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불교

해밀심경(解深密經) 한국어 버전

분류쟁이 2026. 7.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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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심경 다른 언어 버전은 아래 블로그에 있습니다.
한자 원문: https://classzangi.tistory.com/354

해밀심경 한글 텍스트, 워드 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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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심경 한글 텍스트 입니다.


〈해심밀경 권제일(解深密經 卷第一)〉

【서품(序品) 제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박가범(薄伽梵)께서 가장 뛰어난 빛으로 빛나는 칠보로 장엄한 곳에 머무르시며, 큰 광명을 놓아 일체의 끝없는 세계를 널리 비추셨다. 한량없는 방소(方所)가 미묘하게 꾸며져 줄지어 있어 두루 둘러 가없고 그 헤아림을 측량하기 어려웠으니, 삼계(三界)가 행하는 곳을 초월하고 세간의 선근(善根)에서 뛰어나게 일어난 것이며, 가장 지극히 자재한 청정식(淨識)을 모습(相)으로 삼았다. 여래께서 계신 도성이요, 모든 대보살 대중이 구름처럼 모인 곳이며, 한량없는 천(天)·용(龍)·야차(藥叉)·건달바(健達縛)·아소락(阿素洛)·게로다(揭路茶)·긴나락(緊捺洛)·모호락가(牟呼洛伽)·인(人)·비인(非人) 등이 늘 그를 좇아 모시며, 광대한 법의 맛과 기쁨을 지니고서 모든 중생을 위해 온갖 의리(義利)를 짓고, 모든 번뇌와 재앙과 얽매임과 때(垢)를 없애며, 온갖 마군을 멀리 여의고 모든 장엄을 뛰어넘으니, 여래의 장엄이 의지하는 곳이었다. 큰 염(念)·혜(慧)·행(行)으로써 노니는 길을 삼고, 큰 지(止)와 묘한 관(觀)으로써 타는 것을 삼으며, 큰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해탈로써 들어가는 문을 삼고, 한량없는 공덕의 대중이 장엄한 곳이니, 큰 보배 꽃왕(寶花王) 대중이 세운 큰 궁전 가운데였다.

이 박가범께서는 가장 청정한 깨달음으로 둘 아닌 현행(現行)을 이루시어 상(相) 없는 법으로 나아가셨다. 부처님의 머무름에 머물러 일체 부처님의 평등한 성품을 얻으셨고, 장애 없는 곳에 이르러 굴릴 수 없는 법이시며, 행하는 바가 걸림이 없고 그 이루어 세운 바가 불가사의하였다. 삼세(三世)의 평등한 법성에 노니시어 그 몸이 온 세계에 널리 퍼지고, 일체 법의 지혜에 의심하여 막힘이 없으며, 일체 행에서 큰 깨달음을 이루시고, 모든 법의 지혜에 의혹이 없으시며, 무릇 나투신 몸을 분별할 수 없고, 일체 보살이 바로 구하는 지혜이며, 둘 없는 부처의 경지를 얻어 저 언덕(彼岸)보다 뛰어나되 서로 섞이지 않으셨다. 여래의 해탈한 묘한 지혜가 구경(究竟)에 이르러 중변(中邊) 없는 부처의 지위가 평등함을 증득하시고, 법계(法界)에 다하시며, 허공의 성품을 다하고 미래제(未來際)를 다하셨다.

한량없는 대성문(大聲聞) 대중과 함께 하셨으니, 모두 다 조화롭게 순종하고 다 부처님의 아들이라, 마음이 잘 해탈되고 지혜가 잘 해탈되며 계행이 잘 청정하여 법의 즐거움을 나아가 구하였다. 많이 듣고(多聞) 들은 것을 지녀(聞持) 그 들음이 쌓여 모였으며, 생각한 바를 잘 생각하고 말한 바를 잘 말하며 지은 바를 잘 지었다. 민첩한 지혜(捷慧)·빠른 지혜(速慧)·예리한 지혜(利慧)·뛰어난 지혜(出慧)·수승하게 결택하는 지혜(勝決擇慧)·큰 지혜(大慧)·넓은 지혜(廣慧) 및 견줄 데 없는 지혜(無等慧)로 지혜의 보배를 성취하였고, 삼명(三明)을 갖추어 제일(第一)의 현법락주(現法樂住)를 얻었으며, 큰 청정한 복전(福田)이 되어 위의(威儀)가 고요하여 원만하지 않음이 없고, 큰 인욕과 유화(柔和)를 이루어 줄어듦이 없으며, 이미 여래의 거룩한 가르침(聖敎)을 잘 받들어 행하였다.

다시 한량없는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계셨으니, 갖가지 부처님 국토로부터 모여 왔다. 모두 대승(大乘)에 머물러 대승법에 노닐며, 모든 중생에 대해 그 마음이 평등하고, 온갖 분별과 분별 아님의 갖가지 분별을 여의었으며, 일체 마군의 원수와 적을 꺾어 항복시키고, 일체 성문(聲聞)·독각(獨覺)이 지닌 작의(作意)를 멀리 여의며, 광대한 법의 맛과 기쁨을 지니고, 다섯 가지 두려움(五怖畏)을 뛰어넘어 한결같이 물러나지 않는 경지(不退轉地)로 나아가 들어가며, 일체 중생의 일체 고뇌에 핍박받는 경지를 쉬게 하면서 앞에 나타나 계셨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해심밀의보살마하살(解甚深義密意菩薩摩訶薩)·여리청문보살마하살(如理請問菩薩摩訶薩)·법용보살마하살(法涌菩薩摩訶薩)·선청정혜보살마하살(善清淨慧菩薩摩訶薩)·광혜보살마하살(廣慧菩薩摩訶薩)·덕본보살마하살(德本菩薩摩訶薩)·승의생보살마하살(勝義生菩薩摩訶薩)·관자재보살마하살(觀自在菩薩摩訶薩)·자씨보살마하살(慈氏菩薩摩訶薩)·만수실리보살마하살(曼殊室利菩薩摩訶薩) 등이 상수(上首)가 되었다.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제2】

그때 여리청문보살마하살(如理請問菩薩摩訶薩)이 곧 부처님 앞에서 해심밀의보살(解甚深義密意菩薩)에게 물어 말하였다. "최승자(最勝子)여! 일체법이 둘이 없다, 일체법이 둘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무엇이 일체법이며 어떤 것을 둘이 없다고 합니까?"

해심밀의보살이 여리청문보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일체법이란 대략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유위(有爲)요 둘은 무위(無爲)이다. 이 가운데 유위는 유위도 아니요 무위도 아니며, 무위 또한 무위도 아니요 유위도 아니다."

여리청문보살이 다시 해심밀의보살에게 물어 말하였다. "최승자여! 어찌하여 유위가 유위도 아니요 무위도 아니며, 무위 또한 무위도 아니요 유위도 아닙니까?"

해심밀의보살이 여리청문보살에게 일러 말하였다. "선남자여! 유위라고 말하는 것은 곧 본사(本師, 부처님)께서 임시로 시설(施設)하신 구절이다. 만약 본사께서 임시로 시설하신 구절이라면 곧 두루 헤아려 모은 것이요 말로써 말해진 것이며, 만약 두루 헤아려 모은 것이요 말로써 말해진 것이라면 곧 구경(究竟)에는 갖가지로 두루 헤아린 말일 뿐이다. 진실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유위가 아니다. 선남자여! 무위라고 말하는 것 또한 말에 떨어진다. 설사 유위와 무위를 떠나 조금이라도 말한 바가 있다 해도 그 모습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일이 없이 말한 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그 일인가? 이르되 모든 성자(聖者)들이 성스러운 지혜(聖智)와 성스러운 견해(聖見)로써 명언(名言)을 떠난 까닭에 현등정각(現等正覺)을 이루시고, 곧 이와 같이 말을 떠난 법성(法性)에서 다른 이로 하여금 똑같이 깨닫게 하고자 하는 까닭에 임시로 이름과 생각을 세워 그것을 유위라 이르는 것이다.

"선남자여! 무위라고 말하는 것도 또한 본사께서 임시로 시설하신 구절이다. 만약 본사께서 임시로 시설하신 구절이라면 곧 두루 헤아려 모은 것이요 말로써 말해진 것이며, 만약 두루 헤아려 모은 것이요 말로써 말해진 것이라면 곧 구경에는 갖가지로 두루 헤아린 말일 뿐이다. 진실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무위가 아니다. 선남자여! 유위라고 말하는 것 또한 말에 떨어진다. 설사 무위와 유위를 떠나 조금이라도 말한 바가 있다 해도 그 모습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일이 없이 말한 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그 일인가? 이르되 모든 성자들이 성스러운 지혜와 성스러운 견해로써 명언을 떠난 까닭에 현등정각을 이루시고, 곧 이와 같이 말을 떠난 법성에서 다른 이로 하여금 똑같이 깨닫게 하고자 하는 까닭에 임시로 이름과 생각을 세워 그것을 무위라 이르는 것이다."

그때 여리청문보살마하살이 다시 해심밀의보살마하살에게 물어 말하였다. "최승자여! 어찌하여 이 일에 있어 저 모든 성자들이 성스러운 지혜와 성스러운 견해로써 명언을 떠난 까닭에 현등정각을 이루시고, 곧 이와 같이 말을 떠난 법성에서 다른 이로 하여금 똑같이 깨닫게 하고자 하는 까닭에 임시로 이름과 생각을 세워 혹은 유위라 이르고 혹은 무위라 이르는 것입니까?"

해심밀의보살이 여리청문보살에게 일러 말하였다. "선남자여! 마치 뛰어난 환술사(幻術師)나 그 제자가 네거리 길에 머물러 기와조각·자갈·풀·잎사귀·나무 등을 모아 쌓아서 갖가지 요술로 변화하는 일을 나타내 짓는 것과 같다. 이른바 코끼리의 몸·말의 몸·수레의 몸·걷는 몸, 마니(末尼)·진주(真珠)·유리(琉璃)·소라조개(螺貝)·벽옥(璧玉)·산호(珊瑚), 갖가지 재물·곡식·창고에 쌓인 것 등의 형체이다. 만약 모든 중생이 어리석고 완고하고 나쁜 지혜를 지닌 부류로서 밝게 아는 바가 없어서, 기와조각·자갈·풀·잎사귀·나무 등 위에 지어진 온갖 요술의 일을 보고 듣고서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보는 바는 실로 코끼리의 몸이 있고, 실로 말의 몸·수레의 몸·걷는 몸, 마니·진주·유리·소라조개·벽옥·산호, 갖가지 재물·곡식·창고에 쌓인 것 등의 형체가 있다'라고 하여, 그 본 대로 그 들은 대로 굳게 집착하여 말을 일으켜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나머지는 다 어리석은 망상이다'라고 한다면, 그는 뒷날 마땅히 다시 관찰해야 할 것이다.

"만약 어떤 중생이 어리석지도 않고 완고하지도 않은, 좋은 지혜를 지닌 부류로서 밝게 아는 바가 있어서, 기와조각·자갈·풀·잎사귀·나무 등 위에 지어진 온갖 요술의 일을 보고 듣고서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보는 바는 실로 코끼리의 몸이 없고, 실로 말의 몸·수레의 몸·걷는 몸, 마니·진주·유리·소라조개·벽옥·산호, 갖가지 재물·곡식·창고에 쌓인 것 등의 형체가 없다. 그러나 요술의 모습이 있어 눈을 미혹시키는 일이니, 그 가운데 큰 코끼리 몸이라는 생각이나 큰 코끼리 몸의 차별이라는 생각이 일어나고, 나아가 갖가지 재물·곡식·창고에 쌓인 것 등의 생각이나 그 부류의 차별이라는 생각이 일어난다'라고 하여, 본 대로가 아니고 들은 대로가 아니게 굳게 집착하여 말을 일으켜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나머지는 다 어리석은 망상이다'라고 하되, 이와 같은 뜻을 나타내 알게 하고자 하는 까닭에 또한 이 가운데서 말을 일으킨다면, 그는 뒷날 다시 관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만약 어떤 중생이 어리석은 범부(凡夫)의 부류요 이생(異生)의 부류여서 아직 모든 성자의 출세간의 지혜를 얻지 못하여 일체법의 말을 떠난 법성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일체의 유위와 무위에 대해 보고 듣고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얻은 바는 결정코 실로 유위와 무위가 있다.' 그 본 대로 그 들은 대로 굳게 집착하여 말을 일으켜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나머지는 다 어리석은 망상이다'라고 한다면, 그는 뒷날 마땅히 다시 관찰해야 할 것이다.

"만약 어떤 중생이 어리석은 범부의 부류가 아니어서 이미 성스러운 진리(聖諦)를 보았고 이미 모든 성자의 출세간의 지혜를 얻어 일체법의 말을 떠난 법성을 여실히 안다면, 그는 일체의 유위와 무위에 대해 보고 듣고서 이렇게 생각한다. '이 얻은 바는 결정코 실로 유위와 무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분별로 일으킨 행상(行相)이 있어 마치 요술의 일이 깨닫는 지혜를 미혹시키는 것과 같아서, 그 가운데 유위·무위라는 생각이나 유위·무위의 차별이라는 생각이 일어난다.' 본 대로가 아니고 들은 대로가 아니게 굳게 집착하여 말을 일으켜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나머지는 다 어리석은 망상이다'라고 하되, 이와 같은 뜻을 나타내 알게 하고자 하는 까닭에 또한 이 가운데서 말을 일으킨다면, 그는 뒷날 다시 관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선남자여! 저 모든 성자들이 이 일에 있어 성스러운 지혜와 성스러운 견해로써 명언을 떠난 까닭에 현등정각을 이루시고, 곧 이와 같이 말을 떠난 법성에서 다른 이로 하여금 똑같이 깨닫게 하고자 하는 까닭에 임시로 이름과 생각을 세워 그것을 유위라 이르고 그것을 무위라 이르는 것이다."

그때 해심밀의보살이 이 뜻을 거듭 펴고자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말을 떠난 둘 없는 뜻은, 매우 깊어서 어리석은 이가 행할 바 아니네.
어리석은 범부는 이에 어리석음으로 미혹되어, 둘에 의지한 말장난(戲論)을 즐겨 집착하네.
그들은 혹은 정해지지 않았고 혹은 삿되게 정해져서, 지극히 긴 생사의 괴로움을 유전(流轉)하며,
다시 이와 같은 바른 지혜의 논리를 어기니, 마땅히 소나 양 등의 부류 가운데 태어나리라."

그때 법용보살(法涌菩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곳으로부터 동방으로 칠십이 긍가하(殑伽河)의 모래 수와 같은 세계를 지나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구대명칭(具大名稱)이며, 그 가운데 여래께서 계시니 광대명칭(廣大名稱)이라 부릅니다. 제가 지난날 그 부처님 국토로부터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그 부처님 국토에서 일찍이 한 곳을 보았는데, 칠만 칠천의 외도(外道)와 그 스승 우두머리들이 함께 한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모든 법의 승의제상(勝義諦相)을 생각하고자 그들이 함께 사의(思議)하고 헤아리고 관찰하고 두루 추구할 때에, 일체법의 승의제상에 대해 끝내 얻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갖가지 뜻으로 이해한 것, 서로 다른 뜻으로 이해한 것, 변하여 달라진 뜻으로 이해한 것들만 있어서 서로 어긋나 함께 다툼을 일으켜, 입에서 창(矛)과 같은 말이 나와 다시 서로 찌르고 찌르고 괴롭히고 무너뜨리고서 각각 흩어져 떠났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 가만히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심은 참으로 기이하고 희유하시다! 세상에 나오신 까닭에 이와 같이 일체의 심사(尋思)로 행하는 바를 초월한 승의제상에 대해서도 통달함이 있고 증득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법용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러하고 그러하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다. 나는 일체의 심사를 초월한 승의제상에 대해 현등정각을 이루었고, 현등각을 이룬 뒤에 다른 이를 위해 선설(宣說)하고 나타내 보이고 열어 풀이하고 시설하고 밝게 비추었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말하되, '승의(勝義)는 모든 성자가 안으로 스스로 증득한 것이요, 심사(尋思)로 행하는 바는 모든 이생(異生)이 이리저리 굴러 증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법용이여!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승의는 일체의 심사 경계의 모습을 초월함을 알아야 한다. 다시 법용이여! 나는 말하되, '승의는 모습 없는 것으로 행하는 바요, 심사는 다만 모습 있는 경계로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법용이여!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승의는 일체의 심사 경계의 모습을 초월함을 알아야 한다. 다시 법용이여! 나는 말하되, '승의는 말로 설할 수 없고, 심사는 다만 말로 설하는 경계로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법용이여!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승의는 일체의 심사 경계의 모습을 초월함을 알아야 한다. 다시 법용이여! 나는 말하되, '승의는 모든 나타내 보임(表示)을 끊었고, 심사는 다만 나타내 보이는 경계로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법용이여!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승의는 일체의 심사 경계의 모습을 초월함을 알아야 한다. 다시 법용이여! 나는 말하되, '승의는 모든 다툼(諍論)을 끊었고, 심사는 다만 다투는 경계로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법용이여!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승의는 일체의 심사 경계의 모습을 초월함을 알아야 한다.

"법용이여! 마땅히 알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그 목숨이 다하도록 맵고 쓴맛만을 익혀 와서 꿀과 석밀(石蜜)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맛에 대해 능히 심사하지 못하고 능히 견주어 헤아리지 못하고 능히 믿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혹은 긴 밤 동안 욕심과 탐욕의 뛰어난 이해로써 온갖 욕망의 타는 불에 태워진 까닭에 안으로 일체의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모습을 없애 버린 미묘하고 멀리 여읜 즐거움에 대해 능히 심사하지 못하고 능히 견주어 헤아리지 못하고 능히 믿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혹은 긴 밤 동안 말의 뛰어난 이해로써 세간의 꾸민 말(綺言說)을 즐겨 집착한 까닭에 안으로 고요한 성스러운 침묵의 즐거움에 대해 능히 심사하지 못하고 능히 견주어 헤아리지 못하고 능히 믿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혹은 긴 밤 동안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나타내 보임(表示)의 뛰어난 이해로써 세간의 온갖 나타내 보임을 즐겨 집착한 까닭에 일체의 나타내 보임과 살가야(薩迦耶)를 영원히 없애 끊은 구경의 열반에 대해 능히 심사하지 못하고 능히 견주어 헤아리지 못하고 능히 믿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법용이여! 마땅히 알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그 긴 밤 동안 갖가지 나의 것(我所)과 거두어 지님(攝受), 다툼의 뛰어난 이해가 있어서 세간의 온갖 다툼을 즐겨 집착한 까닭에 북구로주(北拘盧洲)의 나의 것 없음과 거두어 지님 없음과 다툼을 떠남에 대해 능히 심사하지 못하고 능히 견주어 헤아리지 못하고 능히 믿어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법용이여! 모든 심사하는 자들은 일체의 심사로 행하는 바를 초월한 승의제상에 대해 능히 심사하지 못하고 능히 견주어 헤아리지 못하고 능히 믿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고자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안으로 증득한 모습 없는 행하는 바이며, 말로 설할 수 없고 나타내 보임을 끊었으며,
모든 다툼을 쉰 승의제(勝義諦)이니, 일체의 심사하는 모습을 초월하였도다."

그때 선청정혜보살(善清淨慧菩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기이하십니다! 나아가 세존이시여, 잘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승의제상은 미세하고 매우 깊어서 모든 법의 하나이거나 다르다는 성품의 모습을 초월하여 통달하기 어렵다.' 세존이시여! 제가 곧 이곳에서 일찍이 한 곳을 보았는데, 여러 보살들이 승해행지(勝解行地)를 바로 닦아 행하며 함께 한자리에 앉아 모두 함께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行相)의 하나이거나 다른 성품의 모습을 사의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임 가운데 한 부류의 보살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은 전혀 다름이 없다.' 한 부류의 보살은 다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이 전혀 다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승의제상은 모든 행상과 다르다.' 나머지 보살들은 의혹하고 망설이며 다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모든 보살들 가운데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허망을 말하며, 누가 이치대로 행하고 누가 이치대로 행하지 않는가?' 혹은 이렇게 외치기를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은 전혀 다름이 없다'라고 하고, 혹은 이렇게 외치기를 '승의제상은 모든 행상과 다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들을 보고서 가만히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모든 선남자들은 어리석고 완고하며 밝지 못하고 좋지 못하며 이치대로 행하지 못하여, 승의제(勝義諦)의 미세하고 매우 깊어서 모든 행의 하나이거나 다른 성품의 모습을 초월함에 대해 능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선청정혜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러하고 그러하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저 모든 선남자들은 어리석고 완고하며 밝지 못하고 좋지 못하며 이치대로 행하지 못하여, 승의제의 미세하고 매우 깊어서 모든 행의 하나이거나 다른 성품의 모습을 초월함에 대해 능히 알지 못한다.' 무슨 까닭인가? 선청정혜여! 모든 행을 이와 같이 행할 때에 능히 승의제상을 통달했다거나 승의제에 대해 증득함을 얻었다고 이름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선청정혜여! 만약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이 전혀 다름이 없는 것이라면, 마땅히 지금 이때에 일체의 이생(異生)들이 모두 이미 진리를 보았어야 하고, 또 모든 이생들이 모두 마땅히 이미 위없는 방편의 편안한 열반을 얻었어야 하며, 혹은 마땅히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증득했어야 한다. 만약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이 한결같이 다른 것이라면, 이미 진리를 본 자는 모든 행상에 대해 마땅히 제거하지 못해야 하고, 만약 모든 행상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마땅히 모습의 속박(相縛)에서 해탈을 얻지 못해야 하며, 이 진리를 본 자가 모든 모습의 속박에서 해탈하지 못하는 까닭에 거친 속박(麁重縛)에서도 마땅히 벗어나지 못해야 하고, 두 가지 속박에서 해탈하지 못하는 까닭에 이미 진리를 본 자가 마땅히 위없는 방편의 편안한 열반을 얻지 못해야 하며, 혹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지 못해야 한다.

"선청정혜여! 지금 이때에 모든 이생들이 이미 진리를 본 것이 아니고, 모든 이생들이 이미 위없는 방편의 편안한 열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며, 또한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것도 아니다. 이런 까닭에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이 전혀 다름이 없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약 이 가운데 이렇게 말하기를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은 전혀 다름이 없다'라고 한다면,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일체가 이치대로 행함이 아니요 바른 이치와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선청정혜여! 지금 이때에 진리를 본 자가 모든 행상에 대해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능히 제거하며, 진리를 본 자가 모든 모습의 속박에서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능히 해탈하며, 진리를 본 자가 거친 속박에서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능히 해탈한다. 두 가지 장애(二障)에서 능히 해탈하는 까닭에 또한 능히 위없는 방편의 편안한 열반을 얻으며, 혹은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함이 있다. 이런 까닭에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이 한결같이 다르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약 이 가운데 이렇게 말하기를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은 한결같이 다르다'라고 한다면,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일체가 이치대로 행함이 아니요 바른 이치와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다시 선청정혜여! 만약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이 전혀 다름이 없는 것이라면, 모든 행상이 잡염(雜染)의 모습에 떨어지듯이 이 승의제상도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잡염의 모습에 떨어져야 한다. 선청정혜여! 만약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이 한결같이 다른 것이라면, 마땅히 일체 행상의 공통된 모습(共相)을 승의제상이라 이름하지 못해야 한다. 선청정혜여! 지금 이때에 승의제상은 잡염의 모습에 떨어지지 않으며, 모든 행의 공통된 모습을 승의제상이라 이름한다. 이런 까닭에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이 전혀 다름이 없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고,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이 한결같이 다르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약 이 가운데 이렇게 말하기를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은 전혀 다름이 없다, 혹은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은 한결같이 다르다'라고 한다면,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일체가 이치대로 행함이 아니요 바른 이치와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다시 선청정혜여! 만약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이 전혀 다름이 없는 것이라면, 승의제상이 모든 행상에 대해 차별이 없듯이 일체의 행상도 또한 마땅히 이와 같이 차별이 없어야 한다. 관행(觀行)을 닦는 자가 모든 행 가운데서 그 본 대로, 그 들은 대로, 그 깨달은 대로, 그 아는 대로 하여 마땅히 뒷날에 다시 승의(勝義)를 구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이 한결같이 다른 것이라면, 마땅히 모든 행이 오직 나 없는 성품(無我性)과 오직 자성 없는 성품(無自性)의 나타난 바가 승의의 모습이 아니어야 한다. 또 마땅히 동시에 따로 다른 모습이 성립하여, 잡염의 모습과 청정의 모습을 이르게 될 것이다.

"선청정혜여! 지금 이때에 일체 행상은 모두 차별이 있고 차별이 없는 것이 아니며, 관행을 닦는 자가 모든 행 가운데서 그 본 대로, 그 들은 대로, 그 깨달은 대로, 그 아는 대로 하고서 다시 뒷날에 승의를 구한다. 또 곧 모든 행이 오직 나 없는 성품과 오직 자성 없는 성품의 나타난 바를 승의의 모습이라 이름한다. 또 동시에 물듦과 청정의 두 모습이 따로 다르게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까닭에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이 전혀 다름이 없다는 것도, 혹은 한결같이 다르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약 이 가운데 이렇게 말하기를 '승의제상과 모든 행상은 전혀 다름이 없다, 혹은 한결같이 다르다'라고 한다면,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일체가 이치대로 행함이 아니요 바른 이치와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선청정혜여! 마치 소라조개(螺貝) 위의 선명한 흰 빛깔의 성품을 저 소라조개와 같다거나 다르다고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다. 소라조개 위의 선명한 흰 빛깔의 성품과 같이, 금(金) 위의 누런 빛깔도 또한 이와 같다. 마치 공후(箜篌) 소리 위의 아름다운 곡조의 성품을 공후 소리와 같다거나 다르다고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다. 마치 흑침향(黑沈) 위의 묘한 향기의 성품을 저 흑침향과 같다거나 다르다고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다. 마치 후추(胡椒) 위의 맵고 매서운 성품을 저 후추와 같다거나 다르다고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다. 후추 위의 맵고 매서운 성품과 같이, 가리(訶梨, 訶梨勒)의 떫은 성품도 또한 이와 같다. 마치 도라면(蠧羅綿, 목화솜) 위의 부드러운 성품을 도라면과 같다거나 다르다고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다. 마치 익은 소(熟酥) 위에 있는 제호(醍醐)를 저 익은 소와 같다거나 다르다고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다. 또 마치 일체 행(行) 위의 무상(無常)한 성품, 일체 유루법(有漏法) 위의 괴로운 성품, 일체법 위의 보특가라(補特伽羅) 무아(無我)의 성품을 저 행 등과 같다거나 다르다고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다. 또 마치 탐욕 위의 고요하지 않은 모습과 잡염의 모습을 이것과 저 탐욕이 같다거나 다르다고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다. 탐욕 위에서와 같이 성냄(瞋)과 어리석음(癡) 위에서도 또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선청정혜여! 승의제상은 모든 행상과 같다거나 다르다고 시설할 수 없다.

"선청정혜여! 나는 이와 같이 미세하고 지극히 미세하며, 매우 깊고 지극히 매우 깊으며, 통달하기 어렵고 지극히 통달하기 어려운, 모든 법의 하나이거나 다른 성품의 모습을 초월한 승의제상에 대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나타내었고, 나타내어 깨달은 뒤에 다른 이를 위해 선설하고 나타내 보이고 열어 풀이하고 시설하고 밝게 비추었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고자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행(行)의 세계와 승의(勝義)의 모습은, 하나이거나 다른 성품의 모습을 여의었으니,
만약 하나다 다르다고 분별한다면, 그는 이치대로 행함이 아니로다.
중생은 모습의 속박이 되고, 또 저 거친 속박이 되나니,
반드시 부지런히 지관(止觀)을 닦아야, 이에 비로소 해탈을 얻으리라."

그때 세존께서 장로 선현(善現, 수보리)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현이여! 그대는 유정계(有情界) 가운데서 몇이나 되는 유정이 증상만(增上慢)을 품어 증상만에 사로잡힌 까닭에 아는 바를 기별(記別, 판단하여 말함)하는지 아는가? 그대는 유정계 가운데서 몇이나 되는 유정이 증상만을 여의고 아는 바를 기별하는지 아는가?"

장로 선현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유정계 가운데서 적은 부분의 유정이 증상만을 여의고 아는 바를 기별함을 압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유정계 가운데 한량없고 무수하여 말할 수 없는 유정이 증상만을 품어 증상만에 사로잡힌 까닭에 아는 바를 기별함을 압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어느 때 아련야(阿練若)의 큰 숲 속에 머물렀는데, 그때 많은 필추(苾芻)들도 또한 이 숲에서 저를 의지하여 가까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든 필추들이 낮이 지난 뒤에 서로 모여서 얻은 바가 있는 현관(現觀)에 의지하여 각각 갖가지 모습의 법을 말하며 아는 바를 기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부류는 온(蘊)을 얻은 까닭, 온의 모습을 얻은 까닭, 온의 일어남을 얻은 까닭, 온의 다함을 얻은 까닭, 온의 사라짐을 얻은 까닭, 온의 사라짐의 증득함을 얻은 까닭으로 아는 바를 기별하였습니다. 이 한 부류가 온을 얻은 까닭과 같이, 다시 한 부류는 처(處)를 얻은 까닭이요, 다시 한 부류는 연기(緣起)를 얻은 까닭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또한 그러합니다.

"다시 한 부류는 식(食)을 얻은 까닭, 식의 모습을 얻은 까닭, 식의 일어남을 얻은 까닭, 식의 다함을 얻은 까닭, 식의 사라짐을 얻은 까닭, 식의 사라짐의 증득함을 얻은 까닭으로 아는 바를 기별하였습니다.

"다시 한 부류는 제(諦)를 얻은 까닭, 제의 모습을 얻은 까닭, 제를 두루 앎을 얻은 까닭, 제를 영원히 끊음을 얻은 까닭, 제의 증득함을 얻은 까닭, 제의 닦아 익힘을 얻은 까닭으로 아는 바를 기별하였습니다.

"다시 한 부류는 계(界)를 얻은 까닭, 계의 모습을 얻은 까닭, 계의 갖가지 성품을 얻은 까닭, 계의 하나 아닌 성품을 얻은 까닭, 계의 사라짐을 얻은 까닭, 계의 사라짐의 증득함을 얻은 까닭으로 아는 바를 기별하였습니다.

"다시 한 부류는 염주(念住)를 얻은 까닭, 염주의 모습을 얻은 까닭, 염주가 다스릴 바를 다스림을 얻은 까닭, 염주의 닦음을 얻은 까닭, 염주의 아직 나지 않은 것을 나게 함을 얻은 까닭, 염주가 이미 나서 굳게 머물러 잊지 않고 갑절로 닦아 늘림을 얻은 까닭으로 아는 바를 기별하였습니다. 어떤 한 부류가 염주를 얻은 까닭과 같이, 다시 한 부류는 정단(正斷)을 얻은 까닭이요, 신족(神足)을 얻은 까닭이요, 모든 근(根)을 얻은 까닭이요, 모든 력(力)을 얻은 까닭이요, 각지(覺支)를 얻은 까닭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또한 그러합니다.

"다시 한 부류는 팔지성도(八支聖道)를 얻은 까닭, 팔지성도의 모습을 얻은 까닭, 팔지성도가 다스릴 바를 다스림을 얻은 까닭, 팔지성도의 닦음을 얻은 까닭, 팔지성도의 아직 나지 않은 것을 나게 함을 얻은 까닭, 팔지성도가 이미 나서 굳게 머물러 잊지 않고 갑절로 닦아 늘림을 얻은 까닭으로 아는 바를 기별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들을 보고서 가만히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모든 장로들은 얻은 바가 있는 현관에 의지하여 각각 갖가지 모습의 법을 말하며 아는 바를 기별하니, 마땅히 저 모든 장로들이 일체 모두 증상만을 품어 증상만에 사로잡힌 까닭에 승의제(勝義諦)의 두루 일체에 한맛인 모습에 대해 능히 알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이런 까닭에 세존이시여! 참으로 기이합니다! 나아가 세존이시여, 잘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승의제상은 미세하고 가장 미세하며, 매우 깊고 가장 매우 깊으며, 통달하기 어렵고 가장 통달하기 어려우며, 두루 일체에 한맛인 모습이다.' 세존이시여! 이 거룩한 가르침(聖敎) 가운데서 수행하는 필추도 승의제의 두루 일체에 한맛인 모습에 대해 오히려 통달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모든 외도이겠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장로 선현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다. 선현이여! 나는 미세하고 가장 미세하며, 매우 깊고 가장 매우 깊으며, 통달하기 어렵고 가장 통달하기 어려운, 두루 일체에 한맛인 모습의 승의제에 대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나타내었고, 나타내어 깨달은 뒤에 다른 이를 위해 선설하고 나타내 보이고 열어 풀이하고 시설하고 밝게 비추었다. 무슨 까닭인가? 선현이여! 나는 이미 일체 온(蘊) 가운데의 청정한 소연(所緣)이 승의제임을 나타내 보였다. 나는 이미 일체 처(處)·연기(緣起)·식(食)·제(諦)·계(界)·염주(念住)·정단(正斷)·신족(神足)·근(根)·력(力)·각지(覺支)·도지(道支) 가운데의 청정한 소연이 승의제임을 나타내 보였다. 이 청정한 소연은 일체 온 가운데서 한맛인 모습이요 다른 모습이 없으니, 온 가운데에서와 같이 이와 같이 일체 처 가운데서도, 나아가 일체 도지 가운데서도 한맛인 모습이요 다른 모습이 없다. 이런 까닭에 선현이여!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승의제는 두루 일체에 한맛인 모습임을 알아야 한다.

"다시 선현이여! 관행(觀行)을 닦는 필추가 하나의 온의 진여(眞如)인 승의법(勝義法) 무아성(無我性)을 통달하고 나면, 다시 각각 다른 나머지 온·모든 처·연기·식·제·계·염주·정단·신족·근·력·각지·도지의 진여인 승의법 무아성을 찾아 구하지 않는다. 오직 곧 이 진여인 승의의 둘 없는 지혜를 의지처로 삼아 두루 일체에 한맛인 모습의 승의제에 대해 자세히 살펴 나아가 증득한다. 이런 까닭에 선현이여!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승의제는 두루 일체에 한맛인 모습임을 알아야 한다.

"다시 선현이여! 저 모든 온이 서로 다른 모습이듯이, 저 모든 처·연기·식·제·계·염주·정단·신족·근·력·각지·도지도 서로 다른 모습이다. 만약 일체법의 진여인 승의법 무아성도 또한 다른 모습이라면, 이는 곧 진여인 승의법 무아성도 마땅히 원인이 있어 원인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되어야 한다. 만약 원인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면 마땅히 유위(有爲)여야 하고, 만약 유위라면 마땅히 승의가 아니어야 하며, 만약 승의가 아니라면 마땅히 다시 다른 승의제를 찾아 구해야 한다. 선현이여! 이 진여인 승의법 무아성은 원인이 있다고 이름하지 않으며, 원인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며, 또한 유위가 아니니, 이것이 승의제이며, 이 승의를 얻으면 다시 다른 승의제를 찾아 구하지 않는다. 오직 항상하고 항상한 때, 늘 그러하고 늘 그러한 때에,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시거나 나오시지 않거나 모든 법의 법성(法性)이 안립(安立)하고 법계(法界)가 편안히 머문다. 이런 까닭에 선현이여!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승의제는 두루 일체에 한맛인 모습임을 알아야 한다.

"선현이여! 비유하면 갖가지 하나가 아닌 종류의 다른 모습의 색(色) 가운데서 허공은 모습이 없고 분별이 없고 변화가 없어 두루 일체에 한맛인 모습인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다른 성품과 다른 모습의 일체법 가운데서 승의제가 두루 일체에 한맛인 모습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또한 그러하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고자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이 두루 일체에 한맛인 모습을, 승의라 하여 모든 부처님이 다름없다 말씀하셨네.
만약 이 가운데 다르다고 분별함이 있다면, 그는 결정코 어리석어 증상만에 의지함이로다."

【심의식상품(心意識相品) 제3】

그때 광혜보살마하살(廣慧菩薩摩訶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심의식(心意識)의 비밀함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하셨는데, 심의식의 비밀함에 잘 통달한 보살이란 어느 정도라야 심의식의 비밀함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이름합니까? 여래께서는 어느 정도를 두고 그를 심의식의 비밀함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시설하십니까?"

그때 세존께서 광혜보살마하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광혜여! 그대가 이제 이렇게 여래에게 이러한 깊은 뜻을 물을 수 있으니, 그대는 이제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고자 세간과 모든 천(天)·인(人)·아소락(阿素洛) 등을 가엾이 여겨, 의리(義利)와 안락을 얻게 하고자 이 물음을 일으켰다. 그대는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내 마땅히 그대를 위해 심의식의 비밀한 뜻을 설하리라.

"광혜여, 마땅히 알라. 육취(六趣)의 생사에 있어 저러저러한 유정(有情)이 저러저러한 유정의 무리 가운데 떨어져서, 혹은 난생(卵生)에 있고 혹은 태생(胎生)에 있고 혹은 습생(濕生)에 있고 혹은 화생(化生)에 있어 몸이 생겨날 때, 그 가운데 가장 처음 일체 종자(種子)의 심식(心識)이 성숙하고 전전(展轉)하고 화합하고 증장하고 광대해진다. 두 가지 집수(執受)에 의지하나니, 하나는 색이 있는 모든 근(根)과 그 의지하는 바의 집수요, 둘은 모습과 이름과 분별과 언설의 희론(戲論) 습기(習氣)의 집수이다. 색계(色界)에는 두 가지 집수를 갖추고, 무색계(無色界)에는 두 가지를 갖추지 못한다.

"광혜여! 이 식(識)은 또한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도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이 몸에서 따라가며 잡아 지니는(執持) 까닭이다. 또한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도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이 몸에서 거두어 지니고(攝受) 감추어 숨기며(藏隱) 안위(安危)를 함께하는 뜻이 있는 까닭이다. 또한 심(心)이라고도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이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 등을 쌓고 늘리는 까닭이다.

"광혜여! 아타나식이 의지처가 되고 세워지는 바가 됨으로써 육식신(六識身)이 굴러 일어나니, 이른바 안식(眼識)·이(耳)·비(鼻)·설(舌)·신(身)·의식(意識)이다. 이 가운데 어떤 식은, 눈과 색(色)이 연(緣)이 되어 안식이 생겨나며 안식과 함께 따라 행하여 동시(同時)에 동경(同境)으로 분별하는 의식이 굴러 일어난다. 어떤 식은, 귀·코·혀·몸과 소리·향기·맛·촉감이 연이 되어 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이 생겨나며 이식·비식·설식·신식과 함께 따라 행하여 동시에 동경으로 분별하는 의식이 굴러 일어난다. 광혜여! 만약 이때 하나의 안식이 굴러 일어나면 곧 이때 오직 하나의 분별하는 의식이 안식과 함께 행하는 바가 굴러 일어나며, 만약 이때 두 개, 세 개, 네 개, 다섯 개의 모든 식신(識身)이 굴러 일어나면 곧 이때 오직 하나의 분별하는 의식이 다섯 식신과 함께 행하는 바가 굴러 일어난다.

"광혜여! 비유하면 큰 폭포수의 흐름과 같아서, 만약 하나의 물결이 생겨날 연이 앞에 나타나면 오직 하나의 물결이 일어나고, 만약 둘 혹은 여럿의 물결이 생겨날 연이 앞에 나타나면 여러 물결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 폭포수는 그 종류대로 항상 흘러 끊어짐도 없고 다함도 없다. 또 마치 잘 닦여 깨끗한 거울의 면과 같아서, 만약 하나의 그림자가 생겨날 연이 앞에 나타나면 오직 하나의 그림자가 일어나고, 만약 둘 혹은 여럿의 그림자가 생겨날 연이 앞에 나타나면 여러 그림자가 일어난다. 이 거울의 면이 변하여 그림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받아 씀이 다하여 없어짐도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이, 광혜여! 폭포의 흐름과 같은 아타나식이 의지처가 되고 세워지는 바가 됨으로 말미암아, 만약 이때 하나의 안식이 생겨날 연이 앞에 나타나면 곧 이때 하나의 안식이 굴러 일어나고, 만약 이때 나아가 다섯 식신이 생겨날 연이 앞에 나타나면 곧 이때 다섯 식신이 굴러 일어난다.

"광혜여! 이와 같이 보살이 비록 법주지(法住智)로 의지처를 삼고 세워지는 바를 삼음으로 말미암아 심의식의 비밀함에 잘 통달하더라도, 모든 여래는 이 정도로 그를 심의식의 일체 비밀함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시설하지 않는다. 광혜여! 만약 모든 보살이 안으로 각각 따로, 여실히 아타나(阿陀那)를 보지 않고 아타나식을 보지 않으며, 아뢰야(阿賴耶)를 보지 않고 아뢰야식을 보지 않으며, 쌓고 모임(積集)을 보지 않고 심(心)을 보지 않으며, 눈과 색과 안식을 보지 않고, 귀와 소리와 이식을 보지 않고, 코와 향기와 비식을 보지 않고, 혀와 맛과 설식을 보지 않고, 몸과 촉감과 신식을 보지 않고, 뜻(意)과 법(法)과 의식을 보지 않는다면, 이를 승의(勝義)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이름하며, 여래는 그를 승의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시설한다. 광혜여! 이 정도를 심의식의 일체 비밀함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이름하며, 여래는 이 정도로 그를 심의식의 일체 비밀함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시설한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고자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아타나식은 매우 깊고 미세하여, 일체의 종자가 폭포의 흐름과 같으니,
나는 범부와 어리석은 이에게 열어 펴 보이지 않으니, 저들이 분별하여 나(我)로 집착할까 두려워서이다."

〈해심밀경 권제이(解深密經 卷第二)〉

【일체법상품(一切法相品) 제4】

그때 덕본보살마하살(德本菩薩摩訶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모든 법의 모습(法相)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하셨는데, 모든 법의 모습에 잘 통달한 보살이란 어느 정도라야 모든 법의 모습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이름합니까? 여래께서는 어느 정도를 두고 그를 모든 법의 모습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시설하십니까?"

그때 세존께서 덕본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덕본이여! 그대가 이제 이렇게 여래에게 이러한 깊은 뜻을 물을 수 있으니, 그대는 이제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고자 세간과 모든 천·인·아소락 등을 가엾이 여겨, 의리와 안락을 얻게 하고자 이 물음을 일으켰다. 그대는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내 마땅히 그대를 위해 모든 법의 모습을 설하리라.

"이르되 모든 법의 모습에는 대략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셋인가? 첫째는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이요, 둘째는 의타기상(依他起相)이요, 셋째는 원성실상(圓成實相)이다. 무엇을 모든 법의 변계소집상이라 하는가? 이르되 일체법의 이름으로 임시로 세운 자성(自性)의 차별이니, 나아가 이로 말미암아 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모든 법의 의타기상이라 하는가? 이르되 일체법이 연(緣)으로 생겨나는 자성이니, 곧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나는 것이니, 이르되 무명(無明)을 연하여 행(行)이 있고 나아가 순수하게 큰 고통 무더기(苦蘊)를 불러 모으는 것이다. 무엇을 모든 법의 원성실상이라 하는가? 이르되 일체법의 평등한 진여(眞如)이다. 이 진여에 대해 모든 보살 대중이 용맹하게 정진함을 인연으로 삼아 이치대로 뜻을 짓고, 뒤바뀜 없이 사유함을 인연으로 삼아 이에 능히 통달한다. 이 통달함에서 점차로 닦아 모아 나아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無上正等菩提)에 이르러야 원만함을 증득한다.

"선남자여! 마치 눈이 어지러운(眩瞖) 사람의 눈 속에 있는 어지러운 눈병의 허물과 같이, 변계소집상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눈이 어지러운 사람의 어지러운 눈병의 여러 모습과 같이, 혹은 머리카락·터럭·바퀴·벌과 파리·거승(巨勝, 검은깨) 같은 것, 혹은 다시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 등의 모습 차별이 앞에 나타나니, 의타기상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이 눈 속의 어지러운 눈병의 허물을 멀리 여의어 곧 이 맑은 눈의 본래 성품이 행하는 어지러움 없는 경계와 같이, 원성실상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여! 비유하면 청정한 파지가(頗胝迦) 보배가 만약 푸른 물들인 빛깔과 합해지면 곧 제청(帝青)·대청(大青) 마니보배의 모양과 같아지니, 삿되게 제청·대청 마니보배로 집착하여 취함으로 말미암아 유정을 미혹시키고 어지럽힌다. 만약 붉은 물들인 빛깔과 합해지면 곧 호박(琥珀) 마니보배의 모양과 같아지니, 삿되게 호박 마니보배로 집착하여 취함으로 말미암아 유정을 미혹시키고 어지럽힌다. 만약 초록빛 물들인 빛깔과 합해지면 곧 말라갈다(末羅羯多) 마니보배의 모양과 같아지니, 삿되게 말라갈다 마니보배로 집착하여 취함으로 말미암아 유정을 미혹시키고 어지럽힌다. 만약 누런 물들인 빛깔과 합해지면 곧 금(金)의 모양과 같아지니, 삿되게 진짜 금의 모양으로 집착하여 취함으로 말미암아 유정을 미혹시키고 어지럽힌다.

"이와 같이, 덕본이여! 저 청정한 파지가 위에 있는 물들인 빛깔이 상응함과 같이, 의타기상 위의 변계소집상의 언설(言說) 습기(習氣)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저 청정한 파지가 위에 있는 제청·대청·호박·말라갈다·금 등의 삿된 집착과 같이, 의타기상 위의 변계소집상의 집착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저 청정한 파지가 보배와 같이, 의타기상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저 청정한 파지가 위에 있는 제청·대청·호박·말라갈다·진짜 금 등의 모습이 늘 그러하고 항상 그러한 때에 진실함이 없고 자성(自性)이 없는 것과 같이, 곧 의타기상 위에서 변계소집상으로 말미암아 늘 그러하고 항상 그러한 때에 진실함이 없고 자성이 없으니, 원성실상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다시 덕본이여! 모습과 이름이 서로 응함이 연(緣)이 됨으로써 변계소집상을 알 수 있으며, 의타기상 위에서 변계소집상의 집착이 연이 됨으로써 의타기상을 알 수 있으며, 의타기상 위에서 변계소집상의 집착 없음이 연이 됨으로써 원성실상을 알 수 있다.

"선남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능히 모든 법의 의타기상 위에서 여실히 변계소집상을 안다면 곧 능히 여실히 일체 모습 없는(無相) 법을 알 것이며, 만약 모든 보살이 여실히 의타기상을 안다면 곧 능히 여실히 일체 잡염(雜染)의 모습 있는 법을 알 것이며, 만약 모든 보살이 여실히 원성실상을 안다면 곧 능히 여실히 일체 청정(淸淨)의 모습 있는 법을 알 것이다.

"선남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능히 의타기상 위에서 여실히 모습 없는 법을 안다면 곧 능히 잡염의 모습 있는 법을 끊어 없앨 것이며, 만약 능히 잡염의 모습 있는 법을 끊어 없앤다면 곧 능히 청정의 모습 있는 법을 증득할 것이다.

"이와 같이, 덕본이여! 모든 보살이 여실히 변계소집상·의타기상·원성실상을 앎으로 말미암아 여실히 모든 모습 없는 법·잡염의 모습 있는 법·청정의 모습 있는 법을 알며, 여실히 모습 없는 법을 아는 까닭에 일체 잡염의 모습 있는 법을 끊어 없애고, 일체 물든 모습의 법을 끊어 없애는 까닭에 일체 청정의 모습 있는 법을 증득한다. 이 정도를 모든 법의 모습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이름하며, 여래는 이 정도로 그를 모든 법의 모습에 잘 통달한 보살이라 시설한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고자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만약 모습 없는 법을 알지 못하면, 잡염의 모습 있는 법을 능히 끊지 못하리니,
잡염의 모습 있는 법을 끊지 못하는 까닭에, 미묘하고 청정한 모습의 법을 증득함을 무너뜨리네.
모든 행(行)의 온갖 허물을 관하지 않으면, 방일(放逸)한 허물이 중생을 해치리니,
게을러 법 가운데 흔들려 머물면, 잃고 무너짐이 있어 가히 가엾도다."

【무자성상품(無自性相品) 제5】

그때 승의생보살마하살(勝義生菩薩摩訶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일찍이 홀로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마음에 이런 심사(尋思)가 생겨났습니다. '세존께서 한량없는 문(門)으로 일찍이 말씀하시되, 모든 온(蘊)이 지닌 자상(自相)과 생겨나는 모습(生相)과 사라지는 모습(滅相)을 영원히 끊고 두루 안다고 하셨다. 온을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모든 처(處)·연기(緣起)·모든 식(食)도 또한 그러하다. 한량없는 문으로 일찍이 말씀하시되, 모든 제(諦)가 지닌 자상을 두루 알고 영원히 끊고 증득하고 닦아 익힌다고 하셨다. 한량없는 문으로 일찍이 말씀하시되, 모든 계(界)가 지닌 자상과 갖가지 계의 성품과 하나 아닌 계의 성품을 영원히 끊고 두루 안다고 하셨다. 한량없는 문으로 일찍이 말씀하시되, 염주(念住)가 지닌 자상과 다스릴 바를 다스림과 닦아 익힘, 아직 나지 않은 것을 나게 함, 이미 나서 굳게 머묾, 잊지 않고 갑절로 닦아 늘려 넓힌다고 하셨다. 염주·정단·신족·근·력·각지를 말씀하신 것과 같이 또한 이와 같다. 한량없는 문으로 일찍이 말씀하시되, 팔지성도(八支聖道)가 지닌 자상과 다스릴 바를 다스림과 닦아 익힘, 아직 나지 않은 것을 나게 함, 이미 나서 굳게 머묾, 잊지 않고 갑절로 닦아 늘려 넓힌다고 하셨다.' 세존께서는 다시 말씀하시되 '일체의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무슨 비밀한 뜻(密意)에 의거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지 아직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일체의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제가 이제 여래께 이 뜻을 청하여 여쭈오니, 오직 원하옵건대 여래께서는 가엾이 여기시어 풀이해 주시고, 일체법이 다 자성이 없고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라고 하신 지닌 바 비밀한 뜻을 말씀해 주소서."

그때 세존께서 승의생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승의생이여! 그대가 심사한 바가 매우 이치에 맞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제 이렇게 여래에게 이러한 깊은 뜻을 물을 수 있으니, 그대는 이제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고자 세간과 모든 천·인·아소락 등을 가엾이 여겨, 의리와 안락을 얻게 하고자 이 물음을 일으켰다. 그대는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내 마땅히 그대를 위해 '일체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말한 바 지닌 비밀한 뜻을 풀이해 주리라.

"승의생이여! 마땅히 알라, 나는 세 가지 무자성성(無自性性)의 비밀한 뜻에 의거하여 일체 모든 법이 다 자성이 없다고 말하니, 이른바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이다.

"선남자여! 무엇을 모든 법의 상무자성성이라 하는가? 이르되 모든 법의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는 임시로 붙인 이름(假名)으로 모습을 세운 것이지 스스로의 모습(自相)으로 모습을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이런 까닭에 상무자성성이라 이름한다.

"무엇을 모든 법의 생무자성성이라 하는가? 이르되 모든 법의 의타기상(依他起相)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는 다른 것에 의지하는 연(緣)의 힘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지 저절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 이런 까닭에 생무자성성이라 이름한다.

"무엇을 모든 법의 승의무자성성이라 하는가? 이르되 모든 법이 생무자성성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무자성성이라 이름하니, 곧 연으로 생겨난 법도 또한 승의무자성성이라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 가운데서 만약 청정한 소연(所緣) 경계라면, 나는 그것을 나타내 보여 승의무자성성으로 삼거니와, 의타기상은 청정한 소연 경계가 아니니, 이런 까닭에 또한 승의무자성성이라 이름한다. 다시 모든 법의 원성실상(圓成實相)도 또한 승의무자성성이라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일체 모든 법의 법무아성(法無我性)을 승의(勝義)라 이름하고 또한 무자성성이라 이름할 수 있으니, 이는 일체법의 승의제(勝義諦)인 까닭이며 무자성성이 나타낸 바인 까닭이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승의무자성성이라 이름한다.

"선남자여! 비유하면 허공의 꽃(空花)과 같이, 상무자성성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비유하면 요술의 형상(幻像)과 같이, 생무자성성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하며, 한 부분의 승의무자성성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비유하면 허공과 같이 오직 온갖 빛깔(色)이 성품 없음이 나타낸 바이어서 일체 처에 두루하듯이, 한 부분의 승의무자성성도 마땅히 그러함을 알아야 하니, 법무아성이 나타낸 바인 까닭이며 일체에 두루한 까닭이다.

"선남자여! 나는 이와 같은 세 가지 무자성성에 의거하여 비밀한 뜻으로 '일체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승의생이여! 마땅히 알라, 나는 상무자성성에 의거하여 비밀한 뜻으로 '일체 모든 법은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약 법의 자상(自相)이 전혀 있는 바가 없다면 곧 생겨남이 없고, 만약 생겨남이 없다면 곧 사라짐이 없으며, 만약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다면 곧 본래 고요하고, 만약 본래 고요하다면 곧 자성이 열반이다. 그 가운데 조금이라도 있는 바가 있어서 다시 그것을 반열반(般涅槃)하게 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상무자성성에 의거하여 비밀한 뜻으로 '일체 모든 법은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나는 또한 법무아성(法無我性)이 나타낸 바인 승의무자성성에 의거하여 비밀한 뜻으로 '일체 모든 법은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법무아성이 나타낸 바인 승의무자성성은 늘 그러하고 항상 그러한 때에 모든 법의 법성(法性)이 안주(安住)하여 무위(無爲)이다. 일체 잡염(雜染)과 서로 응하지 않는 까닭에, 늘 그러하고 항상 그러한 때에 모든 법의 법성이 안주하는 까닭에 무위이며, 무위인 까닭에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 일체 잡염과 서로 응하지 않는 까닭에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법무아성이 나타낸 바인 승의무자성성에 의거하여 비밀한 뜻으로 '일체 모든 법은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승의생이여! 유정계(有情界) 가운데 모든 유정의 부류가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을 따로 자성으로 관하는 것으로 말미암은 까닭에도 아니요, 또한 저들이 의타기자성(依他起自性)과 원성실자성(圓成實自性)을 따로 자성으로 관하는 것으로 말미암은 까닭도 아니라, 내가 세 가지 무자성성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유정이 의타기자성과 원성실자성 위에 변계소집자성을 더 늘려 보태는(增益)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세 가지 무자성성을 세운 것이다.

"변계소집자성의 모습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저 모든 유정이 의타기자성과 원성실자성 가운데서 말을 따라 일으킨다. 이러하고 이러하게 말을 따라 일으킴과 같이 이러하고 이러하게 하여, 말이 마음을 훈습(熏習)하는 까닭으로, 말을 따라 깨닫는 까닭으로, 말을 따라 잠재(隨眠)하는 까닭으로, 의타기자성과 원성실자성 가운데서 변계소집자성의 모습에 집착한다.

"이러하고 이러하게 집착함과 같이 이러하고 이러하게 하여, 의타기자성과 원성실자성 위에서 변계소집자성을 집착한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미래세의 의타기자성이 생겨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혹은 번뇌잡염(煩惱雜染)에 물들거나, 혹은 업잡염(業雜染)에 물들거나, 혹은 생잡염(生雜染)에 물들어, 생사 가운데서 오랫동안 치달리며 오랫동안 유전(流轉)하여 쉼이 없이, 혹은 나락가(那落迦)에 있거나, 혹은 방생(傍生)에 있거나, 혹은 아귀(餓鬼)에 있거나, 혹은 천상(天上)에 있거나, 혹은 아소락(阿素洛)에 있거나, 혹은 인간(人中)에 있어 온갖 고뇌를 받는다.

"다시, 승의생이여! 만약 모든 유정이 본래부터 아직 선근(善根)을 심지 못하고, 아직 장애(障)를 청정하게 하지 못하고, 아직 상속(相續)을 성숙시키지 못하고, 아직 뛰어난 이해(勝解)를 많이 닦지 못하고, 아직 복덕(福德)과 지혜(智慧) 두 가지 자량(資糧)을 쌓아 모으지 못하였다면, 나는 그를 위한 까닭에 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에 의거하여 모든 법을 선설한다. 저들이 이를 듣고서 능히 일체 연으로 생겨나는 행(行) 가운데서 분수대로 무상(無常)과 무항상함, 이것이 편안하지 못하고 변하여 무너지는 법임을 알고 나면, 일체 행에 대해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고 깊이 싫어함(厭患)을 일으키며,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고 깊이 싫어함을 일으키고 나면, 모든 악을 막아 그치고 모든 악한 법을 능히 짓지 아니하며, 모든 선한 법을 능히 부지런히 닦아 익힌다. 선(善)을 익히는 인(因)인 까닭에 아직 선근을 심지 못한 자는 선근을 심을 수 있고, 아직 장애를 청정하게 하지 못한 자는 청정하게 할 수 있으며, 아직 상속을 성숙시키지 못한 자는 성숙시킬 수 있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뛰어난 이해를 많이 닦고, 또한 복덕과 지혜 두 가지 자량을 많이 쌓아 모은다.

"저들이 비록 이와 같이 모든 선근을 심고 나아가 복덕과 지혜 두 가지 자량을 쌓아 모으더라도, 그러나 생무자성성 가운데서 아직 능히 여실히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과 두 가지 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을 알지 못하며, 일체 행에 대해 아직 능히 바로 싫어하지 못하고, 아직 바로 욕망을 여의지 못하며, 아직 바로 해탈하지 못하고, 아직 번뇌잡염을 두루 해탈하지 못하며, 아직 모든 업잡염을 두루 해탈하지 못하고, 아직 모든 생잡염을 두루 해탈하지 못한다. 여래는 그들을 위해 다시 법의 요체를 말하나니, 이르되 상무자성성과 승의무자성성이다. 그들로 하여금 일체 행에 대해 능히 바로 싫어하고, 바로 욕망을 여의고, 바로 해탈하며, 일체 번뇌잡염을 초월하고, 일체 업잡염을 초월하고, 일체 생잡염을 초월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저들이 이렇게 설한 법을 듣고 나서, 생무자성성 가운데서 능히 상무자성성과 승의무자성성을 바르게 믿고 이해하며, 가려서 사유하여 여실히 통달한다. 의타기자성 가운데서 능히 변계소집자성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다. 말이 지혜를 훈습하지 않는 까닭으로, 말을 따라 깨닫는 지혜가 아닌 까닭으로, 말을 여읜 잠재의 지혜인 까닭으로, 능히 의타기상을 없앤다. 현재의 법 가운데서 지혜의 힘으로 지니어, 능히 미래세의 인(因)을 영원히 끊어 없앤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일체 행에 대해 능히 바로 싫어하고, 능히 바로 욕망을 여의며, 능히 바로 해탈하고, 능히 번뇌·업·생의 세 가지 잡염을 두루 해탈한다.

"다시, 승의생이여! 모든 성문승(聲聞乘)의 종성(種性)을 지닌 유정도 또한 이 도(道)와 이 행적(行迹)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위없는 편안한 열반을 증득한다. 모든 독각승(獨覺乘)의 종성을 지닌 유정과 모든 여래승(如來乘)의 종성을 지닌 유정도 또한 이 도와 이 행적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위없는 편안한 열반을 증득한다. 일체 성문·독각·보살이 모두 이 하나의 미묘하고 청정한 도를 함께하고, 모두 이 하나의 구경(究竟)의 청정을 함께하여 다시 둘째가 없다. 나는 이런 까닭에 비밀한 뜻으로 '오직 하나의 승(乘)이 있다'고 말한다. 일체 유정계 가운데 갖가지 유정의 종성이나 혹은 둔근성(鈍根性), 혹은 중근성(中根性), 혹은 이근성(利根性) 유정의 차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선남자여! 만약 한결같이 적멸로 나아가는(一向趣寂) 성문 종성의 보특가라(補特伽羅)라면, 비록 모든 부처님이 갖가지 용맹한 가행(加行) 방편으로 교화하여 인도해 주시더라도, 끝내 그로 하여금 도량(道場)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하지 못한다. 무슨 까닭인가? 저들은 본래 오직 하열(下劣)한 종성만 있는 까닭이며, 한결같이 자비가 박약한 까닭이며, 한결같이 온갖 고통을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저들이 한결같이 자비가 박약하므로 이런 까닭에 한결같이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저버리며, 저들이 한결같이 온갖 고통을 두려워하므로 이런 까닭에 한결같이 모든 행(行)을 일으켜 짓는 일을 저버린다. 나는 끝내 한결같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저버리는 자, 한결같이 모든 행을 일으켜 짓는 일을 저버리는 자가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으니, 이런 까닭에 그를 한결같이 적멸로 나아가는 성문이라 이름한다고 말한다. 만약 보리(菩提)로 회향하는 성문 종성의 보특가라라면, 나는 또한 다른 문(門)으로 보살이라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저가 이미 번뇌장(煩惱障)에서 해탈하고 나서, 만약 모든 부처님이 평등히 깨우쳐 주실 때를 만나면, 소지장(所知障)에 대해서도 그 마음이 또한 마땅히 해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가 최초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행을 닦아 번뇌장에서 해탈한 것으로 말미암아, 이런 까닭에 여래는 그를 성문 종성이라 시설하는 것이다.

"다시, 승의생이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하고 잘 제정한 법(法)과 비나야(毘奈耶), 지극히 청정한 뜻으로 설한 좋은 가르침(善敎法) 가운데서, 모든 유정의 부류가 뜻으로 이해하는 갖가지 차별이 있을 수 있다. 선남자여! 여래는 다만 이와 같은 세 가지 무자성성에 의거하여 깊은 비밀한 뜻으로 선설한 불요의경(不了義經)에서 숨겨진 모습(隱密相)으로 모든 법의 요체를 말하니, 이르되 일체법이 다 자성이 없고,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라는 것이다.

"이 경 가운데서, 만약 모든 유정이 이미 상품(上品)의 선근을 심었고, 이미 모든 장애를 청정하게 하였고, 이미 상속을 성숙시켰고, 이미 뛰어난 이해를 많이 닦았으며, 이미 능히 상품의 복덕·지혜의 자량을 쌓아 모았다면, 저들이 만약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서 나의 매우 깊은 비밀한 뜻의 말에 대해 여실히 알고, 이와 같은 법에 깊이 믿고 이해함을 내며, 이와 같은 뜻에 대해 뒤바뀜 없는 지혜로써 여실히 통달한다. 이 통달함에 의지하여 잘 닦아 익히는 까닭에 신속히 능히 지극히 구경(究竟)을 증득하며, 또한 나에게 깊이 청정한 믿음을 내어 이것이 여래(如來)·응공(應)·정등각(正等覺)이 일체법에 대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나타낸 것임을 안다.

"만약 모든 유정이 이미 상품의 선근을 심었고, 이미 모든 장애를 청정하게 하였고, 이미 상속을 성숙시켰고, 이미 뛰어난 이해를 많이 닦았으나, 아직 상품의 복덕·지혜의 자량을 쌓아 모으지 못하였다면, 그 성품이 질직(質直, 정직하고 곧음)하고 질직한 부류여서, 비록 능히 사리를 가려 세우고 폐함을 사유할 힘은 없지만 자기 견해에 취착하여 머무르지는 않는다. 저들이 만약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서, 나의 매우 깊은 비밀한 말에 대해 비록 능히 여실히 알 힘은 없더라도, 그러나 이 법에 대해 뛰어난 이해를 낼 수 있고 청정한 믿음을 일으켜, 이 경전이 여래의 말씀이며 매우 깊고 깊음을 나타내며 공성(空性)과 상응하여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려우며 심사(尋思)할 수 없고 모든 심사가 행할 바 경계가 아니며 미세하고 자세히 살피는 총명한 지혜자만이 알 수 있는 것임을 믿는다. 이 경전에서 설한 뜻 가운데서 스스로를 낮추어 머물러 이렇게 말한다. '모든 부처님의 보리(菩提)가 가장 매우 깊고, 모든 법의 법성도 또한 가장 매우 깊어서, 오직 부처님 여래만이 능히 잘 통달할 수 있으니 우리들이 능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부처님 여래는 저 갖가지 뛰어난 이해를 지닌 유정을 위해 바른 법의 가르침을 굴리시니, 모든 부처님 여래의 끝없는 지견(智見)에 우리들의 지견은 마치 소 발자국과 같다.' 이 경전에 대해 비록 능히 공경하고 남을 위해 선설하고 베껴 쓰고 보호하여 지니고 펼쳐 읽고 유포하고 정성껏 공양하고 받아 외워 익히더라도, 그러나 아직 능히 그 닦는 모습으로써 가행을 일으키지 못하니, 이런 까닭에 나의 매우 깊은 비밀한 뜻으로 설한 말에 대해 능히 통달하지 못한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저 모든 유정도 또한 능히 복덕·지혜 두 가지 자량을 늘리며, 저 상속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도 또한 능히 성숙시킬 수 있다.

"만약 모든 유정이 널리 말하여 나아가 아직 능히 상품의 복덕·지혜 자량을 쌓아 모으지 못하였고, 성품이 질직하지 못하고 질직하지 못한 부류여서, 비록 능히 사리를 가려 세우고 폐함을 사유할 힘은 있으나 다시 자기 견해에 취착하여 머문다면, 저들이 만약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서 나의 매우 깊은 비밀한 뜻의 말에 대해 능히 여실히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은 법에 대해 비록 믿고 이해함을 내더라도, 그러나 그 뜻에 대해 말을 따라 집착하여, '일체법은 결정코 다 자성이 없고, 결정코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며, 결정코 본래 고요하고, 결정코 자성이 열반이다'라고 이른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일체법에 대해 없다는 견해(無見)와 모습 없다는 견해(無相見)를 얻는다. 없다는 견해와 모습 없다는 견해를 얻은 까닭으로, 일체 모습을 다 모습 없는 것이라고 물리쳐, 모든 법의 변계소집상·의타기상·원성실상을 비방하여 물리친다. 무슨 까닭인가? 의타기상과 원성실상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변계소집상을 비로소 시설할 수 있으니, 만약 의타기상과 원성실상을 모습 없는 것이라고 본다면 저들도 또한 변계소집상을 비방하여 물리치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저들이 세 가지 모습(三相)을 비방하여 물리친다고 말하는 것이다. 비록 나의 법에 대해 법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만 뜻이 아닌 것 가운데 뜻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니, 나의 법에 대해 법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뜻이 아닌 것 가운데 뜻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까닭으로, 이 법 가운데서 이 법이라고 지니고 뜻이 아닌 것 가운데서 이 뜻이라고 지닌다. 저들이 비록 법에 대해 믿고 이해함을 일으킨 까닭에 복덕이 늘어나지만, 그러나 뜻이 아닌 것에 대해 집착을 일으키는 까닭에 지혜를 잃으며, 지혜를 잃는 까닭에 넓고 큰 한량없는 선한 법을 잃는다.

"다시 어떤 유정이 남에게서 듣고 법을 법이라 하고 뜻이 아닌 것을 뜻이라 하여, 만약 그 견해를 따른다면 저도 곧 법에 대해 법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뜻이 아닌 것 가운데 뜻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법을 법이라 집착하고 뜻이 아닌 것을 뜻이라 집착한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저들과 똑같이 선한 법을 잃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어떤 유정이 그 견해를 따르지 않고 저들에게서 갑자기 '일체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다'라는 말을 듣고서 곧 두려움을 낸다면, 두려움을 내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마군(魔軍)이 설한 것이다.' 이렇게 알고 나서 이 경전에 대해 비방하고 헐뜯는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큰 쇠퇴와 손실을 얻고 큰 업장(業障)에 부딪친다.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나는, 만약 어떤 이가 일체 모습에 대해 모습 없다는 견해를 일으켜 뜻이 아닌 것 가운데서 뜻이라고 선설한다면, 이는 넓고 큰 업장을 일으키는 방편이라고 말하니, 저로 말미암아 한량없는 중생을 빠뜨려 그들로 하여금 큰 업장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만약 모든 유정이 아직 선근을 심지 못하고, 아직 장애를 청정하게 하지 못하고, 아직 상속을 성숙시키지 못하고, 뛰어난 이해가 많지 않으며, 아직 복덕·지혜의 자량을 쌓지 못하였다면, 그 성품이 질직하지 못하고 질직하지 못한 부류여서, 비록 능히 사리를 가려 세우고 폐함을 사유할 힘은 있으나 항상 자기 견해에 취착하여 머문다. 저들이 만약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서 능히 여실히 나의 매우 깊은 비밀한 뜻의 말을 알지 못하고, 또한 이 법에 대해 믿고 이해함을 내지 못하여, 이 법 가운데서 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이 뜻 가운데서 뜻이 아니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 법 가운데서 법이 아니라고 집착하고 이 뜻 가운데서 뜻이 아니라고 집착하여, 이렇게 외친다. '이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마군이 설한 것이다.' 이렇게 알고 나서 이 경전에 대해 비방하고 헐뜯어 허위라고 물리치며, 한량없는 문(門)으로 이와 같은 경전을 훼멸하고 꺾어 무너뜨리며, 이 경전을 믿고 이해하는 모든 이들에 대해 원수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저들이 먼저 모든 업장에 가로막혔던 데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다시 이와 같은 업장에 가로막히니, 이와 같은 업장은 처음에는 쉽게 시설되지만 나아가 백천구지나유타(百千俱胝那庾多) 겁(劫)에 이르도록 벗어날 기약이 없다.

"선남자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하고 잘 제정한 법과 비나야, 지극히 청정한 뜻으로 설한 좋은 가르침 가운데에 이와 같은 등의 모든 유정의 부류가 뜻으로 이해하는 갖가지 차별이 있을 수 있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고자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일체 모든 법은 다 성품이 없어서,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이 본래 고요하며,
모든 법의 자성은 늘 열반이니, 누가 지혜 있어 비밀한 뜻 없다 말하리오?
상(相)·생(生)·승의(勝義)의 무자성을, 이와 같이 내가 다 나타내 보였으니,
만약 부처님의 이 비밀한 뜻을 알지 못하면, 바른 도를 잃고 무너뜨려 나아가지 못하리라!
모든 청정한 도에 의지하는 청정한 이는, 오직 이 하나에 의지할 뿐 둘째가 없으니,
그러므로 그 가운데 일승(一乘)을 세우나, 유정의 성품에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로다.
중생계 가운데 한량없는 생을 두고, 오직 한 몸을 제도하여 적멸로 나아간다면,
대비(大悲)로 용맹하게 열반을 증득하되 중생을 버리지 않기는 매우 어려우리라!
미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무루계(無漏界)는, 그 가운데 해탈함이 평등하여 차별 없으니,
일체의 뜻이 이루어져 미혹과 괴로움을 여의니, 두 가지 다른 말로는 항상함과 즐거움이라 하도다."

그때 승의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 여래의 비밀한 뜻의 말씀은 참으로 기이하고 희유하며, 나아가 미묘하고 가장 미묘하며, 매우 깊고 가장 매우 깊으며, 통달하기 어렵고 가장 통달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제가 이제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한 바로는, 만약 분별하여 행하는 바인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행상(行相) 가운데서 임시로 이름 붙여 색온(色蘊)으로 세우거나, 혹은 자성상(自性相)이거나 혹은 차별상(差別相)이며, 임시로 이름 붙여 색온의 생겨남, 색온의 사라짐, 및 색온의 영원한 끊음과 두루 앎으로 세우거나, 혹은 자성상이거나 혹은 차별상인 것, 이를 변계소집상이라 이름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거하여 모든 법의 상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곧 분별하여 행하는 바인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행상이라면, 이를 의타기상이라 이름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거하여 모든 법의 생무자성성과 한 부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제가 이제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한 바로는, 곧 이 분별하여 행하는 바인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행상 가운데서, 변계소집상이 진실을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곧 이 자성(自性)이 무자성성인 법무아(法無我)의 진여(眞如)인 청정한 소연(所緣), 이를 원성실상이라 이름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거하여 한 부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색온에서와 같이 이와 같이 나머지 온(蘊)에서도 다 마땅히 자세히 말해야 하며, 모든 온에서와 같이 이와 같이 십이처(十二處)의 낱낱 처에서도 다 마땅히 자세히 말해야 하며, 십이유지(十二有支)의 낱낱 지(支)에서도 다 마땅히 자세히 말해야 하며, 네 가지 식(食)의 낱낱 식에서도 다 마땅히 자세히 말해야 하며, 육계(六界)·십팔계(十八界)의 낱낱 계에서도 다 마땅히 자세히 말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제가 이제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한 바로는, 만약 분별하여 행하는 바인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행상 가운데서 임시로 이름 붙여 고제(苦諦)와 고제를 두루 앎으로 세우거나, 혹은 자성상이거나 혹은 차별상인 것, 이를 변계소집상이라 이름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거하여 모든 법의 상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곧 분별하여 행하는 바인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행상이라면, 이를 의타기상이라 이름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거하여 모든 법의 생무자성성과 한 부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제가 이제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한 바로는, 곧 이 분별하여 행하는 바인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행상 가운데서, 변계소집상이 진실을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곧 이 자성이 무자성성인 법무아의 진여인 청정한 소연, 이를 원성실상이라 이름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거하여 한 부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고제에서와 같이 이와 같이 나머지 제(諦)에서도 다 마땅히 자세히 말해야 합니다. 성제(聖諦)에서와 같이 이와 같이 모든 염주·정단·신족·근·력·각지·도지에서도 낱낱이 다 마땅히 자세히 말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제가 이제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한 바로는, 만약 분별하여 행하는 바인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행상 가운데서 임시로 이름 붙여 정정(正定)으로 세우고, 정정이 다스릴 바를 다스림으로, 만약 바로 닦아 아직 나지 않은 것을 나게 하고 이미 나서 굳게 머물러 잊지 않고 갑절로 닦아 늘려 넓힘으로 세우거나, 혹은 자성상이거나 혹은 차별상인 것, 이를 변계소집상이라 이름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거하여 모든 법의 상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곧 분별하여 행하는 바인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행상이라면, 이를 의타기상이라 이름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거하여 모든 법의 생무자성성과 한 부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제가 이제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한 바로는, 곧 이 분별하여 행하는 바인 변계소집상이 의지하는 행상 가운데서, 변계소집상이 진실을 이루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곧 이 자성이 무자성성인 법무아의 진여인 청정한 소연, 이를 원성실상이라 이름합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의거하여 모든 법의 한 부분의 승의무자성성을 시설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비습박약(毘濕縛藥)이 일체의 흩어진 약과 신선의 약 처방 가운데 다 마땅히 자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이에 의거하여 모든 법이 다 자성이 없고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라는 무자성성의 요의(了義)의 말씀은 일체 불요의경(不了義經)에 두루 다 마땅히 자리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채색 그림을 그린 바탕이 일체 채색 그림의 일에 두루하여 다 한 맛이 되고, 혹은 푸르고 혹은 누렇고 혹은 붉고 혹은 흰 것이 다시 능히 채색 그림의 일을 나타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이에 의거하여 모든 법이 다 자성이 없어 널리 말하면 나아가 자성이 열반이라는 무자성성의 요의의 말씀은 일체 불요의경에 두루하여 다 한 맛이 되고, 다시 능히 저 모든 경 가운데 아직 밝히지 못한 뜻(不了義)을 나타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일체 잘 익은 진귀한 떡과 과자 안에 익힌 소(熟酥)를 넣으면 다시 뛰어난 맛이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이에 의거하여 모든 법이 다 자성이 없어 널리 말하면 나아가 자성이 열반이라는 무자성성의 요의의 말씀을 일체 불요의경에 두면 뛰어난 환희를 낳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허공이 일체 처에 두루하여 다 한 맛이 되고 일체 짓는 바 일을 막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이에 의거하여 모든 법이 다 자성이 없어 널리 말하면 나아가 자성이 열반이라는 무자성성의 요의의 말씀은 일체 불요의경에 두루하여 다 한 맛이 되고, 일체 성문·독각 및 모든 대승이 닦는 바 일을 막지 않습니다."

이 말을 마쳤다. 그때 세존께서 승의생보살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제 이렇게 여래가 설한 매우 깊은 비밀한 뜻의 말과 뜻을 잘 이해하고, 다시 이 뜻에 대해 비유를 잘 지었으니, 이른바 세간의 비습박약, 여러 채색 그림의 바탕, 익힌 소, 허공이다. 승의생이여! 그러하고 그러하다! 다시 다름이 없다! 그러하고 그러하다! 그대는 마땅히 받아 지녀야 한다."

그때 승의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처음 어느 때에 바라날사(婆羅痆斯) 선인타처(仙人墮處)의 시록림(施鹿林) 가운데서, 오직 성문승(聲聞乘)으로 나아가는 이들을 위해 사제(四諦)의 모습으로 바른 법의 수레바퀴(正法輪)를 굴리셨습니다. 비록 이는 참으로 기이하고 매우 희유하여 일체 세간의 모든 천(天)·인(人) 등이 앞서 능히 여법하게 굴린 자가 없었으나, 그러나 그때 굴리신 법륜은 위가 있고 용납함이 있어 아직 밝히지 못한 뜻(未了義)이며 모든 다툼(諍論)이 자리하는 곳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옛적 제이시(第二時) 가운데서는, 오직 대승(大乘)을 닦아 나아가는 이들을 위해, 일체법이 다 자성이 없고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라는 것에 의거하여 숨겨진 모습(隱密相)으로 바른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셨습니다. 비록 다시 참으로 기이하고 매우 희유하였으나, 그러나 그때 굴리신 법륜도 또한 위가 있고 용납하여 받아들임이 있어 여전히 밝히지 못한 뜻이며 모든 다툼이 자리하는 곳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제삼시(第三時) 가운데서는, 널리 일체 승(乘)으로 나아가는 이들을 위해, 일체법이 다 자성이 없고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며 무자성성이라는 것에 의거하여, 밝게 드러난 모습(顯了相)으로 바른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십니다. 제일 참으로 기이하고 가장 희유합니다. 지금 세존께서 굴리신 법륜은 위없고 용납함이 없으니, 이는 참된 요의(了義)이며 모든 다툼이 자리하는 곳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여래께서 일체법이 다 자성이 없고 생겨남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며 본래 고요하고 자성이 열반이라고 설하신 바 매우 깊은 요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믿고 이해하며 베껴 쓰고 보호하여 지니고 공양하며 유포하고 받아 외우고 닦아 익히며 이치대로 사유하여 그 닦는 모습으로써 가행을 일으킨다면, 얼마만한 복을 낳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승의생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승의생이여!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그 낳는 복은 한량없고 무수하여 비유하여 알기 어려우니, 내 이제 그대를 위해 조금만 간략히 말하리라. 마치 손톱 위의 흙을 대지의 흙에 견주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셈하고 헤아리고 비유하여도, 오파니살담분(鄔波尼殺曇分)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혹은 소 발자국 가운데의 물을 사대해(四大海)의 물에 견주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널리 말하여 나아가 오파니살담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모든 불요의경에 대해 듣고 나서 믿고 이해하며 널리 말하여 나아가 그 닦는 모습으로써 가행을 일으켜 얻은 공덕을, 이 설한 바 요의경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 믿고 이해하여 모은 공덕과 널리 말하여 나아가 그 닦는 모습으로써 가행을 일으켜 모은 공덕에 견주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널리 말하여 나아가 오파니살담분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말을 마쳤다. 그때 승의생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해심밀(解深密)의 법문 가운데서 마땅히 이 가르침을 무엇이라 이름해야 하며, 저는 마땅히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승의생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는 승의요의(勝義了義)의 가르침이라 이름하니, 이 승의요의의 가르침에 대해 그대는 마땅히 받들어 지녀야 한다." 이 승의요의의 가르침을 설하실 때, 대회(大會) 가운데서 육백천(六百千)의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고, 삼백천(三百千)의 성문이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 가운데서 법안(法眼)의 청정함을 얻었으며, 일백오십천(一百五十千)의 성문이 모든 번뇌를 영원히 다하여 마음의 해탈을 얻었고, 칠십오천(七十五千)의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해심밀경 권제삼(解深密經 卷第三)〉

【분별유가품(分別瑜伽品) 제6】

그때 자씨보살마하살(慈氏菩薩摩訶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에 머물러 대승 가운데서 사마타(奢摩他)와 비발사나(毘鉢舍那)를 닦습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보살은 법(法)을 임시로 세움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서원을 버리지 않음을 의지처로 삼고 머무는 바로 삼아 대승 가운데서 사마타와 비발사나를 닦는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소연(所緣) 경계의 일과 같으니, 첫째는 분별이 있는 영상(影像)의 소연 경계의 일이요, 둘째는 분별이 없는 영상의 소연 경계의 일이요, 셋째는 일의 끝(事邊際)의 소연 경계의 일이요, 넷째는 짓는 바를 이루는(所作成辦) 소연 경계의 일입니다. 이 네 가지 가운데 몇이 사마타의 소연 경계의 일이며, 몇이 비발사나의 소연 경계의 일이며, 몇이 둘 다의 소연 경계의 일입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하나는 사마타의 소연 경계의 일이니 분별이 없는 영상을 이르며, 하나는 비발사나의 소연 경계의 일이니 분별이 있는 영상을 이르며, 둘은 둘 다의 소연 경계의 일이니 일의 끝(事邊際)과 짓는 바를 이룸(所作成辦)을 이른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이 이 네 가지 사마타·비발사나의 소연 경계의 일에 의거하여 능히 사마타를 구하고 능히 비발사나를 잘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내가 모든 보살을 위해 설한 법을 임시로 세운 것과 같으니, 이른바 계경(契經)·응송(應誦)·기별(記別)·풍송(諷誦)·자설(自說)·인연(因緣)·비유(譬喻)·본사(本事)·본생(本生)·방광(方廣)·희법(希法)·논의(論議)이다. 보살이 이에 대해 잘 듣고 잘 받아들여 말을 잘 통달하고 뜻을 잘 심사(尋思)하며 견해를 잘 통달하고서, 곧 이와 같이 잘 사유한 법에 대해 홀로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뜻을 지어 사유한다. 다시 곧 이 능히 사유하는 마음에 대해 안으로 마음이 상속(相續)하여 뜻을 지어 사유한다. 이와 같이 바른 행이 많이 안주하는 까닭에 몸의 경안(輕安, 가볍고 편안함)과 마음의 경안이 일어나니, 이를 사마타라 이름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능히 사마타를 구한다. 저가 몸과 마음의 경안을 얻음을 의지처로 삼음으로 말미암아, 곧 이와 같이 잘 사유한 법에 대해 안으로 삼마지(三摩地)가 행하는 바 영상을 관찰하고 뛰어난 이해로 마음의 모습을 버려 여읜다. 곧 이와 같은 삼마지의 영상이 아는 바 뜻 가운데서 능히 바로 가려 택하고 지극히 가려 택하며 두루 심사하고 두루 살펴서, 인(忍)이거나 즐거움(樂)이거나 지혜(慧)이거나 견해(見)이거나 관(觀)이거나 하면, 이를 비발사나라 이름한다. 이와 같이 보살은 능히 비발사나를 잘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보살이 마음을 반연(攀緣)하여 경계로 삼아 안으로 마음을 사유하되, 아직 몸과 마음의 경안을 얻지 못한 때에 지니는 작의(作意)는 마땅히 무엇이라 이름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사마타의 작의가 아니라, 사마타를 수순(隨順)하는 뛰어난 이해(勝解)와 상응하는 작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보살이 아직 몸과 마음의 경안을 얻지 못하였으나, 사유한 바 모든 법에 대해 안으로 삼마지의 소연인 영상을 뜻을 지어 사유한다면, 이와 같은 작의는 마땅히 무엇이라 이름해야 합니까?"

"선남자여! 비발사나의 작의가 아니라, 비발사나를 수순하는 뛰어난 이해와 상응하는 작의이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사마타의 도(道)와 비발사나의 도는 마땅히 다르다고 말해야 합니까, 마땅히 다르지 않다고 말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무슨 까닭으로 다른 것이 아닌가? 비발사나의 소연 경계인 마음을 소연으로 삼는 까닭이다. 무슨 까닭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닌가? 분별이 있는 영상은 소연이 아닌 까닭이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비발사나의 삼마지가 행하는 바 영상은 저것과 이 마음이 마땅히 다르다고 말해야 합니까, 마땅히 다르지 않다고 말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다르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저 영상은 오직 식(識)일 뿐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나는 식의 소연이 오직 식이 나타낸 바라고 말한다."

"세존이시여! 만약 저 행하는 바 영상이 곧 이 마음과 다름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이 마음이 도리어 이 마음을 봅니까?"

"선남자여! 이 가운데 조금이라도 어떤 법이 능히 조금의 법을 보는 것은 없다. 그러나 곧 이 마음이 이와 같이 생겨날 때에 곧 이와 같은 영상이 나타나 드러난다. 선남자여! 마치 잘 닦여 깨끗한 거울의 면에 의지하여 본질(本質)을 연(緣)으로 삼아 도리어 본질을 보면서 '나는 이제 영상을 본다'라고 이르고, 또 '본질을 떠나 따로 행하는 바 영상이 나타나 드러난다'고 이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이 마음이 생겨날 때, 서로 비슷하되 다른 삼마지가 행하는 바 영상이 나타나 드러난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유정이 자성대로 머물러 색(色) 등을 반연하는 마음이 행하는 바 영상이라면, 저것과 이 마음도 또한 다름이 없습니까?"

"선남자여! 또한 다름이 없다! 그러나 모든 어리석은 범부는 뒤바뀐 깨달음(顛倒覺)으로 말미암아 모든 영상에 대해 능히 여실히 오직 식일 뿐임을 알지 못하고 뒤바뀐 이해를 짓는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를 두고 마땅히 보살이 한결같이 비발사나를 닦는다고 말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약 상속하여 작의하되 오직 마음의 모습(心相)만을 사유한다면 그러하다."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를 두고 마땅히 보살이 한결같이 사마타를 닦는다고 말합니까?"

"선남자여! 만약 상속하여 작의하되 오직 끊임없는 마음(無間心)만을 사유한다면 그러하다."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를 두고 마땅히 보살이 사마타와 비발사나가 화합하여 함께 굴러간다고 말합니까?"

"선남자여! 만약 마음이 한 경계에 집중하는 성품(心一境性)을 바로 사유한다면 그러하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마음의 모습(心相)입니까?"

"선남자여! 삼마지가 행하는 바 분별이 있는 영상이니, 비발사나의 소연이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끊임없는 마음(無間心)입니까?"

"선남자여! 저 영상을 반연하는 마음이니, 사마타의 소연이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마음이 한 경계에 집중하는 성품(心一境性)입니까?"

"선남자여! 삼마지가 행하는 바 영상이 오직 그 식(識)일 뿐임을 통달하는 것이며, 혹은 이를 통달하고 나서 다시 여여한 성품(如性)을 사유하는 것이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비발사나에는 대략 몇 가지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대략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상비발사나(有相毘鉢舍那)요, 둘째는 심구비발사나(尋求毘鉢舍那)요, 셋째는 사찰비발사나(伺察毘鉢舍那)이다. 무엇이 유상비발사나인가? 삼마지가 행하는 바 분별이 있는 영상만을 순전히 사유하는 비발사나를 이른다. 무엇이 심구비발사나인가? 지혜로 말미암아 저러저러한 아직 잘 알지 못한 일체법 가운데서 잘 알기 위한 까닭에 뜻을 지어 사유하는 비발사나를 이른다. 무엇이 사찰비발사나인가? 지혜로 말미암아 저러저러한 이미 잘 안 일체법 가운데서 지극한 해탈을 잘 증득하기 위한 까닭에 뜻을 지어 사유하는 비발사나를 이른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마타에는 대략 몇 가지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곧 저 끊임없는 마음(無間心)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이 가운데도 또한 세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시 여덟 가지가 있으니, 이르되 초정려(初靜慮)로부터 나아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이르기까지 각각 한 가지 사마타가 있는 까닭이다.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이르되 자(慈)·비(悲)·희(喜)·사(捨)의 사무량(四無量) 가운데 각각 한 가지 사마타가 있는 까닭이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법에 의지하는 사마타·비발사나를 말씀하시고, 다시 법에 의지하지 않는 사마타·비발사나를 말씀하셨는데, 무엇을 법에 의지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하며 무엇을 다시 법에 의지하지 않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먼저 받아들이고 사유한 법의 모습을 따라 그 뜻에 대해 사마타·비발사나를 얻는다면 법에 의지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받아들이고 사유한 법의 모습을 기다리지 않고 다만 다른 이의 가르침과 교훈에 의지하여 그 뜻에 대해 사마타·비발사나를 얻는다면, 이르되 푸르뎅뎅하게 멍든 것과 고름이 문드러진 것 등을 관하거나, 혹은 일체 행(行)이 다 무상함이거나, 혹은 모든 행이 괴로움이거나, 혹은 일체법이 다 나(我)가 없음이거나, 혹은 다시 열반이 필경(畢竟) 고요함을 관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등의 부류의 사마타·비발사나를 법에 의지하지 않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한다. 법에 의지하여 사마타·비발사나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수법행(隨法行)보살을 이근성(利根性)이라 시설하며, 법에 의지하지 않고 사마타·비발사나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수신행(隨信行)보살을 둔근성(鈍根性)이라 시설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개별 법(別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를 말씀하시고, 다시 총괄 법(總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를 말씀하셨는데, 무엇을 개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하며 무엇을 다시 총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각각 개별의 계경(契經) 등의 법을 반연하여 받아들이고 사유한 법에 대해 사마타·비발사나를 닦는다면, 이를 개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곧 일체 계경 등의 법을 반연하여 한 뭉치, 한 덩어리, 한 부분, 한 무더기로 모아 뜻을 지어 사유하되, '이 일체법은 진여(眞如)를 수순하고 진여로 나아가며 진여에 임하여 들어가고, 보리(菩提)를 수순하고 열반을 수순하고 전의(轉依)를 수순하며 그것으로 나아가고 그것에 임하여 들어간다. 이 일체법은 한량없고 무수한 선법(善法)을 선설한다'라고 한다면, 이와 같이 사유하여 사마타·비발사나를 닦는 것을 총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작은 총괄 법(小總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를 말씀하시고, 다시 큰 총괄 법(大總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를 말씀하시고, 또 한량없는 총괄 법(無量總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를 말씀하셨는데, 무엇을 작은 총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하며, 무엇을 큰 총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하며, 무엇을 다시 한량없는 총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약 각각 개별의 계경 나아가 각각 개별의 논의(論議)를 반연하여 한 뭉치 등으로 뜻을 지어 사유한다면, 마땅히 이를 작은 총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함을 알아야 한다. 만약 나아가 받아들이고 사유한 계경 등의 법을 반연하여 한 뭉치 등으로 뜻을 지어 사유하되 각각 개별을 반연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를 큰 총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함을 알아야 한다. 만약 한량없는 여래의 법의 가르침과 한량없는 법구(法句)의 문자와 한량없는 뒤이은 지혜가 밝게 아는 바를 반연하여 한 뭉치 등으로 뜻을 지어 사유하되 나아가 받아들이고 사유한 것을 반연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를 한량없는 총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 이름함을 알아야 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느 정도라야 총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를 얻었다 이름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다섯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얻었다 이름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첫째는 사유할 때에 찰나찰나 일체 추중(麁重)의 소의(所依)를 녹여 없애는 것이요, 둘째는 갖가지 상(想)을 떠나 법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요, 셋째는 시방(十方)의 차별 없는 모습인 한량없는 법의 광명을 이해하여 아는 것이요, 넷째는 지은 바를 성취하고 원만히 하여 청정한 부분에 상응하는 분별없는 모습이 항상 앞에 나타나는 것이요, 다섯째는 법신(法身)을 성취하고 원만히 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에 뒤이어 더욱 수승해지는 미묘한 인(因)을 거두어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총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는, 어디로부터 통달함이라 이름하며 어디로부터 얻음이라 이름함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처음 극희지(極喜地)로부터 통달함이라 이름하며, 제3 발광지(發光地)로부터 이에 얻음이라 이름한다. 선남자여! 처음 업을 짓는 보살도 이 가운데서 따라 배우는 작의(作意)를 하니, 비록 아직 찬탄할 만하지는 않으나 마땅히 게을리하여 그만두지는 말아야 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마타·비발사나는 어떤 것을 유심유사(有尋有伺) 삼마지라 이름하며, 어떤 것을 무심유사(無尋唯伺) 삼마지라 이름하며, 어떤 것을 무심무사(無尋無伺) 삼마지라 이름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취한 바와 같은 심사(尋伺)의 법의 모습에 대해 만약 거칠고 뚜렷한 영수(領受)와 관찰이 있는 모든 사마타·비발사나라면, 이를 유심유사 삼마지라 이름한다. 만약 저 모습에 대해 비록 거칠고 뚜렷한 영수와 관찰은 없으나 미세한 저 광명의 생각인 영수와 관찰이 있는 모든 사마타·비발사나라면, 이를 무심유사 삼마지라 이름한다. 만약 곧 저 일체 법의 모습에 대해 모두 작의(作意)의 영수와 관찰이 없는 모든 사마타·비발사나라면, 이를 무심무사 삼마지라 이름한다. 다시 다음으로 선남자여! 만약 심구(尋求)가 있는 사마타·비발사나라면 이를 유심유사 삼마지라 이름하고, 만약 사찰(伺察)이 있는 사마타·비발사나라면 이를 무심유사 삼마지라 이름하며, 만약 총괄 법을 반연하는 사마타·비발사나라면 이를 무심무사 삼마지라 이름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지상(止相)이며 무엇이 거상(擧相)이며 무엇이 사상(捨相)입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약 마음이 도거(掉擧)하거나 혹은 도거를 두려워할 때에 모든 싫어할 만한 법의 작의(作意)와 저 끊임없는 마음의 작의라면, 이를 지상이라 이름한다. 만약 마음이 침몰(沈沒)하거나 혹은 침몰을 두려워할 때에 모든 기뻐할 만한 법의 작의와 저 마음의 모습에 대한 작의라면, 이를 거상이라 이름한다. 만약 오로지 그침의 길에서나, 혹은 오로지 관함의 길에서나, 혹은 함께 운용하여 굴리는 길에서 두 가지 수번뇌(隨煩惱)에 물들 때에 모든 공용(功用)이 없는 작의와 마음이 임의로 굴러가는 가운데 있는 작의라면, 이를 사상이라 이름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사마타·비발사나를 닦는 모든 보살 대중은 법을 알고 뜻을 아는데, 어떤 것이 법을 아는 것이며 어떤 것이 뜻을 아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저 모든 보살은 다섯 가지 모습으로 말미암아 법을 요달하여 안다. 첫째는 이름을 아는 것이요, 둘째는 구절을 아는 것이요, 셋째는 문자를 아는 것이요, 넷째는 낱낱을 아는 것이요, 다섯째는 총괄함을 아는 것이다. 무엇이 이름인가? 일체 오염되고 청정한 법 가운데서 세운 자성(自性)의 생각을 거짓으로 시설한 것을 이른다. 무엇이 구절인가? 곧 저 이름이 모인 가운데서 능히 모든 오염되고 청정한 뜻을 따라 선설(宣說)하여 의지하여 세운 것을 이른다. 무엇이 문자인가? 곧 저 두 가지가 의지하는 바인 글자를 이른다. 무엇이 저것에 대해 낱낱이 요달하여 아는 것인가? 낱낱의 소연(所緣)인 작의로 말미암음을 이른다. 무엇이 저것에 대해 총괄하여 화합하여 아는 것인가? 총괄하여 화합한 소연인 작의로 말미암음을 이른다. 이와 같이 일체를 총괄하여 하나로 간략히 함을 법을 안다고 이름한다. 이와 같음을 보살이 법을 안다고 이름한다.

선남자여! 저 모든 보살은 열 가지 모습으로 말미암아 뜻을 요달하여 안다. 첫째는 다함이 있는 성품(盡所有性)을 아는 것이요, 둘째는 여여한 성품(如所有性)을 아는 것이요, 셋째는 능취(能取)의 뜻을 아는 것이요, 넷째는 소취(所取)의 뜻을 아는 것이요, 다섯째는 건립(建立)의 뜻을 아는 것이요, 여섯째는 수용(受用)의 뜻을 아는 것이요, 일곱째는 전도(顚倒)의 뜻을 아는 것이요, 여덟째는 뒤바뀌지 않은 뜻을 아는 것이요, 아홉째는 잡염(雜染)의 뜻을 아는 것이요, 열째는 청정의 뜻을 아는 것이다.

선남자여! 다함이 있는 성품이란 모든 잡염되고 청정한 법 가운데 있는 일체 품류의 차별과 끝닿는 데를 이르니, 이 가운데서 다함이 있는 성품이라 이름한다. 다섯 가지 수(數)의 온(蘊), 여섯 가지 수의 안의 처(處), 여섯 가지 수의 밖의 처와 같은 이 일체를 이른다.

여여한 성품이란 곧 일체 오염되고 청정한 법 가운데 있는 진여를 이르니, 이 가운데서 여여한 성품이라 이름한다. 이는 다시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전진여(流轉眞如)이니 일체 행(行)이 앞뒤가 없는 성품을 이르고, 둘째는 상진여(相眞如)이니 일체법의 보특가라(補特伽羅)에 나(我)가 없는 성품과 법에 나가 없는 성품을 이르고, 셋째는 요별진여(了別眞如)이니 일체 행이 오직 식(識)의 성품임을 이르고, 넷째는 안립진여(安立眞如)이니 내가 말한 모든 고성제(苦聖諦)를 이르고, 다섯째는 사행진여(邪行眞如)이니 내가 말한 모든 집성제(集聖諦)를 이르고, 여섯째는 청정진여(淸淨眞如)이니 내가 말한 모든 멸성제(滅聖諦)를 이르고, 일곱째는 정행진여(正行眞如)이니 내가 말한 모든 도성제(道聖諦)를 이른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 가운데서 유전진여·안립진여·사행진여로 말미암아 일체 유정이 평등하고 평등하며, 상진여·요별진여로 말미암아 일체 모든 법이 평등하고 평등하며, 청정진여로 말미암아 일체 성문보리(聲聞菩提)·독각보리(獨覺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가 평등하고 평등하며, 정행진여로 말미암아 바른 법을 듣고 총괄한 경계를 반연하는 수승한 사마타·비발사나에 거두어 받아들여진 지혜가 평등하고 평등하다.

능취의 뜻이란 안의 다섯 가지 색처(色處)와, 마음(心)·뜻(意)·식(識) 및 모든 심법(心法)을 이른다. 소취의 뜻이란 밖의 여섯 가지 처(處)를 이른다. 또 능취의 뜻이 또한 소취의 뜻이 되기도 한다. 건립의 뜻이란 기세계(器世界)를 이르니, 그 가운데서 일체 유정계(有情界)를 건립함을 얻을 수 있다. 한 마을의 밭, 혹은 백 마을의 밭, 혹은 천 마을의 밭, 혹은 백천 마을의 밭을 이른다. 혹은 한 큰 땅으로부터 바닷가에 이르기까지, 이 백, 이 천, 혹은 이 백천을 이르며, 혹은 한 섬부주(贍部洲), 이 백, 이 천, 혹은 이 백천을 이르며, 혹은 한 사대주(四大洲), 이 백, 이 천, 혹은 이 백천을 이르며, 혹은 한 소천세계(小千世界), 이 백, 이 천, 혹은 이 백천을 이르며, 혹은 한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백, 이 천, 혹은 이 백천을 이르며, 혹은 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이 백, 이 천, 혹은 이 백천을 이르며, 혹은 이 구지(拘胝), 이 백구지, 이 천구지, 이 백천구지를 이르며, 혹은 이 무수(無數), 이 백무수, 이 천무수, 이 백천무수, 혹은 삼천대천세계의 무수한 백천 미진(微塵)의 수량과 같은 것을, 시방에 한량없고 무수한 모든 기세계에서를 이른다. 수용의 뜻이란 내가 말한 모든 유정의 부류가 수용하기 위한 까닭에 자구(資具)를 거두어 받아들임을 이른다. 전도의 뜻이란 곧 저 능취 등의 뜻에 대해 무상함을 항상함이라 헤아리는 상전도(想顚倒)·심전도(心顚倒)·견전도(見顚倒)와, 괴로움을 즐거움이라 헤아리고 부정함을 청정함이라 헤아리고 나 없음을 나라고 헤아리는 상전도·심전도·견전도를 이른다. 뒤바뀌지 않은 뜻이란 위와 서로 어긋나서, 능히 저것을 대치함이니 마땅히 그 모습을 알아야 한다. 잡염의 뜻이란 삼계(三界) 가운데 세 가지 잡염을 이르니, 첫째는 번뇌잡염이요, 둘째는 업잡염이요, 셋째는 생잡염이다. 청정의 뜻이란 곧 이와 같은 세 가지 잡염을 여읜 계박(繫縛)인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이른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열 가지를 마땅히 일체 모든 뜻을 널리 거둠으로 알아야 한다. 다시 다음으로 선남자여! 저 모든 보살은 능히 다섯 가지 뜻을 요달하여 아는 까닭에 뜻을 안다고 이름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 뜻인가? 첫째는 두루 아는 일(遍知事)이요, 둘째는 두루 아는 뜻(遍知義)이요, 셋째는 두루 아는 인(遍知因)이요, 넷째는 두루 앎을 얻은 과(得遍知果)이요, 다섯째는 이에 대해 깨달아 아는 것(於此覺了)이다.

선남자여! 이 가운데 두루 아는 일이란 마땅히 곧 일체 아는 바인 것을 알아야 하니, 모든 온(蘊), 혹은 모든 안의 처, 혹은 모든 밖의 처와 같은 이 일체를 이른다. 두루 아는 뜻이란 있는 바 품류의 차별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경계에 이르기까지를 이른다. 세속인 까닭, 혹은 승의(勝義)인 까닭, 혹은 공덕인 까닭, 혹은 허물인 까닭, 연(緣)인 까닭, 세(世)인 까닭, 혹은 생(生)·주(住)·괴(壞)의 모습인 까닭, 혹은 병(病) 등과 같은 까닭, 혹은 고(苦)·집(集) 등인 까닭, 혹은 진여(眞如)·실제(實際)·법계(法界) 등인 까닭, 혹은 넓고 간략함인 까닭, 혹은 한결같이 기별(記別)하는 까닭, 혹은 분별하여 기별하는 까닭, 혹은 되물어 기별하는 까닭, 혹은 놓아두어 기별하는 까닭, 혹은 은밀한 까닭, 혹은 드러나 뚜렷한 까닭이니, 이와 같은 등의 부류를 마땅히 일체 두루 아는 뜻이라 이름함을 알아야 한다. 두루 아는 인이라 말한 것은 마땅히 곧 능히 앞의 두 가지 보리분법을 취하는 것이니, 이른바 염주(念住) 혹은 정단(正斷) 등이다. 두루 앎을 얻은 과란 탐(貪)·진(瞋)·치(癡)를 영원히 끊는 비나야(毘奈耶)와, 탐·진·치를 일체 영원히 끊은 모든 사문의 과와, 내가 말한 성문·여래의 만약 함께하고 함께하지 않는 세간과 출세간에 있는 공덕에 대해 그것을 증득함을 이른다. 이에 대해 깨달아 안다는 것은 곧 이 증득한 법 가운데서 모든 해탈지(解脫智)를 널리 다른 이를 위해 말하고 선양하고 열어 보이는 것을 이른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뜻을 마땅히 일체 모든 뜻을 널리 거둠으로 알아야 한다. 다시 다음으로 선남자여! 저 모든 보살은 능히 네 가지 뜻을 요달하여 아는 까닭에 뜻을 안다고 이름한다. 무엇이 네 가지 뜻인가? 첫째는 마음이 집수(執受)하는 뜻이요, 둘째는 영납(領納)하는 뜻이요, 셋째는 요별(了別)하는 뜻이요, 넷째는 잡염청정의 뜻이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네 가지 뜻을 마땅히 일체 모든 뜻을 널리 거둠으로 알아야 한다.

다시 다음으로 선남자여! 저 모든 보살은 능히 세 가지 뜻을 요달하여 아는 까닭에 뜻을 안다고 이름한다. 무엇이 세 가지 뜻인가? 첫째는 문(文)의 뜻이요, 둘째는 의(義)의 뜻이요, 셋째는 계(界)의 뜻이다. 선남자여! 문의 뜻이라 말한 것은 명신(名身) 등을 이른다. 의의 뜻은 마땅히 다시 열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하니, 첫째는 진실한 모습이요, 둘째는 두루 아는 모습이요, 셋째는 영원히 끊는 모습이요, 넷째는 증득하는 모습이요, 다섯째는 닦아 익히는 모습이요, 여섯째는 곧 저 진실한 모습 등 품류의 차별한 모습이요, 일곱째는 의지하는 바와 능히 의지함이 서로 속하는 모습이요, 여덟째는 곧 두루 아는 것 등의 장애하는 법의 모습이요, 아홉째는 곧 저 수순하는 법의 모습이요, 열째는 두루 알지 못하는 것 등과 두루 아는 것 등의 허물과 공덕의 모습이다. 계의 뜻이라 말한 것은 다섯 가지 계를 이르니, 첫째는 기세계요, 둘째는 유정계요, 셋째는 법계요, 넷째는 조복(調伏)받는 계요, 다섯째는 조복하는 방편의 계이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뜻을 마땅히 일체 모든 뜻을 널리 거둠으로 알아야 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들음으로 이루어진 지혜(聞所成慧)로 그 뜻을 요달하여 알고, 만약 사유함으로 이루어진 지혜(思所成慧)로 그 뜻을 요달하여 알고, 만약 사마타·비발사나로 닦음으로 이루어진 지혜(修所成慧)로 그 뜻을 요달하여 안다면, 이는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들음으로 이루어진 지혜는 문자에 의지하여 다만 말한 바와 같이 할 뿐 아직 뜻의 취지(意趣)에 잘하지 못하고 아직 앞에 나타나지 않으며 해탈을 수순하나 아직 능히 영수하여 해탈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 사유함으로 이루어진 지혜도 또한 문자에 의지하나 오직 말한 바와 같이 할 뿐만 아니라 능히 뜻의 취지에 잘하며 아직 앞에 나타나지 않으나 더욱 해탈에 수순하되 아직 능히 영수하여 해탈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닦음으로 이루어진 지혜라면 또한 문자에 의지하고 또한 문자에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말한 바와 같이 하고 또한 말한 바와 같이 하지 않으며, 능히 뜻의 취지에 잘하여 아는 바 일과 같은 부류인 삼마지의 행하는 바 영상(影像)이 앞에 나타나서 지극히 해탈에 수순하고 이미 능히 영수하여 해탈의 뜻을 이룬다. 선남자여! 이를 세 가지 뜻을 아는 차별이라 이름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사마타·비발사나를 닦는 모든 보살 대중이 법을 알고 뜻을 아는데, 무엇이 지(智)이며 무엇이 견(見)입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내가 한량없는 문(門)으로 지·견의 두 가지 차별을 선설하였으나, 이제 마땅히 너를 위해 그 모습을 간략히 말하리라. 만약 총괄 법을 반연하여 사마타·비발사나를 닦는 있는 바 미묘한 지혜라면, 이를 지(智)라 이름하며, 만약 개별 법을 반연하여 사마타·비발사나를 닦는 있는 바 미묘한 지혜라면, 이를 견(見)이라 이름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사마타·비발사나를 닦는 모든 보살 대중은 무엇으로 말미암으며 어떤 것을 작의(作意)합니까? 어떻게 모든 모습을 제거하여 보냅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진여의 작의로 말미암아 법의 모습과 뜻의 모습을 제거하여 보내니, 만약 그 이름과 이름의 자성에 대해 얻는 바가 없을 때에 또한 저 의지하는 바의 모습을 관하지 않으니, 이와 같이 제거하여 보낸다. 이름에 대함과 같이 구절에 대해서나 문자에 대해서나 일체 뜻에 대해서도 마땅히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계(界) 및 계의 자성에 대해 얻는 바가 없을 때에 또한 저 의지하는 바의 모습을 관하지 않으니, 이와 같이 제거하여 보낸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요달하여 아는 바 진여의 뜻인 모습, 이 진여의 모습도 또한 가히 보낼 수 있습니까?" "선남자여! 요달하여 아는 바 진여의 뜻 가운데는 모두 모습이 없고 또한 얻는 바가 없거늘, 마땅히 무엇을 보내겠는가? 선남자여! 내가 진여의 뜻을 요달하여 알 때에 능히 일체 법의 뜻의 모습을 조복함을 말하나, 이 요달함이 아니면 다른 것이 능히 조복할 수 없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탁한 물그릇의 비유, 부정한 거울의 비유, 흔들리는 샘과 못의 비유는 자기 얼굴의 그림자 모습을 관찰함을 감당하지 못하니, 만약 감당할 수 있는 자라면 위와 서로 어긋납니다. 이와 같이 만약 마음을 잘 닦지 못함이 있으면 있는 바 진여를 여실히 관찰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만약 마음을 잘 닦는다면 관찰함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능히 관찰하는 마음이라 말한 것이며, 어떤 진여에 의지하여 이렇게 말합니까?" "선남자여! 이는 세 가지 능히 관찰하는 마음을 말한 것이니, 이르되 들음으로 이루어진 능히 관찰하는 마음과, 사유함으로 이루어진 능히 관찰하는 마음과, 닦음으로 이루어진 능히 관찰하는 마음이다. 요별진여(了別眞如)에 의지하여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법의 뜻을 요달하여 아는 보살이 모든 모습을 보내기 위해 부지런히 가행(加行)을 닦음에 몇 가지 모습이 제거하여 보내기 어려우며, 누가 능히 제거하여 보낼 수 있습니까?" "선남자여! 열 가지 모습이 있으니 공(空)이 능히 제거하여 보낸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법의 뜻을 요달하여 아는 까닭에 갖가지 문자의 모습이 있으니, 이는 일체법공(一切法空)으로 말미암아 능히 바로 제거하여 보낸다. 둘째는 안립진여(安立眞如)의 뜻을 요달하여 아는 까닭에 생(生)·멸(滅)·주(住)·이(異)의 성품이 서로 이어져 따라 구르는 모습이 있으니, 이는 상공(相空) 및 앞뒤 없는 공(無先後空)으로 말미암아 능히 바로 제거하여 보낸다. 셋째는 능취(能取)의 뜻을 요달하여 아는 까닭에 몸을 돌아보고 그리워하는 모습 및 아만(我慢)의 모습이 있으니, 이는 내공(內空) 및 얻는 바 없는 공(無所得空)으로 말미암아 능히 바로 제거하여 보낸다. 넷째는 소취(所取)의 뜻을 요달하여 아는 까닭에 재물을 돌아보고 그리워하는 모습이 있으니, 이는 외공(外空)으로 말미암아 능히 바로 제거하여 보낸다. 다섯째는 수용(受用)의 뜻과 남녀가 서로 받들어 섬기는 자구(資具)에 상응함을 요달하여 아는 까닭에 안의 안락한 모습과 밖의 청정하고 미묘한 모습이 있으니, 이는 내외공(內外空) 및 본성공(本性空)으로 말미암아 능히 바로 제거하여 보낸다. 여섯째는 건립(建立)의 뜻을 요달하여 아는 까닭에 한량없는 모습이 있으니, 이는 대공(大空)으로 말미암아 능히 바로 제거하여 보낸다. 일곱째는 색(色)이 없음을 요달하여 아는 까닭에 안의 적정한 해탈의 모습이 있으니, 이는 유위공(有爲空)으로 말미암아 능히 바로 제거하여 보낸다. 여덟째는 상진여(相眞如)의 뜻을 요달하여 아는 까닭에 보특가라에 나 없는 모습과 법에 나 없는 모습, 그리고 오직 식(識)뿐인 모습 및 승의(勝義)의 모습이 있으니, 이는 필경공(畢竟空)·무성공(無性空)·무성자성공(無性自性空) 및 승의공(勝義空)으로 말미암아 능히 바로 제거하여 보낸다. 아홉째는 청정진여(淸淨眞如)의 뜻을 요달하여 아는 것으로 말미암아 무위(無爲)의 모습과 변이(變異) 없는 모습이 있으니, 이는 무위공(無爲空)·무변이공(無變異空)으로 말미암아 능히 바로 제거하여 보낸다. 열째는 곧 저 모습을 대치하는 공성(空性)에 대해 작의하여 사유하는 까닭에 공성의 모습이 있으니, 이는 공공(空空)으로 말미암아 능히 바로 제거하여 보낸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열 가지 모습을 제거하여 보낼 때에 무엇을 제거하여 보내며, 어떤 모습으로부터 해탈을 얻습니까?" "선남자여! 삼마지가 행하는 바 영상의 모습을 제거하여 보내니, 잡염에 얽매인 모습으로부터 해탈을 얻고 그것도 또한 제거하여 보낸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아야 하니, 수승함에 나아가 말하면 이와 같은 공(空)이 이와 같은 모습을 다스리는 것이요, 하나하나가 일체 모습을 다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유하건대 무명(無明)이 나아가 노사(老死)에 이르는 모든 잡염법을 능히 낳지 않음이 아닌 것과 같으니, 수승함에 나아가 다만 능히 행(行)을 낳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 모든 행이 친근한 인연인 까닭이다. 이 가운데 도리도 마땅히 또한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그때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가운데 어떤 공(空)이 총괄적인 공성의 모습입니까? 만약 모든 보살이 이를 요달하여 안다면 공성의 모습에 대해 잃고 무너뜨림이 없어 증상만(增上慢)을 여의겠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자씨보살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네가 이제 능히 여래에게 이와 같이 깊은 뜻을 청하여 물어, 모든 보살로 하여금 공성의 모습에 대해 잃고 무너뜨림이 없게 하는구나. 어째서인가? 선남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공성의 모습에 대해 잃고 무너뜨림이 있다면 곧 일체 대승을 잃고 무너뜨리게 된다. 이런 까닭에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너를 위해 총괄적인 공성의 모습을 말하리라. 선남자여! 만약 의타기상(依他起相) 및 원성실상(圓成實相) 가운데서 일체 품류의 잡염되고 청정한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이 필경 멀리 떠난 성품이며, 또 이 가운데서 모두 얻는 바가 없다면, 이와 같음을 대승 가운데서 총괄적인 공성의 모습이라 이름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마타·비발사나는 능히 몇 가지 수승한 삼마지를 거두어 들입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내가 말한 바와 같이 한량없는 성문·보살·여래에게 한량없는 종류의 수승한 삼마지가 있으니, 마땅히 일체가 다 이에 거두어짐을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이 사마타·비발사나는 무엇으로 인(因)을 삼습니까?" "선남자여! 청정한 시라(尸羅)와 청정한 문사(聞思)로 이루어진 바른 견해로써 그 인을 삼는다." "세존이시여! 이 사마타·비발사나는 무엇으로 과(果)를 삼습니까?" "선남자여! 잘 청정한 계(戒), 청정한 마음, 잘 청정한 지혜로써 그 과를 삼는다. 다시 다음으로 선남자여! 일체 성문 및 여래 등이 지닌 세간 및 출세간의 일체 선법은 마땅히 다 이 사마타·비발사나가 얻은 바의 과임을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이 사마타·비발사나는 능히 무슨 업(業)을 짓습니까?" "선남자여! 이는 능히 두 가지 얽매임(縛)을 해탈함으로 업을 삼으니, 이른바 모습의 얽매임(相縛)과 추중의 얽매임(麁重縛)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다섯 가지 계박(繫縛) 가운데 몇 가지가 사마타의 장애이며, 몇 가지가 비발사나의 장애이며, 몇 가지가 함께하는 장애입니까?" "선남자여! 몸과 재물을 돌아보고 그리워함은 사마타의 장애요, 모든 성스러운 가르침에 대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지 못함은 비발사나의 장애요, 즐거이 서로 섞여 머무르며 적은 것에 만족함은 마땅히 함께하는 장애임을 알아야 한다. 첫째로 말미암은 까닭에 능히 지어 닦지 못하고, 둘째로 말미암은 까닭에 닦은 바 가행이 구경(究竟)에 이르지 못한다."

"세존이시여! 다섯 가지 덮개(蓋) 가운데 몇 가지가 사마타의 장애이며, 몇 가지가 비발사나의 장애이며, 몇 가지가 함께하는 장애입니까?" "선남자여! 도거(掉擧)와 악작(惡作)은 사마타의 장애요, 혼침(惛沈)·수면(睡眠)·의심(疑)은 비발사나의 장애요, 탐욕과 진에(瞋恚)는 마땅히 함께하는 장애임을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라야 사마타의 길이 원만하고 청정함을 얻었다 이름합니까?" "선남자여! 있는 바 혼침과 수면을 바르게 잘 제거하여 보내는 데 이르면 이를 사마타의 길이 원만하고 청정함을 얻었다 이름한다."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라야 비발사나의 길이 원만하고 청정함을 얻었다 이름합니까?"
"선남자여! 있는 바 도거와 악작을 바르게 잘 제거하여 보내는 데 이르면 이를 비발사나의 길이 원만하고 청정함을 얻었다 이름한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보살이 사마타·비발사나가 앞에 나타날 때에 마땅히 몇 가지 마음이 흩어져 움직이는 법을 알아야 합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다섯 가지를 알아야 하니, 첫째는 작의(作意)의 산동(散動)이요, 둘째는 밖의 마음의 산동이요, 셋째는 안의 마음의 산동이요, 넷째는 모습의 산동이요, 다섯째는 추중(麁重)의 산동이다. 선남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대승에 상응하는 작의를 버리고 성문·독각에 상응하는 모든 작의 가운데 떨어진다면, 이를 작의의 산동이라 이름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밖의 다섯 가지 미묘한 욕망의 모든 어지러운 모습에 대해, 있는 바 심사(尋思)의 수번뇌(隨煩惱) 가운데서나, 그 밖의 반연하는 경계 가운데서 마음을 놓아 흘러 흩어진다면, 이를 밖의 마음의 산동이라 이름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혼침 및 수면으로 말미암거나, 혹은 침몰로 말미암거나, 혹은 삼마발저(三摩鉢底)를 애착하여 맛봄으로 말미암거나, 혹은 어느 하나의 삼마발저를 따르는 모든 수번뇌에 물듦으로 말미암는다면, 이를 안의 마음의 산동이라 이름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바깥 모습에 의지하여 안의 등지(等持)가 행하는 바 모든 모습에 대해 작의하여 사유한다면, 모습의 산동이라 이름한다. 만약 안의 작의를 연(緣)으로 삼아 있는 바 모든 수(受)를 일으켜, 추중의 몸으로 말미암아 나를 헤아려 교만을 일으킨다면, 이를 추중의 산동이라 이름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이 사마타·비발사나는 처음 보살지(菩薩地)로부터 여래지(如來地)에 이르기까지 능히 무슨 장애를 다스립니까?" "선남자여! 이 사마타·비발사나는 초지(初地) 가운데서는 악취(惡趣)의 번뇌와 업과 생의 잡염장(雜染障)을 다스린다. 제2지 가운데서는 미세한 오류로 범하여 나타나 행함의 장애를 다스린다. 제3지 가운데서는 욕탐의 장애를 다스린다. 제4지 가운데서는 선정을 애착함 및 법을 애착하는 장애를 다스린다. 제5지 가운데서는 생사와 열반에 한결같이 등 돌려 나아가는 장애를 다스린다. 제6지 가운데서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 행하는 장애를 다스린다. 제7지 가운데서는 미세한 모습이 나타나 행하는 장애를 다스린다. 제8지 가운데서는 모습 없음에 공용(功用)을 짓는 것 및 모습 있음에 자재를 얻지 못하는 장애를 다스린다. 제9지 가운데서는 일체 종류의 훌륭한 말솜씨에 자재를 얻지 못하는 장애를 다스린다. 제10지 가운데서는 원만한 법신을 증득하지 못하는 장애를 다스린다. 선남자여! 이 사마타·비발사나는 여래지에서는 지극히 미세하고 가장 지극히 미세한 번뇌장(煩惱障) 및 소지장(所知障)을 다스린다. 능히 이와 같은 장애를 영원히 해침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집착 없고 걸림 없는 일체지견(一切智見)을 증득한다. 지어서 원만히 함이 성취된 소연(所緣)에 의지하여 가장 지극히 청정한 법신을 건립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이 사마타·비발사나에 의지하여 부지런히 수행하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이미 사마타·비발사나를 얻었다면, 일곱 가지 진여에 의지하여 들은 바와 사유한 바의 법 가운데서 수승한 선정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잘 살펴 정하고 잘 사량하고 잘 안립한 진여의 성품 가운데서 안으로 바르게 사유한다. 저가 진여에 대해 바르게 사유하는 까닭에 마음이 일체 미세한 모습이 나타나 행함에 대해서도 오히려 능히 버리거늘, 하물며 거친 모습이겠는가? 선남자여! 미세한 모습이라 말한 것은 마음이 집수(執受)하는 모습, 혹은 영납(領納)하는 모습, 혹은 요별(了別)하는 모습, 혹은 잡염청정의 모습, 혹은 안의 모습, 혹은 밖의 모습, 혹은 안팎의 모습, 혹은 내가 마땅히 일체 유정을 이롭게 하는 행을 닦으리라는 모습, 혹은 바른 지혜의 모습, 혹은 진여의 모습, 혹은 고집멸도(苦集滅道)의 모습, 혹은 유위의 모습, 혹은 무위의 모습, 혹은 항상함이 있는 모습, 혹은 무상한 모습, 혹은 괴로움에 변이하는 성품이 있는 모습, 혹은 괴로움에 변이하는 성품이 없는 모습, 혹은 유위가 다른 모습인 모습, 혹은 유위가 같은 모습인 모습, 혹은 일체가 이 일체임을 알아 이미 일체의 모습이 있음, 혹은 보특가라에 나 없는 모습, 혹은 법에 나 없는 모습을 이른다. 저것이 나타나 행함에 대해 마음이 능히 버린다.

저가 이미 이와 같이 행함에 많이 머무는 까닭에, 때때로 그 일체 얽매임의 덮개인 산동으로부터 잘 마음을 닦아 다스린다. 이로부터 이후에 일곱 가지 진여에 대해 일곱 가지 낱낱의 스스로 안으로 증득한 바 통달하는 지혜가 생기니, 이를 견도(見道)라 이름한다. 이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보살의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들어가 여래의 집에 태어나 초지(初地)를 증득하고 또 능히 이 지위의 수승한 덕을 수용한다고 이름한다. 저가 앞서 사마타·비발사나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두 가지 소연(所緣)을 얻었으니, 이르되 분별이 있는 영상의 소연 및 분별이 없는 영상의 소연이다. 저가 이제 견도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다시 사변제(事邊際)의 소연을 증득한다. 다시 뒤이은 일체 지위 가운데서 닦는 도를 나아가 닦아 곧 이와 같은 세 가지 소연에 대해 작의하여 사유한다.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그 가는 쐐기로써 거친 쐐기를 뽑아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보살도 이 쐐기로써 쐐기를 뽑아내는 방편에 의지하여 안의 모습을 보내는 까닭에 일체 수순하여 잡염되는 부분의 모습이 다 제거하여 보내진다. 모습이 제거하여 보내지는 까닭에 추중도 또한 보내진다. 일체 모습의 추중을 영원히 해치는 까닭에 점차로 저 뒤이은 지위 가운데서 마치 금을 제련하는 법과 같이 그 마음을 도야하여 제련한다.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또 지어서 원만히 함이 성취된 소연을 얻는다. 선남자여! 이와 같이 보살이 안으로 지관(止觀)을 바르게 수행하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수행하여야 보살의 광대한 위덕을 이끌어 냅니까?" "선남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여섯 가지 처(處)를 잘 안다면 곧 능히 보살의 있는 바 광대한 위덕을 이끌어 낼 수 있으니, 첫째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잘 아는 것이요, 둘째는 마음이 머무는 것을 잘 아는 것이요, 셋째는 마음이 나가는 것을 잘 아는 것이요, 넷째는 마음이 늘어나는 것을 잘 아는 것이요, 다섯째는 마음이 줄어드는 것을 잘 아는 것이요, 여섯째는 방편을 잘 아는 것이다.

어떻게 마음이 생기는 것을 잘 아는가? 여실히 열여섯 가지 행(行)의 마음이 생겨 일어나는 차별을 아는 것을 이른다. 열여섯 가지 행의 마음이 생겨 일어나는 차별이란, 첫째는 가히 깨달아 알 수 없이 굳게 머무는 그릇 같은 식(識)이 생김이니 아타나식(阿陀那識)을 이르고, 둘째는 갖가지 행상(行相)을 반연하는 식이 생김이니 단박에 일체 색(色) 등의 경계를 취하는 분별의식과, 단박에 안팎 경계의 각수(覺受)를 취함, 혹은 단박에 한 생각의 순식간에 많은 선정에 들어가 많은 불국토를 보고 많은 여래를 보는 분별의식을 이르고, 셋째는 작은 모습을 반연하는 식이 생김이니 욕계에 매인 식을 이르고, 넷째는 큰 모습을 반연하는 식이 생김이니 색계에 매인 식을 이르고, 다섯째는 한량없는 모습을 반연하는 식이 생김이니 공(空)·식(識)·무변처(無邊處)에 매인 식을 이르고, 여섯째는 미세한 모습을 반연하는 식이 생김이니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매인 식을 이르고, 일곱째는 끝닿는 모습을 반연하는 식이 생김이니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매인 식을 이르고, 여덟째는 모습 없는 식이 생김이니 출세간의 식 및 멸을 반연하는 식을 이르고, 아홉째는 괴로움과 함께 행하는 식이 생김이니 지옥의 식을 이르고, 열째는 섞인 수(受)와 함께 행하는 식이 생김이니 욕계의 행하는 식을 이르고, 열한째는 기쁨과 함께 행하는 식이 생김이니 처음 두 정려(靜慮)의 식을 이르고, 열두째는 즐거움과 함께 행하는 식이 생김이니 제3 정려의 식을 이르고, 열셋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과 함께 행하는 식이 생김이니 제4 정려로부터 비상비비상처에 이르기까지의 식을 이르고, 열넷째는 오염됨과 함께 행하는 식이 생김이니 모든 번뇌 및 수번뇌와 상응하는 식을 이르고, 열다섯째는 선(善)과 함께 행하는 식이 생김이니 믿음 등과 상응하는 식을 이르고, 열여섯째는 무기(無記)와 함께 행하는 식이 생김이니 저 함께도 상응하지 않는 식을 이른다.

어떻게 마음이 머무는 것을 잘 아는가? 여실히 진여를 요별함을 이른다. 어떻게 마음이 나가는 것을 잘 아는가? 여실히 두 가지 얽매임에서 나감을 아는 것이니, 이른바 모습의 얽매임 및 추중의 얽매임이다. 이를 능히 잘 알아 마땅히 그 마음으로 하여금 이와 같이 나가게 해야 한다. 어떻게 마음이 늘어나는 것을 잘 아는가? 여실히 능히 모습의 얽매임과 추중의 얽매임을 다스리는 마음이, 저것이 늘어날 때와 저것이 쌓일 때에 또한 늘어남을 얻고 또한 쌓임을 얻음을 아는 것이니, 늘어남을 잘 안다고 이름한다. 어떻게 마음이 줄어드는 것을 잘 아는가? 여실히 저 다스리는 바 모습 및 추중에 잡염된 마음이, 저것이 쇠퇴할 때와 저것이 덜어질 때에 이도 또한 쇠퇴하고 이도 또한 덜어짐을 아는 것이니, 줄어듦을 잘 안다고 이름한다. 어떻게 방편을 잘 아는가? 여실히 해탈·승처(勝處) 및 변처(遍處)를 혹은 닦고 혹은 보냄을 아는 것을 이른다. 선남자여! 이와 같이 보살은 모든 보살의 광대한 위덕을 혹은 이미 이끌어 내었거나, 혹은 마땅히 이끌어 내려 하거나, 혹은 지금 이끌어 낸다."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남음이 없는 열반계(無餘依涅槃界) 가운데서 일체 모든 수(受)가 남음 없이 영원히 멸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모든 수가 여기서 영원히 멸합니까?" "선남자여! 요컨대 말하면 두 가지 수가 남음 없이 영원히 멸함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첫째는 의지하는 바 추중의 수요, 둘째는 저 과(果)의 경계인 수이다.
저 과의 경계인 수도 또한 네 가지가 있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첫째는 의지하는 바 추중의 수요, 둘째는 의지하는 바 색이 없는 추중의 수요, 셋째는 과가 이미 이루어져 원만한 추중의 수요, 넷째는 과가 아직 이루어져 원만하지 못한 추중의 수이다. 과가 이미 이루어져 원만한 수란 현재의 수를 이르고, 과가 아직 이루어져 원만하지 못한 수란 미래의 인(因)인 수를 이른다. 저 과의 경계인 수도 또한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의지하고 지님(依持)의 수요, 둘째는 자구(資具)의 수요, 셋째는 수용(受用)의 수요, 넷째는 돌아보고 그리워함(顧戀)의 수이다. 남음이 있는 열반계(有餘依涅槃界) 가운데서는 과가 아직 이루어져 원만하지 못한 수가 일체 이미 멸하였고, 저 대치(對治)를 영수(領受)하는 밝은 촉(觸)에서 생긴 수를 영수함이 함께 있다. 혹은 다시 저 과가 이미 이루어져 원만한 수도 있다. 또 두 가지 수가 일체 이미 멸하고, 오직 지금 영수하는 밝은 촉에서 생긴 수만을 영수한다. 남음이 없는 열반계(無餘依涅槃界) 가운데서 반열반(般涅槃)할 때에는 이도 또한 영원히 멸한다. 이런 까닭에 '남음이 없는 열반계 가운데서 일체 모든 수가 남음 없이 영원히 멸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다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네가 이제 능히 원만하고 가장 지극히 청정한 미묘한 유가(瑜伽)의 도(道)에 의지하여 여래에게 청하여 물었다. 너는 유가에 대해 이미 결정을 얻어 가장 지극히 잘하는구나. 내가 이미 너를 위해 원만하고 가장 지극히 청정한 미묘한 유가의 도를 선설하였으니, 있는 바 일체 과거·미래의 정등각자(正等覺者)가 이미 말씀하시고 마땅히 말씀하실 것도 다 또한 이와 같다. 모든 선남자, 선여인은 다 마땅히 이에 의지하여 용맹정진하여 마땅히 바르게 닦아 배워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법에 대해 거짓으로 세운 유가 가운데서, 만약 방일(放逸)을 행하면 큰 뜻을 잃으리니,
이 법 및 유가에 의지하여, 만약 바르게 수행하면 큰 깨달음을 얻으리라.
얻는 바가 있음을 보고 벗어나 여의기를 구하되, 만약 이 봄(見)을 얻은 법이라 이른다면,
자씨여, 그는 유가에서 멀리 벗어난 것이니, 비유컨대 큰 땅과 허공과 같도다.
중생을 이롭게 함이 견고하되 짓지 않으면, 깨달은 후 부지런히 닦아 유정을 이롭게 하리니,
지혜로운 자는 이를 지어 겁(劫)의 헤아림을 다하여, 곧 가장 높은 물듦을 여읜 기쁨을 얻으리라.
만약 사람이 욕망을 위해 법을 말한다면, 그는 욕망을 버리고 도리어 욕망을 취한다 이름하니,
어리석음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인 법을 얻고도, 도리어 다시 돌아다니며 구걸하는구나.
다투고 시끄럽고 뒤섞인 희론(戲論)에 집착하는 것을, 마땅히 버리고 위없는 정진을 일으켜야 하니,
모든 하늘과 세간을 제도하기 위해, 이 유가에 대해 너는 마땅히 배워야 하리라!"

그때 자씨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해심밀(解深密) 법문 가운데서 마땅히 이 가르침을 무엇이라 이름해야 하며, 저는 마땅히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를 유가요의(瑜伽了義)의 가르침이라 이름하니, 이 유가요의의 가르침을 너는 마땅히 받들어 지녀야 한다." 이 유가요의의 가르침을 말씀하실 때에 대회(大會) 가운데서 육백천(六百千)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고, 삼백천(三百千)의 성문이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 가운데서 법의 눈이 청정함을 얻었고, 백오십천(百五十千)의 성문이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하여 마음에 해탈을 얻었고, 칠십오천(七十五千)의 보살이 광대한 유가의 작의(作意)를 얻었다.

〈권제사(解深密經 卷第四)〉

【지바라밀다품(地波羅蜜多品) 제7】

그때 관자재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보살의 십지(十地)는 이른바 극희지(極喜地)·이구지(離垢地)·발광지(發光地)·염혜지(焰慧地)·극난승지(極難勝地)·현전지(現前地)·원행지(遠行地)·부동지(不動地)·선혜지(善慧地)·법운지(法雲地)이며, 다시 불지(佛地)를 말씀하시어 제십일(第十一)로 삼으셨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지위는 몇 가지 청정에 속하며, 몇 가지 분(分)에 거두어집니까?" 그때 세존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모든 지위가 네 가지 청정과 열한 가지 분에 거두어짐을 알아야 한다.

무엇을 네 가지 청정이 능히 모든 지위를 거둔다 이름하는가? 증상의락청정(增上意樂淸淨)이 초지(初地)를 거두고, 증상계청정(增上戒淸淨)이 제2지를 거두고, 증상심청정(增上心淸淨)이 제3지를 거두고, 증상혜청정(增上慧淸淨)이 뒤이은 지위에서 더욱 수승하고 미묘한 까닭에 마땅히 능히 제4지로부터 불지에 이르기까지를 거둠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여! 마땅히 이와 같은 네 가지 청정이 널리 모든 지위를 거둠을 알아야 한다.

무엇을 열한 가지 분이 능히 모든 지위를 거둔다 이름하는가? 모든 보살이 먼저 승해행지(勝解行地)에서 열 가지 법행(法行)에 의지하여 승해인(勝解忍)을 지극히 잘 닦아 익히는 까닭에 저 지위를 뛰어넘어 보살의 정성이생(正性離生)에 증입(證入)한다. 저 모든 보살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分)이 원만하나, 아직 능히 미세하게 훼범(毀犯)하여 잘못 나타나 행함 가운데서 바르게 알아 행하지 못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 가운데서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다. 이 분으로 하여금 원만함을 얻게 하고자 부지런히 닦아 익혀 곧 능히 증득하니, 저 모든 보살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이 원만하다. 그러나 아직 능히 세간의 원만한 등지(等持)·등지(等至) 및 원만한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를 얻지 못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 가운데서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다. 이 분으로 하여금 원만함을 얻게 하고자 부지런히 닦아 익혀 곧 능히 증득하니, 저 모든 보살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이 원만하다. 그러나 아직 능히 얻은 바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따라 많이 닦아 익혀 머물지 못하고, 마음이 아직 능히 모든 등지(等至)를 애착함 및 법을 애착함을 버리지 못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 가운데서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다. 이 분으로 하여금 원만함을 얻게 하고자 부지런히 닦아 익혀 곧 능히 증득하니, 저 모든 보살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이 원만하다. 그러나 아직 능히 모든 제(諦)의 도리를 여실히 관찰하지 못하고, 또 아직 능히 생사와 열반에 대해 한결같이 등 돌려 나아가는 작의를 버리지 못하고, 또 아직 능히 방편에 거두어진 보리분법을 닦지 못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 가운데서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다. 이 분으로 하여금 원만함을 얻게 하고자 부지런히 닦아 익혀 곧 능히 증득하니, 저 모든 보살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이 원만하다. 그러나 아직 능히 생사의 유전(流轉)을 여실히 관찰하지 못하고, 또 저것에 대해 많이 싫어함을 냄으로 말미암아 아직 능히 모습 없는 작의에 많이 머물지 못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 가운데서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다. 이 분으로 하여금 원만함을 얻게 하고자 부지런히 닦아 익혀 곧 능히 증득하니, 저 모든 보살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이 원만하다. 그러나 아직 능히 모습 없는 작의로 하여금 이지러짐 없고 끊임없이 많이 닦아 익혀 머물게 하지 못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 가운데서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다. 이 분으로 하여금 원만함을 얻게 하고자 부지런히 닦아 익혀 곧 능히 증득하니, 저 모든 보살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이 원만하다. 그러나 아직 능히 모습 없는 머묾 가운데서 공용(功用)을 버려 여의지 못하고, 또 아직 능히 모습에 자재함을 얻지 못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 가운데서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다. 이 분으로 하여금 원만함을 얻게 하고자 부지런히 닦아 익혀 곧 능히 증득하니, 저 모든 보살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이 원만하다. 그러나 아직 능히 다른 이름의 온갖 모습과 훈고(訓詁)의 차별과 일체 품류를 선설하는 법 가운데서 큰 자재를 얻지 못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 가운데서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다. 이 분으로 하여금 원만함을 얻게 하고자 부지런히 닦아 익혀 곧 능히 증득하니, 저 모든 보살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이 원만하다. 그러나 아직 능히 원만한 법신(法身)이 앞에 나타나 증득하여 받음을 얻지 못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 가운데서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다. 이 분으로 하여금 원만함을 얻게 하고자 부지런히 닦아 익혀 곧 능히 증득하니, 저 모든 보살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이 원만하다. 그러나 아직 능히 일체 아는 바 경계에 두루하여 집착 없고 걸림 없는 미묘한 지혜와 미묘한 봄(見)을 얻지 못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 가운데서는 아직 원만하지 못하다. 이 분으로 하여금 원만함을 얻게 하고자 부지런히 닦아 익혀 곧 능히 증득하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분이 원만하다. 이 분이 원만한 까닭에 일체 분에 대해 다 원만함을 얻는다. 선남자여! 마땅히 이와 같은 열한 가지 분이 널리 모든 지위를 거둠을 알아야 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처음을 극희지(極喜地)라 이름하며, 나아가 무슨 인연으로 불지(佛地)라 이름합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큰 뜻을 성취하고 아직 일찍이 얻지 못한 출세간의 마음을 얻어 큰 환희를 내는 까닭에, 이런 까닭에 처음을 극희지라 이름한다. 일체 미세한 계(戒)를 범함을 멀리 여의는 까닭에, 이런 까닭에 둘째를 이구지(離垢地)라 이름한다. 저가 얻은 바 삼마지 및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로 말미암아 능히 한량없는 지혜의 광명이 의지하는 바가 되는 까닭에, 이런 까닭에 셋째를 발광지(發光地)라 이름한다. 저가 얻은 바 보리분법으로 말미암아 모든 번뇌를 태움이 지혜가 마치 불꽃과 같은 까닭에, 이런 까닭에 넷째를 염혜지(焰慧地)라 이름한다. 곧 저 보리분법에 대해 방편으로 닦아 익힘이 가장 지극히 어려워야 비로소 자재를 얻는 까닭에, 이런 까닭에 다섯째를 극난승지(極難勝地)라 이름한다. 앞에 나타나 모든 행(行)의 유전(流轉)을 관찰하고, 또 모습 없음에 많이 작의를 닦아 바야흐로 앞에 나타나는 까닭에, 이런 까닭에 여섯째를 현전지(現前地)라 이름한다. 능히 이지러짐 없고 끊임없는 모습 없는 작의를 멀리 증입(證入)하여 청정한 지위와 함께 서로 이웃하는 까닭에, 이런 까닭에 일곱째를 원행지(遠行地)라 이름한다. 모습 없음에 공용(功用) 없음을 얻어 모든 모습 가운데서 나타나 행하는 번뇌에 움직여지지 않는 까닭에, 이런 까닭에 여덟째를 부동지(不動地)라 이름한다. 일체 종류로 법을 말함에 자재하여 허물없는 광대한 지혜를 얻는 까닭에, 이런 까닭에 아홉째를 선혜지(善慧地)라 이름한다. 추중(麁重)의 몸이 넓기가 허공과 같고 법신이 원만함이 비유컨대 큰 구름과 같아 다 능히 두루 덮는 까닭에, 이런 까닭에 열째를 법운지(法雲地)라 이름한다. 가장 지극히 미세한 번뇌장(煩惱障) 및 소지장(所知障)을 영원히 끊어 집착 없고 걸림 없이 일체 종류의 아는 바 경계에 대해 바른 등각(等覺)을 나타내는 까닭에, 이런 까닭에 열한째를 불지(佛地)라 이름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모든 지위에는 몇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며, 몇 가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됩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모든 지위 가운데는 스물두 가지 어리석음과 열한 가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된다. 초지(初地)에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보특가라 및 법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요, 둘째는 악취(惡趣)의 잡염 어리석음이며, 및 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된다. 제2지에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미세하게 잘못 범하는 어리석음이요, 둘째는 갖가지 업취(業趣)의 어리석음이며, 및 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된다. 제3지에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욕탐의 어리석음이요, 둘째는 원만한 문지다라니의 어리석음이며, 및 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된다. 제4지에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등지(等至)를 애착하는 어리석음이요, 둘째는 법을 애착하는 어리석음이며, 및 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된다. 제5지에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한결같이 작의하여 생사를 등지고 버리는 어리석음이요, 둘째는 한결같이 작의하여 열반으로 나아가는 어리석음이며, 및 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된다. 제6지에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앞에 나타나 모든 행의 유전을 관찰하는 어리석음이요, 둘째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 행하는 어리석음이며, 및 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된다. 제7지에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미세한 모습이 나타나 행하는 어리석음이요, 둘째는 한결같이 모습 없는 작의의 방편 어리석음이며, 및 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된다. 제8지에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모습 없음에 공용을 짓는 어리석음이요, 둘째는 모습에 자재한 어리석음이며, 및 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된다. 제9지에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한량없는 설법과 한량없는 법구(法句)의 문자와 뒤이은 지혜의 변재다라니(辯才陀羅尼)에 자재한 어리석음이요, 둘째는 변재에 자재한 어리석음이며, 및 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된다. 제10지에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큰 신통의 어리석음이요, 둘째는 미세한 비밀에 깨달아 들어가는 어리석음이며, 및 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된다. 여래지(如來地)에는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일체 아는 바 경계에 지극히 미세하게 집착하는 어리석음이요, 둘째는 지극히 미세한 걸림의 어리석음이며, 및 저 추중이 다스려지는 바가 된다. 선남자여! 이 스물두 가지 어리석음 및 열한 가지 추중으로 말미암아 모든 지위를 안립하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저 얽매임을 여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심히 기이하고 희유하여, 나아가 큰 이익과 큰 과보를 성취하여 모든 보살로 하여금 능히 이와 같은 큰 어리석음의 그물을 깨뜨리고 능히 이와 같은 큰 추중의 빽빽한 숲을 뛰어넘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앞에 나타나 증득하게 합니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모든 지위는 몇 가지 수승함으로 안립됩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간략히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증상의락청정(增上意樂淸淨)이요, 둘째는 마음의 청정이요, 셋째는 슬픔(悲)의 청정이요, 넷째는 저 언덕에 이르는(到彼岸) 청정이요, 다섯째는 부처님을 뵙고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는 청정이요, 여섯째는 유정을 성숙시키는 청정이요, 일곱째는 태어남의 청정이요, 여덟째는 위덕(威德)의 청정이다. 선남자여! 초지 가운데 있는 증상의락청정 나아가 위덕청정과, 뒤이은 모든 지위 나아가 불지에 있는 증상의락청정 나아가 위덕청정은, 마땅히 저 모든 청정이 점점 더욱 수승해짐을 알아야 하니, 오직 불지에서만 태어남의 청정을 제외한다. 또 초지 가운데 있는 모든 공덕이 위의 모든 지위에도 평등하게 다 있으나, 마땅히 자기 지위의 공덕이 수승함을 알아야 한다. 일체 보살 십지의 공덕은 다 위가 있으나, 불지의 공덕은 마땅히 위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보살의 태어남을 모든 있음(有)의 태어남 가운데 가장 수승하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지극히 청정한 선근이 모여 일어난 까닭이요, 둘째는 고의로 사유하여 가리는 힘으로 취해진 까닭이요, 셋째는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겨 제도하는 까닭이요, 넷째는 스스로 능히 물듦 없이 다른 이의 물듦을 제거하는 까닭이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모든 보살이 광대한 원(願), 미묘한 원, 수승한 원을 행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네 가지 인연이 있으니, 모든 보살이 능히 열반의 즐거운 머묾을 잘 요달하여 알아 빨리 증득함을 감당할 수 있으나, 다시 빨리 증득하는 즐거운 머묾을 버리고, 인연 없고 기다림 없이 큰 원의 마음을 일으켜, 모든 유정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까닭에 갖가지 오랜 시간의 큰 괴로움에 처함을 이른다. 이런 까닭에 내가 저 모든 보살이 광대한 원, 미묘한 원, 수승한 원을 행한다고 말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보살은 대개 몇 가지 마땅히 배워야 할 일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이 배워야 할 일은 간략히 여섯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정려(靜慮)·혜(慧)의 도피안(到彼岸)이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마땅히 배워야 할 일은 몇 가지가 증상계학(增上戒學)에 거두어지며, 몇 가지가 증상심학(增上心學)에 거두어지며, 몇 가지가 증상혜학(增上慧學)에 거두어집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처음의 셋은 다만 증상계학에 거두어지고, 정려 한 가지는 다만 증상심학에 거두어지고, 혜는 증상혜학에 거두어짐을 알아야 한다. 나는 정진이 일체에 두루한다고 말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마땅히 배워야 할 일은 몇 가지가 복덕자량(福德資糧)에 거두어지며, 몇 가지가 지혜자량(智慧資糧)에 거두어집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약 증상계학에 거두어지는 것이라면 이를 복덕자량에 거두어짐이라 이름하고, 만약 증상혜학에 거두어지는 것이라면 이를 지혜자량에 거두어짐이라 이름한다. 나는 정진과 정려 두 가지가 일체에 두루한다고 말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여섯 가지 마땅히 배워야 할 일 가운데서 보살은 어떻게 마땅히 닦아 배워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다섯 가지 모습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닦아 배워야 하니, 첫째는 맨 처음 보살장(菩薩藏)의 바라밀다(波羅蜜多)에 상응하는 미묘한 바른 법의 가르침에 대해 맹렬한 믿음과 이해요, 둘째는 다음으로 열 가지 법행(法行)에 대해 들음·사유함·닦음으로 이루어진 미묘한 지혜로 정진하여 수행함이요, 셋째는 보리(菩提)의 마음을 따라 보호함이요, 넷째는 참되고 좋은 선지식을 가까이함이요, 다섯째는 끊임없이 선품(善品)을 부지런히 닦음이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이와 같이 마땅히 배워야 할 일을 시설함이 다만 여섯 가지 수뿐입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모든 유정을 넉넉히 이롭게 하는 까닭이요, 둘째는 모든 번뇌를 다스리는 까닭이다. 마땅히 앞의 셋은 유정을 넉넉히 이롭게 하고, 뒤의 셋은 일체 번뇌를 다스림을 알아야 한다. 앞의 셋이 모든 유정을 넉넉히 이롭게 한다는 것은, 모든 보살이 보시로 말미암아 자구(資具)를 거두어 받아들여 유정을 넉넉히 이롭게 하고, 지계로 말미암아 손해와 핍박과 번뇌를 행하지 않아 유정을 넉넉히 이롭게 하고, 인욕으로 말미암아 저 손해와 핍박과 번뇌를 참고 받음을 감당하여 유정을 넉넉히 이롭게 함을 이른다. 뒤의 셋이 모든 번뇌를 다스린다는 것은, 모든 보살이 정진으로 말미암아 비록 아직 일체 번뇌를 영원히 조복하지 못하고 또한 아직 일체 수면(隨眠)을 영원히 해치지 못하였으나 능히 용맹하게 모든 선품을 닦아 저 모든 번뇌가 능히 선품의 가행(加行)을 기울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정려로 말미암아 번뇌를 영원히 조복하며, 반야(般若)로 말미암아 수면을 영원히 해침을 이른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나머지 바라밀다를 시설함이 다만 네 가지 수뿐입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앞의 여섯 가지 바라밀다가 도와 짝이 되는 까닭이다. 모든 보살이 앞의 세 가지 바라밀다에 거두어진 유정에 대해 모든 섭사(攝事)로 방편을 잘하여 그를 거두어 받아들여 선품(善品)에 안치하니, 이런 까닭에 나는 방편선교바라밀다(方便善巧波羅蜜多)가 앞의 세 가지와 도와 짝이 된다고 말함을 이른다. 만약 모든 보살이 현재의 법 가운데서 번뇌가 많은 까닭에 닦음에 끊임없이 감당함이 있지 못하고, 파리하고 못한 의락(意樂)인 까닭과 낮은 계(界)의 승해(勝解)인 까닭에 안의 마음의 머묾에 감당함이 있지 못하고, 보살장에 대해 능히 들어 반연하여 잘 닦아 익히지 못하는 까닭에 있는 바 정려가 능히 출세간의 혜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저가 곧 적은 부분의 협소하고 열등한 복덕자량을 거두어 받아들여 미래세를 위해 번뇌가 경미하도록 마음에 바른 원을 내니, 이와 같음을 원바라밀다(願波羅蜜多)라 이름한다. 이 원으로 말미암아 번뇌가 미박(微薄)하여 능히 정진을 닦으니, 이런 까닭에 나는 원바라밀다가 정진바라밀다와 도와 짝이 된다고 말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좋은 선비를 가까이하여 바른 법을 듣고 이치대로 작의하는 것을 인연으로 삼는 까닭에 열등한 의락을 굴려 수승한 의락을 이루고, 또한 능히 위의 계(界)의 승해를 얻는다면, 이와 같음을 력바라밀다(力波羅蜜多)라 이름한다. 이 력으로 말미암아 안의 마음의 머묾에 감당함이 있으니, 이런 까닭에 나는 력바라밀다가 정려바라밀다와 도와 짝이 된다고 말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보살장에 대해 이미 능히 들어 반연하여 잘 닦아 익히는 까닭에 능히 정려를 일으킨다면, 이와 같음을 지바라밀다(智波羅蜜多)라 이름한다. 이 지로 말미암아 능히 출세간의 혜를 이끌어 냄을 감당하니, 이런 까닭에 나는 지바라밀다가 혜바라밀다와 도와 짝이 된다고 말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이와 같은 차례로 선설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능히 뒤이어 이끌어 냄의 의지가 되는 까닭이다. 모든 보살이 만약 몸과 재물에 대해 돌아보고 아까워하는 바가 없다면 곧 능히 청정한 금계(禁戒)를 받아 지니고, 금계를 보호하기 위해 곧 인욕을 닦고, 인욕을 닦고 나서 능히 정진을 일으키고, 정진을 일으키고 나서 능히 정려를 갖추고, 정려를 갖추고 나서 곧 능히 출세간의 혜를 얻음을 이른다. 이런 까닭에 나는 바라밀다를 이와 같은 차례로 말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바라밀다는 각각 몇 가지 품류의 차별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각각 세 가지가 있다. 보시의 세 가지란, 첫째는 법시(法施)요, 둘째는 재시(財施)요, 셋째는 무외시(無畏施)이다. 계의 세 가지란, 첫째는 불선(不善)한 계를 굴려 버림이요, 둘째는 선한 계를 굴려 냄이요, 셋째는 유정을 넉넉히 이롭게 하는 계를 굴려 냄이다. 인(忍)의 세 가지란, 첫째는 원망과 해침을 참는 인이요, 둘째는 괴로움을 편안히 받는 인이요, 셋째는 법을 자세히 살피는 인이다. 정진의 세 가지란, 첫째는 갑옷을 입는 정진이요, 둘째는 선법을 굴려 내는 가행 정진이요, 셋째는 유정을 넉넉히 이롭게 하는 가행 정진이다. 정려의 세 가지란, 첫째는 분별없고 적정하고 지극히 적정하여 허물없는 까닭에 번뇌의 온갖 괴로움을 다스려 즐겁게 머무는 정려요, 둘째는 공덕을 이끌어 내는 정려요, 셋째는 유정을 넉넉히 이롭게 함을 이끌어 내는 정려이다. 혜의 세 가지란, 첫째는 세속제(世俗諦)를 반연하는 혜요, 둘째는 승의제(勝義諦)를 반연하는 혜요, 셋째는 유정을 넉넉히 이롭게 함을 반연하는 혜이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바라밀다를 바라밀다라 이름합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다섯 가지 인연이 있으니, 첫째는 물들어 집착함이 없는 까닭이요, 둘째는 돌아보고 그리워함이 없는 까닭이요, 셋째는 허물이 없는 까닭이요, 넷째는 분별이 없는 까닭이요, 다섯째는 바르게 회향하는 까닭이다. 물들어 집착함이 없다는 것은 바라밀다의 모든 서로 어긋나는 일에 물들어 집착하지 않음을 이른다. 돌아보고 그리워함이 없다는 것은 일체 바라밀다의 모든 과보의 다르게 익음(異熟) 및 은혜 갚음 가운데서 마음에 얽매임이 없음을 이른다. 허물이 없다는 것은 이와 같은 바라밀다의 끊임없이 섞인 오염된 법에 대해 방편 아닌 행을 여읨을 이른다. 분별이 없다는 것은 이와 같은 바라밀다에 대해 말과 같이 자상(自相)에 집착하지 않음을 이른다. 바르게 회향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지은 바 모은 바 바라밀다로써 위없는 큰 보리(菩提)의 과(果)를 돌이켜 구함을 이른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바라밀다의 모든 서로 어긋나는 일이라 이름합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이 일이 간략히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기쁘고 즐거운 욕망과 재물의 풍족함과 자재한 모든 욕락(欲樂) 가운데서 공덕 및 뛰어난 이익을 깊이 보는 것이요, 둘째는 즐기는 바를 따라 몸·말·뜻을 놓아
놓아 나타나 행함 가운데서 공덕 및 뛰어난 이익을 깊이 보는 것이요, 셋째는 다른 이가 가벼이 여기고 업신여겨 참지 못함 가운데서 공덕 및 뛰어난 이익을 깊이 보는 것이요, 넷째는 부지런히 닦지 않고 욕락(欲樂)에 집착함 가운데서 공덕 및 뛰어난 이익을 깊이 보는 것이요, 다섯째는 시끄럽고 잡되어 어지러운 세간의 행에 처함에서 공덕 및 뛰어난 이익을 깊이 보는 것이요, 여섯째는 견(見)·문(聞)·각(覺)·지(知)의 말로 하는 희론(戲論)에서 공덕 및 뛰어난 이익을 깊이 보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일체 바라밀다는 무슨 과보로 다르게 익습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이도 또한 간략히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큰 재물과 부를 얻음이요, 둘째는 선한 갈래에 가서 태어남이요, 셋째는 원망도 없고 무너짐도 없이 많은 기쁨과 즐거움이요, 넷째는 중생의 주인이 됨이요, 다섯째는 몸에 괴로움과 해침이 없음이요, 여섯째는 큰 종족의 잎(宗葉)이 있음이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바라밀다의 섞인 오염된 법이라 이름합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간략히 네 가지 가행(加行)으로 말미암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슬픔이 없는 가행인 까닭이요, 둘째는 이치대로 하지 않는 가행인 까닭이요, 셋째는 항상하지 않는 가행인 까닭이요, 넷째는 은중(慇重)하지 않은 가행인 까닭이다. 이치대로 하지 않는 가행이란, 나머지 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다른 바라밀다에 대해 멀리하여 잃고 무너뜨림을 이른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방편 아닌 행이라 이름합니까?" "선남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바라밀다로써 중생을 넉넉히 이롭게 할 때에 다만 재물을 거두어 중생을 넉넉히 이롭게 함으로 곧 기뻐하고 만족하되 그로 하여금 불선(不善)한 곳에서 나와 선한 곳에 안치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와 같음을 방편 아닌 행이라 이름한다. 어째서인가? 선남자여! 중생에 대해 오직 이 일만을 지음은 진실로 넉넉히 이롭게 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똥과 오물이 만약 많거나 만약 적거나 끝내 능히 향기롭고 깨끗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생은 괴로움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 성품이 괴로움이니, 방편 없이 다만 재물로써 잠시 서로 넉넉히 이롭게 함으로 즐거움을 이루게 할 수는 있으나, 오직 미묘하고 선한 법 가운데 편안히 처함이 있어야 바야흐로 제일가는 넉넉히 이롭게 함이라 이름함을 얻을 수 있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일체 바라밀다에는 몇 가지 청정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나는 끝내 바라밀다에 위의 다섯 모습을 제외하고 남은 청정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곧 이와 같은 모든 일의 총괄과 낱낱에 의지하여 마땅히 바라밀다의 청정한 모습을 말하리라.

총괄하여 일체 바라밀다의 청정한 모습을 말하면 마땅히 일곱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일곱인가? 첫째는 보살이 이 모든 법에 대해 다른 이가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이 모든 법을 보고 나서 집착을 내지 않음이요, 셋째는 곧 이와 같은 모든 법에 대해 능히 큰 보리(菩提)를 얻을 수 있는지 아닌지 의혹을 내지 않음이요, 넷째는 끝내 스스로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어 가벼이 여기는 바가 있지 않음이요, 다섯째는 끝내 교만하고 방일하지 않음이요, 여섯째는 끝내 조금 얻은 바가 있다고 곧 기뻐하고 만족함을 내지 않음이요, 일곱째는 끝내 이 모든 법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에 대해 질투와 아낌을 일으키지 않음이다.

낱낱이 일체 바라밀다의 청정한 모습을 말하면 또한 일곱 가지가 있다. 무엇이 일곱인가? 모든 보살이 내가 말한 바와 같은 일곱 가지 보시의 청정한 모습을 수순하여 수행함을 이른다. 첫째는 보시하는 물건의 청정으로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요, 둘째는 계(戒)의 청정으로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요, 셋째는 견(見)의 청정으로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요, 넷째는 마음의 청정으로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요, 다섯째는 말의 청정으로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요, 여섯째는 지혜의 청정으로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요, 일곱째는 때(垢)의 청정으로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다. 이를 일곱 가지 보시의 청정한 모습이라 이름한다.

또 모든 보살이 능히 세워 세운 율의(律儀)의 일체 배울 곳(學處)을 잘 요달하여 알고, 능히 범한 바를 벗어남을 잘 요달하여 알아, 항상한 시라(尸羅)를 갖추고, 견고한 시라를 갖추고, 항상 짓는 시라를 갖추고, 항상 굴리는 시라를 갖추어, 일체 있는 배울 곳을 받아 배우니, 이를 일곱 가지 계의 청정한 모습이라 이름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자기가 있는 업의 과보인 다르게 익음에 대해 믿음에 깊이 의지하여 생겨서, 일체 있는 넉넉히 이롭지 않은 일이 앞에 나타날 때에 분개하여 일으키지 않으며, 또한 되받아 욕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때리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놀리지 않고, 갖가지 넉넉히 이롭지 않은 일로써 되받아 서로 가해하지 않으며, 원망의 맺힘을 품지 않으며, 만약 간(諫)하여 가르칠 때에 성내고 번민하게 하지 않으며, 또한 다시 다른 이가 와서 간하여 가르치기를 기다리지 않으며,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들어 애착하는 마음을 가지고 인욕을 행하지 않으며, 은혜를 지음으로써 곧 놓아 버리지 않는다면, 이를 일곱 가지 인욕의 청정한 모습이라 이름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정진의 평등한 성품을 통달하여, 용맹하고 부지런히 정진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높이고 남을 능멸하지 않으며, 큰 세력을 갖추고, 큰 정진을 갖추고, 감당하는 바가 있고, 견고하고 용맹하여, 모든 선법에 대해 끝내 멍에를 버리지 않는다면, 이와 같음을 일곱 가지 정진의 청정한 모습이라 이름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모습을 잘 통달한 삼마지 정려가 있고, 원만한 삼마지 정려가 있고, 함께 나누는(俱分) 삼마지 정려가 있고, 운전(運轉)하는 삼마지 정려가 있고, 의지하는 바 없는 삼마지 정려가 있고, 잘 닦아 다스리는 삼마지 정려가 있고, 보살장(菩薩藏)에 대해 듣고 반연하여 닦아 익히는 한량없는 삼마지 정려가 있다면, 이와 같음을 일곱 가지 정려의 청정한 모습이라 이름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늘어남(增益)과 줄어듦(損減)의 두 가장자리를 멀리 여의고 중도(中道)를 행한다면, 이를 혜(慧)라 이름한다. 이 혜로 말미암아 여실히 해탈문(解脫門)의 뜻을 요달하여 아니, 이르되 공(空)·무원(無願)·무상(無相)의 세 가지 해탈문이다. 여실히 자성이 있는 뜻을 요달하여 아니, 이르되 변계소집(遍計所執)·의타기(依他起)·원성실(圓成實)의 세 가지 자성이다. 여실히 자성이 없는 뜻을 요달하여 아니, 이르되 상(相)·생(生)·승의(勝義)의 세 가지 무자성성(無自性性)이다. 여실히 세속제(世俗諦)의 뜻을 요달하여 아니, 이르되 오명처(五明處)에 대함이다. 여실히 승의제(勝義諦)의 뜻을 요달하여 아니, 이르되 일곱 가지 진여에 대함이다. 또 분별이 없고 모든 희론을 여의어 순일한 이치의 취지에 많이 머무는 까닭에, 한량없는 총괄 법을 소연(所緣)으로 삼는 까닭에, 및 비발사나인 까닭에 능히 법을 따르는 행을 잘 이룬다면, 이를 일곱 가지 혜의 청정한 모습이라 이름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다섯 모습은 각각 무슨 업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저 모습에 다섯 가지 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보살이 물들어 집착함이 없는 까닭에 현재의 법 가운데서 닦아 익히는 바 바라밀다에 대해 항상 은중(慇重)하게 부지런히 가행을 닦아 방일함이 있지 않음을 이른다. 돌아보고 그리워함이 없는 까닭에 마땅히 올 방일하지 않는 인(因)을 거두어 받아들인다. 허물이 없는 까닭에 능히 지극히 잘 원만하고 지극히 잘 청정하고 지극히 잘 깨끗한 바라밀다를 바르게 닦아 익힌다. 분별이 없는 까닭에 방편선교바라밀다가 빨리 원만함을 얻는다. 바르게 회향하는 까닭에 일체 태어나는 곳의 바라밀다 및 저 사랑스러운 모든 과보의 다르게 익음이 다 다함없음을 얻어 나아가 위없는 정등보리(正等菩提)에 이른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말씀하신 바라밀다는 어느 것이 가장 광대하며, 어느 것이 오염됨이 없으며, 어느 것이 가장 밝고 성하며, 어느 것이 가히 움직이지 않으며, 어느 것이 가장 청정합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물들어 집착함이 없는 성품, 돌아보고 그리워함이 없는 성품, 바르게 회향하는 성품이 가장 광대하다. 허물이 없는 성품, 분별이 없는 성품에는 오염됨이 있지 않다. 사유하여 가려 지음이 가장 밝고 성하다. 이미 물러남 없는 법의 지위에 든 것을 가히 움직이지 않는다 이름한다. 만약 십지에 거두어지고 불지에 거두어지는 것이라면 가장 청정하다 이름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보살이 얻은 바라밀다의 모든 사랑스러운 과보와 모든 다르게 익음이 항상 다함이 있지 않으며, 바라밀다도 또한 다함이 있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서로 굴러 의지하여 생겨 일어나 닦아 익힘이 끊임없는 까닭이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이 모든 보살이 바라밀다를 깊이 믿고 애락하되, 이와 같은 바라밀다가 얻는 바 사랑스러운 모든 과보의 다르게 익음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다섯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바라밀다가 가장 증상(增上)한 기쁨과 즐거움의 인(因)인 까닭이요, 둘째는 바라밀다가 그 구경(究竟)의 자기와 남을 넉넉히 이롭게 하는 인인 까닭이요, 셋째는 바라밀다가 오는 세상의 저 사랑스러운 과보의 다르게 익음의 인인 까닭이요, 넷째는 바라밀다가 모든 잡염이 의지하는 바 일이 아닌 까닭이요, 다섯째는 바라밀다가 필경 변하여 무너지는 법이 아닌 까닭이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체 바라밀다는 각각 몇 가지 가장 수승한 위덕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일체 바라밀다가 각각 네 가지 가장 수승한 위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이 바라밀다를 바르게 수행할 때에 능히 아낌·계를 범함·마음의 분개·게으름·산란·견해에 나아감의 다스려야 할 바를 버림이요, 둘째는 이를 바르게 수행할 때에 능히 위없는 정등보리의 진실한 자량(資糧)이 됨이요, 셋째는 이를 바르게 수행할 때에 현재의 법 가운데서 능히 스스로 거두어 받아들여 유정을 넉넉히 이롭게 함이요, 넷째는 이를 바르게 수행할 때에 오는 세상에서 능히 광대하고 다함없는 사랑스러운 모든 과보의 다르게 익음을 얻음이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일체 바라밀다는 무엇이 인(因)이며 무엇이 과(果)이며 무슨 뜻의 이익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일체 바라밀다는 대비(大悲)로 인을 삼고, 미묘하고 사랑스러운 모든 과보의 다르게 익음으로 일체 유정을 넉넉히 이롭게 함을 과로 삼으며, 원만한 위없는 광대한 보리로 큰 뜻의 이익을 삼는다."

관자재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보살이 일체 다함없는 재물과 보배를 구족하고 대비를 성취한다면, 무슨 인연으로 세간에 현재 가난하고 궁핍한 중생을 볼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는 모든 중생 자신의 업의 허물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보살은 항상 다른 이를 넉넉히 이롭게 하는 마음을 품고 또 항상 다함없는 재물과 보배를 구족하니, 만약 모든 중생에게 자기의 악업이 능히 장애가 됨이 없다면 어찌 세간에 가난하고 궁핍함을 볼 수 있음이 있겠는가? 비유하건대 아귀(餓鬼)가 큰 뜨거운 갈증에 그 몸이 핍박당하여 큰 바닷물을 보아도 다 말라 없어져 보이는 것과 같으니, 이는 큰 바다의 허물이 아니라 이 모든 아귀 자신의 업의 허물일 뿐이다. 이와 같이 보살이 베푸는 재물과 보배는 큰 바다와 같아 허물이 있지 않으니, 이 모든 중생 자신의 업의 허물일 뿐이며, 마치 아귀가 자신의 악업의 힘으로 과(果)가 있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떤 바라밀다로써 일체법의 무자성성(無自性性)을 취합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로써 능히 모든 법의 무자성성을 취한다." "세존이시여! 만약 반야바라밀다가 능히 모든 법의 무자성성을 취한다면, 어째서 자성이 있는 성품은 취하지 않습니까?" "선남자여! 나는 끝내 무자성성으로써 무자성성을 취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자성성은 모든 문자를 여의어 스스로 안으로 증득하는 바이니, 언설과 문자를 버리고 능히 선설할 수는 없다. 이런 까닭에 나는
반야바라밀다가 능히 모든 법의 무자성성을 취한다고 말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바라밀다, 근바라밀다(近波羅蜜多), 대바라밀다(大波羅蜜多)가 있는데, 무엇이 바라밀다이며 무엇이 근바라밀다이며 무엇이 대바라밀다입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한량없는 시간을 지나며 보시 등을 수행하여 선법(善法)을 성취하되 모든 번뇌가 오히려 예전대로 나타나 행하여 아직 능히 제복(制伏)하지 못하고 도리어 저것에 조복되는 것이니, 이르되 승해행지(勝解行地)에서 연하고 중간인 승해가 구를 때를 이를 바라밀다라 이름한다. 다시 한량없는 시간을 지나며 보시 등을 수행하여 점점 다시 더욱 향상되어 선법을 성취하되 모든 번뇌가 오히려 예전대로 나타나 행하나 능히 제복하여 저것에 조복되지 않는 것이니, 이르되 초지(初地)로부터 이상을 이를 근바라밀다라 이름한다. 다시 한량없는 시간을 지나며 보시 등을 수행하여 더욱 다시 향상되어 선법을 성취하여 일체 번뇌가 다 나타나 행하지 않는 것이니, 이르되 제8지로부터 이상을 이를 대바라밀다라 이름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지위 가운데서 번뇌의 수면(隨眠)은 몇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간략히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짝을 해치는 수면(害伴隨眠)이니, 앞의 다섯 지위에서를 이른다. 어째서인가? 선남자여! 모든 함께 나지 않는 나타나 행하는 번뇌는 함께 나는 번뇌가 나타나 행함의 짝을 도움이니, 저것이 그때에 영원히 다시 있지 않으니, 이런 까닭에 짝을 해치는 수면이라 이름한다. 둘째는 파리하고 못한 수면(羸劣隨眠)이니, 제6·제7지 가운데서 미세하게 나타나 행함을 이르니, 만약 닦음으로 조복되어 나타나 행하지 않는 까닭이다. 셋째는 미세한 수면(微細隨眠)이니, 제8지로부터 이상을 이르니, 이로부터 이후로는 일체 번뇌가 다시 나타나 행하지 않고, 오직 소지장(所知障)만이 의지하는 바가 되는 까닭이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수면은 몇 가지 추중(麁重)의 끊음으로 드러내 보입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다만 두 가지로 말미암으니, 피부에 있는 추중의 끊음으로 말미암는 까닭에 저 처음의 둘을 드러내고, 다시 살갗에 있는 추중의 끊음으로 말미암는 까닭에 저 셋째를 드러낸다. 만약 뼈에 있는 추중의 끊음이라면 나는 일체 수면을 영원히 여읨을 말하니, 지위가 불지(佛地)에 있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몇 가지 헤아릴 수 없는 겁(劫)을 지나야 능히 이와 같은 추중을 끊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세 가지 큰 헤아릴 수 없는 겁, 혹은 한량없는 겁을 지나니, 이른바 해·달·보름·낮과 밤·한 때·반 때·수유(須臾)·순식간·찰나의 양(量)인 겁이 헤아릴 수 없는 까닭이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보살이 모든 지위 가운데서 생기는 번뇌는 마땅히 무슨 모습이며 무슨 허물이며 무슨 공덕입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오염됨 없는 모습이다. 어째서인가? 이 모든 보살은 초지 가운데서 일체 모든 법의 법계(法界)에 대해 이미 잘 통달하였으니,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보살은 요컨대 알아야 비로소 번뇌를 일으키고 알지 못함이 되지 않으니, 이런 까닭에 오염됨 없는 모습이라 이름한다. 자신 가운데서 능히 괴로움을 내지 못하는 까닭에 허물이 없다. 보살이 이와 같은 번뇌를 일으켜 유정계(有情界)에 대해 능히 괴로움의 인(因)을 끊으니, 이런 까닭에 저것은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심히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위없는 보리(菩提)는 이에 이와 같은 큰 공덕의 이익이 있어, 모든 보살로 하여금 번뇌를 일으키게 하여도 오히려 일체 유정·성문·독각의 선근보다 수승하거늘, 하물며 그 나머지 한량없는 공덕이겠습니까?"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만약 성문승(聲聞乘)이나 만약 다시 대승(大乘)이나 오직 이는 일승(一乘)이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무슨 은밀한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내가 저 성문승 가운데서 갖가지 모든 법의 자성을 선설한 것과 같으니, 이르되 오온(五蘊), 혹은 안의 육처(六處), 혹은 밖의 육처와 같은 이러한 부류이다. 대승 가운데서는 곧 저 법이 동일한 법계(法界)요 동일한 이치의 취지라고 말하니, 이런 까닭에 나는 승(乘)의 차별한 성품을 말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 혹 말과 같이 뜻에 대해 함부로 분별을 일으켜 한 부류는 늘리고 한 부류는 줄임이 있다. 또 모든 승의 차별한 도리에 대해 서로 어긋난다고 이르니, 이와 같이 서로서로 굴러 번갈아 일어나 쟁론(諍論)한다. 이와 같음을 이 가운데 은밀한 뜻이라 이름한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지위가 거두는 생각의 다스릴 바와, 수승한 태어남의 원(願) 및 모든 배움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대승에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이에 대해 잘 닦아 큰 깨달음을 이루도다.
모든 법의 갖가지 성품을 선설하시고, 다시 다 동일한 이치의 취지임을 말씀하시니,
이르되 낮은 승이나 혹은 높은 승이나, 그러므로 나는 승에 다른 성품이 없다고 말하노라.
말과 같이 뜻에 대해 함부로 분별하여, 혹은 늘리기도 하고 혹은 줄이기도 하니,
이르되 이 두 가지가 서로 어긋나서, 어리석은 뜻으로 이해하여 어긋난 다툼을 이루는구나."

그때 관자재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해심밀(解深密) 법문 가운데서 이를 무엇이라 이름하며, 저는 마땅히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를 모든 지위와 바라밀다의 요의(了義)의 가르침이라 이름하니, 이 모든 지위와 바라밀다의 요의의 가르침을 너는 마땅히 받들어 지녀야 한다!" 이 모든 지위와 바라밀다의 요의의 가르침을 말씀하실 때에 대회 가운데서 칠십오천(七十五千)의 보살이 다 보살의 대승 광명 삼마지를 얻었다.

〈권제오(解深密經 卷第五)〉

【여래성소작사품(如來成所作事品) 제8】

그때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청하여 물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여래의 법신(法身)이 있는데, 여래의 법신은 무슨 모습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약 모든 지위와 바라밀다에 대해 벗어남을 잘 닦아 전의(轉依)를 원만히 이룬다면, 이를 여래 법신의 모습이라 이름한다. 마땅히 이 모습이 두 가지 인연인 까닭에 불가사의함을 알아야 하니, 희론(戲論)이 없는 까닭이요, 지을 바가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모든 중생은 희론에 헤아려 집착하여 지을 바가 있다."

"세존이시여! 성문·독각이 얻은 바 전의(轉依)도 법신이라 이름합니까?" "선남자여! 법신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무슨 몸이라 이름해야 합니까?" "선남자여! 해탈신(解脫身)이라 이름한다. 해탈신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일체 성문·독각이 모든 여래와 평등하고 평등하다고 말하고, 법신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차별이 있다고 말한다. 여래의 법신에 차별이 있는 까닭에 한량없는 공덕의 가장 수승한 차별은 산수(算數)와 비유로도 능히 미칠 수 없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땅히 어떻게 여래가 생겨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일체 여래의 화신(化身)이 짓는 업은 마치 세계가 일어나는 것과 같이 일체 종류이며, 여래의 공덕은 대중이 장엄하고 머물러 지님으로 모습을 삼는다. 마땅히 화신의 모습에는 생겨 일어남이 있으나 법신의 모습에는 생겨 일어남이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마땅히 화신을 나타내 보이는 방편이 잘함을 알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일체 삼천대천의 불국토(佛國土) 가운데 두루하여, 혹은 대중이 향상된 왕가(王家)로 추대하고 혹은 대중이 큰 복전(福田)의 집으로 추대함에, 동시에 태에 들고, 태어나고, 자라나고, 욕(欲)을 받고, 출가하고, 고행(苦行)을 행함을 보이고, 고행을 버리고 나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기를 차례로 나타내 보인다. 이를 여래가 화신을 나타내 보이는 방편이 잘함이라 이름한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대개 몇 가지 일체 여래의 몸이 머물러 지니는 말소리의 차별이 있어, 이 말소리로 말미암아 교화되는 유정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는 그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고, 이미 성숙한 자는 이를 반연하여 경계로 삼아 빨리 해탈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의 말소리는 간략히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계경(契經)이요, 둘째는 조복(調伏)이요, 셋째는 본모(本母)이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계경이며 무엇이 조복이며 무엇이 본모입니까?" "문수사리여! 만약 이곳에서 내가 섭사(攝事)에 의지하여 모든 법을 드러내 보인다면, 이를 계경이라 이름한다. 네 가지 일에 의지하거나, 혹은 아홉 가지 일에 의지하거나, 혹은 다시 스물아홉 가지 일에 의지함을 이른다. 무엇이 네 가지 일인가? 첫째는 들음의 일이요, 둘째는 귀의하여 나아감의 일이요, 셋째는 닦아 배움의 일이요, 넷째는 보리(菩提)의 일이다. 무엇이 아홉 가지 일인가? 첫째는 유정을 시설하는 일이요, 둘째는 저가 받아 씀의 일이요, 셋째는 저가 생겨 일어남의 일이요, 넷째는 저가 생겨 나서 머무는 일이요, 다섯째는 저가 오염되고 청정함의 일이요, 여섯째는 저가 차별한 일이요, 일곱째는 능히 선설하는 일이요, 여덟째는 선설하는 바 일이요, 아홉째는 모든 대중이 모이는 일이다. 무엇을 스물아홉 가지 일이라 이름하는가? 잡염품(雜染品)에 의지함에는, 모든 행(行)을 거두는 일과, 저것이 차례로 따라 구르는 일과, 곧 이 가운데서 보특가라(補特伽羅)라는 생각을 지은 뒤에 오는 세상에 유전(流轉)하는 인(因)의 일과, 이런 생각을 지은 뒤에 오는 세상에 유전하는 인의 일이 있다. 청정품(淸淨品)에 의지함에는, 소연(所緣)에 생각을 매는 일과, 곧 이 가운데서 정진에 힘쓰는 일과, 마음이 편안히 머무는 일과, 현재 법의 즐거움에 머무는 일과, 일체 괴로움을 뛰어넘는 방편의 일과, 저가 두루 아는 일이 있다. 이는 다시 세 가지이니, 전도(顚倒)를 두루 아는 의지하는 바 곳인 까닭이요, 유정이라는 생각에 의지하여 밖의 유정 가운데서 삿된 행을 두루 아는 의지하는 바 곳인 까닭이요, 안으로 증상만(增上慢)을 여읨을 두루 아는 의지하는 바 곳인 까닭이다. 닦음의 의지하는 바 일과, 증득하는 일과, 닦아 익히는 일과, 저것으로 하여금 견고하게 하는 일과, 저 행하는 모습의 일과, 저 소연(所緣)의 일과, 이미 끊음과 아직 끊지 못함을 관찰하는 잘함의 일과, 저 산란한 일과, 저 산란하지 않은 일과, 산란하지 않음의 의지하는 바 일과, 닦아 익힘의 수고로운 가행을 버리지 않는 일과, 닦아 익힘의 수승한 이익의 일과, 저 견고한 일과, 성스러운 행을 거두는 일과, 성스러운 행의 권속을 거두는 일과, 진실을 통달하는 일과, 열반을 증득하는 일과, 잘 말씀하신 법과 비나야(毘奈耶) 가운데서 세간의 바른 견해가 일체 외도가 얻은 바른 견해의 정상(頂)을 뛰어넘는 일과, 및 곧 이에 대해 닦지 않아 물러나는 일이 있다. 잘 말씀하신 법과 비나야 가운데서 닦아 익히지 않는 까닭에 물러난다고 이름하니, 견해의 허물이 아닌 까닭에 물러난다고 이름한다.

문수사리여! 만약 이곳에서 내가 성문 및 모든 보살에 의지하여 별해탈(別解脫) 및 별해탈에 상응하는 법을 드러내 보인다면, 이를 조복(調伏)이라 이름한다." "세존이시여! 보살의 별해탈은 몇 가지 모습에 거두어집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일곱 가지 모습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받는 궤칙(軌則)의 일을 선설하는 까닭이요, 둘째는 다른 이를 이기는 일을 수순함을 선설하는 까닭이요, 셋째는 훼범(毁犯)함을 수순함을 선설하는 까닭이요, 넷째는 범함이 있는 자성을 선설하는 까닭이요, 다섯째는 범함이 없는 자성을 선설하는 까닭이요, 여섯째는 범한 바에서 벗어남을 선설하는 까닭이요, 일곱째는 율의(律儀)를 버림을 선설하는 까닭이다.

문수사리여! 만약 이곳에서 내가 열한 가지 모습으로 결정코 분별하여 모든 법을 드러내 보인다면, 이를 본모(本母)라 이름한다. 무엇이
열한 가지 모습이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세속의 모습이요, 둘째는 승의(勝義)의 모습이요, 셋째는 보리분법(菩提分法)의 소연(所緣)의 모습이요, 넷째는 행(行)의 모습이요, 다섯째는 자성(自性)의 모습이요, 여섯째는 저 과(果)의 모습이요, 일곱째는 저 영수(領受)하여 열어 보이는 모습이요, 여덟째는 저 장애하는 법의 모습이요, 아홉째는 저 수순하는 법의 모습이요, 열째는 저 허물과 근심의 모습이요, 열한째는 저 뛰어난 이익의 모습이다.

세속의 모습이란 마땅히 세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보특가라(補特伽羅)를 선설하는 까닭이요, 둘째는 변계소집(遍計所執)의 자성을 선설하는 까닭이요, 셋째는 모든 법의 작용과 사업을 선설하는 까닭이다. 승의의 모습이란, 마땅히 일곱 가지 진여를 선설함을 알아야 한다. 보리분법의 소연의 모습이란, 마땅히 일체 종류의 아는 바 일에 두루함을 선설함을 알아야 한다.

행의 모습이란, 마땅히 여덟 가지 행의 관(觀)을 선설함을 알아야 한다. 무엇을 여덟 가지 행의 관이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진실함(諦實)인 까닭이요, 둘째는 편안히 머묾(安住)인 까닭이요, 셋째는 허물(過失)인 까닭이요, 넷째는 공덕(功德)인 까닭이요, 다섯째는 이치의 취지(理趣)인 까닭이요, 여섯째는 유전(流轉)인 까닭이요, 일곱째는 도리(道理)인 까닭이요, 여덟째는 총괄과 낱낱(總別)인 까닭이다.

진실함이란 모든 법의 진여를 이른다. 편안히 머묾이란, 혹은 보특가라를 안립하거나, 혹은 다시 모든 법의 변계소집한 자성을 안립하거나, 혹은 다시 한결같음(一向)·분별(分別)·되물음(反問)·놓아둠(置記)을 안립하거나, 혹은 다시 은밀함(隱密)·드러남(顯了)·기별(記別)·차별(差別)을 안립함을 이른다. 허물이란, 내가 모든 잡염법(雜染法)에 한량없는 문(門)의 차별한 허물과 근심이 있음을 선설함을 이른다. 공덕이란, 내가 모든 청정법(淸淨法)에 한량없는 문의 차별한 뛰어난 이익이 있음을 선설함을 이른다.

이치의 취지란, 마땅히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진실한 뜻의 이치 취지요, 둘째는 증득하는 이치 취지요, 셋째는 가르쳐 인도하는 이치 취지요, 넷째는 두 가장자리를 멀리 여의는 이치 취지요, 다섯째는 불가사의한 이치 취지요, 여섯째는 뜻의 취지의 이치 취지이다. 유전이란, 이르되 삼세(三世)의 세 가지 유위(有爲)의 모습 및 네 가지 연(緣)이다.

도리란, 마땅히 네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관대(觀待)의 도리요, 둘째는 작용(作用)의 도리요, 셋째는 증성(證成)의 도리요, 넷째는 법이(法爾)의 도리이다. 관대의 도리란, 만약 인(因)이나 만약 연(緣)이 능히 모든 행을 낳고 따라 말함을 일으킴을 이르니, 이와 같음을 관대의 도리라 이름한다. 작용의 도리란, 만약 인이나 만약 연이 능히 모든 법을 얻거나, 혹은 능히 이루거나, 혹은 다시 생겨나서 모든 업의 작용을 지음을 이르니, 이와 같음을 작용의 도리라 이름한다. 증성의 도리란, 만약 인이나 만약 연이 능히 세운 바, 말한 바, 나타낸 바인 뜻으로 하여금 성립함을 얻어 바르게 깨달아 알게 함을 이르니, 이와 같음을 증성의 도리라 이름한다.

또 이 도리는 간략히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청정이요, 둘째는 청정하지 않음이다. 다섯 가지 모습으로 말미암아 청정이라 이름하고, 일곱 가지 모습으로 말미암아 청정하지 않음이라 이름한다.

어떻게 다섯 가지 모습으로 말미암아 청정이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나타나 보아 얻는 바의 모습이요, 둘째는 나타나 보아 얻는 바에 의지하는 모습이요, 셋째는 자기 부류의 비유로 이끄는 모습이요, 넷째는 원성실(圓成實)의 모습이요, 다섯째는 잘 청정한 언교(言敎)의 모습이다.

나타나 보아 얻는 바의 모습이란, 일체 행(行)이 다 무상한 성품이며 일체 행이 다 괴로움인 성품이며 일체법이 다 나 없는 성품이니, 이는 세간의 현량(現量)으로 얻는 바가 됨을 이른다. 이와 같은 등의 부류를 나타나 보아 얻는 바의 모습이라 이름한다.

나타나 보아 얻는 바에 의지하는 모습이란, 일체 행이 다 찰나의 성품이며, 다른 세상에 있는 성품이며, 청정하고 청정하지 않은 업이 잃고 무너뜨림이 없는 성품임을 이른다. 저 능히 의지하는 바인 거친 무상한 성품으로 말미암아 나타나 가히 얻을 수 있는 까닭이며, 모든 유정의 갖가지 차별로 말미암아 갖가지 업에 의지하여 나타나 가히 얻을 수 있는 까닭이며, 모든 유정이 만약 즐거움이나 만약 괴로움에 청정하고 청정하지 않은 업으로써 의지하는 바를 삼아 나타나 가히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나타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비교하여 헤아릴 수 있다. 이와 같은 등의 부류를 나타나 보아 얻는 바에 의지하는 모습이라 이름한다.

자기 부류의 비유로 이끄는 모습이란, 안팎의 모든 행이 모인 가운데서 모든 세간이 함께 요달하여 아는 바 얻는 바인 생사를 이끌어 비유로 삼고, 모든 세간이 함께 요달하여 아는 바 얻는 바인 태어남 등 갖가지 괴로움의 모습을 이끌어 비유로 삼고, 모든 세간이 함께 요달하여 아는 바 얻는 바인 자재하지 못한 모습을 이끌어 비유로 삼으며, 또 다시 밖으로 모든 세간이 함께 요달하여 아는 바 얻는 바인 쇠하고 성함을 이끌어 비유로 삼음을 이른다. 이와 같은 등의 부류를 마땅히 자기 부류의 비유로 이끄는 모습이라 이름함을 알아야 한다.

원성실의 모습이란, 곧 이와 같은 나타나 보아 얻는 바의 모습과, 만약 나타나 보아 얻는 바에 의지하는 모습과, 만약 자기 부류의 비유로 얻는 바의 모습이 성립하는 바에 대해 결정코 능히 이루니, 이와 같음을 마땅히 원성실의 모습이라 이름함을 알아야 한다.

잘 청정한 언교의 모습이란, 일체 지혜로운 이가 선설하는 바이니, 말과 같이 열반이 구경(究竟)의 적정(寂靜)함과 같은 이와 같은 등의 부류를 마땅히 잘 청정한 언교의 모습이라 이름함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여! 이런 까닭에 이 다섯 가지 모습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청정한 도리를 잘 관찰함이라 이름하며, 청정함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마땅히 닦아 익혀야 한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일체지(一切智)의 모습은 마땅히 몇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간략히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만약 세간에 출현한 일체지(一切智)의 소리가 널리 들리지 않음이 없음이요, 둘째는 서른두 가지 대장부(大丈夫)의 모습을 성취함이요, 셋째는 십력(十力)을 구족하여 능히 일체 중생의 일체 의혹을 끊음이요, 넷째는 사무소외(四無所畏)를 구족하여 바른 법을 선설하여 일체 다른 논의에 조복되지 않고 능히 일체 삿된 논의를 꺾어 조복함이요, 다섯째는 잘 말씀하신 법과 비나야(毘奈耶) 가운데서 팔지성도(八支聖道)와 사사문(四沙門) 등이 다 나타나 가히 얻을 수 있음이다. 이와 같이 생겨난 까닭이며, 모습인 까닭이며, 의혹의 그물을 끊은 까닭이며, 다른 이에게 조복되지 않고 능히 다른 이를 조복하는 까닭이며, 성스러운 도와 사문이 나타나 가히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니, 이와 같은 다섯 가지를 마땅히 일체지의 모습이라 이름함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증성(證成)의 도리는 현량(現量)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며, 비량(比量)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며, 성교량(聖敎量)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다. 다섯 가지 모습으로 말미암아 청정이라 이름한다.

어떻게 일곱 가지 모습으로 말미암아 청정하지 않음이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이 밖의 같은 부류에서 얻을 수 있는 모습이요, 둘째는 이 밖의 다른 부류에서 얻을 수 있는 모습이요, 셋째는 일체 같은 부류에서 얻을 수 있는 모습이요, 넷째는 일체 다른 부류에서 얻을 수 있는 모습이요, 다섯째는 다른 부류의 비유로 얻는 모습이요, 여섯째는 원성실이 아닌 모습이요, 일곱째는 잘 청정하지 않은 언교의 모습이다.

만약 일체법이 의식(意識)으로 알 수 있는 성품이라면, 이를 일체 같은 부류에서 얻을 수 있는 모습이라 이름하고, 만약 일체법의 모습·성품·업·법·인과가 다른 모습이라면, 이와 같은 하나하나 다른 모습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결정코 서로서로 각각 다른 모습이니, 이를 일체 다른 부류에서 얻을 수 있는 모습이라 이름한다. 선남자여! 만약 이 밖의 같은 부류에서 얻을 수 있는 모습 및 비유 가운데 일체 다른 부류의 모습이 있는 것이라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성립하는 바에 대해 결정되지 않는 까닭에, 이를 원성실이 아닌 모습이라 이름한다. 또 이 밖의 다른 부류에서 얻을 수 있는 모습 및 비유 가운데 일체 같은 부류의 모습이 있는 것이라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성립하는 바에 대해 결정되지 않는 까닭에, 또한 원성실이 아닌 모습이라 이름한다. 원성실이 아닌 까닭에 청정한 도리를 잘 관찰함이 아니니, 청정하지 않은 까닭에 마땅히 닦아 익히지 말아야 한다. 만약 다른 부류의 비유로 이끄는 모습이나 만약 잘 청정하지 않은 언교의 모습이라면, 마땅히 체성이 다 청정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법이(法爾)의 도리란, 여래가 세상에 나오시거나 만약 세상에 나오지 않으시거나 법의 성품이 편안히 머무름과 법이 머무름과 법계(法界)임을 이르니, 이를 법이의 도리라 이름한다.

총괄과 낱낱이란, 먼저 총괄하여 한 구절의 법을 말한 뒤에 뒤이은 모든 구절이 낱낱이 분별되어 구경에 이르러 드러나 뚜렷해짐을 이른다.

자성의 모습이란, 내가 말한 바 행(行)이 있고 연(緣)이 있어 있는 바 능취(能取)의 보리분법(菩提分法)을 이르니, 이르되 염주(念住) 등이며, 이와 같음을 저 자성의 모습이라 이름한다. 저 과(果)의 모습이란, 만약 세간이나 만약 출세간의 모든 번뇌의 끊음과, 이끌어 낸 세간·출세간의 모든 과(果)의 공덕을 이르니, 이와 같음을 저 과를 얻은 모습이라 이름한다. 저 영수(領受)하여 열어 보이는 모습이란, 곧 저것에 대해 해탈지(解脫智)로써 그것을 영수하고, 널리 다른 이를 위해 선설하여 열어 보임을 이르니, 이와 같음을 저 영수하여 열어 보이는 모습이라 이름한다. 저 장애하는 법의 모습이란, 곧 보리분법을 닦음에 대해 능히 따라 장애하는 모든 오염된 법을 이르니, 이를 저 장애하는 법의 모습이라 이름한다. 저 수순하는 법의 모습이란, 곧 저것에 대해 많이 짓는 바 법을 이르니, 이를 저 수순하는 법의 모습이라 이름한다. 저 허물과 근심의 모습이란, 마땅히 곧 저 모든 장애하는 법이 있는 바 허물을 이르니, 이를 저 허물과 근심의 모습이라 이름함을 알아야 한다. 저 뛰어난 이익의 모습이란, 마땅히 곧 저 모든 수순하는 법이 있는 바 공덕을 이르니, 이를 저 뛰어난 이익의 모습이라 이름함을 알아야 한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을 위해 계경(契經)·조복(調伏)·본모(本母)의 외도(外道)와 함께하지 않는 다라니(陀羅尼)의 뜻을 간략히 말씀하시어, 이 함께하지 않는 다라니의 뜻으로 말미암아 모든 보살로 하여금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의 심히 깊은 은밀한 뜻에 들어감을 얻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네가 이제 자세히 들으라,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해 함께하지 않는 다라니의 뜻을 간략히 말하여, 모든 보살로 하여금 내가 말한 은밀한 뜻의 말에 대해 능히 잘 깨달아 들어가게 하리라.

선남자여! 만약 잡염법이나 만약 청정법이나 나는 일체가 다 작용이 없고 또한 모두 보특가라(補特伽羅)가 있지 않다고 말하니, 일체 종류로 지을 바를 여읜 까닭이다. 잡염법이 먼저 물들었다가 뒤에 청정해지는 것이 아니며, 청정법이 뒤에 청정해졌다가 먼저 물든 것이 아니다. 범부와 이생(異生)은 추중(麁重)의 몸에서 모든 법과 보특가라의 자성의 차별에 집착하여, 수면(隨眠)의 망령된 견해로 연을 삼는 까닭에 나(我)와 내 것(我所)을 헤아린다. 이 망령된 견해로 말미암아 이르되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냄새 맡고, 내가 맛보고, 내가 촉감하고, 내가 알고, 내가 먹고, 내가 짓고, 내가 물들고, 내가 청정하다 함이니, 이와 같은 등의 부류로 삿된 가행(加行)이 굴러간다. 만약 여실히 이와 같음을 아는 자가 있다면 곧 능히 추중의 몸을 영원히 끊어 일체 번뇌가 머물지 않음과 가장 지극한 청정과 모든 희론(戲論)을 여읨과 무위(無爲)의 의지함과 가행이 있지 않음을 얻는다. 선남자여! 마땅히 이를 함께하지 않는 다라니의 뜻을 간략히 말함이라 이름함을 알아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일체 잡염되고 청정한 법은, 다 작용이 없고 취(趣)를 헤아려 취하는 것도 없으니,
내가 지을 바를 여의었다고 선설함으로 말미암아, 물들고 청정함은 앞뒤가 아니로다.
추중의 몸에서 수면의 견해로, 연을 삼아 나 및 내 것을 헤아리니,
이 망령됨으로 말미암아 내가 보는 것 등을 이르되, 내가 먹고 내가 지으며 내가 물들고 청정하다 하는구나.
만약 여실히 이와 같음을 아는 자라면, 이에 능히 추중의 몸을 영원히 끊어,
물듦도 없고 청정함도 없고 희론도 없음을 얻어, 무위에 의지하고 가행도 없으리라."

그때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마땅히 모든 여래의 마음이 생겨 일어나는 모습을 알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무릇 여래란 마음·뜻·식(識)이 생겨 일어남으로 나타나는 바가 아니나, 모든 여래는 가행(加行) 없는 심법(心法)의 생겨 일어남이 있으니, 마땅히 이 일이 오히려 변화(變化)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여래의 법신이 일체 가행을 멀리 여의었다면, 이미 가행이 없거늘 어떻게 심법의 생겨 일어남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먼저 닦아 익힌 방편(方便) 반야(般若)의 가행력(加行力)인 까닭에 마음의 생겨 일어남이 있다. 선남자여! 비유하건대 바로 마음 없는 잠에 들어감이 깨어남에 대해 가행을 짓는 것이 아니나, 먼저 지은 바 가행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다시 깨어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바로 멸진정(滅盡定) 가운데 있음이 정(定)에서 일어남에 대해 가행을 짓는 것이 아니나, 먼저 지은 바 가행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정으로부터 일어나는 것과 같다. 잠과 멸진정으로부터 마음이 다시 생겨 일어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여래도 먼저 닦아 익힌 방편 반야의 가행력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마땅히 다시 심법의 생겨 일어남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화신(化身)은 마땅히 마음이 있다고 말해야 합니까, 마음이 없다고 말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어째서인가? 스스로 의지하는 마음이 없는 까닭이요, 다른 것에 의지하는 마음이 있는 까닭이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행하는 바와 여래의 경계, 이 두 가지는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가 행하는 바란, 일체 종류로 여래가 함께 있는 불가사의한 한량없는 공덕과 대중이 장엄한 청정한 불국토(佛國土)를 이른다. 여래의 경계란, 일체 종류로 다섯 가지 계(界)의 차별을 이른다. 무엇이 다섯인가? 첫째는 유정계(有情界)요, 둘째는 세계(世界)요, 셋째는 법계(法界)요, 넷째는 조복계(調伏界)요, 다섯째는 조복방편계(調伏方便界)이다. 이와 같음을 두 가지 차별이라 이름한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시고, 바른 법의 바퀴를 굴리시고, 큰 열반에 드시는 이 세 가지는 마땅히 무슨 모습입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이 세 가지가 다 두 가지 모습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르되 등정각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등정각을 이루지 않는 것도 아니며, 바른 법의 바퀴를 굴리는 것도 아니고 바른 법의 바퀴를 굴리지 않는 것도 아니며, 큰 열반에 드는 것도 아니고 큰 열반에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째서인가? 여래의 법신은 구경(究竟)이 청정한 까닭이며, 여래의 화신은 항상 나타나 보이는 까닭이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유정의 부류가 다만 화신에 대해 보고 듣고 받들어 섬김으로 모든 공덕을 내는데, 여래는 저것에 대해 무슨 인연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는 저것이 향상되어 반연하는 바의 인연이 되는 까닭이다. 또 저 화신은 여래의 힘으로 머물러 지니는 바인 까닭이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평등하게 가행(加行)이 없는데 무슨 인연으로 여래의 법신이 모든 유정을 위해 큰 지혜의 광명을 놓으며, 한량없는 화신의 영상(影像)을 냅니까? 성문·독각의 해탈한 몸에는 이와 같은 일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비유하건대 평등하게 가행이 없어도 해와 달의 바퀴와 물과 불의 두 가지 파지가(頗胝迦) 보배로부터 큰 광명을 놓으나 그 밖의 물과 불의 파지가 보배는 그렇지 않은 것과 같으니, 큰 위덕이 있는 유정이 머물러 지니는 바인 까닭이며, 모든 유정의 업이 증상(增上)의 힘인 까닭이다. 또 저 잘 다듬는 장인이 새기고 꾸민 바로부터 마니보주(末尼寶珠)가 도장의 무늬와 형상을 내되 그 나머지 다듬지 않은 것으로부터는 아닌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법계(法界)의 방편 반야를 반연하여 지극히 잘 닦아 익혀 갈고 닦아 여래의 법신을 모아 이루니, 이로부터 능히 큰 지혜의 광명을 놓고 갖가지 화신의 영상을 내되, 오직 저 해탈한 몸으로부터만 이와 같은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여래·보살의 위덕(威德)이 머물러 지님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욕계 가운데서 찰제리(刹帝利)·바라문(婆羅門) 등의 큰 부귀한 집에 태어나 사람의 몸과 재물이 원만하지 않음이 없게 하며, 혹은 욕계천(欲界天)·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서 일체 몸과 재물이 원만함을 얻을 수 있게 한다'고 하셨는데, 세존이시여, 이 가운데 무슨 은밀한 뜻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보살의 위덕이 머물러 지님이 만약 도(道)나 만약 행(行)이 일체 곳에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몸과 재물이 다 원만함을 얻게 한다는 것은, 곧 응할 바를 따라 저를 위해 이 도와 이 행을 선설함을 이른다. 만약 능히 이 도와 이 행에 대해 바르게 수행하는 자가 있다면 일체 곳에서 얻은 바 몸과 재물이 원만하지 않음이 없다. 만약 어떤 중생이 이 도와 행에 대해 어기고 가벼이 여기고 헐뜯으며, 또 나에 대해 손해와 번민의 마음 및 진에(瞋恚)의 마음을 일으킨다면, 목숨을 마친 뒤에 일체 곳에서 얻는 바 몸과 재물이 하열(下劣)하지 않음이 없다. 문수사리여!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여래 및 모든 보살의 위덕이 머물러 지님이 다만 능히 몸과 재물을 원만하게 할 뿐만 아니라, 여래·보살이 머물러 지니는 위덕이 또한 중생의 몸과 재물을 하열하게도 함을 알아야 한다."

문수사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더러운 국토(穢土) 가운데서는 무슨 일이 얻기 쉽고 무슨 일이 얻기 어려우며, 모든 청정한 국토(淨土) 가운데서는 무슨 일이 얻기 쉽고 무슨 일이 얻기 어렵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모든 더러운 국토 가운데서는 여덟 가지 일이 얻기 쉽고 두 가지 일이 얻기 어렵다. 무엇을 여덟 가지 일이 얻기 쉬움이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외도(外道)요, 둘째는 괴로움이 있는 중생이요, 셋째는 종성(種姓)과 가문(家門)의 흥함과 쇠함의 차별이요, 넷째는 모든 악행(惡行)을 행함이요, 다섯째는 시라(尸羅)를 훼범함이요, 여섯째는 악취(惡趣)요, 일곱째는 낮은 승(乘)이요, 여덟째는 하열한 의락(意樂)의 가행 보살이다. 무엇을 두 가지 일이 얻기 어려움이라 이름하는가? 첫째는 향상된 의락의 가행 보살이 노닐어 모임이요, 둘째는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심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청정한 국토 가운데서는 위와 서로 어긋나니, 마땅히 여덟 가지 일이 심히 얻기 어렵고 두 가지 일이 얻기 쉬움을 알아야 한다."

그때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해심밀(解深密) 법문 가운데서 이를 무엇이라 이름하며, 저는 마땅히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보살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를 여래성소작사(如來成所作事)의 요의(了義)의 가르침이라 이름하니, 이 여래성소작사의 요의의 가르침을 너는 마땅히 받들어 지녀야 한다." 이 여래성소작사의 요의 가르침을 말씀하실 때에 대회 가운데서 칠십오천(七十五千)의 보살마하살이 다 원만한 법신을 증득하여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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