(大)에 [속하는 것이며] [사]대로 이루어진 것에는 [속하지] 않으나, 외도들은 [사]대와 [사]대로 이루어진 것의 생성을 [함께] 말합니다. (10품 724송)
생겨나지 않은 것을 다른 외도들은 원인들로써 분별하니, 미혹으로 인해 있음과 없음의 견해에 의지하여 깨닫지 못합니다. (10품 725송)
마음[心]과 함께 결합되고 의(意) 등과는 분리된, 청정한 특징을 지닌 중생[의 본성]은 지혜와 함께 머뭅니다. (10품 726송)
업(業)이 곧 물질[色]이 되는 것과 온(蘊)과 경계를 원인으로 하는 것들, 그리고 집착 없는 중생들은, 무색계(無色界)에는 머물지 않습니다. (10품 727송)
무아(無我)를 [주장하면서도] 중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생이 없음으로부터 [모순으로] 따르게 되니, 무아를 주장하는 이에게는 단멸[론]이 [따르고] 식(識)의 발생도 없게 됩니다. (10품 728송)
그에게 [무색계의] 네 가지가 [머문다면] 물질이 없는데 어찌 [그것이] 있겠으며, 안[內]과 밖[外]이 없음으로 인해 식(識)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10품 729송)
논리학자들이 바라는 것처럼 중유(中有)의 온(蘊)들이 [있다면], 이와 같이 무색계에 태어난 이에게도 무색(無色)의 존재[有]가 있지 않겠습니까? (10품 730송)
중생과 식(識) 없이는 노력 없이도 해탈이 있게 될 것이니, [이는] 외도의 주장임에 의심할 바 없으나 논리학자들은 [이를] 깨닫지 못합니다. (10품 731송)
[욕계·색계에는] 물질이 실재하나 무색계에는 [그것의] 보임이 없으니, 그 없음은 [바른] 교의가 아니며 [그렇다면] 수레[乘]도 없고 [그것을] 타는 자도 없게 됩니다. (10품 732송)
감관(根)들과 함께 결합되고 훈습(熏習)으로부터 생겨난 식(識)은, 여덟 가지의 한 부분씩을 찰나의 때에 [논리학자들은] 파악하지 못합니다. (10품 733송)
물질이 감관들에 의해서도 감관들 없이도 일어나지 않을 때에,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감관 등이 찰나적이라 설하신 것입니다. (10품 734송)
물질을 확정하지 못하고서 어찌 식(識)이 일어나겠으며, 일어나지 않는 앎이 어찌 윤회를 낳겠습니까? (10품 735송)
인도자들은 생성 직후의 소멸을 설하지 않으니, 분별로 요동치는 흐름 속에서는 사물들의 끊임없음도 없습니다. (10품 736송)
감관들과 감관의 대상들은 미혹된 이들에게 [실재하는 것으로 보이나] 현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으니, 어리석은 이들은 이름으로써 파악하나 성인들은 뜻에 능통한 이들입니다. (10품 737송)
여섯째[의식]는 집착 없는 것이니 집착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 않으며, 성인들은 [그것을] 확정할 수 없는 것이라 말하니 있음이라는 허물을 여읜 이들입니다. (10품 738송)
상주(常住)와 단멸(斷滅)을 두려워하는 논리학자들은 지혜를 여읜 이들이니,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자체를 어리석은 이들은 구별하지 못합니다. (10품 739송)
하나됨에도 보시가 실재하고 다름에도 또한 실재하니, 마음과는 하나됨이며 의(意) 등과는 다름입니다. (10품 740송)
보시가 마음과 심소(心所)라 불리는 것으로 확정될 때에, 어찌 그것이 집착으로부터 하나됨으로 확정되겠습니까? (10품 741송)
집착과 함께한 인식과 업, 생성, 행위 등으로써, [논리학자들은] 유사함과 유사하지 않음의 예들로 불[火]에 비유하여 성립시키려 할 것입니다. (10품 742송)
불이 타는 것[所燒]과 태우는 것[能燒]을 동시에 태우듯이, 집착을 지닌 자아도 그와 같은데 어찌하여 논리학자들에 의해 [그렇게] 파악되지 않습니까? (10품 743송)
생성으로부터든 불생으로부터든 마음은 항상 빛나는 것인데, 자아를 성립시키려는 논리학자들은 어찌하여 [이것을] 예로 삼지 않습니까? (10품 744송)
식(識)이라는 깊은 동굴에서 미혹된 논리학자들은 이치를 여읜 채, 자아론(自我論)을 세우고자 이리저리 치닫습니다. (10품 745송)
각자 스스로 증득함으로써만 알 수 있는 청정한 특징을 지닌 자아, 그것이 여래장(如來藏)이니, 논리학자들의 경계가 아닙니다. (10품 746송)
집착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의 구별, 그와 같이 온(蘊)들의 특징을 만약 안다면, 이치에 [맞는] 앎이 생겨납니다. (10품 747송)
아뢰야식을 태(胎)의 처소로 여기는 것은 외도들이 거듭 말하는 견해이니, 자아와 결합된 것이며 [부처님에 의해] 법(法)들로 선언된 것이 아닙니다. (10품 748송)
이것들을 구별함으로써 해탈이 있으며 진리를 보게 되니, 보여야 하고 끊어져야 할 사물들, 번뇌들의 청정함이 있게 됩니다. (10품 749송)
본래 광명한 마음이 곧 여래장(如來藏)이며 청정한 것이니, 중생의 집착[의 대상]이면서도 끝이 있음과 끝이 없음을 여읜 것입니다. (10품 750송)
황금의 광채와 순금이 [사탕수수와 섞인] 설탕[원석] 속에 [있듯이], 수행[의 정련]으로써 [사람들은] 온(蘊)과 아뢰야식 안의 중생[의 본성]을 그와 같이 봅니다. (10품 751송)
인아(人我)도 아니고 온(蘊)도 아닌, 무루(無漏)의 지혜인 부처님, 항상 적정하심을 통찰하고서 저는 [그분께] 귀의합니다. (10품 752송)
본래 광명한 마음이 수번뇌(隨煩惱)들과 의(意) 등에 의해, 자아와 결합된 것[처럼 보인다고] 논사들 중 으뜸이신 분께서 설하십니다. (10품 753송)
본래 광명한 마음에 대해 의(意) 등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니, 그것들에 의해 쌓인 업들로 인해 그 둘 모두가 오염됩니다. (10품 754송)
객진(客塵)이며 시작 없는 번뇌들에 의해 광명한 자아[의 본성]는 오염되고 [그것들과] 결합되니, 옷[에서 때를 씻어내듯] 청정해집니다. (10품 755송)
때가 없어짐으로써 옷이나 금이 허물을 여의게 되어 [본래대로] 머물고 소멸하지 않듯이, 자아도 허물을 여읨으로써 그와 같습니다. (10품 756송)
비파와 소라고둥, 그리고 북에서 어리석은 어떤 이가 [별도의 실체로서] 아름다운 음색의 성취를 찾듯이, 그와 같이 [어리석은 이는] 온(蘊)들 안에서 인아(人我)를 [찾습니다]. (10품 757송)
보물과 보석들도 대지 안에, 물도 그와 같이, 실재하되 보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온(蘊)들 안의 인아(人我)도 [그러합니다]. (10품 758송)
마음과 심소(心所)의 화합과 자신의 속성들이 온(蘊)과 결합되어 있음을, 능통하지 못한 이들은 파악하지 못하니, 이와 같이 온(蘊)들 안의 인아(人我)도 [그러합니다]. (10품 759송)
임신한 여인 안에 태아가 실재하나 보이지 않듯이, 자아도 그와 같이 온(蘊)들 안에 [있으나] 이치를 알지 못하는 이는 보지 못합니다. (10품 760송)
약초들의 정수(精髓)나 땔감 속의 불을 [보지 못하듯이], 이치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그와 같이 온(蘊)들 안의 인아(人我)를 보지 못합니다. (10품 761송)
어리석은 이들이 모든 사물 안의 무상함과 공성(空性)이 실재함을 보지 못하듯이, 이와 같이 온(蘊)들 안의 인아(人我)도 [보지 못합니다]. (10품 762송)
[보살의] 지위(地)들과 자재력(自在力), 신통(神通), 관정(灌頂)과 최상의 것, 삼매(三昧)들과 [그] 차별들도, 자아가 없다면 실재하지 않게 됩니다. (10품 763송)
단멸론자가 [찾아]가서 만약 '있다면 보여 달라'고 말한다면, 그에게는 '그대의 분별을 [먼저] 보이라'고 말해 주어야 하니, [그러면] 그는 지혜로운 자가 될 것입니다. (10품 764송)
무아(無我)를 [단멸론으로] 주장하는 이에게는 말하지 말고 비구의 행법을 [그에게] 삼가야 하니, 있음과 없음의 견해들은 부처님 법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10품 765송)
외도의 허물을 여의고 무아(無我)의 숲을 태우는, 이 자아론(自我論)은 겁말(劫末)의 불처럼 일어나 활활 타오릅니다. (10품 766송)
사탕수수즙과 설탕, 꿀 등과 응유(凝乳), 참깨, 정제버터 등 속에는 고유한 맛이 실재하나 맛보지 않고는 파악되지 않습니다. (10품 767송)
다섯 가지로 [나뉘어] 파악되는 자아가 온(蘊)들의 쌓임 속에 있으나, 무지한 이들은 보지 못하고 아는 이는 보고서 해탈합니다. (10품 768송)
주술 등의 비유들로써도 마음은 확정되지 않으니, 어디에서 무엇으로부터 무슨 목적으로인지 그 집합은 확정되지 않습니다. (10품 769송)
법들은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니 마음은 하나로 파악되지 않으며, 원인 없음과 일어나지 않음이 논리학자들에게 [오류로] 따르게 됩니다. (10품 770송)
마음을 관찰하는 요가행자는 마음 안에서 마음을 보지 않으니, 보는 자는 보여지는 것으로부터 벗어난 것인데 보여지는 것이 어찌 원인으로부터 생겨나겠습니까? (10품 771송)
나는 카티야야나의 종족이며 정거천(淨居天)으로부터 나온 이이니, 열반의 성(城)으로 이끄는 법을 중생들에게 설합니다. (10품 772송)
이것은 오래된 길이니 나와 [과거의] 여래들은 삼천 개의 경(經)들로써 열반을 설하였습니다. (10품 773송)
욕계와 무색계에서는 부처가 깨닫지 못하며, 색계의 색구경천(色究竟天)에서 탐욕을 여읜 이가 깨닫습니다. (10품 774송)
경계는 속박의 원인이 아니나 경계의 속박에는 원인이 있으니, 번뇌들은 지혜에 의해 속박되는 것이며 이는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서원입니다. (10품 775송)
자아가 없다면 환영 등의 법들은 없습니까, 있습니까,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진여(眞如)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나타나니, 어찌 무아(無我)의 [진여가] 없다고 [하겠습니까]? (10품 776송)
만들어짐과 만들어지지 않음으로 인해 일으키는 원인은 있지 않으니, 이 모든 것은 생겨나지 않은 것이나 어리석은 이들은 이를 통찰하지 못합니다. (10품 777송)
원인들은 생겨나지 않은 것이며 그것들은 만들어진 조건들이니, 이 둘 모두는 생겨나게 하는 것이 아닌데 어찌 원인들로써 분별되겠습니까? (10품 778송)
논리학자들은 앞서거나 뒤서거나 동시라는 원인을 말하며, 등불과 항아리, 제자 등의 [비유]로써 사물들의 생성을 말합니다. (10품 779송)
부처님들은 조작된 특징들로 특징을 갖추신 것이 아니니, 이것들[32상]은 전륜성왕의 덕목이며 부처님에 의해 설해진 것이 아닙니다. (10품 780송)
부처님들의 특징은 지혜이니 [삿된] 견해의 허물을 여읜 것이며, 각자 스스로 증득함으로써 이르는 것이요 모든 허물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10품 781송)
귀머거리, 장님, 벙어리들, 노인들, 원한을 지닌 이들에게는, 그리고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범행(梵行)이 [닦이지] 않습니다. (10품 782송)
[미래에는] 전륜성왕의 신성한 특징으로 감추어진 표징들로써, 어떤 이들은 [그 표징이] 드러남으로 인해 출가하고 다른 논사들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10품 783송)
내가 열반한 뒤에는 비야사와 카나다, 리샤바, 카필라, 그리고 샤캬의 [화신을 자칭하는] 지도자들, 이와 같은 이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10품 784송)
내가 열반한 지 백 년 뒤에는 비야사와 바라타[의 이야기], 판다바와 카우라바, 라마[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며], 그 뒤에는 마우리야[왕조]가 있게 될 것입니다. (10품 785송)
마우리야와 난다, 굽타[왕조들], 그 뒤에는 이민족(異民族)의 저열한 왕들이 있을 것이며, 이민족[의 시대] 끝에는 무기에 의한 소란이, 무기의 시대 끝에는 칼리유가(악의 시대)가 있을 것이며, 칼리유가의 끝에는 세상 사람들에 의해 정법(正法)이 닦이지 않을 것입니다. (10품 786송)
이와 같은 것들이 지나가고 세상은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니, 불과 태양의 결합으로 인해 욕계는 파괴됩니다. (10품 787송)
다시 하늘[세계]가 세워질 것이며 그때 세상은 [다시] 일어날 것이니, 네 계급과 왕들, 선인들과 법이 [다시 있을 것입니다]. (10품 788송)
베다와 제사, 보시, 법에 머무는 이들이 다시 있게 될 것이며, 이야기와 역사서 등, 산문과 [운문] 소품, 주석서들로써, 이와 같이 내가 들은 바로부터 세상은 미혹될 것입니다. (10품 789송)
[가사의] 끝단을 진한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그 위를 [다른 색으로] 변색시키며, 남색 진흙과 소똥으로 천을 갖가지로 물들여야 하니, [그렇게] 모든 옷으로 몸을 갖가지로 하되 외도의 표식은 여의어야 합니다. (10품 790송)
요가행자는 [이렇게] 가르침을 설해야 하니 이것이 곧 부처님들의 깃발입니다. 천으로 거른 물을 마셔야 하고 허리끈을 지녀야 하며, 때에 맞게 얻어지는 걸식음식을 [받되] 천한 것은 여의어야 합니다. (10품 791송)
[한 존재는] 하늘로부터 신성하게 태어나고 다른 두 존재는 인간으로 태어나니, 보배로운 특징을 갖춘 이가 신의 태생으로 세상의 주인이 됩니다. (10품 792송)
[그는] 법으로 다스리며 하늘[의 복]과 네 대륙을 누리나, 오랫동안 대륙들을 누리고서는 갈애로 인해 파멸합니다. (10품 793송)
크리타 유가와 트레타, 드바파라와 그와 같이 칼리[유가가 있으니], 나와 다른 이들은 크리타 유가에 [있었고] 샤캬의 사자[인 나]는 칼리 유가에 [있습니다]. (10품 794송)
싯다르타, 샤캬의 아들, 비슈누, 비야사, 마헤슈바라, 이와 같은 외도들이 내가 열반한 뒤에 있게 될 것입니다. (10품 795송)
이와 같이 내가 들은 바로부터, 샤캬의 사자의 가르침이 [있으며], 이것은 비야사의 옛이야기 [속에서] 있게 될 것입니다. (10품 796송)
비슈누와 마헤슈바라도 또한 창조주라고 설하게 될 것이니, 이와 같이 내가 열반한 뒤에는 이와 같은 일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10품 797송)
나의 어머니는 바수마티이며 아버지는 바라문 프라자파티이니, 나는 카티야야나와 같은 종족이며 이름으로는 비라자(먼지를 여읜 이)라는 승자입니다. (10품 798송)
나는 참파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소마굽타라는 이름을 지녔고 소마 왕조로부터 나온 이입니다. (10품 799송)
서원을 행하고 출가하여 천 [가지] 이치를 설한 뒤, [제자에게] 수기(授記)하고 마하마티(大慧)에게 관정(灌頂)한 뒤 나는 완전한 열반에 들 것입니다. (10품 800송)
마티(慧)는 [법을] 다르마(法)에게 줄 것이며 다르마는 메칼라에게 줄 것이니, 제자 메칼라는 [힘의] 쇠약함으로 인해 겁(劫)의 끝에 [법을] 소멸시킬 것입니다. (10품 801송)
카샤파와 크라쿠찬다, 그리고 인도자 카나카[무니], 나와 비라자, 그 밖의 다른 모든 이들, 이들 모두는 [선업을] 성취한 승자들입니다. (10품 802송)
크리타 유가에서 그 후에는 마티(慧)라는 이름의 지도자가, 다섯 가지 알아야 할 것을 깨우치는 위대한 영웅으로 있게 될 것입니다. (10품 803송)
드바파라에서도 아니고 트레타에서도 아니며 그 뒤 칼리 유가에서도 아니니, 세상의 수호자들의 출현과 완전한 깨달음은 크리타 유가에서 [있습니다]. (10품 804송)
빼앗을 수 없는 표징들과 끊어지지 않은 [옷]단으로써, 공작[깃털]과 달을 닮은 달[무늬]들로 겉옷을 갖가지로 [장식해야 합니다]. (10품 805송)
두 손가락 너비나 세 손가락 너비로 달[무늬]과 달[무늬] 사이가 있어야 하니, 이와 다르게 갖가지로 꾸며진 것은 어리석은 이들에게 탐낼 만한 것이 될 뿐입니다. (10품 806송)
탐욕의 불을 항상 가라앉혀야 하며 지혜의 물로 씻어야 하니, 요가행자는 삼시(三時)에 노력을 다해 삼귀의(三歸依)를 행해야 합니다. (10품 807송)
화살과 돌, 나무 등이 던짐 등에 의해 움직여지듯이, 하나가 던져지면 [다른] 하나가 떨어지니, 선(善)과 불선(不善)도 그와 같습니다. (10품 808송)
하나가 여럿이 되는 것은 [실제로는] 있지 않으니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어디에서도 [그러하며], 바람의 [비유]로써 [설명하는] 모든 [논리학자]들은 [실은] 밭이 [씨앗을] 주는 자와 같이 될 뿐입니다. (10품 809송)
만약 하나가 여럿이 된다면 모든 것은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니, [혹은] 만들어진 것의 소멸이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 논리학자들의 이 이치입니다. (10품 810송)
등불이나 씨앗과 같이 이것은 [있게] 될 것이라고 [하나], 유사함으로 인해 여럿이 되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하나가 여럿이 된다는 것이 논리학자들의 이 이치입니다. (10품 811송)
참깨로부터 녹두가 생겨나지 않고 벼가 보리를 원인으로 하지 않듯이, 밀과 [다른] 곡물의 종류들에서 하나가 어찌 여럿이 되겠습니까? (10품 812송)
파니니는 문법의 인도자가 되고 아크샤파다와 브리하스파티는, 순세론(順世論)의 창시자들이 될 것이며 브라흐마가르바가 있게 될 것입니다. (10품 813송)
카티야야나는 경(經)의 저자가 되고 야즈냐발키야도 그와 같으며, 부디카와 점성술 등이 칼리 유가에 있게 될 것입니다. (10품 814송)
발리는 세상의 공덕을 지음과 백성들의 복덕으로 인해 있게 될 것이니, 모든 법의 수호자인 강력한 왕, 대지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10품 815송)
발미키와 마수라크샤, 카우틸리야와 아슈발라야나, 그리고 위대한 복덕을 지닌 선인들이 미래에 있게 될 것입니다. (10품 816송)
싯다르타, 샤캬의 아들, [그리고] 부탄타, 판차추다카, 바그발리, 그리고 메다비가 그 후의 시대에 있게 될 것입니다. (10품 817송)
사슴가죽과 지팡이, 허리끈과 원반과 만다라를, 브라흐마와 마헤슈바라가 숲의 땅에 머물 때에 [나에게] 줍니다. (10품 818송)
이름으로 비라자라는 위대한 요가행자인 성인이 있게 될 것이니, 해탈을 설하는 스승이며 이것이 곧 성인들의 깃발입니다. (10품 819송)
브라흐마는 백의 브라흐마들과 함께, 그리고 많은 신들과 함께 나에게 [와서], 사슴가죽을 허공으로부터 내려주고는 자재로운 [그]는 바로 그곳에서 사라집니다. (10품 820송)
온갖 갖가지 옷들과 걸식하는 발우를 천신들과 함께, 인드라와 비루다카 등이 숲의 땅에서 나에게 줍니다. (10품 821송)
불생(不生)을 주장하기 위해 원하는 이는 태어나지 않은 채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 불생을 성립시키려 하나 [그것은] 다만 언어로만 일컬어질 뿐입니다. (10품 822송)
그것의 원인은 무명(無明)이니 그 마음들이 일어난 것이며, 물질을 알지 못하는 동안에는 그 사이의 상태는 무엇입니까? (10품 823송)
바로 직전에 소멸한 마음으로부터 다른 마음이 일어나니, 물질은 어떤 것도 머물지 않는데 무엇을 대상으로 삼아 일어나겠습니까? (10품 824송)
무엇으로부터 어디에서 마음이 헛된 원인으로 일어나는지 성립되지 않는데, 어찌 그것의 찰나적 소멸이 확정되겠습니까? (10품 825송)
요가행자들의 선정(等至)과 순금과 부처님의 사리들, 광음천(光音天)의 궁전들은, 세상의 원인으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10품 826송)
[보살의] 머묾[住]들과 증득한 법들, 부처님들의 지혜의 성취, 비구성(比丘性)과 [계율의] 때에 이름이, 어찌 찰나적인 것으로 보이겠습니까? (10품 827송)
건달바성과 환영 등의 형상들이 어찌 찰나적입니까? [그것들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대(大)들도 [실은] 실재하지 않으니, [사]대는 어디에서 어디로 오는 것입니까? (10품 828송)
무명을 원인으로 하고 시작 없이 쌓인 마음이, 생성과 소멸에 결합된 것이라고 논리학자들에 의해 분별됩니다. (10품 829송)
상키야의 주장은 두 가지이니, 근본원질(勝因)로부터의 변이[론]이며, 근본원질 안에 결과가 실재하며 결과는 자신의 본체로 성립됩니다. (10품 830송)
근본원질은 [실재하는] 사물과 함께 있으며 구나(속성)들의 차이가 [그로부터] 선언되니, 결과와 원인의 갖가지 다름은 변이[론] 안에 실재하지 않습니다. (10품 831송)
수은이 청정하여 수번뇌(隨煩惱)들에 의해 물들지 않듯이, 아뢰야식도 그와 같이 청정하니 모든 몸을 지닌 이들의 의지처입니다. (10품 832송)
아위(阿魏)의 향기와 양파, 임신한 여인에게서 태아를 보는 것, 소금 등에 의한 짠맛, [이것들은] 씨앗처럼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10품 833송)
다름에도 그 다름 아님에도, 둘 다에도 둘 다 아님에도 그러하듯이, 집착 없는 있음은 없음도 아니고 유위(有爲)도 아닙니다. (10품 834송)
말[馬]과 같이 자아는 온(蘊)들에 의해 실재하며 소[牛]라는 [특성]을 여읜 것이니, 유위와 무위로 말할 수 있으면서도 말할 수 없는 자성을 지닌 것입니다. (10품 835송)
이치와 성전(聖典)으로써도 [자아는] 잘못 보여지고 논리적 견해로써 [진실이] 흐려지니, [성인들은] 자아를 확정할 수 없다고 말하되 집착 안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그것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10품 836송)
이들의 허물의 확정으로, 자아는 온(蘊)과 [함께] 통찰되니, 하나됨으로써도 다름으로써도 논리학자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10품 837송)
거울과 물과 눈동자에 영상(映像)이 보이듯이, 하나됨과 다름을 여읜 인아(人我)도 그와 같이 온(蘊)들 안에 [있습니다]. (10품 838송)
닦아야 할 것과 통찰의 주체, 길[道]과 진리를 봄, 이 세 가지를 통찰하는 이들은 삿된 견해들로부터 해탈합니다. (10품 839송)
번갯불이 보였다가 사라지듯이, 벽 틈으로 [들어온 빛이 보이듯이], 모든 법들의 변화도 그러하니 어리석은 이들처럼 [실재로] 분별해서는 안 됩니다. (10품 840송)
있음과 없음으로써의 열반은 어리석은 이들의 마음을 미혹시키는 것이니, 성인의 봄[見]은 실재함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봄으로부터 [있습니다]. (10품 841송)
생성과 소멸을 여의고 있음과 없음을 떠난, 소상(所相)과 능상(能相)을 벗어난 것으로 변화를 통찰해야 합니다. (10품 842송)
외도의 주장을 여의고 이름과 형태를 떠난, 스스로 증득함으로 보는 것에 자리한 것으로 변화를 통찰해야 합니다. (10품 843송)
[좋은] 접촉과 [나쁜] 핍박으로써 천신들[의 세계]와 지옥들이 [나타나며], 중유(中有)는 실재하지 않으니 [모두] 식(識)에 의해 일어난 것입니다. (10품 844송)
태생(胎生)과 난생(卵生), 습생(濕生) 등, [그리고] 중유로부터의 생성, 중생의 몸들이 갖가지로 [나타나는] 오고 감을 통찰해야 합니다. (10품 845송)
이치와 성전(聖典)에서 벗어나고 번뇌 없는 편(便)을 소멸시키는, 외도의 견해의 헛소리들을 지혜로운 이는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10품 846송)
처음에는 자아가 확정되고 집착으로부터 [자아가] 구별되나, 확정하지 못한 채 구별하는 것은 석녀의 아들을 구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10품 847송)
나는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을, 육안(肉眼)을 여읜 지혜로써, 윤회의 온(蘊)들을 벗어난 형상을 지닌 모든 몸을 지닌 이들을 봅니다. (10품 848송)
나쁜 색과 좋은 색에 처한 것, 해탈함과 해탈하지 못함의 구별을, 신성한 [눈으로], 유위(有爲)를 여의었으면서도 유위에 머문 것을 봅니다. (10품 849송)
형상을 지닌 이가 갈래들의 연속됨 속에 있는 것은 논리학자들의 경계가 아니니, 나는 인간의 갈래를 뛰어넘었으나 다른 그릇된 논리학자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10품 850송)
자아는 없는데 마음이 생겨난다면 이것은 무엇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까? 강물과 등불과 씨앗처럼 그것의 나옴이 어찌 설해지지 않습니까? (10품 851송)
식(識)이 생겨나지 않았을 때에는 무명(無明) 등이 실재하지 않으니, 그것이 없다면 식은 [생겨나지 않을 것인데], 어찌 연속으로 생겨나겠습니까? (10품 852송)
삼세(三世)와 세(世) 아닌 것, 그리고 다섯째인 말할 수 없는 것, 이것이 부처님들의 알아야 할 것이나 논리학자들에 의해서도 거듭 일컬어집니다. (10품 853송)
말할 수 없는 것과 유위(有爲)들로써 [설명되는] 앎은 유위를 원인으로 하는 것이니, 유위에 속한 것을 파악하는 앎을 유위라 이름합니다. (10품 854송)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다'는 것과 원인 없는 조건들, [이것들은] 드러내는 것으로써 가르쳐지니, 그것이 없다면 짓는 자가 아닙니다. (10품 855송)
바람은 불의 타오름을 [부추기는] 것이지 [불을] 생성하는 것은 아니니, [바람에 의해] 부추겨졌다가 그것에 의해 꺼지는데 어찌 [바람이] 존재를 성립시키는 것이겠습니까? (10품 856송)
유위와 무위로 말해지나 집착을 여읜 것인데, 어찌 그것을 성립시키는 것이 불이라고 어리석은 이들에 의해 분별됩니까? (10품 857송)
서로가 힘을 더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불이 생겨나니, 중생은 무엇에 의해 일으켜지는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불처럼 분별됩니까? (10품 858송)
온(蘊)과 처(處)의 무리에 대해 의(意) 등이 원인이 되는 것인지, 무아(無我)이면서도 뜻을 지닌 것으로 항상 마음과 함께 존재합니다. (10품 859송)
이 둘은 항상 빛나는 것이며 결과와 원인을 여읜 것이니, 불은 그것들을 성립시키는 것이 아닌데 논리학자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10품 860송)
마음과 중생들과 열반은 본래 빛나는 것이니, 시작 없는 허물들에 의해 오염되었으나 [본래는] 나뉘지 않고 허공에 비유됩니다. (10품 861송)
코끼리의 침상 등의 그림자와 같이 [원문 일부 불확실] 외도의 견해로써 [진실이] 흐려지고, 의식(意識)에 덮여 있으나, 불 등에 의해 [금이 정련되듯] 청정해집니다. (10품 862송)
있는 그대로 보고서 그들은 [법을] 보아 번뇌를 부수었으니, 비유의 깊은 숲을 버리고 그들은 성인의 경계로 나아갔습니다. (10품 863송)
능지(能知)와 소지(所知)의 구별로 인해 다름이 분별되나, 우둔한 이들은 깨닫지 못하니, [진실은] 말할 수 없는 것이라 일컬어집니다. (10품 864송)
북이 전단향으로 만들어졌다고 어리석은 이들이 [실제로 그러하다고] 여기며 다르게 여기지 않듯이, 전단향과 침향에 비유되는 지혜도 그와 같이 그릇된 논리학자들에 의해 [잘못 여겨집니다]. (10품 865송)
[식사에서] 일어난 뒤에는 다만 발우에 담긴 만큼의 음식이라도, 입 모양의 변화 등의 허물들로 인해, 청정한 음식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10품 866송)
이 이치를 이치로써 추론하는 이는 청정한 믿음을 지니고 요가에 전념하며 분별을 여읜 이가 되니, 의지함 없이 뜻에 전념하는 그는 황금빛 법의 길을 밝게 비출 것입니다. (10품 867송)
있음과 없음, 조건에 대한 미혹된 분별, 삿된 견해의 그물, 이 오염된 것이, 탐욕과 허물과 성냄과 함께 그쳐지니, [그는] 때묻지 않은 이가 되어 부처님의 손길로 씻김을 받습니다. (10품 868송)
외도들은 원인이라는 방향에 미혹되어 있고 다른 이들은 조건에 의해 혼란스러워하며, 다른 이들은 원인 없는 실재로부터 단멸을 성인[의 가르침]이라 여겨 [잘못] 의지합니다. (10품 869송)
이숙(異熟)과 변화는 식(識)과 의(意)에 [속하는 것]이니, 의(意)는 아뢰야식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며 식(識)은 의(意)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10품 870송)
아뢰야식으로부터 모든 마음들이 물결처럼 일어나니, 모두 훈습(熏習)을 원인으로 하며 조건에 따라 생겨나는 것들입니다. (10품 871송)
찰나의 차별이라는 결합에 묶여 자신의 마음의 대상을 [잘못] 파악하는 이들, 형태와 특징과 모습을 지닌 것으로 의(意)와 눈 등으로부터 생겨납니다. (10품 872송)
시작 없는 허물에 결합되고 대상 없는 훈습으로부터 일어난 마음이 밖에 있는 것으로 보이니, [이것이] 외도의 견해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10품 873송)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다른 것이 그것을 대상으로 삼아 일어나니, [삿된] 견해가 생겨날 때에 윤회도 일어납니다. (10품 874송)
사물들은 환영과 꿈에 비유되고 건달바성에 견주어지며, 아지랑이와 물속의 달에 비유되니, [수행자는] 자신의 분별을 통찰해야 합니다. (10품 875송)
[망상의] 작용의 차별로부터 [벗어나면] 진여(眞如)이니, 정지(正智)는 그것을 의지처로 하며, 환영과 같은 것[幻]과 수능엄(首楞嚴) 등 훌륭한 삼매(三昧)들이 [있습니다]. (10품 876송)
[보살의] 지위(地)에 들어감으로써 신통(神通)과 자재력(自在力)들을 얻으며, 환영과 같은 지혜의 몸과 관정(灌頂)받은 부처의 [경지를 얻습니다]. (10품 877송)
세상[사람]이 [분별의] 그침을 볼 때에 마음이 그치니, 환희지(歡喜地)를 얻으며 부처의 지위도 얻습니다. (10품 878송)
전환된 의지처[轉依]로써, 갖가지 형상을 [비추는] 보석과 같이, 물속의 영상(映像)처럼 중생을 위한 일들을 행합니다. (10품 879송)
있음과 없음의 견해를 여의고 둘 다도 아니고 둘 다 아님도 아닌 것, 벽지불과 성문의 [경지] 둘로부터 벗어난 일곱째[지위]가 있게 됩니다. (10품 880송)
스스로 증득하여 본 법들, 참된 경지의 청정함을, 바깥 외도를 여읜 대승(大乘)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10품 881송)
분별의 전환은 [죽어] 사라짐과 소멸을 여읜 것이니, 토끼털이나 보석에 비유되는 이 이치를 해탈한 이들에게 설해야 합니다. (10품 882송)
매듭이 매듭으로써 [풀리듯] 이치가 이치로써 [풀리는 것과] 같이, 이로부터 이치가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 되니, 다르게는 분별해서는 안 됩니다. (10품 883송)
눈[眼]과 업(業)과 갈애(渴愛), 그리고 무명(無明)이 근원이 되며, 눈과 물질[色], 그리고 의(意)도, 흐려진 의(意)도 그와 같습니다. (10품 884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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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성스러운 정법 능가경(聖正法楞伽經)」이라는 이름의 대승경(大乘經), 게송을 포함한 것이 완결되었다.
무릇 원인으로부터 생겨나는 법들, 그 원인을 여래께서는 설하셨고, 그것들의 소멸도 [설하셨으니], 이와 같이 말씀하시는 이가 대사문(大沙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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